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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록×손현선, 〈없는 시간〉: 불순물, 오차, 수행, 유행하는 것 등의 이름REVIEW/Interdisciplinary Art 2024. 10. 18. 10:16
김신록×손현선의 〈없는 시간〉이 추구하는 매체는 곧 연극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손현선의 작품을 하나의 과제로 받아들이는 김신록이 있고, 그 결과 존재와의 유기적인 결속을 위한 배경, 오브제 정도로 현재에 포함되는 것이다. 이는 무대 위에 자신을 ‘드리운’ 손현선의 작품들을 어떻게 다루느냐, 희곡의 세계 안에 포함시키느냐의 차원에서 그것이 순수 배경이 되거나 온전한 출발점이 되지 않고, 다소 이질적인 양상으로 드러난다는 점에서, 협업의 불가능성이라기보다 협업의 어려움을 다분히 드러낸다. 처음 〈투명-몸〉(투명 필름 위에 젤 미디엄, 2024, 가변 크기.)에 관한 텍스트는 일종의 추상적 시에 가까운데, 이는 다시 작품의 재귀적 성격으로 어느 정도 수렴되는 걸 의도하는 듯 보인다. 〈투명-몸〉 앞에서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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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윤화, 《오팔 Opal》: 조각-오브제-스크린-신체의 응결점으로서 이미지REVIEW/Dance 2024. 10. 18. 10:12
양윤화 작가의 《오팔 Opal》은 퍼포먼스와 전시가 결합된 형태이며, 더 정확히는 퍼포먼스를 통해 전시가 재형성되고 나아가 퍼포먼스를 통해서만 전시가 임시적으로 작동하는 퍼포먼스형 전시이다. 다섯 개의 살아 있는 신체의 지지체를 기초로 한 유동적인 다섯 개의 조각과 조명을 근간으로 한 무대(로서 오브제)의 캡션이 “러닝타임”이라는 용어로써 뒷받침되고 있음은 이를 나타낸다. 여기서 임시성의 가시화는 관람객의 신체를 경유하면서 일부 초과하는데, 50분으로 측정된 퍼포먼스에 비해 1시간으로 ‘책정’된 후자의 그 초과분은 일정 시간 동안 더 작동하고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수여한다. 신체의 한계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후자는, 아마도 더 많은, 시간과 구애되지 않은 채 고정된 설치로 작동할 수 있겠지만, 관람객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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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영 안무, 〈비수기〉: 춤이 시작되는 장소REVIEW/Dance 2024. 10. 17. 10:06
〈비수기〉는 현실 공간의 전유와 문화 양식의 참조를 통해 완성된다. 이는 무대가 실존적 주체의 무정형적 터전이 되는 대부분의 공연과 다르게, 무대가 현실의 변형이거나 변환이라는 차원에서 출발함을 의미하는 한편, 현실 공간이 극장을 다른 세계의 입구로 지정하고 있음을 또한 의미한다. 그 변환은 이 공간에서라기보다 이 공간 내에서 이뤄짐으로써 가능해진다. 두 남녀가 앞쪽의 테이블을 항하여 바닥이 파인 중앙의 자리에 앉고 정면의 스크린을 응시하는 첫 번째 장은, 병풍과 같은 무대가 반쯤 옆으로 펼쳐지는 데 이어 마지막으로 비닐막이 걷히고 완전히 확장된 세트 아래서 종결된다. 펼쳐지는 무대에서 시종일관 무미건조한 표정―특히, 처음 일관되게 스크린을 향한 두 남녀의 심드렁한 눈빛과 몸짓 아래 진행되는 일상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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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아트신 초이스Column 2024. 8. 28. 01:26
2023 아트신 초이스 2023 올해의 연극: 〈다페르튜토 쿼드〉, 〈너의 왼손이 나의 왼손과 그의 왼손을 잡을 때〉, 〈.기다려〉 2023 올해의 무용: 〈갈라〉, 〈21°11’〉, 〈사이〉 2023 올해의 전시: 《슬픈 나의 젊은 날》, 《물의 왕: 동학과 화엄의 두물머리》, 《이동성 없는 거주, 거주 없는 이동성: 옵드라데크》 2023 올해의 퍼포먼스: 〈강; the river〉, 〈The Skills of Dust〉, 〈극장흉내〉 2023 올해의 플랫폼: 《옵/신 페스티벌》, 《서울서울변방연극제》 2023 올해의 연극으로, 적극이 콘셉트, 연출, 무대미술을 맡은 〈다페르튜토 쿼드〉, 정진새 작/연출의 〈너의 왼손이 나의 왼손과 그의 왼손을 잡을 때〉, 구자혜 작/연출의 〈기다려〉를 꼽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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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의 경계를 뚫는 변성 공간의 체험 – 김도희, 《빛선소리》REVIEW/Visual arts 2024. 8. 6. 12:28
도병훈(작가·비평) Ⅰ. 현대미술은 고정 관념과 기존의 의미망을 깨트리며, 명사적 ‘의미’가 아닌 동사형 ‘사건’으로 확장되어왔다. 이러한 국면에서는 ‘X란 무엇인가’ 대신 ‘무엇을 X라고 하는가?’라는 질문, 또는 자문이 요구된다. 따라서 ‘예술이란 무엇인가’는 ‘무엇을 예술이라고 하는가?’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폴 세잔(Paul Cézanne)의 자문은 “이것이 과연 내가 보고 있는 것인가?”였다. 그는 치밀한 관찰과 함께 색채의 차이와 한 번의 터치가 화면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점에 고심하며 화면 부분마다 긴 시간을 소요해 천천히 작업했다. 세잔의 후기 원작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 이러한 머뭇거림이 생생하다. 세잔의 이러한 태도와 유례없는 회화의 특성은 ‘멜랑콜리아(melanchol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