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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Y, 〈제1강: 거절하는 방법〉: 공동의 이야기로 외전을 이룩하기REVIEW/Theater 2021. 10. 25. 12:04
편지는 늘 미래를 향한다 〈제1강: 거절하는 방법〉은 자기계발의 일종으로서 인간관계의 요령 같은 걸 알려주거나 그래서 성공한 삶의 욕망을 추동하는 그런 유의 작품과는 거리가 있다. 그 제목만으로 그러한 시시콜콜한 관계 맺기의 기술을 보고 들어야 할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34살의 리아(강서희 배우), 선주(백혜경 배우), 현(강다현 배우), 미소(배선희 배우)가 17살의 자신에게 보내는 편지로부터 〈거절하는 법〉이 출발하며, 거절하는 것에 대한 변명의 궁핍함, 상대방에게 상처를 또는 실망을 안기지 않을까에 대한 죄책감 또는 불안감 등 온갖 걱정이 따라붙었던 존재라면, 곧 그들이 스스로의 언어를 쌓아 나가던 그리고 질풍노도의 성장기에 있던 존재임을 알게 된다면 그제야 제목에 무게가 실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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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판야무 , 《오》: 금배섭 안무의 중간 점검 혹은 다시 보기REVIEW/Dance 2021. 10. 19. 17:48
〈?〉, 〈니가 사람이냐?〉, 〈미친놈널뛰기〉, 〈섬〉, 〈포옹〉: 존재의 바탕을 구축하기 금배섭의 춤판야무의 안무 작업들은 퍼포먼스에 가깝다. 극장 공간은 장소의 실천적 의미로 변한다. 금배섭의 움직임은 이 안에서 사물로 연장된 행위의 분명한 단위들을 설정하고 반복하는 것에 가깝다. 그 사물들과의 관계 맺기는 움직임을 제약하는 한편 재분절한다. 이 속에서 금배섭은 어떤 감정에도 휩싸이거나 드러내지 않는, 공간을 측정하고 사물을 제어하며 기계적인 움직임을 구사한다. 가령 〈?〉에서 두 팔을 양옆으로 휘저으며 연장시키는 움직임은 순전히 심미적 차원, 또는 형식적 차원으로 바라볼 수 있는 순간을 구성한다. 반면, 이러한 움직임은 더 나아가는 대신, 곧 그치고 이후 다시 반복되지 않는다. 이러한 행위로서 움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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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과 판지》, 극장의 경계를 시험하는 퍼포먼스REVIEW/Performance 2021. 10. 19. 17:29
한국-스위스 공동창작 프로젝트: 돌과 판지, 6편의 솔로 작업 리뷰 극장은 판지의 무게로, 판지의 차갑고 푹신푹신한 재질로, 공간을 메우는 빈 부피로 현상된다. ‘돌과 판지’라는 제목에서처럼 판지가 공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단지 그 양적 차원이 아니라, 몇 가지 판지의 특질을 곳곳에서 체현한다. 반면 돌은 정지혜의 무대에서 한 번 등장하는데, 브로슈어에서 판지와 대조적인 재질로서 지시되는 돌이 무대에서 거의 부재한 것은 인공의 특질과 관련을 맺는 공연의 직접적 성격으로 수렴한다. 곧 이 공연은 현재 각종 박스가 뒤덮고 있는 우리의 삶, 그러한 재현 가능한 어떤 삶의 양태를 고스란히 추출하고 있다. 그리고 세 퍼포머의 불연속적이고 단속적인 무대는 어떤 관련을 지시하지는 않지만, 그들의 행위에 대한 질문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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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혜림, 《Night Movers》: ‘바깥’의 기호들REVIEW/Visual arts 2021. 10. 19. 16:49
전시 《Night Movers》는 상징으로 파악되거나 도상으로 수렴되지 않는 기호적 사물들의 불연속적이고 불균질한 매듭들이 점철된다. 이 말이 없는, 또는 말이 되지 않는 엮음에 따라 그 사물의 이름이 지워지며 갱신되는 전시의 이념을 구현하기 위해 지웠을 언어, 곧 캡션 없는 이 사물들의 전시에서, 어떤 언어가 있는 세계의 현재를 표상하는, 그 내용을 유추해볼 수 있는 그림이자 가장 거대하게 자리하는, 본문이 없는 책들이 군데군데 있는 이 전시장에서 유일하게 읽을 수 있는 본문에 해당하는 그림 역시 명확하지는 않다. 우선 기름종이에 그려진 이 그림(〈Recall〉, 우레탄 비닐, 마커 펜, 600×400cm, 2021.)은 도구를 다루는 사람들, 작업하는 사람들을 표한다. 당연히 그것들은 어떤 멈춰진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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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인철 연출, 〈순교〉: 폐허의 역사로부터 나아가기REVIEW/Theater 2021. 10. 19. 16:49
SF 서사를 유기적 공간의 아이디어로 실현하다 극장은 중앙과 중앙을 둘러싼 두 원형의 무대와 객석으로 양분된다. 관객이 바깥쪽 원형의 객석을 차지하면, 중앙의 무대는 배우들의 안정된 자리가 아닌 비어 있는 구간으로 주로 놓인다. 호시 신이치의 SF 원작 서사를 바탕으로 한 〈순교〉에서 맨 처음 등장하는 한 음습한 느낌의 발명가에 의해 저세상의 영혼과 교류할 수 있는 통신 장치의 비밀이 드러나는 순간, 순식간에 온 세상의 사람들이 저승을 향해 목숨을 던지는 기현상이 발생한다. 간결한 공간 디자인의 영역에서, 이승과 저승의 경계는 처음 발명가가 저승의 아내에게 말을 건네는 때에는 무대 중앙 아래로 떨어지는 조명과 의자 사이의 간격이라는, 아주 좁은 물리적 영역으로 한정되며, 의구심과 미지의 영역에 있는 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