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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영 안무, 〈메커니즘〉, 움직임을 구성하는 독특한 셈법REVIEW/Dance 2022. 7. 12. 12:34
〈메커니즘〉은 분절된 단위로 움직임이 구성됨을 쌓아가며, 사운드와 함께 서서히 증폭시키는 구조를 취한다. 〈메커니즘〉이 보여주는 건 일견 안무의 경로인 것으로 보인다. 하나하나 분절된 몸짓을 통한 결과는 움직임의 느리게 감기를 통한 일종의 시각적 클로즈업이 아니라, 곡선의 흐름과 그 흐름을 추동하고 있는 인간의 정념이 삭제된다는 것이다. 레슬러의 복장을 한 무용수들은 동작 하나하나를 섬세하고 강력하게 이행한다. 춤은 마치 스포츠의 효율과 훈육된 신체의 퍼포먼스 역량 자체를 전시하는 것을 추구하는 것 같다. ‘힙합’을 전유한, 국립현대무용단의 프로그램 제목 ‘HIP合’은, 그 이름만 놓고 보면 힙합과는 직접적인 친연관계를 지양하는 듯 보인다. 하위문화의 일종으로서 저항의 코드를 지니며 여러 장르/매체를 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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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로 사리넨 안무, 〈회오리〉: 본질주의와 전승 사이에서의 전통REVIEW/Dance 2022. 7. 12. 12:20
테로 사리넨이 안무한 〈회오리〉는 한국 무용의 전통적인 것을 추출, 전유한 작업이다. 이는 통상 오리엔탈리즘적으로 표상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한국의 고유한 어떤 것이 어떻게 굴절되어 있음을 이야기한다기보다는 거꾸로 우리의 것에 대한 우리의 인식 체계와 재현 질서를 인지하는 것으로 볼 수 있지는 않을까, 우리 고유의 것 자체가 근본적으로 정위되어 있지 않다고 전제하는 한에서. 〈회오리〉는 ‘회오리치는’ 유사성의 움직임 계열체를 만드는 것, 흑백의 양분된 ‘색감’에 따른 상징 구도 위에 샤먼이라는 예외적인 존재가 자리하고 있음, 그리고 음악이 끊임없이 합성되고 있는 실시간성의 수행성이 강조되는 것으로 집약된다. 첫 번째로 움직임의 형태는 사실 스텝을 너르게 잡고 크게 굴신하며 팔을 벌려 나무가 바람에 휘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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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보이지 않는 손〉: ‘세계에 관한 이념 변경을 위한 심리학적 실험’으로서 서사REVIEW/Theater 2022. 7. 12. 12:10
〈보이지 않는 손〉은 사실주의적 양식에 기반을 두며, 급박한 현실 정세를 소수의 인물 관계의 변화 양상으로 집약한 일종의 심리 드라마라 할 수 있다. 파키스탄 무장 단체의 바시르와 이맘 살림, 그리고 미국 투자 전문가 닉을 주축으로 하며, 미국과의 협상이 결렬되며 무장 단체 측에 생존 가치를 잃은 닉은 천만 달러에 해당하는 몸값을 투자를 통해 회수할 수 있음을 피력하고, 이를 수용하면서 본격적으로 극이 시작된다. 〈보이지 않는 손〉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간의 좁힐 수 없는 이념 대립을 인물들로 육화하는 데 그치기보다는 선물 경제의 자본이 개입되며 어떻게 그 이념이 파열되고 굴절되는가에 집중한다. 이는 ‘스마트’하고 합리적인 닉을 주인공으로 두며 자본의 힘을, 궁극적으로는 자본주의의 명백한 승리를 향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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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서울 도심의 개천에서도 작은발톱수달이 이따금 목격되곤 합니다〉: ‘기이한 연결의 정동’REVIEW/Theater 2022. 7. 12. 11:51
도심의 개천에서‘도’ 작은발톱수달이 목격된다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서울 도심의 개천에서도 작은발톱수달이 이따금 목격되곤 합니다〉(이하 〈작은발톱수달〉)는 통합적인 장, 통약 불가능한 존재들의 공-현존과 그 연결에 주목한다. 비인간 생명과 인간 생명 외에도 기계와 인간의 관계, 여러 다른 시공을 겹쳐 놓는다. 하나의 시간에 다른 시간이 파고든다. 동시에 모든 존재는 그 시간 안에서 다른 시간을 향해 열려 있다. 하지만 어느 하나의 시간만이 주어를 형성하지는 않는다. 이는 하나의 존재가 시간을 옮겨 다니며 두 시간을 간신히 통합하면서 하나의 의식을 구성하거나 다른 시간으로 발신을 하는 존재와 소통하는 식의 시간 여행 서사 장르물의 일반적인 성격과는 차이가 있다. 오히려 수많은 존재가 각자의 멀티 유니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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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소프루〉: 유령적 현존을 통한 연극에 대한 기술REVIEW/Theater 2022. 6. 20. 02:10
연극 〈소프루〉는 프롬프터를 쓰던 지난날을 현재로 복각한다. 40년 동안 프롬프터로 일한 크리스티나 비달을 인물들 곁을 맴돌게 함으로써 현재에 달라붙은 역사의 그림자는 실재적인 잉여가 되어 착종된다. 드러나서는 안 되는 프롬프터의 속삭이는 말들과 존재가 대사에 미세하게 비벼지고, 실제 ‘들리는’ 대사는 연극에 대한 메타 레퍼런스로 비달을 향한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배우들 뒤에서 비달은 앞서서 이야기를 전한다. 비가시적이고 동시에 무대 바깥의 물리적인 위치에서 연유하는 그의 위상은 언급되고 끊임없이 확인된다. 그의 존재는 이 이야기들의 내부이며 이 이야기들을 바깥으로 만든다. 프롬프터가 갖는 대사의 원본성에 대한 지시는 〈소프루〉의 배우들을 연기하고 있음으로 구성한다. 배우들은 재현의 경우를 제하고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