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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명작옥수수밭, 〈메이드 인 세운상가〉: 현재의 그림자로서의 과거REVIEW/Theater 2022. 2. 6. 21:15
왜상을 은폐하는 이데올로기 효과 극단 명작옥수수밭의 〈메이드 인 세운상가〉(이하 〈세운상가〉)는 1986년 북한 수중 공격에 대한 위협에 대처한다는 명목으로 평화의 댐 모금 운동의 정부 선전이 한창이던 시기에서 출발한다. 거북선도 만들 수 있다는 풍문의 세운상가 주인들은 북한 공격으로부터 안전하게 피신할 수 있는 잠수함을 만드는 데 머리를 모은다. 국가라는 거대한 이데올로기―1. 국가가 있고 내가 있다. 2. 북한은 주적이다.―에 부속하는 소시민의 맹신은, 실제 500톤 규모의 잠수함을 만드는 데 이른다. 목선을 주조하고 이를 타고 월북하려는 ‘믿음’을 지닌 주인공을 다룬 그린피그의 〈목선〉(2019)은 〈메이드 인 세운상가〉보다 빨리 왔지만, 〈메이드 인 세운상가〉의 지속하는 미래를 선취하고 있다.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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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재, 〈검은 눈〉에 대하여: 표면과 접촉의 시각적 기술REVIEW/Visual arts 2022. 2. 6. 21:10
조경재 작가는 자투리, 부스러기 같은 주로 목적성을 상실한 이름 없는 사물들을 조합, 배열하고, 이를 사진으로 기록해 왔는데, 나아가 이를 다시 설치로 구성하고, 다시 사진을 이 공간에 배치하는 확장과 수렴의 유희를 수행하는 식으로 전시 공학의 특이한 경로를 구성해 왔다. 먼저 사진의 경우, 완전한 결착이 아닌 (아마도 애드호키즘적 작업 방식에 따른) 패치워크, 임시적인 사물들의 절합들, 곧 사물과 사물, 틈새와 빈 공간을 구성하는 임시적인 구조물이 지닌 입체적인 공간성이, 평면의 매체 안에서 압축되면서 그 안의 사물들은 이미지의 틀어짐과 착시로 나타나는 한편, 다중 레이어의 초점화되지 않은 자리들, 곧 비가시적인 초점들이 겹쳐져 있는, 어느 하나의 온전한 초점을 구성할 수 없는, 기이하고 정리되지 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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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효진 극작, 〈머핀과 치와와〉: ‘인간을 가로지르는 무엇’REVIEW/Theater 2022. 2. 6. 21:07
〈머핀과 치와와〉는 미래 문명의 단면을 ‘라이카’라는 인공지능의 통제 아래 작동하는 단일한 시스템―사각형의 가를 두른 검은 고무판을 하나같이 종종걸음으로 이동하는 배우들은 컨베이어벨트를 따라 이동하는 시스템의 부속으로서 자리한다.―으로 전제한다. 문학적 인간과 새로운 생명력을 가진 존재로의 변이는 이 시스템으로부터 삐져나온 인간적인 무엇, 문학적인 무엇을 보여주지만, 이 같은 존재들은 반동적이거나 체제 위협적인 존재가 아니다. 그들은 체제의 예외적 존재로 자리할 때 그 체제로부터 읽히지 않거나 증발하거나 죽는 존재에 그친다. 시스템에 대한 독해는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을뿐더러 작업의 초점을 벗어난다. 시스템은 일종의 기능적인 표면에 불과하다. 라이카는 강력한 통치 장치 역시 아닌데, 타자가 아니라 자아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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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령 안무, 〈떨림과 울림〉(PaAp LaB): 장소, 소리, 움직임의 공진REVIEW/Dance 2022. 2. 6. 21:02
정주령 안무가의 〈떨림과 울림〉은 동명의 책에서 모티브를 얻은 작업으로, 정주령 안무가와 정재우 무용수 두 사람이 세 개의 막을 구성한다. 첫 번째 막은 ‘떨림과 울림’에 대한 가장 정교한 움직임들로 구성된다. 업소용 스테인리스 테이블 위에서 움직임 대부분이 진행된다. 〈떨림과 울림〉의 첫 번째 막은 장소(사물) 특정적인 안무 작업이다. 정주령과 정재우 사이에는 저울이 자리하고, 둘은 발목에 방울을 달고 준비 태세를 마무리한다. 정주령이 저울 위에 머리를 올리고 이를 정재우가 돌려놓는 것으로 첫 움직임이 열린다. 방울 소리가 움직임에 따라 필연적인 것인 반면, 대부분의 소리는 신체에 내속적이지 않다. 움직임은 소리에 잔뜩 주의를 기울이며, 따라서 조심스럽다. 방울 소리, 덜컹거리는 스테인리스 소리 등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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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양희, 〈A Hedonist〉: ‘가속되는 춤의 자장’REVIEW/Dance 2022. 2. 5. 00:08
이양희 안무가의 〈A Hedonist〉는 음반 《Hail》의 트랙들에 맞춘 오롯한 춤의 정렬이다. “훵크와 트로피칼 하우스를 기본으로” 한 ‘모과(Mogwaa)’의 “특유의 하우스, 드럼 앤 베이스, 트랜스의 각 장르의 음악”은 공연 중 두 번의 쉼(‘순수한’ 막간)을 포함해 두 번의 변주 섞인 반복(?)으로 춤에 의해 변주된다. ‘향락주의자’라는 뜻의 “A Hedonist”라는 제목에 걸맞게 음악과 춤 이외의 것은 무대에 주어지지 않는다. 두 번의 휴식 시간에 작위적인 자리바꿈의 순환하는 배치가 관객의 시선 차이에 따른 무대 변환을 가져올 뿐이다. 양발을 오가는 두 박자 스텝의 기조 아래 팔의 움직임이 따라붙는 식으로, 춤은 살며시 발을 뻗는 동작으로부터 시작한다. 간소하고 밝은 하우스의 멜로디의 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