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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배섭 <횡단보도>, 건널 수 없는 도돌이표 정세, 그리고 제도에 쓰는 자조적 편지REVIEW/Dance 2014. 12. 9. 10:29
▲ 금배섭 포스터 한편으로는 한국 근현대사의 대통령(의 계보)의 현전/재현들과 다른 한편으로는 작품이 아직 오르기 전의 단계, 지원서 양식의 기획 의도와 작품 구상을 통한 작품의 얼개가 수직적으로 작품을 관통하고, 일종의 단락 지점들로 적용되면서, 그 중간은 횡단보도를 건너는 여러 남녀의 소극(笑劇)적 양상으로 채워진다. 일종의 전자가 각각 역사와 작품을 둘러싼 직접적인 연관으로서 동시적인 부분이라면, 후자는 현실 세계의 이상한 재현이고, 여러 다른 시간/관점에서의 다각적 구성이다. 또한 공시적(일시적)인 삶의 에피소드(들)이다. 삶은 지나가기보다 거의 다시 도래하는 것에 가깝다. 이러한 명확한 가짜-선언에 이은 반복-움직임의 배치는 역사는 변함없고 안무는 미묘하게 달라질 뿐 그것(역사)을 해체하거나 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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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 뽑끼 <사소한>, 사적인, 그래서 소중한 것들REVIEW/Dance 2014. 12. 9. 10:20
▲ 프로젝트 뽑끼 중 '사소한 공간' [사진 제공=컬처버스] 용혜련의 몸은 장소에서의 기억을 체현한다. 이는 장소는 기억을 담지하고 있고, 몸은 장소를 구획하는 일정한 움직임을 만듦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는 한 존재의 삶의 영역, 삶의 물리적·신체적 장이 활성화되는 영역에서의 반복이기도 하다. 세 명이 되기 이전에, 관객의 시점을 반영하면서 무대에 선행하는 인물로서 일종의 주인공 같은 캐릭터로, 그것이 자연스러운 밖의 영역이 교차함을 깨닫게 되는 것은 동선이 방해받아 그의 움직임 영역이 구겨지고 멈칫하게 될 때이다. 김명진, 전지예, 용혜련, 이 셋이 복잡계의 일단을 보여줌으로써 ‘지저분한’ 무대를 보여주고자 하는 듯하지만, 실은 더 이상 삶의 영역의 (불완전한) 상정도 아니고, 즉 개인에서 관계의 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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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51>, 예술가의 자립·성장 기반으로서의 두리반!?카테고리 없음 2014. 12. 9. 10:04
▲ [보도스틸 제공=인디스토리] (이하 상동) 은 매끄럽게 이어지는 꽤 잘 편집된 기록물 성격의 영화다. 곧 51+의 공연이 이어지는 대를 전후로 주로 ‘두리반’으로 소급/환원되는 대문자 이름을 전제하는 가운데, 그것의 곁에서 속도감 있게 순차적이고 계보적으로 역사의 한 순간들로 바꾸는, 음악과 그 삶을 보여주며, 음악적 화려함으로 그것을 마감하는, 음악의 유려한 동력이 그야말로 역사/현실을 표면화하고 드러내는, (시)청각적 기록물이다. 이것이 극장이란 곳에서 상영됨으로써-곧 앞뒤 타이틀 시퀀스를 가짐으로써 영화가 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오히려, 기록(의 편집)이자 음악적 편집이 가해진, 떠도는/떠돌았던 음악‘들’의 시대적 풍경(, 그 편지) 같다. 이것은 두리반이란 무거운 어떤 정치적-음악적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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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과 잉여>, 떠도는 시대-이미지/이야기에의 어떤 근접/간접의 시선REVIEW/Visual arts 2014. 12. 9. 09:27
‘청춘과 잉여’라는 제목은 ‘아프니까 청춘이다.’의 세대-주체적 이름의 이상 담론과 취업의 어려움이 동반된, 견고하고 안정적인 삶의 지반을 획득하기 힘든 비주체를 각각 가리키는, 동 세대에 대한 명암이며, 대립하기보다 일종의 이데올로기로 기능하는 두 다른 좌표로 보인다. 곧 이 두 이름은 동시대적-세대적 유행하는 이름이며 그렇게 동시대를 호출/호명하는 전시로 느껴질 소지가 있다. 하지만 들여다보면 ‘청춘’은 90년대 국내 호황을 맞던, 곧 밝은 시대가 펼쳐짐을 앞둔 희망 어린 청춘의 시기의 한 자화상과 2000년대 IMF사태를 비롯해, 세계 금융 위기의 여파가 지속되는, 가령 겹치는 시기에서 장기하의 한 노래 중 ‘방바닥에 뒹굴다 못해 방바닥과 내가 물아일체된’ 잉여적 청춘의 단절적 계보 양상을 절합시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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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스트 라디오, 청취의 이미지REVIEW/Interdisciplinary Art 2014. 12. 9. 09:03
프로스트 라디오Frost Radio(서리 라디오)는 특정 장소에서의 특정 주파수를 라디오로 듣는 관객-퍼포머의 체험으로 완성되는 일종의 장소 특정적 듣기라 할 수 있다. 라디오는 특정(가청) 주파수(영역)에서만 가능한데, 전파 송신의 역량에 따라 그 장소는 무한해질 수 있겠지만, 전파의 이름의 근접과 함께 그 전파가 닿아야 하는 실제적 거리에 대한 감각이 우선하는 특성으로 인해 여전히 장소 특정적이며, 동시에 장소의 연장적이며 동시(다발)적인 특성을 띤다. 현장에 당도했을 때 주파수는 다리 밑으로 내려가는 과정에서 건물에 걸려 나오다 말다 그랬는데, 그 정도로 전파가 약했고, 다리 밑에 내려왔을 때 전파(소리)의 끊김(간섭) 현상은 없었다. 그리고 마주한 광경은, 평화롭게 마치 쇠라의 ‘그랑드 자트 섬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