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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젤스 인 아메리카-파트 원: 밀레니엄이 다가온다〉: ‘과도기의 시대 정신’REVIEW/Theater 2021. 12. 26. 10:44
3막으로 구성되는 〈엔젤스 인 아메리카-파트 원: 밀레니엄이 다가온다〉(이하 〈엔젤스〉)는 밀레니엄을 앞둔 미국의 혼란스러운 배경을 동성애와 에이즈, 인종 등의 개념어가 떠다니는 가운데, 인물들의 심리 변화와 관계에 초점을 맞추어 다룬다. 180도로 회전하며 변신하는 무대 위에 숨 막히게 쏟아내는 배우들의 대사들로 휴식 시간을 포함한 4시간의 러닝타임이 그다지 길지 않게 느껴지는 이유다. 다른 말로는 1985년 미국 당시의 컨텍스트를 파악하거나 이해하기 쉽지 않다―사실상 그것을 포기하게 만드는데, 연출의 방향은 그것이 그다지 중요한 무엇으로 다가오지 않게 만든다(이는 번역극의 어떤 과제이기도 하다). 손바닥 뒤집히듯 교체되는 양면의 무대는 어느 한 인물도 주도권을 갖거나 그 바깥을 조망할 수 없이,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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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우스 피스〉, 메타 연극의 하나의 재현 방식REVIEW/Theater 2021. 12. 24. 10:56
〈마우스 피스〉는 글과 현재가 오가며 자연스럽게 시점이 전환되는, 서술과 연기가 중층되는 구조로 진행된다. 이는 리비가 데클란과의 만남과 그에 대한 묘사를 기초로 희곡을 완성해 나가는 극작가이기 때문인데, 이러한 글의 완결이 갖는 구조적 힘과 그것을 벗어나는 생명력을 갖춘 존재의 예외성은 극 후반에 이르러 극단적인 대립의 광경을 이루게 된다. 작가를 잠정적으로 그만둔 리비와 화가를 지망하는 데클란의 언덕의 만남을 시작으로, 데클란의 화가로서 길을 열어주고자 하는 것과 동시에 자신의 글쓰기 역시 다시 시작하는 리비에 의해 데클란은 글의 주인공으로 들어오게 된다. 현실은 글을 위한 글감이 되는 셈인데, 결국 희곡이 완성되고 극장에 오르게 된다. 데클란의 입장에서 보면 리비는 자신의 삶을 착취한 셈이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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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당모의, 〈터키행진곡〉: 존재들의 아우성REVIEW/Theater 2021. 12. 24. 10:56
바다와 나비 김기림 아무도 그에게 수심(水深)을 일러준 일이 없기에 흰나비는 도무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청(靑)무우 밭인가 해서 내려갔다가는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절어서 공주처럼 지쳐서 돌아온다. 삼월(三月)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아서 서글픈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승달이 시리다. -『바다와 나비』, 신문화연구소, 1946. 존재의 이행 문자-발화와 이미지-움직임이 어떤 하나의 세계에서 정합될 수 있다면, 아마도 〈터키행진곡〉은 그와 같이 연극과 무용이, 또는 무대와 배우/무용수가 하나의 평면으로 흘러가는 또는 하나의 평면에서 출현한다는 점에서, 공연의 본원적 차원을 보여준다. 역할과 역할 간의 분리를 구획할 수 없다는 점에서 ‘존재들 간의 교환’ 또는 하나의 역할로 고정할 수 없다는 점에서 ‘존재의 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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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푸름, 〈생산적 생산〉, ‘사라지는 매개물’REVIEW/Dance 2021. 12. 23. 14:00
〈생산적 생산〉은 크게 세 장으로 구분된다. 첫 번째로 사물의 움직임과 그에 조응하는 신체, 두 번째로 영상으로 갈음되는 신체와 두 단어 또는 구문의 절합과 신체, 세 번째로 사물의 동작을 잔상으로 처리하며 미시적인 자장만으로 움직이기로 구분할 수 있다(편의상 이를 각각 1-1, 1-2, 1-3으로 구분하려고 한다). 〈생산적 생산〉은 사물로부터 이양된 움직임, 사물을 재현하는 게 아닌 사물로 분류될 수 있는 어떤 미세한 움직임들로써 일반적인 안무가 구성하는 춤의 클리셰로부터 탈피하고자 한다. 무엇을 표현할 것이냐, 그로부터 어떻게 움직이느냐가가 아니라 어떻게 무엇을 표현하지 않을 것이냐, 그로부터 어떻게 움직일 수 있느냐로 초점이 옮겨온다. 곧 재현을 거스르는 움직임의 형상, 수용은 어떻게 가능할 것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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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마을〉, 급진적 우화REVIEW/Theater 2021. 12. 22. 18:21
〈어느 마을〉은 장애인을 위한 동시적인 언어적 번역의 전개에서 나아가 이를 서사의 내용으로 함입한다. 원형으로 배우와 관객이 함께 둘러앉은, 현위치는 “어느 마을”이다. 그 바깥의 외부인이 등장하며 이 마을에 질문을 던지기 시작하는데, 그 다른 마을은 수어를 쓰는 마을이다. 수어를 쓰는 수의사(홍선우 배우)는 이후 등장하는 그 마을의 심리치료사(박준빈 배우)가 수어만 쓰는 것에 반해 말도 같이 하는데, 이런 이중 언어의 전략은 이 연극이 좇는 어떤 이상적 가치의 형상을 띤다. 따라서 〈어느 마을〉은 연극의 언어적 보완 장치로서 스크린의 자막과 배우 옆에 붙는 수어 통역사가 은폐되기보다 적극적으로 가시화되듯 수의사의 모습은 그런 연극의 주의(主義)를 메타적으로 지시한다. 곧 연극의 전략은 연극의 이념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