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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MODAFE] 박근태, <Man's Diary> '기억에 종속되는 신체'REVIEW/Dance 2014. 6. 4. 01:37
▲ 박근태 안무작 [사진제공=모다페] 단독자와 그와의 등가물들 격인 세 쌍의 무용수가 나온다. 그리고 존재의 기억이 펼쳐진다. 한 명의 존재는 지난날 자신과 연인이 만나고 헤어지는 과정을 내레이션으로 무대 뒤에서 목소리로 체현하고 세 쌍의 커플은 한 남자의 목소리를 재현하고 표현하는 일종의 부속물에 가까운 무용수들이 되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그럼에도 이 작품이 목소리와 움직임이 입체적으로 펼쳐지는 하나의 공간감적인 시가 아니며, 이천 년대 이후 국내에서도 하나의 담론과 이슈가 된 다원예술적 움직임이라는 특징을 지닌 작품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아니다. 움직임(표현)이 목소리(텍스트)를 앞서기 때문이다. 물론 화자인 존재가 본격적인 춤이 펼쳐지는 동안 등장하지 않으며 시작과 끝에만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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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0/40', 작업의 조건을 내세운 명명, 그리고 각자의 시점으로부터.REVIEW/Performance 2014. 6. 4. 00:11
‘800/40’은 자기 지시적으로 그들의 작품 세계와 작업 환경을 설명한다. 보증금을 가리키는 이 정직하고도 명확한 (어떤 보편적인 현실까지 포함해 그들의) 현실의 규정의 성격을 띤 명명은 그러한 조건을 환기시키고 또 그 자체를 끊임없이 인정하게 하며 어떤 중독으로 화해 간다. 그건 어느 순간에 ‘팔베개~’ 내지 ‘팔 베게~’ 사십으로 들리기도 한다(그렇다면 ‘살살 다뤄 줘’는 무슨 뜻일까). ‘시점 특정적’이라는 뜻은 도대체 무엇인가. 일전에 서울시립미술관 한 오프닝에서 보여줬던 것처럼 구획을 정해놓고 더듬더듬 흠칫흠칫 움직이는 부자연스러운 이동과 리듬, 두더지처럼 고개를 뺐다 들어갔다 하는 단속적인 움직임, 전자 사운드의 믹싱의 결합은 사실상 시점을 특정화할 수 없는 맴돎 내지 끊김이었다. 이건 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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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주, <Unfaithful belief_삼신뎐> 리뷰: '상상계적 원형과 현실의 중간적 탐사'(레스빠스 71_Young Artist Compe 2014)REVIEW/Visual arts 2014. 5. 22. 15:20
▲ [사진 제공=레스빠스 71] , 네 개의 작품이 하나의 기둥 공간을 감싸고 합해지고 있는, 아니 하나의 작품이 하나의 공간을 둘러싸고 있는 유기적 표면의 조각들이다. 곧 신목을 동서남북, 네 개의 방위에서 바라보고 그렸으며 이는 네모난 캔버스의 틀로서 네모난 기둥과 절합되며 전시장에 나무의 상징 공간을 예시한다. 이는 실제 나무가 갖는 위치성을 재현하며 동시에 신목으로서 그에 대해 갖는 의식(儀式)의 의식(意識)을 체현하게 한다. 이 기둥에 상징의 힘을 가져오는 동시에 그것과 맺는 입체적인 위치 설정을 재현하는 것이다. 이 나무들을 보자 긁어내듯 음영을 만들어 그 두터움을 표현하는 한편 그 숲 같은 잎들의 뻗침이 예사롭지 않은 기를 형상화한다. 동시에 검게 음영진 중간은 동물의 가죽 같은, 그 위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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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탈리콜] 이행준과 홍철기 퍼포먼스, '이것은 역사를 표상하는 것인가?'REVIEW/Performance 2014. 5. 20. 13:42
▲ 이행준,홍철기,_환상의_여학생_부대,_사운드_인스톨레이션,_16mm_필름,_2014 [사진 제공=일민미술관] 이행준의 16mm 영사기의 필름이 만드는 사람들의 영상은, 그 빠른 전환으로 인해 어떤 하나의 이미지가 기본적으로(지각적으로) 되지 못한다. 하나의 단위로 인지되기 어렵다. 그럼에도 어떤 리듬에 의해 멈추고 초점이 맞춰진다. 그리고 하나의 얼굴이 탄생한다. 이 얼굴은 역사적 자취, 추억, 푼크툼의 기본적인 영상이다. 하지만 이는 포착할 수 없음( 자체의 쾌락)의 효과에 가깝다. 이른바 속도, 망각의 쾌락. 실제 어떤 정서로 감응되기에는 너무 찰나적이다. 이것을 잡아두는 것은 그 위에 묻어지는 동심원의 확장·축소다. 이 크기의 넘나듦에 사진의 예기치 않은, 정확치 않은 초점을 맞추어 낸다.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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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간 전시: 한 시간을 증명하는 증인들의 소환REVIEW/Visual arts 2014. 5. 20. 13:04
▲ 《한 시간 전시(One Hour Long Exhibition)》(사진 제공=아트선재센터) (이하 상동) 지난 4월 8일, 저녁 6시에서 7시 사이에 열린, 《한 시간 전시(One Hour Long Exhibition)》는 한 시간 안의 전시를 구성해 낼 수 있는 역량에 집중한다거나 또는 무언가를 만들어 내야 한다는 시간의 제한을 조건으로 두고자 하는 것(아마도 그렇게 유추되지만)만이 아님은 분명하다. 궁극적으로 전시는 그 최종 구성물만을 보일 수밖에 없는데, 그것을 구성하는 한 시간 동안 일어난 모든 것이 전시라면, 일반적인 전시에서의 전시 설치의 행위와 그 흐름은 그 작품의 완성을 위한 단순히 기능적인 부분이거나 관객에게는 당연히 보이지 않는 부분이거나 부수적일 수밖에 없는 부분임을 벗어난다, 그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