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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혜중공업 ≪세 개의 쉬운 비디오 자습서로 보는 삶≫: '시적 알레고리와 리듬 문자, 그리고 사운드'REVIEW/Visual arts 2017. 3. 21. 23:27
▲ 《세 개의 쉬운 비디오 자습서로 보는 삶》 전시 전경, 아트선재센터, 2017, 사진: 김상태 [사진 제공=아트선재센터] (이하 상동) 시각적 제스처로 한정 짓기에는 화면 안 글자의 폰트, 형태, 배치 들의 궤적은 지연되지 않으므로 일종의 시간예술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화면 밖 공간을 채우는 재즈 풍의 연주는 그것과 싱크를 맞추며 화면의 전환과 시각적 리듬에 더해 끊임없는 자극을 준다. 사실상 언어의 장르적 특질은 1층의 가 주로 대화체로 구성된 인터넷 소설의 외양으로 판소리 사설을 떠올리게 하는 반면, 2층의 는 한국 사회의 대타자적인 기호이자 동시에 모든 고급적이고도 매력적인 장소로서 '삼성'―삼성이라는 고유명사에 대한 직접적 언급으로서 삼성이라는 상징 자본의 고유한 위치를 비판적이고 적대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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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예술센터 2017 ‘동시대성을 화두로 공공극장의 역할 제고’카테고리 없음 2017. 2. 7. 18:59
▲2017 남산예술센터 시즌 10명의 연출가 [사진제공=남산예술센터] 남산예술센터(서울문화재단 산하)는 3월부터 10편의 작품을 올린다. 우연 극장장은 ‘민감한 동시대 주제’를 다루려고 하고, 재공연되는 두 작품(, )에 대해 한국사회에서 아직도 유효하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또한 ‘검열각하’를 혜화동로터리에서 작은 역사를 세우려는 연대의 움직임으로, 지금 한국 사회 내 문화예술을 개별적인 목소리가 아니고 여러 다수의 목소리를 모아서 다뤘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평가했다. 이를 남산예술극장으로 가져옴으로써 현장과의 연대를 강화하는 동시에 공공극장의 역할에 대해 성찰의 기회를 제공하고자 하는 것이다. 또한 기존의 서사를 벗어난 새로운 형식의 작업들을 다룬다. 구자혜 연출가는 에서 작년 문화예술계 내 성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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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수현 안무가의 <아이 원트 투 크라이, 벗 아임 낫 새드(I want to cry, but I’m not sad)>의 안무 패러다임에 대한 접근카테고리 없음 2017. 1. 13. 11:52
수행사로서의 제목 ▲ (2016)[사진 제공=황수현 안무가](이하 상동) 제목인 (2016, 이하 )의 “울고 싶지만, 슬프지는 않다.”는 뜻의 문장은 공연의 시작을 꾀는 제사(題詞)이자 수행사(遂行辭)로서의 퍼포먼스 자체를 지시한다. 보통은 슬픔이 울음의 전제 조건이자 인과의 선행 요인이라면, 이 퍼포먼스 안에서는 울음을 슬픔 가운데 생성하지 않는 것, 곧 울음을 슬픔과 상관없이 작동케 하는 것이 주요한 전제가 된다. 한편으로 여기에는 왜 울고 ‘싶은지’에 대한 이유가 가늠되지 않는다. 곧 각각의 퍼포머/무용수마다 울음을 쥐어 짜내는 기술의 시현 정도로 나타나는 퍼포먼스는, 그러한 기술 자체가 안무로 작동하는 것까지만을 다루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곧 퍼포머 개개인의 감정 양태 자체는 울음의 유인은 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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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SIDANCE] 카롤린 칼송 리뷰REVIEW/Dance 2017. 1. 13. 11:43
건강상의 이유로 한국에 오지 못한 칼송의 작품 는 일부 축약한 영상으로 선보였고, 이는 추상표현주의 회화 작가 마크 로스코의 작품에 대해 영감을 얻는 칼송이 직접 구성한 텍스트의 내레이션이 나오는 가운데, 여러 심리적이고 미니멀한 동작들이 출현한다−물론 이는 짧은 비디오 단편들로 분절된다. 춤에 대한 내적 동기, 곧 불가해한 작품이 놓이고 이를 마주하고 생겨나는 감상을 춤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내면적 욕구, 그리고 작품에 대한 심리적 대화가 안무를 구성하게 된다. 시적이고 추상적인 표현주의적 안무의 심상은 구체적인 작품, 물질에 대한 것에서부터 출발함으로써 동시대의 춤에 대한 래디컬한 질문을 정초하지 않고서 춤의 유인과 안무의 합목적성을 얻는다. '침묵의 사물'은 춤이라는 매체와 적절히 상응하며 또한 말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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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말볼리오> 리뷰, '극에 참여하고 있다'REVIEW/Theater 2016. 12. 5. 12:17
공연은 현대인을 대표하는 관객을 상정하고 그런 의식화된 관객을 끊임없이 조소하고 비판하며 진행된다. 관객과 직접적으로 대면하고 관객에게 말을 걸면서 무력하게 앉아 있는 수동적인 관객의 의식을 깨우는데, 이러한 직접적 인터랙션과 셰익스피어의 희곡, '십이야'의 말볼리오라는 캐릭터가 희곡의 줄거리를 이야기하는 장면은 거의 반반으로 나뉜다. 극에 참여한다는 의식으로부터 극을 본다/듣는다는 의식으로 넘어감은 후자를 일종의 극 중 극 차원으로 볼 수 있는 메타 의식을 갖게 한다. 두 부분은 엄밀히 구분되는데, 전자가 후자의 주석이 아니라, 후자가 전자의 인용 차원이 된다는 점을 인지할 수 있는 부분이다. 궁극적으로 극은 말볼리오라는 불운한 캐릭터에 대한 해설이자 현대적 주석쯤이 된다. 한편으로 연극은 기본적인 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