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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무용단(송주원 안무), 〈20▲△(이십삼각삼각)〉: 고립으로서의 매체REVIEW/Dance 2023. 5. 31. 23:33
〈이십삼각삼각〉은 ‘중간에’ VR 영상이라는 형식을 도입한다. 단순한 외삽 나아가 전시와 퍼포먼스의 종합―곧 퍼포먼스 사이에 전시를 끼워넣기 또는 전시라는 형식을 퍼포먼스로 확장하기―과 같은 장르의 분별로만은 보기 힘든데, 그 앞, 뒷부분은 VR에 대한 질문이거나 반응의 요소로서의 움직임이 자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립’에 대한 의미와 그로부터의 메시지를 강조하는 움직임의 요소가 어떤 의미 지층을 지니는지는 또 서사를 구성하는지는 사실상 부차적인 것일 수 있다. 이는 그 앞뒤에 자리하는 현장에서의 무용에 관한 단순한 보족이라기보다 기존의 무용을 재매개하는 역량으로 자리한다. 1층과 2층으로 나뉜 객석은 각각 무대를 휘젓고 다니는 퍼포머들과 한 공간에서 자리하는 것과 이를 위에서 부감하는 것으로 연장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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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작들, 〈당신은, 당신의 이웃을 사랑하십니까?〉: ‘공간’에 대한 신체적 탐구REVIEW/Dance 2023. 3. 14. 01:33
걸작들의 〈당신은, 당신의 이웃을 사랑하십니까?〉(이하 〈당신의 이웃〉)는 안무를 맡은 윤예은의 집을 근거로 한다. 신동아3단지아파트 111동 경비실에 모인 관객들이 아파트 1층에 들어서면 공연이 시작된다. 층마다 각기 다른 장면이 펼쳐지며, 좁은 공간에서 분산돼 움직이던 퍼포머들은 옥상에서 최종적으로 하나의 그룹을 이룬다. 관객은 이들을 따라가며, 몇 발짝 앞서 나간 퍼포머들을 지켜본다. 움직임은 시작되고 그치기를 반복한다. 움직임에 동반되는 자전적 내러티브가 이동식 스피커를 통해 ‘은근하게’ 퍼져 나온다. 끊임없이 주어지는 새로운 자리를 위해 ‘5명’의 관객은 기본적으로 앞선 이가 자신이 곧 이를 경로임을, 그리고 장면에 대한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하나의 계단에 한 명 정도의 점유라는 최소한의 틈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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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페이스 타임〉: 부재를 현상하기REVIEW/Theater 2023. 3. 14. 01:10
창작집다 ‘여기에 있다’의 〈페이스 타임〉은 박세련 연출의 사라지지 않은 어머니의 번호로부터 영상 통화—“페이스 타임”—가 걸려 온다는 가정에서 시작한다. 여기서 전화번호라는 흔적은 부재를 현재로 기입하고 있으며, 이를 눌렀을 때 뜨는 빈 화면은 과거를 미래로 위치시킨다. 물론 이 화면은 가능하지 않을 것이고, 결말에는 정대진과 이진경 두 배우의 얼굴이 대체한다. 배우들의 발화와 극중극으로 투여되는 인형극 형식의 교차로 진행되는 극에서, 가상의 차원에서 이뤄진 현전은 후자와 관련되는 듯하다. 해와 바람의 다툼, 그리고 이를 방관하는 구름으로 인해 비가 내리고 제어되지 않고 홍수가 나서 생물들이 죽고 무덤으로 뒤덮인 세상이 된다. 이제 세상의 수많은 구멍은 갖은 생명체의 무덤이 된다. 또는 세상은 구멍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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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직, 〈아파야 낫는다 건강백세!〉: 애도라는 놀이의 효과REVIEW/Theater 2023. 3. 13. 23:37
이성직의 〈아파야 낫는다 건강백세!〉는 개인의 사적 추모 혹은 애도에 대한 몇 가지 형식을 구성한다. 이성직의 친할머니, 1933년생 이명숙을 이야기하고(1막) 그가 잘 담갔다는 물김치를 대신 담그고, 또 그를 대리하게 하며, 그를 대리한 이의 친구를 대리(2막)한 이가 꽃꽂이(3막)를 하는 일련의 행위가 그것이다. 1막의 이명숙에 관한 상기가 실상 그에 관한 비평적 해부에 가깝다면, 2막과 3막의 수행들은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명숙을 재현하는 차원으로 전개된다. 물김치 담그기는 이명숙이 구성했던 맛에 다가가려는 시도로 시작되지만, 그 맛은 공연이 끝나고 별도로 약속을 잡아야지만 실행되는 사후적인 증거로만 남는다. 곧 이명숙의 물김치와 그것을 구현하고자 한 이성직의 물김치와의 관계는 후자를 통해 전자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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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집단 세사람, 〈노스체(NOSCE)〉: 재난을 상상하기REVIEW/Theater 2023. 2. 23. 01:47
프로젝트집단 세사람의 〈노스체(NOSCE)〉(황정은 작가, 윤성호 연출)는 원전 폭발 후 25년째 고립된 채 살아가는 한 마을을 배경으로 한다. 할머니 옥(김은희 배우)과 20대 두 친구인 현(윤정로 배우), 희(김민주 배우)과 살아가는 이 마을에, 재난 구조 로봇 노스체(최희진 배우)라는 비인간 타자와 연(박윤정 배우), 필(선명균 배우)이 차례차례 찾아오며 마을에는 혼란과 균열이 생겨난다. 각종 빈티지한 가구와 집기로 촘촘하게 쌓아놓은 무대는 다른 일상의 시간과 세계의 환경을 강렬하게 보여주기 위한 시각적 양식이며, 나아가 외부와 분리된 게토화된 공간이자 폐허의 잔해로서의 시공간임을 드러낸다. 멧돼지의 침입으로 벽을 쌓는 일상의 시간이 지리하게 이어지던 이곳은 사회 안전망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곳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