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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돌파구, 〈아이들〉: 주체의 선택을 예기하는 미래REVIEW/Theater 2026. 3. 2. 21:02
극단 돌파구의 〈아이들〉은 쓰나미로 인해 원전 사고가 발생하고 그 주변 지역에서 여전히 살아가고 있는 로빈(권정훈)과 헤이즐(윤미경) 부부를 로즈(조어진)가 방문하면서 시작한다. 부부의 거주 지역이 방사능 오염의 위협을 받는 황폐화된 곳임은 주로 그 효과의 차원에서 드러나기보다는 대응의 차원에서 짐작되는 사실에 가까운데, 이는 초반에 전기가 일상 대부분의 시간에 들어오지 않고,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인다는 것에서 강조된다. 전기는 이따금 일정한 시각에 들어오는 것으로 보이는데, 여기서 전기가 나갔음이 사고의 여파 때문으로 판단되기보다 굳이 이곳을 버리지 않고 불편함을 감수하며 살아가는 부부의 선택의 몫으로 환원된다는 것이 그러하다. 그러니까 방사능 오염의 결과는 비가시적인 축적과 영향의 범주로서 눈으로 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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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크숍 〈예술과 연약함 Arts and Vulnerability〉에 대한 주석: 예술을 내파하는 연약함이라는 새 개념REVIEW/Performance 2026. 3. 2. 20:44
모두예술극장 열린, 국제협력 리서치 워크숍 〈예술과 연약함 Arts and Vulnerability〉은 이틀에 걸려 열린 이른바 스펙터클한 기획의 산물이다. 워크숍은 기본적으로 관망하고 지켜보는 것으로써 구현되는 건 아니다. 유령 주체가 무엇을 느끼는지 비평하는지는 알 수도 없고 알 이유도 없다. 단지, 경계 안의 참여의 감각만이 ‘나’의 신체를 지지할 뿐이다. 객관적 거리를 잃어버렸거나 나와 상대방의 거리를 재고 탐색하고 궁구하기 위한 거리의 시차와 간격 속에서 임시적으로만 그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여기서 객관적 거리는 주관적이며 유동적인 거리로 대체된다. 결과적으로, 이 워크숍은 공동을 구성한다는 의미의 “커머닝”이라는 이름 아래 이틀 동안 1, 2회차로 구성되었고, 첫째 날은 “40BPM 걷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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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고은, 〈그림자-숲〉: 이미지-몸짓의 이미지-세계에의 기입 혹은 비약REVIEW/Movie 2026. 3. 2. 20:41
임고은의 〈그림자-숲〉은 전적으로 환유적인 차원으로 전개되는데, 그것은 자막의 서사, 곧 나무-벌레-숲의 어떤 계열의 스펙트럼 안에서 주어지는 주요한 메타포들 사이의 ‘횡단’의 방식에서, 영상에 담기는 이미지‘의’ 기입, 이미지 ‘위’의 이미지라는 수행의 기술 방식에서, 그리고 전자를 추적하며 그에 결절되려는 또는 그와 상관되지 않으나 결부되는 후자의 이미지, 곧 상의 이미지와 직접적으로 출현하는 이미지 사이에서 그러하다. 전자의 차원이 사물의 시간과 영겁의 시간, 역사의 시간을 이야기한다면, 후자의 차원은 역사의 흔적으로서 이미지를 가져오되, 그것을 헤집는, 유동적인 것으로 만드는 흔적으로서 행위에 초점이 맞춰진다. 거기에는 주체의 ‘손’이 일부 포함되는데, 유희와 놀이의 차원에서 이 손은 의식으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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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더릭 와이즈먼, 〈발레〉: 전표현으로서 움직임, 그리고 무대라는 실재REVIEW/Movie 2026. 3. 2. 20:36
프레더릭 와이즈먼 감독의 〈발레〉는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의 무대 뒤의 연습과 훈련을 비롯해 리허설, 휴식, 물리치료, 의상 맞춤 등 공연이 이뤄지기 전의 거의 모든 과정, 그리고 사업적 논의나 입단 절차 등의 공연 외적 측면들, 발레 마스터들과의 짧은 인터뷰들, 그리고 마침내 앞의 연습 장면이 실제로 이뤄지는 두 개의 공연을 나머지 한 시간가량 직접 보여주는 대단원으로 나아간다. 공연은 앞선 연습의 실제적 성취이자 이상향적 구현이라는 점에서, 예술이 갖는 아우라는 인물들, 몸짓들에 대해 어느 정도 의식적으로 관여된 상태로부터 출현하는 것이다. 곧 전적으로 공연이 완성되고 그것을 감상하는 것과는 다른, 그것들이 어떤 경로와 시간을 지나쳐 왔는지를 상기하는 차원에서, 그것을 거쳐 다다른 지점으로서 이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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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더릭 와이즈먼, 〈에세네파〉: 소통 불가능성에 대한 두 가지 판본REVIEW/Movie 2026. 3. 2. 20:33
〈에세네파〉는 프레더릭 와이즈먼이 베네딕도회 수도원에서 수도사들의 일상을 따라가며 찍고 그 영상들을 편집한 작업으로, 이는 그들의 소소한 일상의 풍경보다는 존재 간의 소통 (불)가능성의 대화로서 신과 인간의 거리, 그리고 인간과 인간의 절대적 거리 같은 역설적 차원의 소통의 면모에 초점이 실린다. 이는 처음 윌프레드 수사와 수도원장의 이름을 부르는 것에 대한 매끄럽지 않은 대화로부터 시작되는데, 이는 이후 전자의 외부로의 독립적 장면에서의 뚜렷한 ‘변신’과 그가 없는 가운데 그와의 관계의 어려움과 곤궁에 대한 수사들의 수도원장에 대한 민원, 그리고 세계 내 균열에 대한 서사를 투영하는 리처드의 미사 안의 독백, 마지막의 수도원장의 두 개의 상반된 자아에 대한 강연으로도 마치 확장되며 갈음되는 것으로 보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