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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송은미술대상 리뷰REVIEW/Visual arts 2017. 3. 22. 00:12
▲ 그들이 온다. 은밀하게, 빠르게, 2016, 단채널영상, 사운드 염지혜의 스크리닝 (2016)는 짧은 시간에 부여되는 리듬과 일정 단위의 구별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 이후 김세진 작업과의 비교 지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비규격화적인 표현 형식은 소급되지 않는 이상한 차원/레이어로 빠져들며 해독 불능, 판단 유예/불가의 상황을 초래한다고 보인다.). 여기에 감상적이지 않고 유희적이고 장난스러운 말이 헐겁게 화면에 드러난다. 곧 그것은 목소리에 입힌다. 그럼에도 그 목소리는 결코 견고한 하나의 내레이터로 수렴되는 대신 일정하지 않은 인격체, 가상으로 형성된 캐릭터에 애매하게 부착된다. 사실 그러한 필연적 균열은 드러나기보다 전체적으로 헐겁다는 인상을 주는 정도에 그치게 한다. ▲ 열망으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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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판 야무 <섬>: 행위로써 구성되는 시간과 존재REVIEW/Dance 2017. 3. 21. 23:36
▲ 춤판 야무 포스터 무대 바닥, 각목들을 쌓아 놓은 가변 구조물은 금배섭과의 거리를 두는 섬의 좌표로서 의미를 함축한다. 이는 제도라는 것의 미약한 울타리를 두른 불안전한 자기 지시적 경계를 나타내는 듯하지만, 이는 후반에 신체의 지지대로 사용된다. '예술로써 생존하기'는 예술계 내 하나의 화두로서 가끔씩 드러나는 것의 연장선상에서 이를 바라볼 수도 있을 것이다. 지난 작업 에서 안무가 금배섭은 이미 작품의 지원서를 읽는 등 제도와 결부된 기록과 경험 차원을 복기한 바 있다. 이번 작업의 모티프는 사실상 탈북자이고, 그를 향해 가상의 실제 같은 편지를 전단에 기록했는데, 타자를 향한 제스처와 함께 단순히 타자적 형상을 그대로 취하거나 하는 것이라기보다 상호간섭적으로 파생되어 가는 타자와의 섞임을 드러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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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혜중공업 ≪세 개의 쉬운 비디오 자습서로 보는 삶≫: '시적 알레고리와 리듬 문자, 그리고 사운드'REVIEW/Visual arts 2017. 3. 21. 23:27
▲ 《세 개의 쉬운 비디오 자습서로 보는 삶》 전시 전경, 아트선재센터, 2017, 사진: 김상태 [사진 제공=아트선재센터] (이하 상동) 시각적 제스처로 한정 짓기에는 화면 안 글자의 폰트, 형태, 배치 들의 궤적은 지연되지 않으므로 일종의 시간예술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화면 밖 공간을 채우는 재즈 풍의 연주는 그것과 싱크를 맞추며 화면의 전환과 시각적 리듬에 더해 끊임없는 자극을 준다. 사실상 언어의 장르적 특질은 1층의 가 주로 대화체로 구성된 인터넷 소설의 외양으로 판소리 사설을 떠올리게 하는 반면, 2층의 는 한국 사회의 대타자적인 기호이자 동시에 모든 고급적이고도 매력적인 장소로서 '삼성'―삼성이라는 고유명사에 대한 직접적 언급으로서 삼성이라는 상징 자본의 고유한 위치를 비판적이고 적대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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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예술센터 2017 ‘동시대성을 화두로 공공극장의 역할 제고’카테고리 없음 2017. 2. 7. 18:59
▲2017 남산예술센터 시즌 10명의 연출가 [사진제공=남산예술센터] 남산예술센터(서울문화재단 산하)는 3월부터 10편의 작품을 올린다. 우연 극장장은 ‘민감한 동시대 주제’를 다루려고 하고, 재공연되는 두 작품(, )에 대해 한국사회에서 아직도 유효하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또한 ‘검열각하’를 혜화동로터리에서 작은 역사를 세우려는 연대의 움직임으로, 지금 한국 사회 내 문화예술을 개별적인 목소리가 아니고 여러 다수의 목소리를 모아서 다뤘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평가했다. 이를 남산예술극장으로 가져옴으로써 현장과의 연대를 강화하는 동시에 공공극장의 역할에 대해 성찰의 기회를 제공하고자 하는 것이다. 또한 기존의 서사를 벗어난 새로운 형식의 작업들을 다룬다. 구자혜 연출가는 에서 작년 문화예술계 내 성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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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수현 안무가의 <아이 원트 투 크라이, 벗 아임 낫 새드(I want to cry, but I’m not sad)>의 안무 패러다임에 대한 접근카테고리 없음 2017. 1. 13. 11:52
수행사로서의 제목 ▲ (2016)[사진 제공=황수현 안무가](이하 상동) 제목인 (2016, 이하 )의 “울고 싶지만, 슬프지는 않다.”는 뜻의 문장은 공연의 시작을 꾀는 제사(題詞)이자 수행사(遂行辭)로서의 퍼포먼스 자체를 지시한다. 보통은 슬픔이 울음의 전제 조건이자 인과의 선행 요인이라면, 이 퍼포먼스 안에서는 울음을 슬픔 가운데 생성하지 않는 것, 곧 울음을 슬픔과 상관없이 작동케 하는 것이 주요한 전제가 된다. 한편으로 여기에는 왜 울고 ‘싶은지’에 대한 이유가 가늠되지 않는다. 곧 각각의 퍼포머/무용수마다 울음을 쥐어 짜내는 기술의 시현 정도로 나타나는 퍼포먼스는, 그러한 기술 자체가 안무로 작동하는 것까지만을 다루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곧 퍼포머 개개인의 감정 양태 자체는 울음의 유인은 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