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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해숙, 《유토피아 삼경》, 굴절된 주체의 시각상REVIEW/Visual arts 2021. 12. 30. 11:02
《유토피아 삼경》의 사진들은 세계를 담는 거울, 곧 자신의 다면체의 공간―북두칠성의 성좌―으로 세계를 변형하며 2차원 평면의 사진으로 압축한다. 기존의 ‘파노라마 삼부작’은 현장에서 뒤엉키고 너저분하게 널린 파편적 사물들이 만든 풍경과 거기에 일부로 포화되는 작가의 퍼포먼스로 구성되었다면, 《유토피아 삼경》에서 작가는 ‘순전하게’ 거울로 용해되었다. 여러 각도로 연접한 거울은 사물을 각각의 모나드 안에 기울어진 채 수용하는데, 축소되거나 확대되는 크기의 차원, 바깥쪽으로 이탈하거나 안으로 접히는 이행의 차원, 표면 자체가 울거나 반전되게 이미지를 구성하는 왜곡의 차원은 모두 동시적으로 이뤄진다. 이 모나드들이 또한 동시적으로 신체를 포화/불포화시킨다. 이는 이전 작업 ‘파노라마 삼부작’과의 연장선상을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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丙소사이어티, 낭독극 〈물 불 흙 공기〉, 서사를 생성하기REVIEW/Theater 2021. 12. 30. 01:26
〈물 불 흙 공기〉는 메타-서사를 가지고 읽고 투사하고 수행하는 메타-연극이다. 그런 의미에서, 〈물 불 흙 공기〉가 낭독극으로 열린 이유보다는 낭독극이어야 하는 이유를 말하는 것이 더 타당할 듯하다. 낭독극은 보통 보면대에 대본을 놓고 읽는 방식으로 진행되며, 〈물 불 흙 공기〉 역시 그러하다. 낭독극에서 배우는 이 낭독을 처음 하는 것도 아닐 테고, 낭독극을 하기 위한 낭독을 한두 번 한 것이 아닐 것인데, 따라서 이는 이미 머릿속에 대부분 입력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페이지를 넘기기 위해, 나아가 말하는 부분과 페이지의 글자를 맞추기 위해 대본을 봐야 하는 입체적인 행위의 설정이 필요하다. 또는 낭독극을 하는 외양을 재현하기 위해 대본을 중간중간 보는 것일 수도 있다. 최소한의 무대 혹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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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가슴의 발레리나〉: 가슴은 어떻게, 무엇을 발화하는가REVIEW/Theater 2021. 12. 30. 01:09
〈큰 가슴의 발레리나〉는 베로니크 셀의 동명의 소설을 각색해 연극으로 만든 것이다. 베로니크 셀이 실제 고전 발레와 라반의 메소드를 모두 경험한 이라는 점에서, 발레에 대한 일반 사람의 판타지 차원의 상징적 의미 이상으로 메타-발레적 접근이 눈에 띈다. 가령 발레를 예술의 시대적 문법 아래 구분하는 것이 그러하다. 모던과 포스트 모던의 구분, 그리고 실제 주인공인 바르블린 블랭의 고전발레에서 저드슨 댄스 씨어터로 넘어가는 삶은 이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큰 가슴의 발레리나〉는 무대라는 환영과 현실의 격차를 무대 위 발레리나의 활공과 구체적인 서술의 차이로 구성하며, 극적인 대비 속에 전개한다. 발레리나의 움직임은 무용 그 자체의 실시간 전개보다는 그 무용이 전개되고 있음을 서술하는 장면의 차원에서 삽입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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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색이 아프레걸〉, 박남옥의 입체적 형상화REVIEW/Musical 2021. 12. 30. 00:16
영화감독 박남옥의 삶을 창극으로 녹여낸 〈명색이 아프레걸〉은 최초의 여성 감독이라는 수식어라는 과잉 기표를 지우고, 당대 신여성으로서 영화를 하는 것의 갈등을 영화에 대한 그의 태도와 이상과 교차시키며, 시대적인 주체의 한 관점을 개인으로 귀속시키는 대신, 그의 역경을 시대의 정동과 영화의 이념으로 알레고리화하는 것으로써 박남옥을 역사에 입체적으로 위치시킨다. 파도의 형상 아래 좌우로 흔들리는 사람들로 시작되는 무대의 장면은 이후 등장하는 박남옥이 밀선을 타고 바다에 빠져 죽을 뻔했던 경험의 무의식적 원형이면서, 광복 이후 문화적 격변기라는 흔들리며 정확히 좌표를 상정할 수 없는 시대의 정동을 상징한다. 〈명색이 아프레걸〉은 카메라를 고정해 장면들을 담는 영화, 그리고 땅을 딛고 서서 최대한 멀게 포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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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낙엽〉: 문학의 전술, 재현의 전략과 한계REVIEW/Theater 2021. 12. 26. 11:19
〈붉은 낙엽〉은 카렌의 딸 에이미의 실종 사건이 미궁으로 떨어진 일련의 시간이 과정 전반을 이룬다는 점에서는 일종의 스릴러적인 또는 추리를 동반하는 드라마 극의 외양을 띤다. 용의자로 몰린 지미의 아버지인 에릭(박완규 배우)은 〈붉은 낙엽〉의 서술자로서 내면의 심리가 드러나는 유일한 존재라는 점에서, 그는 이 극을 하나의 이야기로 갈음할 수 있는 저자의 위치를 갖는다. 아들 지미를 의심하는 그의 점진적인 심리 전개와 그것이 깨어지고 난 결말에 가까운 시점에서 만신창이가 된 그의 형태, 그리고 이 모든 걸 아우르는, 곧 가장 처음에 모든 비극을 ‘깨어져 나가는 균형’으로서의 알레고리로써 압축적으로 선취하는 그리고 그 연장선상에서 중간중간 삽입되는 그의 서술이라는 세 가지 존재 유형에서, 그의 인식론적 기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