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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정 작, 윤혜진 연출, 〈선애에게〉: 입구에서 출구로
    REVIEW/Theater 2026. 6. 1. 18:50

    이정 작, 윤혜진 연출, 〈선애에게〉ⓒ이미지작업장 박태양[출=https://jangho.work/2024/12/20/%EC%84%A0%EC%95%A0%EC%97%90%EA%B2%8C](이하 상동).

    “선애에게”는 일종의 편지와 같이 시간과 거리가 떨어져 있는 존재에게서 출현할 수 있는 호칭의 말이다. 나아가 이는 동등한 지위와 친분을 전제한다. 〈선애에게〉에서 이 말이 가능한 이는 선애(성수연 배우) 자신과 그에게 적극적으로 사랑을 표하는 해원(박용우 배우)뿐인데, 이 말이 존귀한 것은 선애 주변의 가족과 사람들 모두 그를 기능이나 수단의 차원으로 대하기 때문이며, 이 말이 비로소 (그에게 보내는 발신의) 의미로 구성되는 건 선애가 자신으로 깊이 ‘잠수’를 시도하는 순간 이후이다. 

    선애에게는 온갖 모욕과 멸시가 점증되고, 이는 반복되며 일종의 스테레오타입을 형성한다. 그들에게는 그들 자신이 선애를 바라볼 때와 같이 인격이 없고, 따라서 이해의 여지를 주지 않는다. 일종의 일정한 플롯을 구성하는 부속 요소일 뿐이다. 이는 작가가 이야기한 ‘바리데기’와 같은 신화적 모티브를 상기시키는데, 짜증과 분노의 감정으로 연결될 수 있는 이러한 배경은 절대 선의 존재로서 선애의 위치에 대한 개연성과 합목적성 사이에서 관객의 판단을 시험한다. 그리고 이러한 굳은 플롯은 일관되게 화내지 않고 선한 태도를 보이는 선애라는 캐릭터에 대한 의구심까지를 축출해 내는 것으로 보인다. 

    선애라는 갇힌 캐릭터가 닫힌 연극의 한 장소에 상응한다는 건 그가 입체적인 캐릭터로 진전할 기미가 도무지 보이지 않는 중반 정도까지의 시간에 해당한다. 수트케이스를 끌고 이곳으로 들어와 입구의 수트케이스가 쌓인 보관함에 그것을 올려두는 것으로 끝나는 여정은, 꽤 긴 경로로서 이 장소의 배치와 오브제들을 확인시킨다. 중간에 길게 펼쳐진 채 오른쪽 철제 구조물에 걸린 채 마무리된 두루마리 같은 천은, 그 경로를 길게 하는 일종의 장애물이 된다. 선애가 현실에 들어오는 것 자체가 하나의 긴 터널 같은 어둠임이 드러난다. 거기에는 그 현실에 대한 선애의 인지가 분명 사후적으로 작동한다. 

    치매 증세가 나타난 엄마와 요양보호사로서 일하는 가운데 만난 노인 모두 한 명의 배우(이정민 배우)가 연기하고, 각각 그의 딸로서 나오는 배우 역시 한 명의 배우(이경민 배우)가 맡은 것은, 하나의 같은 장소에서 벌어지는 일이며, 따라서 기시감은 실재적인 것이고 악몽의 차원을 구성한다. 선애의 출구는 조명을 통해 현실이 반전될 때뿐이며, 그의 얼굴이 푸른빛으로 감돌거나 그 현실이 지워지며 바깥의 출구가 생겨날 때이다. 전자가 그 스스로를 부르는 “선애에게”라면, 후자는 그를 맴돌던 남자 해원이 진정으로 그를 존엄한 존재로 대하면서 선애를 마주하는 가운데 비로소 성립할 수 있는 것일 것이다.  

    결정적으로 그가 먼 바다를 항해하기 위해 떠날 때 무대 좌측에서 어느덧 무대 중앙 너머로 그 동선이 옮겨지면서 비로소 선애의 폐쇄된 입구는 열린 출구의 가능성을 안긴다. 또한 선원이라는 명목에서 그가 꺼낸, 선애와 닮았다는 부리고래는 그의 삶을 재구성하고 반성하게 하는 동시에 해방의 틈새를 처소를 제공하는데, 범고래라는 천적을 피해 심해로 가라앉는 부리고래의 이야기는 선애 자신의 삶이 투영되는 공간을 만드는 동시에 바다라는 메타포에서 숨을 쉴 수 있는 여지를 선사한다. 이때 문학적 상상력으로만 그 출구를 찾을 수 있다는 점, 그것이 현실의 질서를 변경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은 남자가 저 먼 곳을 향해 항해한다는 점, 그리고 다시 돌아올 것을 약속한다는 점에서만 허무한 것이 아닐 수 있다. 

    목줄이 묶인 개는 해원과 선애를 묶어주는 첫 번째 끈이 된다. 비루하고도 가여운 존재이자 직접적 환유로서 개는 해원을 경유해 바다를 항해하는 부리고래라는 보이지 않는 문학적 메타포로 격상한다―물론 종적 우월함이 아닌, 인접하는 대상이 구성하는 세계의 차원이 확장되고 열린다는 차원에서이다. 고래의 진동과 주조음은 복잡다단한 이미지의 무대에 순수한 차원으로 깔리는 매질이 된다. 곧 해원의 언어적 전이는 선애를 전유하기보다 선애의 본래적 장소에 대한 언질에서 비롯된다. 

    놀라운 건 배우 성수연으로, 이 둔탁하고도 지루한 삶의 연속인 선애라는 단선적 인물을 무심하고도 적당히 지루한 온도로 구워내다. 곧 마이너스 피드백 고리에 걸려 있는 선애라는 무거운 중심에 가해지는 것들을 모조리 빨아들이는 데 성공한다. 오직 그만이 매력적이다, 예외적으로 그에게 설렘을 주는, 선애를 경유해서 매력적인 해원을 제외한다면. 

    김민관 편집장

     

    2024.12.20 ~ 2024.12.22 금요일 19:30 / 토요일 15:00, 19:30 / 일요일 15:00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만든 사람들


    작 이정
    연출 윤혜진
    드라마투르그 이홍이
    출연 성수연 이정미 장성익 송석근 이경미 박용우

    무대·소품디자인 장호
    무대감독 원소미
    무대팀 유명환, 김성준
    음악감독 백인성
    음향감독 정하윤
    음향팀 박상준, 조준식
    조명디자인 성미림
    조명프로그래머 홍주희, 홍유진
    조명팀 김서라, 이은송, 윤혜린, 이한별
    이관구, 유보민, 이상혁, 손태민
    움직임디자인 손지민
    의상디자인 안해은
    분장디자인 장경숙
    자막해설 디자인 배규진
    자막해설 장비 엠투비주얼
    자막해설 오퍼레이터 정혜민

    기록영상 음성해설 서수연
    하우스매니저 김지우
    티켓마스터 이은혜
    고객지원 신지혜
    컨셉 기록 사진 이미지작업장 박태양
    홍보물디자인 황가림
    영상기록 아르코예술기록원
    조연출 배규진, 김수정
    어시스턴트 프로듀서 김태임
    프로듀서 이유진
    제작 아르코 대학로예술극장, 윤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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