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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앤 인포메이션〉: 재현 체계 혹은 재현 방식의 사이에서REVIEW/Theater 2023. 12. 11. 17:25
〈러브 앤 인포메이션〉은 짧은 에피소드로 점철된다. 맥락을 형성하는 인지 단위로서의 불충분성이라는 하나의 공통됨은 정보의 과잉들 혹은 그로 인한 소통의 단절 현상을 묘사하는 메타포라고 의미화할 수 있을까. 그것이 쇼츠건 릴스건 어떤 짧은 구문의 재기발랄함으로 부상하는 즉시 사라지는 이미지라는 점을 상기시키는 것은 어떤 유의미한 지점으로 부상하는가. 시대에 관한 적확한 차원의 은유로서 나아가 극장의 공백이 불가능해지는 임계점에 대한 탐문으로서? 〈러브 앤 인포메이션〉은 일종의 ‘지시’로서 장면들이 추출됨으로써 이입에 대한 당위를 벗어난다고 할 때 그와 같은 나열의 방식은, 희미한 맥락들의 접합까지를 거부하지는 않는다. 미궁이라기보다 미로로서 작품은 일종의 퍼즐과 동기화된다. 등장인물들은 기억에 대한 불확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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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부랑게하 아트 프로젝트의 작가 강영민: 미학과 일상의 재배치INTERVIEW 2023. 12. 10. 00:04
2021년 인제에서 시작된 꼬부랑게하 아트 프로젝트를 3년째 이어오고 있는 강영민 작가를 2년이 지나 인제에서 다시 만났다―2021년에 그 프로젝트를 다룬 바 있다(https://www.artscene.co.kr/1751). 작가는 처음, 인제군문화재단의 문화도시를 만드는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됐을 때 일반적인 아티스트 레지던시 말고 작가가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를 한번 해보자고 제안했다. 다시 말하면, 게스트하우스의 주인이 작가이고, 꼬부랑게하라는 게스트하우스는 강영민의 작품이 되는 것이다. 곧 게스트하우스라는 방식은 새로운 주체에 따라 다르게 매개되고, 예술가의 작업 방식 역시 새로운 형질 전환을 이룬다. 여기서 ‘일반적’인 레지던시라 함은 대부분 경쟁 시스템을 거쳐 소수의 작가만이 사용할 수 있는 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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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다인, 〈beingbeingbeing〉: ‘극장이라는 어떤 규칙’REVIEW/Theater 2023. 11. 24. 00:17
연극 〈beingbeingbeing〉은 극장의 입구를 끊임없이 더듬는다, 극장이 시작되고 다시 시작됨을 끊임없이 자각하도록 만들며 출구를 부정하는 지시를 통해. 작업은 극장에 대한 탐문으로 자리한다. 이념적인 차원에서 메타-극장을 만드는 것만은 아니다. 거기에는 극장에 갇힌, 또는 닫힌 극장에 놓인 인격들의 무한 반복의 관념과 상념이 또한 있다는 점에서, 해소되지 않은 원환 감정의 고리를 이루는, 일종의 부조리극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이 자리하는 극장을 보여주는 한편, 인격들은 극장 관계자이자 극장 바깥의 역할을 가진 사회적 존재로 연장된다는 점에서, 제도적 차원의 메타포 역시 소환한다. 결과적으로 이 셋, 아리(박하늘 배우), 마지(이우람 배우), 사키(백소정 배우)은 무형적이고 유령적인 캐릭터로 읽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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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성, 〈세 개의 짧은 연작들-신촌텍스트, 빨치산, 나의 극장〉: 주체의 공백에 다가서기REVIEW/Theater 2023. 11. 23. 23:10
이경성의 〈세 개의 짧은 연작들-신촌텍스트, 빨치산, 나의 극장〉(이하 〈나의 극장〉)은 담백하고 대담하게 연출 자신의 이야기를 펼쳐낸다. 이는 프로덕션이 가진 부피감과 완성도에 대한 강박 너머, 결국 개인의 서사와 수행이 역사와 현재, 현실과 만나 전면에 등장할 때 그 효과가 만듦새를 뛰어넘어 입체적으로 확장, 증폭될 수 있음을 잘 보여준다. 곧 작가-연출가로서의 관점이 다른 모든 여타의 것들을 상쇄할 수 있고, 더 중요함을 이야기한다. 이는 구자하 연출에 대한 상찬이 그가 여타의 모든 것을 자신이 한다는 것, 테크니션으로서의 성취만을 향하는 것이 오류인 것에 상응한다. “신촌텍스트”, “빨치산”, “나의 극장”의 순으로 진행되는, 〈나의 극장〉에서 이 세 개의 단어는 각각 현실의 표층, 역사의 비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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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텐 스팽베르크 Mårten Spångberg, 〈감정으로부터 힘을 얻다 Powered by Emotion〉: 춤은 무엇과의 간격인가REVIEW/Dance 2023. 11. 15. 17:30
“감정으로부터 힘을 얻다”에서 “감정”은 작품에서 직접 언급되는 단어는 아니지만, 주요한 매체로서 확인된다. 사실이라면, 그것은 “힘”을 추동한다. 이는 움직임의 어떤 프로세스를 지시한다. 마텐은 움직임의 형태가 아닌, 재현 체계의 질서를 드러내고자 한다.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에 춤을 추는 스티브 팩스턴을 담은 발터 베르딘의 영상의 춤”에서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의 노래들”로 분기되는 텅 빈 무대는, 일관된 보여주기를 실천한다. 이에 따라 퍼포머의 역량 자체가 재고의 대상이 된다. 실제, 음악이 입혀지는 움직임이 아니라,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것이 드러난다. 곧 약간의 오차―음악의 박자를 살짝 늦게 체현하는 움직임, 누구라도 출 수 있을 거 같은 뻣뻣한 관절의 적은 가동 범위, 움직임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