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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형제다> 무엇에 대한 테러인가?REVIEW/Theater 2015. 9. 13. 03:08
사건의 재현 아닌 허구적 재생 장치의 내파 ▲ [사진 제공=세종문화회관] (이하 상돌) '나는 형제다', 곧 '나'를 일부 나와 유전자를 공유하는 혈연 공동체의 일부로 정의하는 이 말은, 나와 너의 공속 불가능성에 대한 가능성을 유예한다. 운동과 공부라는 스테레오타입의 구별로써, 또한 성격과 외모로써 그 차이를 선명하게 하는 형제의 모습은, 따로 또 같은 ‘더블’로 대칭 쌍을 이룬다. 그리고 이들은 실제 어둠보다는 사막에서의 생존의 은유가 더 분명해 보이는 고독한 방랑자로서, ‘살아남기의 방식’을 ‘함께 살아가기의 이상’으로 확장해 나간다. 곧 ‘형제에의 숙명’을 ‘형제로의 사명’으로 전치시킨다. 이 과정에서 적대적인 세상과의 관계로부터 나아가, 모두가 형제가 되(어야 하)는 넓은 범주의 ‘형제’ 개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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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djf studio x qhak, 이미지와 나 사이에 레이어와 시선을 한 겹 더하다REVIEW/Visual arts 2015. 9. 4. 02:17
사본1/n 2014ⓒ fldjf 박보마 작가가 비디오 릴레이 탄산에서 선보인 영상 작업은, 실은 다양한 이미지들을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프레젠테이션 형식의 수행적 퍼포먼스 차원에서 보였고, 한편 그 각각의 이미지들은 숫자가 섞인 독해하기 어려운 완벽하지 않은 문장을 이루는 단어들과 함께 나타났는데, 시간과 포토샵 이미지라는 하나의 디지털 매체의 조건 아래 객체 측정의 단위들이 표시되어 일종의 작품에 대한 메타 데이터로서 작품을 지정해주면서 그 낯선 단어들에는 어떤 화자의 순간적 감정의 데이터가 함께 들어가 있었다. 다른 한편 그 이미지를 보여주는 방식은 ‘wix’라는 (페이지 전환 방식이 아닌 끊어짐이 없는, 일종의 파피루스식 읽기를 가능하게 하는) 스크롤의 변신으로 생성되는 홈페이지라는 매체 조건 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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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송, ‘누가 무엇을 보내는가’의 물음REVIEW/Visual arts 2015. 8. 26. 16:59
장소 특정적인 작업과 공간 임대적 작업 사이의 어떤 파생 지점들 ‘동송’이란 원래의 지명을 새로운 동음이의어로서의 의미를 부여하며 재전유한 것으로, 함께 보낸다는 뜻이다. 여기서 그 주체를 무엇으로 상정하느냐는, 언뜻 커뮤니티 아트로도 보이는 이번 프로젝트를 그러한 기준 아래 가늠해 볼 수 있으리라 보이는데, 곧 그 주체가 ‘작가들’이며 그 과정상의 자의적 경험을 (충족시키는 것으로 충분함을) 의미하는지 혹은 마을 전체로 확장된 어떤 이상적 개념을 상정하는지가 이를 통해 드러난다. 한편으로 그 ‘보낸다’는 것이 일종의 매체적 전달 과정을 상정하며 따라서 어떤 메시지를 가정한다면, DMZ를 함축한 동송이라는 지역에 보내는 메시지를 또한 가정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한 마디로 ‘함께’라는 이상적인 의미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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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경, <평화 가라오케> 구성되며 현동화되는 공연REVIEW/Interdisciplinary Art 2015. 7. 27. 16:40
ⓒRanda Mirza 는 즉흥 신체 연기를 하는 배우의 존재를 관객에게 체현한다. 관객은 스크린을 보며 동작을 묘사하는 섭외된 배우가 인이어 이어폰에 의한 청취를 모방하는 것까지를 본다. 배우로서는 귀에 들리는 스크린의 소리와 앞 스크린의 반전된 영상을 바라보며, 언어와 행위의 차원에서 그 둘을 합치시켜야 한다. 언어와 행위라는 ‘이중의 따라 하기’는 시차를 생산하는데, 그것은 현재 즉각적으로 벌어지는 것임을 확증하는 중요한 요소다. 모방/재현으로서 연기는 거울 뉴런적, 인지적 반응에 의한 것이고 관객을 그것을 간격으로 감각적으로 인지하게 된다. 곧 ‘연극은 상연되고 있음을 숨기지 않는다.’ 연극은 지연된, 아니 즉각적 반응으로서 신체를 우리가 매우 즉각적인 시차로 그것과 합치시키려는 노력(?)에 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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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가족> 희극적 전략 속 냉소적 우의REVIEW/Theater 2015. 7. 27. 16:30
▲ 포스터 에서 ‘안전가족’은 이데올로기 개념으로 사용된다. 가족이 사는 집이 안전한 만큼 바깥은 불안전함을 시사하고, 그러한 가족을 건사하기 위해서는 바깥에 나가면 안 된다(는 신화를 구성한다). 단지 가장만이 외부 출입을 할 수 있으며 나머지 가족은 그 선을 넘지 못한다. 그리고 이 가족은 가부장적 위계에 의해 집에서 엄금된다. 밖은 불안전한 것일까. 바깥과 단절됨으로써 언어는 해체·재조립되고 사회의 언어 규약을 따르지 않게 된다. 애초 아이들은 라디오(미디어)를 통해 이상한 언어의 쓰임을 하달 받고 있는데, 우리가 아는 일상 언어에서의 기표와 기의의 불일치가 전제된다. 가령 ‘오토바이=박수’라는 식으로, 바깥과의 관계 맺기가 부족한 가운데 외부의 생명체로서 고양이 역시 핵폭탄이 된다. 하지만 기표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