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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손주의(최치원×김서영), 〈그린 폴터가이스트〉: (외)화면을 벗어난REVIEW/Interdisciplinary Art 2026. 1. 18. 23:11
〈그린 폴터가이스트〉는 녹색 크로마키 전신 수트를 입은 배우(심민섭)의 등장으로 제4의 벽을 깨는 것에서 시작하는데, 그가 한결같이 포문을 여는 말은 “원래대로라면…”으로, 그에 따르면 이것은 영화였어야 한다는 것이다. 곧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영화로 구현되기 전의 촬영 현장으로, 영화를 선취할 일부로, 원래대로라면 볼 수 없는 것, 새로운 이미지가 덧대어지며 지워져야 할 것들이다. 따라서 원래대로라면 이것은 미래로의 가능성의 목적 아래 있는 잠재적 영역으로, 그것이 드러날 때, 곧 시각적 불가능성이 전도될 때 그것에 대한 본래의 통제 영역을 잔여의 초과된 실재가 가로지르기 때문에, 이곳은 불필요한 것―보지 않아도 되는 것―에서 관음증적 영역―(일반적으로) 볼 수 없는 것―으로 뒤집힌다. 그것이 곧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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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아트신 초이스Column 2025. 12. 31. 22:13
2024 올해의 연극: 〈정원사와의 산책〉, 〈시스터 액트리스〉, 〈활화산〉 2024 올해의 무용: 〈닥쳐 자궁〉, 〈사람들〉, 〈행 +-〉 2024 올해의 미술: 《큰 사과가 소리없이》, 《살도 뼈도 없는 나에게 Feed me stones》, 《돌과 연기와 피아노》 2024 올해의 연극으로, 배소현(스라소니가 온다) 작/연출의 〈정원사와의 산책〉, 정진새 작/연출의 〈시스터 액트리스〉, 차범석 작/윤한솔 연출의 〈활화산〉을 꼽는다. 〈정원사와의 산책〉은 접근성이 강조되는 예술계의 흐름 안에서 부가적이고 외재적 차원으로 확장되는 접근성을 공연의 표현 자체로 반전시키는데, 이는 희곡이라는 텍스트, 배우라는 수행의 존재, 극장이라는 비가시적 환경을 모두 분명하게 가시화하는 것으로써 구현된다. 곧 접근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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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_롤란트 쉼멜페니히/ 연출_윤한솔, 〈안트로폴리스: 프롤로그/디오니소스〉: 서사는 어떻게 시작되고 또 시현되는가에 대한 여정REVIEW/Theater 2025. 11. 12. 16:19
〈안트로폴리스: 프롤로그/디오니소스〉에서, 독일어로 인류세(Anthropozän)와 도시를 뜻하는 폴리스(Polis)를 결합한 조어인 안트로폴리스는, ‘프롤로그’와 ‘디오니소스’, 두 개의 장으로 나뉘는데, 그 사이의 인터미션 20분을 포함하면 3시간에 가까운 상연 시간으로, 대규모 무대 세트, 디자인된 자막과 핍진한 이미지들, 그리고 실시간 영상이 중계되는 중앙의 커다란 막, 라이브 밴드와 18곡의 곡목, 18명의 배우의 연기와 노래, 춤은 총체적인 종합예술로서 연극 무대를 선사한다. ‘프롤로그’가 도시 테베가 설립되고, 그 설립자인 카트모스의 딸 세멜레와 제우스 사이에 생긴 디오니소스의 탄생 신화까지를 다룬다면, ‘디오니소스’는 디오니소스가 테베에 도착하고 난 후, 디오니소스를 숭배하는 축제를 거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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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동, 〈묵티〉: 영속적인 이주민으로서 삶 혹은 끊임없이 유동하는 신체에 대하여REVIEW/Theater 2025. 11. 12. 15:52
〈묵티〉는 이주민, 난민으로 표상되는 존재들을 신화의 기원적 존재로 위치시킨다. 또는 신의 형상은 이주민의 현재적 삶으로 전환된다. 산스크리트어로 ‘해방’이라는 뜻의 ‘묵티‘는 먼곳에서 들려오는 휘파람 소리와 함께 이주민들의 몸을 빌려 이따금 나타나는데, 이는 자막에서 단지 몸을 지닌 본래 그들의 이름으로 처리된다. 하나의 영혼과 다른 하나의 신체의 만남에서 신체가 우선함은, 그것이 비가시적인 것을 현실로 처리하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그리고 영혼과 신체의 이원설을 주장한다기보다는, 오히려 그 신체 자체가 진정 중요하다는 걸 말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결국 멀리서 온 존재인 것처럼 가까이에 있는 이가 타자성으로서 나에게 머물러 있었음을 깨닫는 지점, 곧 구원이 초월적 신의 현실 너머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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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은길, 〈초록이가 거짓말을 하면 우린 모두 박수를 치는 거야〉: 연극이라는 외양은 현실에 대한 망각적 진리를 시현하는 것…REVIEW/Theater 2025. 11. 5. 14:17
〈초록이가 거짓말을 하면 우린 모두 박수를 치는 거야〉(이하 〈초록이〉)에서 극을 관통하는 하나의 이야기가 있다면, 초록이가 꾸었다며 들려주는 ‘갈색수염을 입은 북극곰’ 이야기로, 사냥을 하러 온 인간인 갈색수염을 죽이고 이를 뒤집어쓰고 그의 외양으로 인간 세계에서 살아가는 북극곰이, 알고 보니 주변의 모든 인간이 북극곰이 위장한 것이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요지는 그들 모두가 북극곰이었다는 사실에서 나아가 그만 빼고 모두가 그 위장에 대한 사실을 마치 알고 있었다는 듯 놀라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북극곰과 인간 사이의 공통의 지점이 그 존재적 본질을 구성하며 연결될 수 있는, 어떤 신화적 시간을 가리키는 ‘대칭성 인류학’적 진리에 초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일종의 위장된 존재로서, 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