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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알이 춤뵈기] '분절된 구문으로서 움직임', <S는 P다>(안애순 안무)REVIEW/Dance 2012. 10. 23. 02:28
▲ 9월 10일 쇼케이스 장면 [사진 제공=강동아트센터] (이하 상동) 실로폰의 음계는 곧 음악이 되지 못한 분절된 음들에 불가하다. 따라하는 모방의 움직임들은 춤의 마디가 되지 못한다. 놀이에 따른 규칙들은 전적으로 자의적인 것 같지만, 말이 되지 않는 놀이라는 암묵적 규칙과 (관객의) 언어와의 간극이 계속 맴돌며 이방인 내지 타자로 그려지는 이들에게서 불규칙적인 규칙이 관객에게서 이화 작용을 일으키는 두 가지 규칙이 작용한다. “나에게 쓰는 너”, 나와 너라는 텍스트의 두 단어는 사실상 등가 되고 순서에 따라 치환된다고 할 수 있다. 현존 주체를 지정하는 대신 이 등가 될 수 있는 텍스트의 순간성에 초점이 맞춰진다. 하나의 텍스트로서 애초에 무슨 의미를 갖지 않는 이러한 언어 치환의 공허한 놀이 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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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알이 춤뵈기] '정치적, 사유적 테제로서 몸' <리볼버를 들어라>REVIEW/Dance 2012. 10. 21. 23:19
우선 빠르게 무대 둘레를 도는 브릿 로드먼드(Brit Rodemund)의 일련의 동작들은 무성영화의 부자연스러운 움직임을 연상케 한다. 발레를 메타 비평적 접근으로 해석해 놓는 가운데, 음악은 하나의 현실을 인식하게 하는 장치로 작용한다. 자신의 몸을 때리며 소리를 냄으로써 역사의 고민이 온전히 해결될 수 없는지의 질문을 던지며 움직임 자체의 미학적 완결 대신에 음악 안에 있는 여자의 상황으로 귀결된다. 메마른 거친 소리를 내며 호흡을 들이마시며 나오는 발레 동작은 동작을 채집하는 것에 가깝거나 미가 아닌 어떤 기억들과 몸에 밴 습관들을 밖으로 드러내는 잠재된 것들의 표현을 의미한다. 움직임은 언어가 부착되는 의미를 일으킨다. 몸은 스스로에 의해 대상화되며 어떤 맥락을 주는 사유의 측면을 입는다. 명확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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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알이 춤뵈기] '유동하는 강의 흐름', Compagnie 7273 <Nile>REVIEW/Dance 2012. 10. 21. 21:26
일종의 안개 속의 대기를 휘젓는 몸짓이다. 좌우로 몸을 살랑대며 휘젓고 몸을 돌리며 아래로 모은 손을 활짝 벌리며 서는 동작으로 진행되는 일련의 네 개의 연이은 움직임이 반복되며 여섯 명의 무용수들에서 공간을 젖고 간다. 여기에는 바다 속 어떤 힘의 재분배의 흐름이 만들어짐을 느낄 수 있다. 이는 동작은 변형이 없지만 이들이 강이 흐르듯이 내부에 따라 어떤 무형의 화학작용을 일으킬 수 있음을 의미한다. 어떤 생물 같은 것은 유기체로 보이기도 했고, 동시에 멈춰 서서 움직일 때는 같은 동작으로의 주파수가 맞춰지는 듯한 변화가 뚜렷하게 감지됐다. 고개를 돌리거나 아래로 내리며 침잠하는 에너지를 형성하거나 하늘거리는 몸짓들이 출현하기도 했다. 기타는 밝게 변하며 마치 환영의 실재에서 투명한 현실이 드러나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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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톺아보기] <아워타운>, ‘연극-보기’란 무엇인가에 대한 성찰REVIEW/Theater 2012. 10. 21. 15:59
몰입의 경계 연습 중 시작되는 공연은 빈 공간으로서 무대를 만들며 환영으로서 무대과 실재로서 극장의 경계를 허문다. 여기에 배우는 관객과 무대의 매개자로서 열린 태도를 관객에게 취한다. 실현되지 않은 무한한 잠재성만이 있는 무대 사이에서 재현은 오히려 과거를 현시하는 측면으로 보이는 측면이 있다. 앙상블의 주고받는 연기는 각 파트로 나뉜 가운데, 하나의 자장 아래 속해 있고 하모니를 넣는 긴장의 태세가 감지된다. 재현은 과거의 역할 되기와 같으나 현실의 현시에서 그 자신의 연기는 이 현재의 인물이 됨을 의미한다. 과거의 인물을 보는 시간의 재현과 그에 대한 몰입(현존은 이 몰입에서 관객과 함께하기로 나타난다)이 가능하지만 이 몰입은 점점 그 재현의 시간이 사라져 역할-되기에서 역할 자체가 되는 묘한 혼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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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알이 춤뵈기] <내밀의 무한>(국은미 안무), ‘지루함의 대기 속 파편적 합산만이’REVIEW/Dance 2012. 10. 20. 12:06
유영하는 대기 숨을 쉴 수 없게 조용히 놓이는 진공 상태의 너른 평면에서 흘러가는, 커다랗게 현상되는 흐름, 그래서 이를 현실보다 몽상이 일어나는 집단적 유영과 같다고 할 수 있을까. 이러한 내재적 움직임은 음악으로 인해 생기를 잃고 어떤 관계망도 몸으로써 인식하기 시작한다. 몸이 기체와 액체의 유동함으로 합쳐지는 풍경. 고요한 작용 외에 움직임은 어떤 단절·분절·분출도 없는데 이러한 액체적 세계는 무엇을 묘사하고자 함인가. 둘씩 관계 맺기, 앞뒤로 뒹굶은 주고받음이라기보다 흡착되어 엉키고 서로를 향해 고리를 거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모호한 광경의 몸의 풍광 속에 달라지는 음악, 조명의 변화가 이들의 외부 풍경으로 무대를 절합하며 달라진 세계를 지시한다. 몸이 먼저 가기보다 음악의 전유함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