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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리와 메테인〉(작/연출: 진나래 ), 어떤 번역의 지층들REVIEW/Interdisciplinary Art 2022. 1. 14. 22:30
“법정극”을 표방하는 〈사리와 메테인〉은 일종의 ‘번역극’이라 할 수 있다. 이는 크게 두 층위에서 그러한데, 우선 법정에서의 진행이 주요하게 자리하는 공연에서 예컨대 첫 번째 장인 “돼지농장 VS 바이러스”에서 중간종과 농장주인, 그리고 암퇘지의 변호를 맡은 변호사의 대리/위임의 역량을 통해, 인간의 언어를 구사하지 않는 비인간 종의 언어가 들릴 수 있다는 가정 아래 일종의 모의 법정이 구성하는, 타자의 세계를 인간의 세계로 옮기는, 정치의 언어가 자리하며, 두 번째로 이 공연의 매체적이고 물리적인 지형, 곧 수화와 자막, 음성해설, 움직임이 동시적으로 출현하는 공연이 좇는 가치로서, 또 다른 비가시적인 타자의 언어로의 전개, 곧 공연의 직접적인 내용이 산출하는 타자들이 아닌 또 다른 은폐된 공동체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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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차의 범위: 픽션들〉: 연극의 발생REVIEW/Theater 2022. 1. 6. 11:38
무대 중앙에는 하나의 빈 의자가 놓인다. 〈오차의 범위: 픽션들〉은 두 명의 배우와 세 개의 의자를 가지고 하는 연극이다. 비정형적으로 놓인 의자들 사이에서 빈 중심으로 한참 놓여 있던 의자에 이지혜 배우가 앉고 이를 마주 보고 앉은 최순진 배우의 거리가 가까워지며 주변(부)의 이야기는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명확하게 만들면서 비로소 초점화된다. 〈오차의 범위: 픽션들〉은 연기-무대-이야기의 관계에 대한 흥미로운 실험이다. 최초의 화자인 김연재와 이휘웅에게 들은 이야기는, 명시되지 않는 누군가에게 들은 것으로 옮겨진다. 이야기의 개연성은 그 이야기의 당사자를 떠나 그 이야기를 옮기는 사람의 번역과 변질, 전용과 같은 과정에서 최종적으로 남은, 유의미한, 그리고 납득 가능한 의미가 구성될 수 있느냐의 부분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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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정 〈3circles〉, 이옥경×이윤정 〈즉흥/discrete circulation〉: 가상에서 장르 간의 탄성으로REVIEW/Performance 2022. 1. 6. 11:16
〈3circles〉은 흡사 엘리베이터를 타고 이동하는 사람의 움직임을 표현하는데, 현실을 가정한 움직임은 아래로의 중력과 위로 솟구치는 힘이 조율되고 있음을 표현하는 것으로써 두 가지 힘의 낙차를 표현한다. 이러한 움직임은 마임의 그것과 유사한데, 점점 엘리베이터라는 네모난 큐브의 프레임은 우주와 같은 미지의 차원으로 연장되고 그 안에서 입의 각도를 틀어 벌린 채 고개를 숙여 침을 흘리며 탈진 상태에 가까워진다. 이러한 움직임과 일련의 서사적 흐름은 다분히 연극적인 것으로도 보인다. 처음 무언가를 벅벅 찢는 듯한 건물 바깥의 소음은 엘리베이터의 파열음을 연상시키는 것으로 보이고, 한동안 지속되다 안쪽의 스피커의 앰비어트 사운드가 겹쳐지며 점점 줄어들다 이내 사라지는데, 후반의 사운드는 극적인 분위기를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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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아트신 초이스Column 2022. 1. 1. 22:26
아트신은 “2021 아트신 초이스”를 발표합니다. 범주는 2021년의 예술 작업에서, 장르/분야는 크게 연극, 무용, 퍼포먼스, 시각예술로 나눠, 각각의 장르/분야에서 가장 좋았던 것을 하나씩 뽑았습니다. 각각 48편, 31편, 65개, 72개를 보았습니다. 퍼포먼스의 경우, 다른 장르와의 경계가 모호한 경우들도 포함돼 있으며, 각 범주를 초과하는 좋은 작업 역시 꽤 많아서, 이러한 구분 짓기가 어색하거나 필요 없는 경우 역시 존재합니다. 이러한 모든 범주 안에 물론 우열이 있지는 않습니다. 기타, “올해의 예술”에서 “플랫폼”, “작업”, “지역 예술”에 해당하는 예술 주체를 중심으로 뽑아 봤습니다. 이 모든 것이 미진한 활동과 부족한 관점을 지닌 편집장의 지극히 주관적인 판단에 의하니, 많은 양해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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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나예,〈파편들의 ㅈㅣㅂ〉: 유희, 은신술, 그리고 기이한 ‘공’터REVIEW/Performance 2022. 1. 1. 20:31
0 〈파편들의 ㅈㅣㅂ〉은 차 스튜디오라는 1, 2층이 분절/절합된 공간의 특성을 1층의 움직임과 2층의 사운드와 발화의 동시적이고 시차적인 전개 방식으로 진행된다. 사운드가 파편적이라면, 움직임은 지속적이다. 차 스튜디오는 1층과 2층이 하나의 계단을 통해 연결되어 있고, 문가 쪽 2층의 터진 공간으로 1층이 내려다보이는 특이한 순환 구조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이는 온전한 ‘통합’을 이룰 수는 없어서 2층의 사운드의 근원을 따라가기 위해 계단을 오르고 다시 1층의 움직임의 지속을 보기 위해 계단을 내려오는 수행을 끊임없이 관객 스스로 지속하게 되는 풍경이 연출된다. 사실 이러한 교환이 일어나는 건 1층과 2층의 분절된 공간을 통합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1층의 움직임이 보여주기 위한 움직임을 의도적으로 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