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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금형 <심폐소생술연습>, '존재와 사물 간 분열'REVIEW/Interdisciplinary Art 2014. 3. 16. 17:01
(스튜디오M30, 2013년 12월 28일~12월 30일)은 정금형이 수면에 빠졌거나 의식이 멈춘 상태의 환자―더미―를 간호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전라가 된 채 그의 팔로 자신의 신체를 더듬게 한다. 의식이 죽은 상태에서, 감각 역시 작용할 리 없는데, 그에게 자신의 신체를 내어 줌으로써 환자의 팔로부터 어떤 생명의 기운이 마법처럼 돋아나는 듯한 느낌도 든다. 환자의 시선이 향하는 그 허공에서 관객과 마주한 정금형이 움직이지 않는 관객의 신체를 직접 애무하듯 “내가 싫어요?”란 말을 무심하게 꺼내 놓는 게 분기점이 되는데, 이는 죽은 이의 몸을 떠나 우리에게 즉각 전해진다. 어떤 기계음이 중독적 구문으로 의식을 맴돌고, 형광등이 아른거리는 가운데, 정금형은 죽은 자의 무의식과의 교호 작용을 유희적 몸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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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먼지섬>, 무한한 시간의 영겁 속 혼재된 자아들REVIEW/Theater 2014. 3. 14. 14:37
▲ 연극 포스터 ‘먼지’는 시간의 축적이자 비가시적이며 실재적인 시간의 두께를 의미한다. 이는 돌이킬 수 없는 과거와 낯설게 놓인 현재 사이의 간극을 증명한다. 이는 직접적으로 말하는 게 아니므로, 스님의 낯설게 변한 환경에 대한 인식 따위로만 드러난다. 스님이 이 낯선 환경에서 먼지에 쌓인 멈춘 시계를 작동시킴은, 그래서 지난 멈춘 시간에서 현재 시간으로의 이어짐은 사물의 먼지를 털어내는 것과 같이 낯선 시간을 깨우는 새로운 시작을 갖는 것 같지만, 시계는 단지 현재만을 지정할 뿐이다. 이 멈춰진 과거의 시간에 대한 환상과 새로운 시작이라는 환상은 매끄러운 시계의 작동으로 무화되고 종합된다. 이것은 극의 하나의 시작이다. 아들을 끔찍이 아끼는, 그리고 남편을 잃은 시어머니는 며느리에게 자신의 아들을 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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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쓰-플레이'전 리뷰: '어떤 어긋나는 지점'들에 대한 찬동들REVIEW/Interdisciplinary Art 2014. 3. 13. 19:41
▲ 장현준_ 나는 협소한 창문으로 출입하라 _퍼포먼스_2014_전시전경 2013 아르코 신진기획자 인턴십 프로그램 성과보고전 '미쓰-플레이'전(1월 24일 - 2월 28일) 기획 의도에 따르면, ‘미쓰-플레이’라는 제목은 “오해·오독을 의미하는 miscommunication과 놀이를 뜻하는 play의 합성어로 오차 발생을 통한 창의적인 움직임을 발견하고자 만들어낸” 것이라고 한다. 이는 놀이라는 행위에 방점이 찍히는데, 또는 그 과정 자체를 수반하고 있는 작품의 가능성을 노정한다. 장현준의 에서, 관객은 전시장의 사물을 본다기보다 노트북 화상 채팅을 통해 장현준과 만나는 체험을 하게 된다. 일견 그가 지령을 준 동작들을 따라 하는 시간은 ‘존재론적 닮음’을 추구하는 모방하기에 가까운 듯하지만, 어느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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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오병잉 페스티벌': 잉여로부터 추출한 가능성들REVIEW/Interdisciplinary Art 2014. 3. 5. 14:49
▲ 아오병잉 페스티벌 포스터 왜 ‘아오병잉’인가, ‘아시아-오프-병맛-잉여’의 줄임말은, 웅얼거리며 차마 언어가 되지 않는 유아어 같고 의미를 형성하지 않는 잉여의 네 음절로 느껴진다. 한편, 페스티벌 기념품인 세 가지 버튼 묶음에는 ‘잉’의 자리에는 ‘인’‧‘신’‧‘잉’이 각각 들어가는데 의미는 한층 더 불명료해진다(도대체 이는 무엇의 줄임인가. 세로읽기를 통해 한데 묶어도, 의미는 형성되지 않는다). 프로그램을 따르자면, 아오병잉에서 ‘아시아’는 참가단체의 국적을 아우르는 영역의 범주이자 그것을 한정하는 개념이라면, ‘오-병-잉’은 다원예술의 새로운 정의로 전유되고 있다. 여기서 아시아는 대안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거나 아시아 자체의 고유성을 내세우거나 또는 아시아의 오-병-잉을 지향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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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혜 연출의 <모래의 여자>, '부조리한 존재 물음의 모호한 지속'REVIEW/Theater 2014. 3. 5. 14:10
▲ 모래의 여자(각 색 ‧ 연 출 구자혜, 출 연 윤현길, 백석광)_photo by 김도웅 긴 어둠, ‘도대체 이 공간은 어디인가’라는 물음은 작품의 시작과 함께 떠나지 않는다. 초반 어둠과 함께 등장하는 여자의 메아리-목소리, 그리고 이후 그것이 반복되고 지속되지 않는 엄밀히 언어가 되지 않는 소리는 가령 이 바깥의 신체가 아니며 어떤 음악적인 부분의 효과로서 장식의 초과적인 측면이라고 하기에는 조심스럽고 미약하다. 이는 이곳에 낯선 자로 자리하지만 그에게 낯선 자로 있는 여자의 무의식의 결로부터 연유하는가, 오히려 이는 이 노래로 둘러싸인 곳에서 나갈 수 없는 가운데 죽어나간 수많은 영혼의 것인가, 이는 그 둘의 바깥에 있는 반면, 그렇다고 그 바깥을 상정할 수 있는 것조차 아니다. 이는 모래가 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