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지영, 〈부서진 마을로 가는 빈 상자들〉: 극장을 구성하는 바깥에 대한 알레고리들REVIEW/Theater 2022. 5. 22. 12:00
원지영의 〈부서진 마을로 가는 빈 상자들〉은 알레고리로 극장을 구축하려 한다. 김보경 배우는 처음에 플래시를 들고 바닥을 비추며 길을 낸다. 플래시 색에 따른 갈색을 띤 그의 맨발이 밟히는 바닥은 마치 모래사장 같은 느낌을 주는데, 이는 사실 뒤에 등장하는 “바다”라는 기호가 결부되며 분명해진다. 하지만 이를 바다로 직접 지칭하는 건 아닌데, 실재하는 대상의 물리적 속성을 판타지로 뒤덮는 대신 오히려 가상의 이미지를 경유해 현재의 이미지로 도달하는 프로세스가 그 안에서 작용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는 이미지화된다. 이러한 가상의 이미지는 ‘어떤’ 서사의 조각들이고 온전한 서사의 한 ‘조각’으로만 머문다. 온전한 서사는 구성될 수 없고, 다만 떠도는 기억의 잔상으로 맺힌다는 인상을 준다. 김보경은 처음 ..
-
송김경화, 〈2014년 생〉: 예외적 주체의 탄생REVIEW/Theater 2022. 5. 22. 11:55
제목인 “2014년생”인 백송시원과 이나리 배우가 출연한다. 공교롭게 2014년생이다. 백송시원은 본 작품의 연출을 맡은 송김경화의 딸이다. 이러한 배경은 세월호 참사가 연출에게는 탄생과 죽음의 전이 지대로서 위치 지어졌음을 어느 정도는 짐작하게 한다. 어른으로부터 독립적인, 어른과 같이 독립적인 존재로 인식되지 않는 자신의 존재를 집요하게 질문하는 배우 시원은 보호받아야 할 아이로 세월호 희생자를 위치시키는 ‘어른들’의 인식을 전복한다. 수동적이고 성숙하지 못하며, 따라서 의사 결정을 어른으로부터 위임받아야 하는 것으로 치부되는 어린이에 대한 주체적이고 자발적이며 자연스러운 어떤 질문을 듣는 것은 이나리 배우에 의해 매개된다. 우리는 듣는 위치에 처한다. 시원이 설명하는 ‘시민이 아닌 어린이’. 공중 ..
-
엘리펀트룸 〈세월호 학교〉: 타자에 대한 어떤 교육REVIEW/Theater 2022. 5. 22. 11:45
엘리펀트룸의 〈세월호 학교〉는 세월호 참사를 원점에서 복기한다. 이는 세월호 참사 이후 혜화동1번지가 꾸준히 기획해 온 세월호 시리즈의 하나로서, 메타적으로는 그 기획 자체의 의미를 재확인하는 차원으로도 볼 수 있다. 공연은 진상 규명(이 되지 않았음)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국가의 의미를 검토하고, 새롭게 국가의 모습을 재요청하는 민주주의 시민의 몫에 관객의 자리를 대입하고 있다. 따라서 어린이를 상정한 교육의 형식은 관객의 계몽을 구성하기보다는 계몽된 관객의 시점에서 교육이라는 형식 자체를 검토하게 하는데, 이러한 방식이 복기라는 형식에 기대고 있는 것이다. 곧 〈세월호 학교〉는 교육의 내용 자체를 전달하기보다는 ‘교육은 왜 필요한가.’ ‘교육은 무엇을 향할 것인가.’에 대한 대답을 하기 위해 존재..
-
〈네이처 오브 포겟팅〉: 표현으로서의 재현REVIEW/Theater 2022. 5. 22. 11:36
음악의 전개와 움직임의 긴밀한 협응으로 진행되는 〈네이처 오브 포겟팅〉은 전체적으로 역동적인 음악이 공간을 장악하며 이미지적인 장면들을 만드는 것으로 점철된다. 이러한 충만한 무대로의 입력은 최소한의 대사를 ‘나지막한’ 또는 읊조리는 듯한 목소리로 치환한다. 피지컬 씨어터라는 장르로 명명되는 작업으로, 배우들은 끊임없이 움직이며 음악의 거센 파고에 몸을 싣는다―피아노, 바이올린, 드럼, 퍼커션, 루프 스테이션 등의 2인조 밴드―김치영, 조한샘―가 악기를 다룬다. 참고로 영국 프로덕션 ‘시어터 리(Theatre Re)’의 기욤 피지 연출과 알렉스 저드 작곡가 등이 만든 오리지널 공연이 2019년 외국 배우들의 출연으로 같은 장소인 우란문화재단 우란2경에서 오른 바 있으며, 이번에는 한국 프로덕션의 협업으로..
-
쿵짝 프로젝트 〈툭〉: 판타지는 어떻게 현실에 개입하는가REVIEW/Theater 2022. 5. 10. 04:27
연극실험실 혜화동1번지는 꾸준히 ‘세월호’를 주제로 매년 작업을 선보이고 있다. 아마 이는 이를 어떤 서사로 연장할 수 있을 것인가의 차원에서 소재 고갈 같은 극작술의 시련, 그리고 지속하는 것이 옅어지고 무력화되는 가운데 작업 자체가 더 이상 가능한지에 대한 자기 윤리에 대한 의구심에 대항해야 함을 의미할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이를 포기할 수 없는 곧 지속해야만 하는 제도적 차원에서의 상징적 위치 역시 작용할 것이다. ‘세월호는 직접 드러나서는 안 된다.’ 또한 ‘세월호에 대한 알레고리가 단순히 죽음과 슬픔으로 치환되어서는 안 된다.’ 여기서 이 같은 두 개의 원칙은 아마 세월호를 신중하게 다루는 기본적인 전제가 될 것이다. 그러니까 ‘세월호’와 ‘나’, 그리고 ‘사회’의 어떤 긴장 어린 관계항 속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