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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새 작·연출, 〈극동 시베리아 순례길〉: 미래 앞에서 우리는…REVIEW/Theater 2022. 11. 8. 14:14
끊임없이 지구의 끝을 향해 걷는 ‘여행자’, 산티아고 순례길 반대편으로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는 시베리아 길을 향한 그의 여정은, 온라인 게임 유저들의 화제를 모은다. 동시에 기상청 소속의 기상탐지 시스템 연구원들의 관찰 대상이 된다. 〈극동 시베리아 순례길〉(이하 〈순례길〉)에는 알 수 없는 자의 미지의 좌표가 전제되고, 이는 그 바깥에서 사유되고 추적되어 현재의 삶에 들어온다. 그의 좌표는 일반적인 인간 사회의 바깥에 있지만 현실 세계를 기반으로 한 VR 체험 방식의 가상 세계에서는 새로운 이정표가 된다는 점에서, 기술은 일견 현실을 더 잘 매개하는 역할을 하는 것 같지만, 그 기술이 재현할 수 있는 사전 데이터 확보 차원에서 오히려 ‘그’의 존재는 특별하다. 비가시화된 장소의 영역을 볼 수 있게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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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재, 박유라, 〈장면싸움; 커튼문계단벽〉: 북극 배우에게 주어진 시각장REVIEW/Theater 2022. 11. 8. 12:34
무대는 탐험적 지대로 놓인다. 무대는 의도와 시도를 위한 긴장으로 남는다. 미술 작가 조경재는 빈 공간으로서 극장을 운동과 적용의 산물로 구성했기 때문이다. 박유라 안무가는 안과 밖, 경계와 지대들로 나뉜 곧 비가시적 영역과 가시적 영역, 그리고 영역들 자체의 구분을 가시화한 검은 공간 속에서 자신의 ‘중심’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본질과 적용 사이에서, 현존과 허구 사이에서, 이미 있는 몸과 표면의 몸 사이에서 그는 적응하기를 선택한다. 적어도 적응 이후에 전개를 생각한다. 가령 경계 안, 비가시적 공간 안에서 그는 일정 부분의 신체만을 드러낸 채 머문다. 어떤 에너지를 모으는 데 시간을 들인다. 이러한 공간은 비의적인 것으로 신비화되거나 알 수 없는 시간을 담고 있는 것으로 여겨질 수도 있지만, 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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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미니 프로토콜, 〈부재자들의 회의〉: 배우에 관한 존재론REVIEW/Theater 2022. 11. 7. 14:12
리미니 프로토콜의 〈부재자들의 회의〉(이하 〈부재자들〉)를 채우는 건 관객들이다, 회의의 대리자를 자처함으로써 또는 대리자의 가능성을 전제함으로써. 부재를 상기시키는 각기 다른 10개의 스크립트가 있고, 이는 미리 녹음된 내레이션이 현재에 놓인다. 이들은 헤드폰을 끼고 소리를 하달받는데, 서류 봉투에 든 지시문 따라 읽기에서 시작해 인 이어 모니터로 매개하는 프롬프터 방식, 종이에 새겨진 글자를 보여주는 일종의 수동 자막 입히기, 움직임 스코어 수행 등으로 스크립트를 구현한다. 스크립트는 물론 스크립트 ‘사이’까지 모든 과정이 예측된 절차를 수행한다는 점에서 작품은 이미 구성된 바를 단지 구현하는 것이지만, 현장에서 누가 나올지―그것 자체가 의문시된다.―어떤 변수가 작동할지 약속되어 있지 않다는 점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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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Dance2022 HOTPOT: 후즈넥스트, ‘가깝고도 가까운’REVIEW/Dance 2022. 10. 26. 18:09
양승관 댄스 프로젝트 〈Try Again, Fail Again〉 정한별 〈일일운동〉 Dantraaa 〈춤추는 여행가〉 네이키드 프로젝트 〈생산적 활동〉 양승관 댄스 프로젝트의 〈Try Again, Fail Again〉, 정한별의 〈일일운동〉, 춤추는 여행가 Dantraaa의 〈바르게 서기까지〉, 네이키드 프로젝트의 〈생산적 활동〉 순으로 열린 ‘후즈넥스트’는, 포스트극장의 가깝게 열린 공간의 내밀하고 직접적인 특징을 최대한으로 활용했다. 주로 일상적인 몸짓을 연장하거나 상징계적 자리를 유추할 수 있는 작업으로, 추상성과 모호함의 요소가 크지 않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구체적인 현실의 양태로부터 출발한다는 것은 예측 가능하거나 그 자체로 인지 가능한 표면을 향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지점에서 어떻게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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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테 잉바르첸, 〈to come(extended)〉: 누드를 매개하거나 탈각하는 법REVIEW/Dance 2022. 10. 26. 17:36
덴마크의 안무가 메테 잉바르첸이 안무한 〈to come(extended)〉는 적나라한 신체 움직임에 대한 엄격한 통제이다. 이는 전신을 가린 옷을 입었을 때와 하얀 신발만을 신었을 때는 이미지적 분기를 구성한다. 먼저 파란색 계열의 보디 수트를 입은 퍼포머들의 옷은 크로마키 수트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배경과 구분되지 않기 위해 착용하는 의상을 배경막 없는 가운데 착용함으로써 일종의 움직이는 배경이 된다. 이러한 의상을 입은 신체들은 하나의 피부색을 갖고 얼굴과 표정을 지운다. 섹스의 제스처가 끊임없이 발현되는 것이 가능해진다. 집단의 움직임은 움직임을 멈춘 채 하나의 거대한 조각을 구현하는 것으로부터 경계를 이탈하는 한 명의 움직임이 (이 조각의 차원이 언제까지 정지된 상태일 것이라는 의식의 고착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