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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Dance2018] 테로 사리넨 무용단 <숨>: 착오적 매체 특정적 작업REVIEW/Dance 2019. 3. 12. 13:08
▲ 테로 사리넨 무용단 ⓒMikki Kunttu조명(테로 사리넨의 모든 작품의 조명 디자인과 비주얼을 담당해온 무대 및 조명 디자이너 미키 쿤투Mikki Kunttu), 연주(아코디언으로 음악을 연주하는 킴모 포흐요넨Kimmo Pohjonen), 움직임(테로 사리넨Tero Saarinen)의 세 가지 매체가 교차하며 연합하는 형태의 공연이 보여주고자 한 최종적인 바는 상이한 요소들이 갖는 효과 측면으로 환원되기보다 신체 자체가 무대 전체로 연장, 증폭되는 형태에 초점이 있는 듯 보인다. 하지만 그 와중에 세계를 사라지게 하고 순간으로 나타나(게 하)는 오직 그 자체의 현존만을 나타내는 조명의 온오프를 물리적인 조건 아래 있는 어쩔 수 없는 예외적인 순간으로 본다면, 공연은 소리, 음악과 움직임, 무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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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대 담론의 작은 역사: 2013-2016Column 2019. 2. 12. 14:25
안대웅 이 에세이는 2013년부터 2016년까지 벌어진 세대 담론을 살핀다. 여기에 관해서는 다양한 논평들이 이미 나왔지만, 나 또한 여기에 일정 부분 가담한 자로서 개인적으로 정리하고 넘어가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럼에도 이 주제를 굳이 다시 꺼내든 것이 개인적인 이유만은 아니다. 세대 담론이 출몰하게 된 배경은 여전히 미술계에서 문제적이며, 이는 새로운 세대에 대한 주목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소홀하게 다루어졌다고 본다. 이 글을 통해 살피고자 하는 것은 그 배경에 관한 것이다. 그러나 모든 과정을 살필 수는 없으므로 중요한 세 장면을 꼽았는데, 그것은 2013년 미술생산자모임의 토론회, 2014년 홍태림의 공장미술제 비판, 2015년의 ≪굿-즈≫와 신생공간이다. 앞으로 이 글은 세 장면의 연관 관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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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Dance2018] 졸탄 버쿠여 & 첸 웨이 리 <함께 홀로(Together Alone)>: '나체는 그 자체로 (침묵의) 언어를 갖는가'REVIEW/Dance 2018. 10. 14. 13:20
▲졸탄 버쿠여 & 첸 웨이 리 공연 사진ⓒPark Sang Yun [사진 제공=SIDance](이하 상동)관객의 입장 직전부터 나체로 공연 전반을 활보하는 둘의 움직임은 접촉 즉흥(contact improvisation)을 닮았다. 첫 번째로 신체가 밀착돼 자연스럽게 신체의 전면을 무대에 투사하며 두 번째로 수십 분의 흐름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신체 사이에서의 흐름 그 자체로부터 다시 출현하는 또 다른 흐름이 전적으로 중요해진다. 적확하게 짜인 안무나 서사의 얼개에 포섭되는 변주로서 장식적인 움직임들과는 거리가 있다. 이러한 신체 전부를 드러냄과 지속적인 관계 맺음으로만 짜이는 안무는 생생함을 강조하고 동시에 신체 전면에 대한 변환의 순간들을 주장한다. 이는 즉흥으로 진행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물론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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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Dance2018]<난파선-멸종생물 목록(WRECK-List of Extinct Species)>: ‘현상학적이고 상징적인 오브제의 현존’REVIEW/Dance 2018. 10. 10. 09:33
▲피에트로 마룰로(Pietro Marullo)/인시에미 이레알리 컴퍼니(INSIEMI IRREALI Company), : ⓒCreamart[사진 제공=SIDance](이하 상동)Company), : ⓒCreamart[사진 제공=SIDance](이하 상동)작품 설명에서 언급되는 ‘아르테 포베라’는 60년대 말 이탈리아에서 일어난 느슨한 동인의 성격에 가까운 미술 조류로, 표면적으로는 ‘비천한 오브제’(할 포스터)로 귀결되지만, 재료 자체의 재현적 기능을 담보하는 대신, 오브제를 사물 자체로 소급시킴으로써 결과적으로 미니멀리즘의 현상학적 체험에 상응하는 부분이 있다. 가령 1969년 줄리오 파올리니의 “사방 벽에 동일한 흰색의 캔버스를 서로 바라보도록 배치”한 의 캔버스가 “많은 다른 것들을 깨닫게 하는 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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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hibition of Exhibition of Exhibition》: 전시라는 이름을 작동시키기REVIEW/Visual arts 2018. 6. 20. 14:12
컬렉션으로서 작품, 고유명으로서 큐레이터▲《Exhibition of Exhibition of Exhibition》 전경 ⓒ김진호(이하 상동)아카이브(?)된 50명의 작가 중 49개의 작품은, 한정된 그러나 꽤 풍요로운 선택지 속에 큐레이터들의 선택으로 분절된다. 선택의 교집합은 필연적인 것이 아니다. 이 작품들의 ‘선택’들은 가령 큐레이터마다의 하루에 해당하는 개별적 전시들의 얼개를 띤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전시는 작품의 확장(적 수렴) 대신, 큐레이터 각각의 컬렉션 자체로 소급되며, 컬렉션 내 작품들은 의미로부터 표백된다(마치 90년대 히트 팝송 모음 테이프들처럼 그것들은 일종의 명확하지만 불투명한 비-아카이브다). 전시‘들’은 큐레이터(들의 서문)들을 통해 필터링되지만, 작품의 의미와 내용은 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