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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무용단 끝-레지던시: 안무가 초청 프로젝트 리뷰REVIEW/Dance 2015. 4. 14. 13:52
언어-움직임-이미지의 균열적 총체▲ 국립현대무용단 끝-레지던시 공연 [사진 제공=국립현대무용단] (이하 상동)‘짏어’는 ‘싫어’와 ‘질어’(‘짊어’/‘집어’……) 등의 무수한 유사 기표의 착시를 ‘짊어’진다. 이것은 그 어떤 확정/이해 가능한, 단어를 거부(‘싫어’)하며 그것을 포섭한다. 독립적인 단어의 쓰임을 이탈하는 초과된 단어의 전시는 말을, 침묵을 대신한다. 말의 침묵은 침묵으로서 말하기가 된다. 무대의 현존은 그러나 그 앙다문 그러나 비죽 나온 두꺼운 입술에, 그 입술이 지니는 묘한 웃음의 흔적으로 수렴된다. 곧 눈과 입의 다른 층위에서 이 작품은 어쩌면 전적으로 쓰이고 있다. 곧 보는 것과 말하는 것의 간극이 이 작품을 추동한다. 이 기묘한 마스크의 무용수, 최민선이 갖는 침묵의 말은, 각각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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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티벌 봄 2015 프리뷰] 상호 참조적 코멘트PREVIEW/Festival 2015. 3. 25. 16:09
9회째를 맞는 페스티벌 봄이 오는 27일(금)부터 4월 19일(일)까지 열린다. 12개국(노르웨이/독일/말레이시아/불가리아/세르비아/영국/인도네시아/일본/프랑스/필리핀/한국/호주) 50여 명의 아티스트들의 참여로, 총 30개의 작품이 서교예술실험센터, 문래예술공장, 인디아트홀 공, 구로아트밸리 예술극장, 서강대 메리홀 등을 찾는다. 올해 페스티벌 봄의 주제는 ‘상호참조(Cross-Reference, 相互參照)’로, 작가-작품-관객을 레퍼런스로 삼는다. 이는 SNS와 같은 파급력을 지닌 매체 특성에 기인한 작품의 맥락이 재-발현, 재 포맷되는 현상에 상응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곧 이를 통해 작품의 맥락이 확장되거나 변형되는 과정까지를 하나의 작품으로 볼 수 있는 여지를 상정한다. 이승효 페스티벌 감독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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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다페르튜토 스튜디오>: 구성되는 연극, 발생하는 행위REVIEW/Theater 2015. 2. 13. 16:13
▲ 연극 [사진 제공=두산아트센터] (이하 상동) 다섯 개의 장/막/연극으로 이뤄져 있는 연극(들)을 통해 다페르튜토 스튜디오(적극)은 연극 자체를 따로 또 같이 말하고 있다고 보인다. 첫 번째 연극()은 양 한 마리를 세며-정확히는 타자打字를 치고- 화면에서 하나씩 증가되는 수열로서, 숫자의 증가로 수식되는 양으로 지정됨을 관객은 인식하게 된다. ‘숫자+양’ 이후 무대의 구멍에서 양으로 분장한, 양의 역할을 맡은 배우가 나타난다. 제목을 따른다면, 한 프랑스 패션 디자이너의 꿈속에서 양을 세는 가운데, 각기 다른 기괴한 양이 나타나는 형국이다. 표면적으로 이러한 시놉시스(타자)와 나타남의 시차적인 합치는, 재활용 물품들과 절합된-곧 분장이라기보다 덧붙이고 껴안고 들고 하는 식으로 일시적이고 분절적인 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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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 디스토피아>, 단순한 부정에의 열망인가REVIEW/Theater 2015. 2. 13. 15:33
▲ 디스 디스토피아_사진 김도웅 [사진 제공=컬처버스](이하 상동) 디스 디스토피아(This distopia)는 부정적인 장소, 디스토피아를 지시한다. 이것은 디스토피아라는 프레임은 무대를 구획한다. 곧 디스토피아라는 세계에 침잠·전염되기보다 이러한 디스토피아를 인지하는 주체로서 극을 바라보게 된다. 한편 ‘디스-디스’라는 발음/표기가 반복됨은 일종의 언어유희로 이해·인지 가능하며, 두 개의 ‘디스’가 자리바꿈을 하는 것으로 바라볼 수 있다. ‘this distopia’는 ‘dis-this-topia’로 볼 수 있고, 그에 따르면 이 부정적인 장소는 부정적인 이 장소로 전치되며, 전자가 저기의 부정적인 장소를 바라보는 이곳의 시선이라면, 후자는 여기 장소 자체를 부정하는 것에 가깝다. 이는 디스토피아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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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무용단 <춤이 말하다>: 춤의 전형적인 재구성과 아카이브에의 열망REVIEW/Dance 2015. 1. 5. 14:25
▲ 국립현대무용단, [사진 제공=국립현대무용단](이하 상동) 는 춤을 보는 것에서 춤의 말을 듣는 것으로 춤의 위치 전환을 감행한다. 그러나 렉처 퍼포먼스의 형식을 차용한 이 작품이 제목에서 가리키는, 이 위치 전환은 추상적이고 비언어적 춤에 대한 구체적이고 언어적인 해설/해석의 차원이 더해지는 것만을 이야기하진 않는데, 말하는 주체를 춤에 관련된 누군가가 아닌, 춤 그 자체로 본질적이고 환원적인 차원으로 돌렸기 때문이다. 곧 ‘춤을 말하다’의 메타 차원이 아닌, 곧 말 자체의 자율성을 가져가기보다, ‘춤이 말하다’라는 그 춤 자체의 신비주의 강령을 온전히 해체/재구성하기보다 춤 그것의 본질에 다시 사로잡힐 공산이 큰 것이다. 여섯 명의 춤꾼/무용가들은 한국무용계를 대표할 만한 다양한 분야에 속한다.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