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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광주비엔날레: 소리라는 형식REVIEW/Visual arts 2026. 3. 7. 14:05
2024 광주비엔날레는 집요하게 소리를 측정, 전시한다. 매체의 확장성과 다양성 혹은 풍부함의 차원에서, 그리고 비가시화된 것에 소리가 자리함을 새삼스럽게 상기시키는 차원에서 그러하다. 뜬금없지만 여기에 주제에서의 ‘판소리’는 전시와 (어떻게) 연결되(야 하)는가. 그것은 윤리적 차원에서 진작될 수 있는 부분이며, 어떠한 형식적 차원의 한계를 설정할 수 있는 것인가. 이러한 물음은 미학적 차원과 윤리적 심급의 관계성을 상정하며, 그것을 다루는 주체의 ‘자격’을 전제한다. 가령, 판소리라는 문화적 원형을 고스란히 투영시키지 않는다는 것이 오리엔탈리즘 혹은 서구 중심적인 전유의 그릇된 태도로 치환할 수 있을까. 판소리를 우리가 용인할 수 있는 원형으로서 제시해야 한다는 건 판소리라는 대상을 기존의 재현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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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지, 《듣기를 위한 가이드 : Ear duct, us》: 듣기의 조건을 가설하기REVIEW/Music 2026. 3. 7. 13:50
《듣기를 위한 가이드 : Ear duct, us》(이하 《듣기를 위한 가이드》)는 동명의 『듣기를 위한 가이드』라는 사전에 제공된 가이드북과 이를 참조한 김예지의 가이드로부터 시작된다. 관객은 별도로 기획된 웹사이트에서의 소리 도면을 통해 사전에 선택하게 되는데, 이 16개의 자리는 미세한 소리 풍경의 차이를 반영한다. 그리고 이는 김예지가 관객이 눈을 감은 상태에서 공간에 산포한 소리 중에 자신을 가장 가깝게 향하고 있는 소리를 따라 몸의 방향을 전환해 볼 것을 요청할 때 가장 명확하게 체현된다. 눈을 떴을 때 네 명의 연주자, 비올라 다모레의 Olivier Marin, 저음제금의 동이, 해금의 김예지, 가야금의 조선아가 자리하는데, 이는 공간 전체로 퍼져 있고, 기다란 삼각형의 공간은 꼭짓점에서 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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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혜경, 〈공룡과 공룡동생〉: ‘과’라는 사이의 기호학REVIEW/Theater 2026. 3. 3. 20:35
백혜경의 〈공룡과 공룡동생〉은 언니 ‘공룡’과 동생 ‘재영’ 간의 어릴 적 기억과 경험을 환상적으로 횡단하며 현재를 극복해 나가는 두 자매의 삶을 그린다. 기억은 구체적 사건으로 나타나는 대신에, 그것을 통과해야 하는 문지방성(liminiality)인 쓰레기 섬으로 환유되는데, 그것은 온갖 잡동사니가 육박하며 푹푹 빠지는 구렁텅이가 되어 발목을 붙잡는, 가시화되지 않는 기억의 누층―곧 기억은 복잡다단한 무의식에 싸여 있고 또한 그것에 묶여 있다.―을 환각적 세계, 의사-꿈의 세계로 연장해 낸 것과 같다. 이는 누워서 베개로 얼굴을 감싸면서 수중으로 내려가는 프리폴을 체현하는 의식의 입문 단계가 지닌 환유적 차원이 일정 정도 연장된 바이기도 하다. 공룡과 재영 사이에는 ‘과’가 있는데, 경지은, 이 셋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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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현 작/연출, 〈흙사람〉: 한일 관계에 대한 알레고리로서 등정REVIEW/Theater 2026. 3. 3. 20:29
〈흙사람〉은 태봉등이라는 가상의 산이 한국과 일본 사이에 갑자기 솟아난다면이라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이러한 가정이 한일 관계의 틈을 육박하는 산의 장막으로 형상화하되 그 실제적 원인으로 기후 변화라는 상대적으로 더 체감되는 이슈를 경유한다고 보인다. 곧, 〈흙사람〉에는 한국이라는 역사적, 지정학적, 문화사회적 메타포로서 한일 관계와 심각한 기후 위기의 전세계적 상황이라는 두 가지 문제가 혼재되고 절합되어 있는데, 그렇다면, 그 둘 중에 어떤 명제가 주도적인지 또는 다른 하나의 명제가 기능적인 차원으로 적용되는지를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표면적으로 〈흙사람〉은 개인과 집단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듯 보인다는 점에서, 이러한 가정들은 무력화되는 듯 보인다. 곧 하나의 맥거핀이거나 또 다른 문제를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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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근영, 《활활》에 대한 주석: 하나의 수많은 얼굴들REVIEW/Visual arts 2026. 3. 3. 20:26
홍근영 작가의 《활활》은 얼굴을 전면화하는 일련의 도자 군집을 구성한다. 이 군집이 전시의 유일한 전략이며, 이는 전체적인 공간에의 산포와 그룹화의 경계 지대로의 구분으로 나뉜다. 이를 통해 군집은 복잡계의 기호학적 생태라는 의미를 구성하는 한편, 수많은 작업의 양산이라는 작업자의 정체성을 노정한다. 이로써 《활활》은 작가의 가상적 세계의 의식과 작가로서의 의식을 따로 또 같이 엿볼 수 있게 하며, 그 대신 전시의 큐레이팅의 변별적 의식을 유예한다. 작품들은 그 양적 측면에서나 공간의 점유 정도에서나 그리고 그 얼굴이라는 것에 대한 주목을 통해서나 ‘활활’ 타오르고 있으며, 이는 작품을 작가로 소급하는, 작가를 작품으로 환원하는 그런 전시라 할 수 있겠다, 곧 과잉의 물질적 토대가 그 자체의 미학을 결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