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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서울 도심의 개천에서도 작은발톱수달이 이따금 목격되곤 합니다〉: ‘기이한 연결의 정동’REVIEW/Theater 2022. 7. 12. 11:51
도심의 개천에서‘도’ 작은발톱수달이 목격된다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서울 도심의 개천에서도 작은발톱수달이 이따금 목격되곤 합니다〉(이하 〈작은발톱수달〉)는 통합적인 장, 통약 불가능한 존재들의 공-현존과 그 연결에 주목한다. 비인간 생명과 인간 생명 외에도 기계와 인간의 관계, 여러 다른 시공을 겹쳐 놓는다. 하나의 시간에 다른 시간이 파고든다. 동시에 모든 존재는 그 시간 안에서 다른 시간을 향해 열려 있다. 하지만 어느 하나의 시간만이 주어를 형성하지는 않는다. 이는 하나의 존재가 시간을 옮겨 다니며 두 시간을 간신히 통합하면서 하나의 의식을 구성하거나 다른 시간으로 발신을 하는 존재와 소통하는 식의 시간 여행 서사 장르물의 일반적인 성격과는 차이가 있다. 오히려 수많은 존재가 각자의 멀티 유니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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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소프루〉: 유령적 현존을 통한 연극에 대한 기술REVIEW/Theater 2022. 6. 20. 02:10
연극 〈소프루〉는 프롬프터를 쓰던 지난날을 현재로 복각한다. 40년 동안 프롬프터로 일한 크리스티나 비달을 인물들 곁을 맴돌게 함으로써 현재에 달라붙은 역사의 그림자는 실재적인 잉여가 되어 착종된다. 드러나서는 안 되는 프롬프터의 속삭이는 말들과 존재가 대사에 미세하게 비벼지고, 실제 ‘들리는’ 대사는 연극에 대한 메타 레퍼런스로 비달을 향한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배우들 뒤에서 비달은 앞서서 이야기를 전한다. 비가시적이고 동시에 무대 바깥의 물리적인 위치에서 연유하는 그의 위상은 언급되고 끊임없이 확인된다. 그의 존재는 이 이야기들의 내부이며 이 이야기들을 바깥으로 만든다. 프롬프터가 갖는 대사의 원본성에 대한 지시는 〈소프루〉의 배우들을 연기하고 있음으로 구성한다. 배우들은 재현의 경우를 제하고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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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웰킨〉: 얼굴과 잡음의 몽타주REVIEW/Theater 2022. 6. 20. 02:09
연극 〈웰킨〉은 아동 살해죄로 교수형을 받은 피고 샐리 포피와 그의 처형 보류 혹은 감형 여부를 결정하는 임신 여부 판정을 위해, 배심원으로 임명된 열두 명의 여성들의 이야기다. 일정 정도 마을에 같이 사는 사람들로서 공유되는 컨텍스트가 끼어드는 것과는 별개로, 이들은 각자의 입장과 견지에서 임신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는데, 전원 합치된 의견이어야 한다는 전제에 따라 의견은 하나로 모여야 하며, 따라서 이들은 마치 직접 민주주의의 주체로 부상한다. 그것은 대부분 적당히 무심하고 또 상대방의 말에 부화뇌동하는 모습으로 그려지는 가운데, 하층계급의 언어적 전략이라는 표면 아래 극은 오히려 민주주의에서 우민의 통치라는 우스꽝스러운 면모를 연출하는 데 그 의의가 있는 것도 같다―이 극이 현대를 이야기하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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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랙×남장신사〉(드랙바이남장신사): 수행성, 발화, 매개의 지층들REVIEW/Performance 2022. 6. 16. 20:24
〈드랙×남장신사〉는 실제 여성 퀴어의 발화와 무대를 고스란히 극장에 투여한다―무대 위의 수행성이 또 관객의 참여적 몫이 어떻게 효과를 가져갈 수 있을지에 대해 인상적인 예시를 제공한다. 처음 이십 년째 퀴어들을 대상으로 한 ‘레스보스’라는 바를 운영 중인 바지씨 윤김명우에 대한 생애사 재현에서 레스보스 시절 퀴어들의 만남으로 ‘바지씨’에 대한 정의를 탐구할 때까지 어느 정도 재현의 틀 안에서 극을 구성하려 했다면, 이후 〈드랙×남장신사〉는 윤김명우의 노래―〈세월이 가면〉―와 이하 독보적인 세 명의 출연으로 계속 판을 갈아엎고 쇄신하기에 이른다. 〈드랙×남장신사〉는 당사자의 장을 열어주는 것으로 “드랙”을 대신한다. 그건 법적 성별에 전략적으로 균열을 일으키는 의상과 분장을 바탕으로 한 노래와 춤/움직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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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오아시스〉: ‘혁명적으로 연극 하기’REVIEW/Theater 2022. 6. 16. 19:47
〈오아시스〉는 끝없는 언어 유희를 통해 세계를 해체하고 다시 가설하기를 반복한다. 사막 한가운데 생긴 호텔 오아시스에 숨겨진 오아시스선을 타고 소행성 충돌을 피하기 위해 차원이동선인 오아시스선을 또 옮겨타야 한다. 이 오아시스는 오아시스 밴드가 좋아하는 모종의 술과 같은 어떤 것을 떠올리게 한다. 전자가 현실 세계의 구조적 서사라면, 후자는 이에 대한 자유로운 배우들의 사유 영역에서 나온 것이다. 〈오아시스〉는 어쨌거나 하나의 언어에 올라타고, 그 언어를 다른 언어로 전치시키고, 이를 반복한다. 연속되는 언어 유희를 통한 문법의 생성은 어떤 시대와 어떤 시간에도 얽매이지 않는(재현하지 않는) 연극을, 동시에 그러한 시대와 시간을 지시할 수 있는(참조하는) 연극을 가능하게 한다. 여러 차례 반복되는 “각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