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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직, 〈아파야 낫는다 건강백세!〉: 애도라는 놀이의 효과REVIEW/Theater 2023. 3. 13. 23:37
이성직의 〈아파야 낫는다 건강백세!〉는 개인의 사적 추모 혹은 애도에 대한 몇 가지 형식을 구성한다. 이성직의 친할머니, 1933년생 이명숙을 이야기하고(1막) 그가 잘 담갔다는 물김치를 대신 담그고, 또 그를 대리하게 하며, 그를 대리한 이의 친구를 대리(2막)한 이가 꽃꽂이(3막)를 하는 일련의 행위가 그것이다. 1막의 이명숙에 관한 상기가 실상 그에 관한 비평적 해부에 가깝다면, 2막과 3막의 수행들은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명숙을 재현하는 차원으로 전개된다. 물김치 담그기는 이명숙이 구성했던 맛에 다가가려는 시도로 시작되지만, 그 맛은 공연이 끝나고 별도로 약속을 잡아야지만 실행되는 사후적인 증거로만 남는다. 곧 이명숙의 물김치와 그것을 구현하고자 한 이성직의 물김치와의 관계는 후자를 통해 전자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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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집단 세사람, 〈노스체(NOSCE)〉: 재난을 상상하기REVIEW/Theater 2023. 2. 23. 01:47
프로젝트집단 세사람의 〈노스체(NOSCE)〉(황정은 작가, 윤성호 연출)는 원전 폭발 후 25년째 고립된 채 살아가는 한 마을을 배경으로 한다. 할머니 옥(김은희 배우)과 20대 두 친구인 현(윤정로 배우), 희(김민주 배우)과 살아가는 이 마을에, 재난 구조 로봇 노스체(최희진 배우)라는 비인간 타자와 연(박윤정 배우), 필(선명균 배우)이 차례차례 찾아오며 마을에는 혼란과 균열이 생겨난다. 각종 빈티지한 가구와 집기로 촘촘하게 쌓아놓은 무대는 다른 일상의 시간과 세계의 환경을 강렬하게 보여주기 위한 시각적 양식이며, 나아가 외부와 분리된 게토화된 공간이자 폐허의 잔해로서의 시공간임을 드러낸다. 멧돼지의 침입으로 벽을 쌓는 일상의 시간이 지리하게 이어지던 이곳은 사회 안전망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곳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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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브로 가슴에, 〈태양〉: 서사의 도입이 갖는 어떤 효과REVIEW/Dance 2023. 2. 23. 01:25
시나브로 가슴에의 〈태양〉은 마에카와 도모히로의 동명의 희곡 『태양』을 모티브로 한다. ‘태양’의 이미지를 구성하는 동그란 철조 구조물이 무대 전면에 자리하고, 여기에는 촘촘이 무대 조명이 달려 있다. 이러한 조명에 대한 전기를 공급하기 위해 전기선은 무대 안쪽을 파고드는 가운데 높이를 달리하며 띄워져 있다. 하나의 강력한 무대 디자인은 이렇게 보통의 위에 달린 조명의 재분배로 완성되며, 희곡상의 태양 아래 존재 가능한 기존의 인간 집단―녹스에게는 “큐리오”로 불린다.―과 태양에 극도로 취약한 새로운 인류인 녹스 집단은, 조명의 암전과 밝아짐 사이에서 차이화된다. 주요한 서사는 다른 시공간, 곧 태양 아래와 어둠이라는 다른 양식 아래 그 두 집단의 양태적 차이, 그리고 기승전결의 극적 흐름 정도로 인지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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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컴퍼니, 〈On the Rock〉: 구조를 향한 힘REVIEW/Dance 2023. 2. 10. 15:26
막이 걷히기 전에 퍼포머들은 한 명씩 무대 좌측에서 우측으로 지나간다. 중앙에서 정면을 바라보기 위해 멈추는데, 그 전에 서로는 시선으로 맞물리기도 하지만, 대부분 독립된 행동이다. 정면을 응시하는 이러한 시선은 관객을 직접 응시하기보다 마주할 수 없는 거리를 발화한다. 곧 그것은 허공에서 대상을 찾지 못하며 미끄러진다. 관객이 보는 막과의 거리감이 퍼포머들의 시선을 통해 체현된다. 〈On the Rock〉의 무대는 바닥이 아니라 그 막의 깊숙한 이전으로 연장된다. 곧 무대를 세워 놓은 전면의 바닥에는 시계나 책상, 창문, 의자와 같은 일상의 사물이 달려있는데, 여기서 의자는 거꾸로도 또 옆으로도 누워있으며, 이 모든 사물과 판은 우리의 시각으로 보면 뉘어 있거나 거꾸로 뒤집힌 것들이 된다. 모든 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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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큐브 프로젝트, 〈Recall; 불러오기〉: 서커스를 불러오기REVIEW/Dance 2023. 2. 10. 15:21
무대 오른쪽은 움푹 파여 있다. 반듯이 잘려 나간 네모난 구멍은 어떤 ‘근원’으로서의 세계라는 메타포를 설계하기보다는 ‘근원 없는’ 실재의 감각을 유도하는 매개물이 된다. 음수의 구조물에는 기계적 증폭 장치가 숨겨져 있는데, 이는 트램펄린이다. 극단적인 조명의 켜짐과 꺼짐의 극단적 대비 속에 정성태가 등장한다. 먼저, ‘그’는 일상 너머가 아니라 일상에서 출발한다. 다른 이들과 대별되는 후줄근한 복장은 그가 일상에서 나온 존재임을 각인시키기 위한 설정이다. 전적으로 패션을 수용하거나 움직임이 쉬운 옷을 입거나 하는 다른 퍼포머들과 비교해서, 곧 그들이 작위적으로 멋을 추구했다는 점에서 연극적인 양상을 그와 마찬가지 차원에서 조금 다르게 연장하거나 단순히 퍼포머로서의 기능적인 차원을 가져가는 것과는 다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