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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애순 안무(국립현대무용단 제작), 〈몸쓰다〉: 부재하는 몸‘들’의 생채기적 몽타주, 그리고 박유라라는 전사(前史)REVIEW/Dance 2022. 4. 5. 23:39
터널같이 펼쳐진 넓은 공간에는 한 존재가 뒤돈 채 이동한다. 그의 움직임은 유려하다가도 결정적으로 엉덩이를 긁는 제스처로 옮겨 간다. 하나의 정동으로 기꺼이 수렴되지 않으며 하나의 이미지에서 분화되는 종래 균열을 일으키는 움직임의 한 초상은, ‘몸을 쓰는’ 것을 다양하게 기술하는 것이 안무의 초점임을 역설하는 듯하다. 여기에 한두 무용수가 무대에 진입할 때 등장과 함께 이전의 무용수와 동기화가 이뤄지며 무대는 쌓여 나간다. 여기서 전략은 한 존재의 이중적 분화를 각 존재의 병치를 통해 각 존재를 다초점으로 ‘분쇄’하는 것으로 옮겨 간다. 안애순 안무가의 〈몸쓰다〉는 각 무용수 고유의 몸의 무늬와 흔적을 다중 레이어의 사운드 평면 속에 배치하는, 비교적 간략한 전술을 펼친다. 가장 큰 구조적인 분기는 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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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피그, 〈나무는 신발가게를 찾아가지 않는다〉: 문명 이후에 대한 어떤 태도REVIEW/Theater 2022. 4. 5. 22:55
〈나무는 신발가게를 찾아가지 않는다〉는 윤영선의 7쪽짜리 초고로 된 동명의 원작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2012년 윤영선 연극제에서 초연된 작업이다. 당시 공동 창작 과정과 전성현 작가의 참여로 단편들이 더해지며, 원작이 새롭게 재구성, 연장되었고, 이번 공연은 현재의 시점에서 일부 갱신되었다. 2012년 작이지만, 현재 시점에 조금 더 부합하며 동시에 전위적이다. 이 단편들은 물리적으로 하나의 서사로 연결되지 않음을 의미하지만, 총 4개의 에피소드 각각은 “신발”이라는 모티브를 반복하며, 마지막 ‘나무는 신발가게를 찾아가지 않는다’ 편에서 원숭이탈을 쓴 배우가 탈을 벗고 대사를 하면서 원전의 시점으로 돌아감―초고 일부와 초고가 쓰인 시점을 명시한다!―으로써 각 에피소드의 연관성은 언어적으로 정립되기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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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돌파구, 〈XXL레오타드 안나수이 손거울〉: 활극과 정치적 주체의 변경 사이에서REVIEW/Theater 2022. 3. 24. 00:43
“XXL레오타드 안나수이 손거울”이란 제목은 세 명의 등장인물들이 소유한 각각의 주요한 오브제다. 즉물적이고 감각적인 사물에 대한 지시처럼, 작품은 현실에 기반을 두며, 역할들은 저마다의 개성을 갖고 동시대와 공명할 것을 요청한다. 이러한 역할이 갖는 보편적 특정성은 시대적 생산양식으로서의 주체들로서 배우들이 어떤 역할을 맡는지에 대한 소개와 함께 그 역할을 입는 것임을 소개하며 시작하는 출발 지점에서부터 드러난다. 이는 이 연극의 유일한 메타-연극의 연출 지점이라는 데서 특기할 만한데, 통상 전제된 희곡에서 연극으로의 번역을 지시함으로써 이를 한 번 더 꼰 또는 내파하는 시점을 제시한다. 곧 연극을 희곡으로 되돌리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인데, 오로지 수행적으로만 이것들이 앞으로 놓일 수 있음을 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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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란 구성·연출,〈이것은 어쩌면 실패담, 원래 제목은 인투디언노운(미지의 세계로, 엘사 아님)〉: ‘대화를 위한 재현’REVIEW/Theater 2022. 3. 23. 23:41
박지영 배우는 수어로만, 이원준 배우는 수어에 대사를 섞지만, 음성 언어의 비중이 크다. 박지연은 핸드스피크 소속 배우이며, 이원준은 작년까지 국립극단의 단원이었던 연극 배우이다. 이러한 정보는 공연 도중에 나온다. 〈이것은 어쩌면 실패담, 원래 제목은 인투디언노운(미지의 세계로, 엘사 아님)〉(이하 〈실패담〉)은 처음부터 수어를 하는 박지영을 중앙에 두며―그 바깥의 음성 언어로 출발함에도 그의 자리는 유지된다.―, 〈실패담〉은 박지영의 수어의 공간에 음성 언어를 동시적으로 작동시키지 않고 그의 온전한 무대로 위치시킨다. 부가적으로 음성 언어가 따라붙지만, 이는 앞서 말한 것처럼 주변의 위치에서만 작동한다. 이는 어떤 시차를 통한 번역, 더듬거리며 그 말을 따라가는 행위로서 성립한다. 언제나 음성 언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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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연 작, 동이향 연출, 〈밤의 사막 너머〉의 시공간: 참조 체계의 문학적 글쓰기의 공간REVIEW/Theater 2022. 3. 23. 21:51
핍진한 현재 〈밤의 사막 너머〉는 몇 개의 플롯들을 반복하며 강화한다. 주인공은 현실과 이격된 터전 없는 세계를 부유하며, 끝이 없는 길을 걷고 또 걷는다는 것. 세계의 종착지는 ‘지구는 둥그니까’의 논리로 지정되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걷기는 끝이 없는 것이며, 단지 그 끝이 (있다면) 죽음뿐임을 지시하기 위한 알레고리다. 동시에 이 걷기의 땅은 현실의 어떤 시공간도 제대로 설명하거나 재현하지 않는다. 이 땅은 엄밀히 빈 무대도 아니며, 현실 바깥에 어떤 틈으로 현실이 뒤집힐 수 있음을 예시하는 정도로 현실을 벗어난다. ‘땅’은 비현실을 이야기하기 위한 게 아니라 현실에서 이격되는 신체, 가령 “우울”을 겪고 있는 존재의 여백 같은 것이거나 현실이 어떤 참조 체제로만 들러붙는 글쓰기의 상상적 공간같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