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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 작, 윤혜진 연출, 〈선애에게〉: 입구에서 출구로REVIEW/Theater 2026. 6. 1. 18:50
“선애에게”는 일종의 편지와 같이 시간과 거리가 떨어져 있는 존재에게서 출현할 수 있는 호칭의 말이다. 나아가 이는 동등한 지위와 친분을 전제한다. 〈선애에게〉에서 이 말이 가능한 이는 선애(성수연 배우) 자신과 그에게 적극적으로 사랑을 표하는 해원(박용우 배우)뿐인데, 이 말이 존귀한 것은 선애 주변의 가족과 사람들 모두 그를 기능이나 수단의 차원으로 대하기 때문이며, 이 말이 비로소 (그에게 보내는 발신의) 의미로 구성되는 건 선애가 자신으로 깊이 ‘잠수’를 시도하는 순간 이후이다. 선애에게는 온갖 모욕과 멸시가 점증되고, 이는 반복되며 일종의 스테레오타입을 형성한다. 그들에게는 그들 자신이 선애를 바라볼 때와 같이 인격이 없고, 따라서 이해의 여지를 주지 않는다. 일종의 일정한 플롯을 구성하는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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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댄스어브로드×Petri Dish×JUBIN Company, 〈스트러글〉: 누구를 향한 투쟁 혹은 투쟁의 주체는 존재하는가REVIEW/Interdisciplinary Art 2026. 6. 1. 18:48
〈스트러글〉 의 도입부는 길고 또 인상적인데, 공간 전체에 퍼지는 불안정한 사운드-진동과 함께 거대한 폴 아래, 희미하게 감지되기 시작한 여러 덩어리들은 대체로 한쪽 다리가 또는 예외적으로 한쪽 팔이 묶여 올라가서 축 늘어진 신체로 판명난다. 안쪽에는 화장대 앞에 선 여자가 일상의 시간을 점유하고 있다. 이 두 다른 시간과 이미지의 축은 〈스트러글〉의 명암을 드러내는 꽤 긴 시간의 지속이다. 후자에 의한 전자의 지배 양상이 드러나면서 두 존재들은 인접된다. 여자는 빨간색 트레이닝복을 입고 등장해 관객과 마주하고 호응을 유도한다. 그는 현실의 면에 접촉할 수 있는 존재이고, 동시에 그 안쪽의 존재들을 고깃덩어리 같은 출현으로부터 사육과 위협을 가하는 대상으로서 동등하지 않고 기능하는 차원에서만 유효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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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젤 비엔(Gisèle Vienne), 〈사람들〉: 음악과 춤의 상응 관계에 대한 탐구REVIEW/Dance 2026. 6. 1. 18:45
지젤 비엔의 〈사람들〉은 음악이 춤을 대리하고 정지하거나 잠잠하거나 실은 단순한 몸은 음악을 들음으로써 순전하게 발화되는 음악의 영역이 미시적인 몸의 영토의 광대함으로 되먹임된다. 처음에 무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천천히 등장하는 여자 무용수는 느려지고 무거워지며 장면을 입체화한다. 시각을 왜곡하며 시간성을 굴절시키는 것이기도 하다. 사람들로 확장된 이 같은 느림의 층위는 ‘지연의 숭고함’을 발생시킨다. 모든 것은 지연되고 유예되며 그를 통해 나아가고 시간축의 변화로서 공간을 발생시킨다. 현재를 붙잡고 늦추며 순간들의 집적으로 영원화함으로써 현재는 무화되고, 과거의 시간이 곧장 미래로 향한다는 인상을 준다. 또는 미래로부터 추출되는 시간이 과거의 시간과 접면하고 있다. 순간의 영원성은 현재주의의 강박을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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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진 · 황태인, 〈조금만 바꿔볼까?〉*: 좁은 지대에서 너른 시간으로 전통을 구가하기REVIEW/Dance 2026. 6. 1. 18:44
“조금만 바꿔볼까?”라는 제목은 한국무용이 가진 형식에 대한 다른 접근을 일컫는다. 착장의 방식, 음악의 혼종적 결합, 전통의 재수용의 차원 등 공연 전반을 통한 한국무용의 형식에 변화를 두는 시도는, 제안의 형태를 띤 문장으로 나타나고, 이는 한국무용의 동시대적 쇄신에 대한 필요성을 전제한다. 조용진, 황태인, 박소영, 이태웅, 이상 네 명의 출연자는 모두 국립무용단 단원이며, 서울남산국악당과 국립무용단의 협력으로 프로젝트가 성사되었다. 다소 길게 자리하는 인트로는 〈조금만 바꿔볼까?〉가 지닌 태도를 일종의 콩트와도 같은 재현의 형식을 의도적으로 차용한다. 무대 안쪽 중앙에서 시냇물 소리와 함께 거문고를 연주하는 목기린을 두고, 무대 왼쪽에 등장한 이태웅은 두 발을 뻗고 먼지를 떨궈 내고 겹버선에 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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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리 린 작, 진해정 연출, 〈너울〉: 삶에 대한 진정한 선택에 대하여REVIEW/Theater 2026. 5. 31. 13:30
너울거리는 관계들 〈너울〉은 28년 전 벨과 아나이스, 플로 셋이 만난 순간 이후의 역사가 현재와 교차하여 진행되며 따라서 극은 그 사이에서의 툭 끊긴 과거를 앞뒤로 복원하기 위한 과정이기도 한데, 곧 과거가 어떻게 현재의 발단이 되었으며, 현재는 어떻게 과거로써 영속화된 순간을 맞았는지를 인지하는 것과 같다. 무대 전체에 편재된 네 개의 테이블과 그 곁의 의자들은 일종의 ‘통로’로서 무대를 구성하는데, 어둠과 구음의 음악에 감싸이는 막 전환의 순간에 이는 현격화된다. 그리고 인물들은 이때 그림자처럼 너울거리게 되는데, 그것은 하나의 총체적 형상, 곧 상호 연루적 비접촉의 차원의 어른거림 아래 그러하다. 기억은 그렇게 흘러가고 있고 또한 진실의 흔적으로서 유출되고 있는데, 〈너울〉은 바로 이 이점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