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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주 작/연출, 〈들뜬〉: 촉각의 연극REVIEW/Theater 2022. 8. 29. 21:10
떠도는 이야기들을 쓸어 담는 공간-신체 〈들뜬〉은 짐을 다 뺀 황량한 집에서 시작한다. 이는 물론 소극장의 검은 바닥 자체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것은 물론 방이 아닌 다른 공간은 아니다. 남자의 맨발은 그것을 지시한다. 물론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배우의 현존은 장소로부터 체결된다.’ 아마도 이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남자는 오랜만에 아내인 여자를 맞는다. 여자의 머리 위에 센서 등이 깜빡인다. 남자(최태용 배우)는 한참 동안 여자(김정아 배우)를 마주하지만 그를 응시하지는 않은 채 그 자리에 있다. 그는 허공을 보는 것 같지만, 사실 공간 안의 한 점을 보고 있다. 이 짧은 순간을 비교적 길게 늘이며 공간이 그의 몸에 담긴다. 시간이 멈추고 멈췄던 시간이 몰려온다. 〈들뜬〉은 발화를 통한 배우의 현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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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코미디캠프: 파워게임》: 발화하며 현재화되는 경계로서의 ‘극’REVIEW/Theater 2022. 8. 29. 20:46
1인극의 스탠드업 코미디를 표방하며 대략 30분 정도의 시간으로 규격화되는 것으로 보이는《2022 코미디캠프: 파워게임》(이하 《코미디캠프》)에서, ‘코미디’라는 장르를 전면에 내세운 건 연극(인) 바깥의 다양한 이야기를 수용할 수 있는 적당한 포장으로도 보인다. 안담을 제외한 김은한, 배선희, 신강수 세 명 모두 평소에는 코미디 바깥에서 연극을 한다―《코미디캠프》에서는 안담이 유일하게 마이크를 사용한다면, 이 셋은 마이크 없이 무대에 선다. 반대로 이들은 《코미디캠프》에서 연극이 아니지만 연극에서 하지 못하는 것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코미디캠프》가 상대하는 건 일종의 연극이고, 《코미디캠프》가 지향하는 건 오히려 연극의 잔여이며 연극 바깥의 존재하지 않는 어떤 연극일지 모른다. 이는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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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윤경, 〈피부와 공간의 극작술 연구: 장면 둘〉: 신체-이미지의 유령적 탐구REVIEW/Dance 2022. 8. 12. 11:03
〈피부와 공간의 극작술 연구: 장면 둘〉(이하 〈피부와 공간〉)은 극장 전반에 들고나는 통로로 공간의 구멍을 만들고 마주 보고 어긋나게 객석을 배치하고, 앞뒤로 너울거리는 커튼 위에 투사되는 흐릿한 글자들과 그 글자들을 비집고 나오며 말과 움직임 사이에 위치하는 신체 형상들을 통해 ‘틈’과 ‘간격’의 공간으로 극장을 재구성한다. 이러한 틈과 간격의 안무는 신체와 신체, 신체와 이미지, 신체와 스코어 사이에서도 적용된다. 여기서 ‘극작술(dramaturgy)’은 신체 자체보다는 신체가 작동하는 방식이나 과정, 신체를 구성하는 인지를 시험하려는 기술로 보인다. 공간 구조화로서의 시노그라피에서 시작되는 극장은 등장과 퇴장의 구멍과 공간 사이의 틈을 내버려 두고 우발적으로 몸이 그 구멍과 사이에서 시작되는 움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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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스프로젝트 Tan Tanta Dan, 〈Down the Rabbit Hole - 정화된 밤〉: 음악이 되기 위한 움직임REVIEW/Dance 2022. 8. 5. 00:38
〈Down the Rabbit Hole - 정화된 밤〉(이하 〈정화된 밤〉)은 쇤베르크(Arnold Sch nberg)의 동명의 곡 ‘위’에 펼쳐진다. 말 그대로 움직임은 음악에 얹어지며 음악에 ‘감염’된다. 음악은 하나의 전체를 구성하는 하나의 미디어로, 몸은 그것을 지지한다. 또는 그 몸을 지지하는 것이 음악이기도 하다. 이러한 음악에 감염된 주체를 위해 최진한은 특별한 움직임 메소드를 창안하는 것으로 보인다. 몸은 음악의 파동과 같이 진동하는 것이자 음악의 움직임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감염’은 이러한 두 매체 간의 상호 접촉과 전이의 상태에서 움직임에 해당하는 한 측면을 가리킨다. 걷기의 변형태로서 존재하는 기본 단위의 움직임은 구멍으로 들어가는 것이기도 하다. 한껏 가슴을 뒤로 젖힌 채 두 팔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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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지 연출 〈누구와 무엇〉: 현실은 이념을 장악한다!REVIEW/Theater 2022. 7. 28. 23:11
그린피그의 박현지 연출이 연출한 연극 〈누구와 무엇〉은 미투 이후 지금 여기의 차원에서 보면 가부장적인 가정에 복속된 전통적인 여성에 대한 관념이 어느 정도 형해화되었는지 또 그것을 뚫고 나오는 현재의 목소리가 어떻게 여전히 지난 관념과 타협하거나 병렬하는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여전히 현실적이고 또한 비판적이고 메타적인 시선의 규준을 마련하며 유의미한 지점을 구성한다. 파키스탄계 미국인 작가 에이아드 악타(Ayad Akhtar)는 서구 근대와 아시아 전근대의 경계에 위치한 동시대인의 질문을, 〈누구와 무엇〉에서 파키스탄계 미국인 무슬림 가족, 곧 절실한 무슬림 신자인 아버지 아프잘과 페미니즘을 경유해 선지자 무함마드와 그에 대한 상을 재구성하는 소설 작가인 딸 마위시의 관계 속에서 던진다. 종교에 관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