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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이온, 〈스와이프〉: 현존을 재정의하기 또는 재설정하기REVIEW/Theater 2026. 2. 4. 21:04
1 〈스와이프〉는 다이애나밴드의 “소리-사물”들이 극장 전반에 배치되어 단속적으로 소리를 내는 가운데, 네 명의 배우가 순차적으로 어떤 관념들을, 돌아가며 발화하며 잇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 교환적, 교차적 놀이의 기저에는 무엇보다 네 명의 배우들이 말을 위임받고 수행하는 존재이며, 관계항으로서 역할들의 위상차가 아닌 이야기 전달자로서 단지 그 역할들을 임의적이고 임시적으로 ‘도입’하기에 동등함, 이야기 전달자로서 효율적으로 또 형식적으로 균형을 맞추는 기술적 차원에서 동등함이 전제된다. 디에게시스의 말하기 방식을 전적으로 구사하는 배우들이 독립적이고 특정적인 자기 자체로서 임하면서 일부 미메시스 차원에서 관계항의 연기가 가능한 지점을 삽입하는데, 이는 현실 차원에서 이 넷의 ‘자신’과 그 관계에서 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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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정, 〈아무도, 아무 것도, 아닌 것이 아닌〉: 비기능적인, 비의도적인 움직임REVIEW/Dance 2026. 1. 31. 22:11
“아무도, 아무 것도, 아닌 것이 아닌”이라는 제목은 부정의 부정을 거듭한다. 아무도, 아무것도 아닌 무엇이 아니라는 것은 그것이 어떤 무엇으로 특정 가능하다는 것을, 어떤 의미를 띤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그것은 적어도 아무도, 아무것도 아닌 존재를 경유해서만 자신을 그것으로서 드러낸다, 적어도 이 문장에서는 말이다. 〈아닌 것이 아닌〉은 곧 이 아무것도 아닌 무엇으로부터 더는 부정할 수 없는 움직임을 추출해 내려는 어떤 시도들이다. 아마도 내장까지 숨을 불어넣어 쉬고, 하품하고, 몸을 가눌 수 없는 상태로 흔들리는 어떤 일련의 과정은, 움직임의 메커니즘을 가시화하는 절차들이 곧 움직임임을 나타낸다. 그 안에서 어떤 소리가 불거지고 몸을 지배하고 주요한 매체 표현으로 드러나는 양상은, 일견 황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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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무용단의 《안무가 랩: 듀오》 ‘둘’이라는 실험적 요소 혹은 관계의 확장REVIEW/Dance 2026. 1. 31. 21:54
서울시무용단의 《안무가 랩: 듀오》는 서울시무용단 내에서 짝을 이룬 듀오 다섯 팀의 공연을 묶어 보여준 것으로, 이는 2인무라는 긴밀한 협업과 지지에 기반한 창작의 방향을 제시함으로써 내부의 창작 역량을 고취하고자 한 프로젝트로, 상대적으로 밀도가 높은 소규모의 공연들이 펼쳐졌다. 둘의 관계 지향적 이행은 필연적으로 서사로 연장되기에 이르는데, 이러한 측면에서 대부분에 있어 하나의 공통점이 출현했다. 그리고 이를 내용과 메시지로 가져갈 것인가 순수한 움직임의 차원에서 구현할 것인가가 작품의 성격을 본질적으로 결정하는 요소로 작용했다. 오정윤과 박희주의 〈니나〉(안무 오정윤)는 붉은 빛으로 채워진 좁은 네모 프레임 안에서 그에 맞추어 낮은 자세로 바닥에 밀착한 움직임들을 취하는데, 이는 숨에 기반한 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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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서영, 《올 노 그립》: 제어되지 않는 또는 내파되지 않는 세계REVIEW/Visual arts 2026. 1. 31. 21:45
장서영의 《올 노 그립》은 전시 공학적으로는 동명의 작품 〈올 노 그립〉(2025. 단채널 영상, 13분 45초.)을 전면에 내세우며 그 밖의 작품들을 그것의 부속인 양 해체시켜 늘어뜨려 놓는 방식을 택하는데, 대표적으로 〈평활근〉(2025. 스테인리스스틸, 200×270×70cm.)은 영상에 나오는 “5단 변신 침대” 혹은 “5단 변신 자동차”의 뼈대‘들’로 그것은 그것들로만은 온전히 합체되지 않은, 합체될 수 없는 “가변”의 형상을 겨우 이루고 있다―여기서 숫자는 변화의 단계가 아닌 유형학적 분류의 기준으로 추정되는데, 곧 이 침대는 “욕창 없는 다섯 개의 자세”를 위한 가변 모델이다. 그것이 내장의 근육이자 불수의근으로서, 우리의 의지로 구동되지 않는 근육이라는 점은, 금속 파이프 관의 이 틀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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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은, 〈메타발레: 즉흥, 구겨진 아티튜드〉: 발레라는 문지방으로 들어서기REVIEW/Dance 2026. 1. 31. 21:22
〈메타발레: 즉흥, 구겨진 아티튜드〉(이하 〈메타발레〉)는 발레 자체를 비트는 시도인데, 이는 곧 발레를 부정하고 거기에 비판적으로 관여하는 것이 아니라, 발레의 심급을, 발레에 대한 관점을 재조정하려는 시도에 가깝다. 따라서 그것은 잠재적이며 수행적이지만, 그 표현의 일체는 ‘모호하게’ 가시화된다. 곧 표면은 비틀려 있다. 뒤로 갈수록 〈메타발레〉는 하나의 공연의 형태를 완성해 가게 되는데, 이때 그 공연 역시 그것이 공연으로 완수되는 것인지 공연이라는 형식에 우연하게 근접한 것인지, 더 정확히는 무용수가 (또 하나의 다른) 역할을 연기하는 것인지 무용수라는 하나의 역할이 공연으로 연장되는 것인지 전적인 혼동 아래 놓인다. 무용수마다의 여러 레이어가 중첩된 형태로 주어지며, 그 일부를 이어 받아 다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