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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투명인간>: 벌레-괴물이 된 아버지-관객REVIEW/Theater 2014. 10. 21. 17:24
‘법 앞에서’ ▲ 연극 [사진 제공=남산예술센터] 아버지의 생신을 준비하던 가족은 암묵적 규약을 만든다. 그리고 아버지가 이들을 찾지만 이들은 정말 아버지를 외면(外面)하고, 그 경계의 외피를 파고들고자 하는 아버지는 계속 실패함으로써 단절된다. 그에게는 도달 불가능한 장벽이 있고, 더 이상 그것이 왜 그런지 알 수 없다. 어디서부터 잘못 됐는지, 그 스스로가 오인된 존재인지, 그 자신의 오인된 인식인지, 누구로부터 그것이 생겨나는지를 알 수 없다. 곧 투명한 ‘벽’이 생긴 셈이다. 마치 그 규칙의 동의와 시작 지점이 더 이상 그 기원을 찾을 수 없게 된 것 같은 시점에, 벽은 더 이상의 물리적인 실체로 드러나지 않아도 되었다. 그가 보이지 않는다는 건 더 이상 규칙이 아닌 사실이다. 이것은 어떻게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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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상 없는 미술관>, 미술관은 완전한 형상을 만들 수 있는가의 물음REVIEW/Interdisciplinary Art 2014. 10. 1. 15:34
▲ 김지혜 [이미지 출처=국립현대미술관]http://www.mmca.go.kr/exhibitions/exhibitionsDetail.do?menuId=1020000000&exhId=201408060000100# 첫 번째 ‘인식장애극장’(방혜진 기획)의 에 이르기 전 두 가지 질문을 갖고 간다. ‘미술관은 안무를 구성/생성할 수 있는가?’와 ‘안무는 전시와 상충하지 않을 수 있는가?’, 이는 각각 미술관의 극장화 내지는 퍼포먼스화의 역량, 그리고 전시 ‘속’ 안무의 실천과 함께 미술관의 전시품 보호의 임무/역량이 가능한가의 물음이다. 물론 이는 화이트박스 안에 블랙박스를 단순히 장착하는 것에서 조금 더 나아간 경우이다. 여기서 두 번째 물음은 전시장 안에서 퍼포먼스가 일어난다는 가정 하에 가능한 물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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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환 <늘 거울 생활> ‘적확한, 한정적 문맥의 교신’REVIEW/Visual arts 2014. 10. 1. 14:50
전시 (아트선재센터, ~11월 30일)은 관(람)객을 전시장 안에 포함시키며 개입시킨다. 이는 관객의 직접적인 참여를 요구하는 게 아니라 관람 동선과 시각과 작품이 맞물리는 과정들을 체계적으로 구현했음을 의미한다. 제목에서의 ‘거울’이라는 알레고리는 난해한 듯 보이는 전시장 구성에서 관객의 위치나 시선, 비디오 작품에서의 이중적인 정체성 또는 균열, 수행으로서의 연기(演技) 등에서 나타나듯 실재를 보는 게 아니라 환영적인 체험을 통한 그 너머의 것을 나타나게 하는 어떤 방식과 연관되는 듯 보인다. ▲ Sung Hwan Kim, Watermelon Sons, 2014, Performance Courtesy of Sung Hwan Kim and Art Sonje Center, Photograph by S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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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et 츄 (I will archive you)>, '자기 지시적 무용-텍스트의 저항과 망각'REVIEW/Dance 2014. 8. 23. 15:03
▲ 콘셉트 사진 [사진 제공=한국공연예술센터] 출연하는 세 명의 안무가(윤상은, 여민하, 최승윤)들은 각자의 작품들을 아카이빙하며 동시에 재현한다. 또는 그 두 개가 동시에 일어난다. 여기에 그 아카이브에 대한 발화가 더해짐으로써 정확히는 아카이브에 대한 시선과 이해의 지점을 만든다. 곧 예전의 작품들을 다시 보기re·view하며 그 작품에 얽힌 이야기를 서브 텍스트로서 동시적으로 포갠다. 작품은 이제 바라볼 수 있는 거리를 갖게 되며 해석이 가능한 유동적 텍스트로서의 위치를 점하게 된다. 이는 보통의 유기체적 무대의 구성과 그 흐름, 극적 시간으로도 불릴 수 있는 무대의 끊임없는 시간을 해체시키고 작품을 텍스트로 현재를 대화의 장으로 바꿔 아카이브를 아카이브화한다. 곧 예전의 작품들이 차곡차곡 하나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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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 ․ 여름 ․ 민요>, 그 거침없는 컨템퍼러리의 민요-향연REVIEW/Music 2014. 7. 23. 18:23
무대는 그야말로 거침이 없었고, ‘컨템퍼러리’했다. 민요에 비한다면 판소리는 조금 더 문학적이며, 가곡은 대단히 엄숙하다, 적어도 개인적으로는. 기타와 각종 악기로서의 변용 능력을 갖는 신시사이저라고 할 수 있는 건반, 드럼의 더해짐은 퓨전이라기보다 전통 우리 악기를 새로운 판으로 접속하게 하는 효과가 있었다고 보인다. 특히 피리와 건반의 오고 감에서 두 개가 단속적으로 맞물려 어느 하나의 악기로 수렴되지 않는, 건반이 피리의 마개가 되는, 또는 피리의 증폭이 되는 어떤 연주의 한 부분은 측정하기 힘든 새로운 악기의 형태로 귀를 의심케 했다. 보컬 아니 소리 역시도 보통의 민요에서의 구성지며 조금 더딤의 속도로 체감되지 않았다. 어쩌면 민요란 그 익숙함의 형식이 너무나도 지나치게 다가오기에 ‘컨템퍼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