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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티벌 봄<Q&A>, 다니엘 콕이 관객을 만드는 방식REVIEW/Interdisciplinary Art 2013. 3. 27. 09:53
공연의 컨텍스트화 라는 공연이 공연 후 Q&A가 덧대어졌다. 누군가는 (짜인 대로 보여주는 것이 아닌) 과정화하는 작업이라 말한다. 누군가는 좀 더 정치한 설문조사의 방식을 사용할 수 있으리라 조언 섞인 말을 건넨다. 전자는 이 작품이 관객의 개입이 효과적이었음을(그래서 작가의 만들어지는 작업에 참여했음을) 전제하며 후자는 작품을 만든 다니엘 콕의 설문조사의 차용 방식이 관객을 적확하게 반영하고자 한 목적 아래 진행되었음을 전제한다. 하지만 오히려 작가는 관객의 기호를 충족시키는 듯한 가운데 실은 관객이란 것의 맥락 그리고 무용 공연이라는 것의 맥락을 형성할 뿐이며 관객의 개입으로 전적으로 작품이 만들어지는 것 이상으로, 그와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측면에서 작품을 진행하는 것으로 보인다. 굳이 두 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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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톺아보기] <단지 세상의 끝>: ‘중첩된 현재’REVIEW/Theater 2013. 3. 26. 00:48
부재하지만 존재하는 시간들 ▲ 연극 , 지난 22일 열린 프레스리허설에서(이하 상동), 루이 역 김은석 배우 ‘단지 세상의 끝’이란 제목은 ‘세계의 끝’이라는 종말론적 사고의 만연함의 풍조에 더해 그것을 약간은 긍정의 자세로 가리키는 또 다른 이름인 것 같았다. 사실 이 연극은 매우 개인적인 동시에 한 가족에서 일어나는 좁은 테두리 안에 한정된다. 그리고 연극을 보고 나면 이 제목은 주인공의 내면의 탄식의 일부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보게 한다. 어쩌면 꽤나 긴 언어와의 싸움에 던져진 느낌인데 독특한 듯한 어투들도 그에 한몫한다. 극단 프랑코포니의 지난 작품 은 돌아오지 않은 오빠의 삶을 끊임없이 회상하며 과거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며, 과거로부터 끊임없이 현재와 미래의 서사를 써내려가는 가족들의 갖가지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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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팔스타프>, '팔스타프'의 볼록한 배란?REVIEW/Theater 2013. 3. 25. 13:57
인트로: 부재의 유형 ▲ 19일 오후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에서 열린 오페라 드레스 리허설 장면(이하 상동) 팔스타프에는 특기할 만한 아리아가 보이지 않는다. 전반적으로 레치타티보 형식의 주고받는 대화의 흐름으로 진행되는 가운데 그에게는 특별한 주인공만의 자리가 허락되지 않는다. 그리고 음악은 끊이지 않고 이어지며 비장해지거나 극적인 고양의 흐름이 결코 크게 급격하지 않다. 희극적 기조 이 작품을 구성하는 것은 희극적 정서이며 앞서 영웅의 실패담이라고 할 수 있는, 절대적으로 주인공에 감정이입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얻는 식의 비극에 관련된 관람자의 의식을 만들어내지 않는다. 이는 우리가 그간 접해 왔던 여러 비극의 양식과는 궤를 달리함을 의미한다. 약간은 애매한 부분이 단지 팔스타프가 제일 먼저 등장하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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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판독기] <아르센 루팡>을 관통하는 해석의 코드란REVIEW/Musical 2013. 3. 24. 11:41
'스페셜 인트로' ▲ 지난 2월 27일 열린 프레스콜(이하 상동), 루팡-김다현, 넬리-배다현 은 본격적인 막을 열기 전 영화의 오프닝 타이틀에 해당하는 영상을 집어넣는다. 그리고 짧은 실제 장면의 삽입에 따른 전환이 있다. 일단 전자는 '입체적으로 지도 보기'에 해당하는데, ‘능동적인 시선과 촉각’에 해당한다. 이는 시간을 공간화하고 동시에 역사의 조각들에 기초한 특정 지점을 찾는다는 식의 추리의 코드가 덧붙여지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추리의 코드 그리고 이 능동에 해당하는 활력이 뮤지컬 전반에 어떤 식으로 펼쳐질지를 가늠하는 시작 지점이 된다. Intro: 두려움의 존재, 루팡 루팡의 정체와 관련해 한 수도원에서 간절하게 루팡의 출현에 두려움을 떨며 기도를 올리는 모습을 통해 당시 세상에 그가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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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위치>를 관통하는 '토시키 오카다'식 불안으로서의 형식REVIEW/Interdisciplinary Art 2013. 3. 22. 05:03
프롤로그 : ‘디스토피아가 만연한 사회’ 현위치(現在地), 이 말을 단순하게 ‘현재’로 바꿔본다면, 종말론은 그것을 믿는 자의 어리석음, 나아가 광기의 표식으로서 부인하며, 건강한 삶의 자리로 돌아오는 것으로 정의하는 시기에서 우리는 아무래도 한 발 더 깊숙이 자리하고 있는 듯하다. 아니 종말론은 이미 ‘세계의 끝’이라는 말이 친숙하리만큼, 매체의 파급력을 입어 디스토피아에 관한 그야말로 ‘디스토피아적(창의력 없는) 상상력’으로 우리 의식의 일부로 들어오는가 하면, 소통과 힐링(healing)을 부르짖는 사회 현실 속에 그 외피를 살짝 벗기면 거기에 한층 가까이 있음을 파악할 수 있는 듯 보인다. ‘대재앙’이라 불릴 만한 대지진을 비롯한 일련의 실제 사건들이 토시키 오카다의 의식을 강타했던 것일까. 한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