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e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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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우스 피스〉, 메타 연극의 하나의 재현 방식REVIEW/Theater 2021. 12. 24. 10:56
〈마우스 피스〉는 글과 현재가 오가며 자연스럽게 시점이 전환되는, 서술과 연기가 중층되는 구조로 진행된다. 이는 리비가 데클란과의 만남과 그에 대한 묘사를 기초로 희곡을 완성해 나가는 극작가이기 때문인데, 이러한 글의 완결이 갖는 구조적 힘과 그것을 벗어나는 생명력을 갖춘 존재의 예외성은 극 후반에 이르러 극단적인 대립의 광경을 이루게 된다. 작가를 잠정적으로 그만둔 리비와 화가를 지망하는 데클란의 언덕의 만남을 시작으로, 데클란의 화가로서 길을 열어주고자 하는 것과 동시에 자신의 글쓰기 역시 다시 시작하는 리비에 의해 데클란은 글의 주인공으로 들어오게 된다. 현실은 글을 위한 글감이 되는 셈인데, 결국 희곡이 완성되고 극장에 오르게 된다. 데클란의 입장에서 보면 리비는 자신의 삶을 착취한 셈이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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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당모의, 〈터키행진곡〉: 존재들의 아우성REVIEW/Theater 2021. 12. 24. 10:56
바다와 나비 김기림 아무도 그에게 수심(水深)을 일러준 일이 없기에 흰나비는 도무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청(靑)무우 밭인가 해서 내려갔다가는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절어서 공주처럼 지쳐서 돌아온다. 삼월(三月)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아서 서글픈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승달이 시리다. -『바다와 나비』, 신문화연구소, 1946. 존재의 이행 문자-발화와 이미지-움직임이 어떤 하나의 세계에서 정합될 수 있다면, 아마도 〈터키행진곡〉은 그와 같이 연극과 무용이, 또는 무대와 배우/무용수가 하나의 평면으로 흘러가는 또는 하나의 평면에서 출현한다는 점에서, 공연의 본원적 차원을 보여준다. 역할과 역할 간의 분리를 구획할 수 없다는 점에서 ‘존재들 간의 교환’ 또는 하나의 역할로 고정할 수 없다는 점에서 ‘존재의 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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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푸름, 〈생산적 생산〉, ‘사라지는 매개물’REVIEW/Dance 2021. 12. 23. 14:00
〈생산적 생산〉은 크게 세 장으로 구분된다. 첫 번째로 사물의 움직임과 그에 조응하는 신체, 두 번째로 영상으로 갈음되는 신체와 두 단어 또는 구문의 절합과 신체, 세 번째로 사물의 동작을 잔상으로 처리하며 미시적인 자장만으로 움직이기로 구분할 수 있다(편의상 이를 각각 1-1, 1-2, 1-3으로 구분하려고 한다). 〈생산적 생산〉은 사물로부터 이양된 움직임, 사물을 재현하는 게 아닌 사물로 분류될 수 있는 어떤 미세한 움직임들로써 일반적인 안무가 구성하는 춤의 클리셰로부터 탈피하고자 한다. 무엇을 표현할 것이냐, 그로부터 어떻게 움직이느냐가가 아니라 어떻게 무엇을 표현하지 않을 것이냐, 그로부터 어떻게 움직일 수 있느냐로 초점이 옮겨온다. 곧 재현을 거스르는 움직임의 형상, 수용은 어떻게 가능할 것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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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마을〉, 급진적 우화REVIEW/Theater 2021. 12. 22. 18:21
〈어느 마을〉은 장애인을 위한 동시적인 언어적 번역의 전개에서 나아가 이를 서사의 내용으로 함입한다. 원형으로 배우와 관객이 함께 둘러앉은, 현위치는 “어느 마을”이다. 그 바깥의 외부인이 등장하며 이 마을에 질문을 던지기 시작하는데, 그 다른 마을은 수어를 쓰는 마을이다. 수어를 쓰는 수의사(홍선우 배우)는 이후 등장하는 그 마을의 심리치료사(박준빈 배우)가 수어만 쓰는 것에 반해 말도 같이 하는데, 이런 이중 언어의 전략은 이 연극이 좇는 어떤 이상적 가치의 형상을 띤다. 따라서 〈어느 마을〉은 연극의 언어적 보완 장치로서 스크린의 자막과 배우 옆에 붙는 수어 통역사가 은폐되기보다 적극적으로 가시화되듯 수의사의 모습은 그런 연극의 주의(主義)를 메타적으로 지시한다. 곧 연극의 전략은 연극의 이념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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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기존의 인형들》: 인형의 바깥, 바깥의 인형REVIEW/Theater 2021. 12. 22. 01:49
《기존의 인형들》은 이지형 작가가 인형을 만들고, 본인은 연출을 포기한 채 연출을 바깥으로 아웃소싱하는 형태의 기획이다. ‘기존의’ 인형들은 그래서 주어진 인형의 어떤 가능성들을 이야기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공연이 오른 순서대로 김보라, 여신동, 이경성에게 이지형은 각각 “관절”, “감탄사”, “언어”라는 키워드를 던져주었다. 이러한 키워드들은 인형을 제시하는 것 외에 연출의 자율적 지위를 완전히 수여하는 규칙에 의해 작품의 주제와 직접 연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이러한 키워드들에서 각각 안무, 무대디자인, 연극을 하는 이들과의 희미한 연관 관계를 살펴볼 수 있다. 《기존의 인형들》은 사실 2018년 신촌극장에서 처음 열렸고, 인형을 주고 연출이 작품화하는 개념을 이번에도 고스란히 연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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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두, 〈구두점의 나라에서〉: 음악의 응전으로서, 그리고 솔기로서 움직임REVIEW/Dance 2021. 12. 15. 00:12
정영두 안무가의 〈구두점의 나라에서〉는 타격감 있는 피아노 연주를 움직임으로 고스란히 연장한다. 음악과 움직임의 상응이 무대를 구성한다. 음악의 밀도를 움직임의 밀도가 지탱한다. 이러한 밀도는 무대를 지탱하기보다 그 자체로 음악을 상대한다. 그리고 관객은 이 밀도들을 버텨내야 한다. 이러한 짜임에는 동명의 그림책 『구두점의 나라에서』(시: 크리스티안 모르겐슈테른, 그림: 라트나 라마나탄)의 서사적 짜임이 전제되고 있을 것이다. 반면 공연만으로는 그 서사를 포착하거나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사실상 책의 짜임은 무대의 짜임 너머를 위해 소환할 필요가 있어 보이지 않는다. 연주의 여닫음으로써 장이 구분되는데, 각 장의 길이는 짧고 휘몰아치듯 전개된다. 여기서 무용수들의 움직임은 그 자체를 쉼 없이 ‘곧이곧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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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한 플랫폼’으로서의 공간Column 2021. 12. 4. 02:03
부재하는 (기획의) 언어 김민관 어떤 여러 작가 혹은 아티스트를 모은 축제(페스티벌) 혹은 그룹전/단체전 형태를 생각해 보자. 하나의 어젠다 혹은 이념에 참여 작품들은 완전히 합치되거나 복속될 수 없다. 그것을 엮는 또는 꾀는 그러한 ‘시도’로서 이러한 이념은 작품 앞에 놓인다. 주로 물리적 장소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 마주치는 서문과는 다소 다른 이러한 말은 그 축제의 첫 번째 입구가 된다. 그 축제를 인지하는 정보가 된다. 그러한 종합의 언어는 왜 이 작품들이 하나의 이념으로 모였는지, 그리하여 이러한 이념과 결부되며 작품 해석의 또 다른 단초를 제시하는지를 이야기한다. 따라서 작품이라는 실재가 있다면, 거기에 어떤 관점을 첫 번째로 부여하는 것이 이 기획의 언어이다. 이 언어는 작품들을 동시대적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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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이즈미 메이로 〈사슬에 묶인 프로메테우스〉: 내용적 진실으로서 VRREVIEW/Visual arts 2021. 12. 2. 12:01
고이즈미 메이로의 〈사슬에 묶인 프로메테우스〉는 하나의 텍스트에 대응하는 두 번의 관람 방식을 취하는데, 한 번은 VR, 두 번째는 스크리닝이다. 이 매체의 전환이 실은 이 작품의 메시지라는 점에서, VR의 활용은 부차적인 것이면서 필연적인 것이 된다. 동시에 그 텍스트는 순전한 내용이 아니라 두 다른 세계와 연결하는 지표로 기능한다. AI 기계음의 목소리가 가상 공간에 대한 가장 분명한 부재를 지시하는 현존―가령 목소리는 인간의 현존을 어설프게 흉내 내는 기계의 목소리이다.―이라면, 스크리닝에서는 실제 루게릭병 환자의 말과 동기화된다. VR이 기술적 시현을 위해 신체를 ‘구속’한다면, VR 장치를 벗어버린 스크리닝의 시간은 이 지점이 예외적 존재가 발화하는 하나의 시간을 경험하고 있었음을 전한다. 곧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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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족출입금지》_〈닥쳐 자궁〉, 〈♡〉, 〈마지막 인형〉 리뷰REVIEW/Dance 2021. 12. 1. 01:15
안무가 시모지마 레이사의 〈닥쳐 자궁〉은 연극적 캐릭터성을 가진 세 퍼포머의 연기로부터 ‘흐릿한’ 현실적인 서사의 단초들을 제시한다. 휴전선 일부가 무대 중앙의 앞뒤로 자리하는 무대 배경으로부터 연장된 퍼포머의 움직임은 전쟁과 그 기억, 시련을 겪는 공동체의 형상 들을 직조한다―반면 그것은 어떤 정확한 시대 배경과 장소에 대한 정보로 수렴하지는 않는다. 말과 행위, 몸짓 등은 지독한 현실을 감내하는 실존의 양상에 어린 정동을 향한다. 가령 배효섭이 이경구를 뉘어 거꾸로 들고 시모지마 레이사의 허벅지를 밟고 휴전선 바깥으로 시선을 향할 때, 이는 타자를 짓밟는 방식일 뿐만 아니라 타자를 추어올리는 방식이기도 하다. 이 짧은 순간을 의도된 상징으로 볼 수 있기를 기대한 것일까. 그렇다면 이것이 어떻게 폭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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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미인, 〈내 일의 내일, 내일의 내 일〉: 예술가의 그늘을 비추다REVIEW/Theater 2021. 12. 1. 01:15
예술이 노동인가의 질문으로 시작한 〈내 일의 내일, 내일의 내 일〉은 인간의 유희에 대한 본능과 일상의 잉여 짓에 주목하며 예술의 범주를 일상으로 확장하려 한다. 곧 예술이 예술가 고유의 것이 아닌 인간 본연의 것임을 지시하는 것으로써 예술의 고립된 영역을 역설적으로 비판하며 예술가의 현실/법적 소외 또는 예술가의 예외상태에서 우리 모두 예술적 인간이라는 인식의 지점으로 도약한다. 여기서 보이지 않는 매개자로서 예술가들은 담론을 나르고 그것을 상호 간의 몸으로 분배하는 자리를 가져간다. 영화 〈모던타임즈〉를 인용하기도 했지만, 〈내 일의 내일, 내일의 내 일〉은 톱니바퀴처럼 얽혀 들어가며 역할 간의 바통터치로서 분배, 말의 나눔과 움직임의 원환을 구성하는 놀이를 규격화해 수행한다. 마치 노동을 하듯 이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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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병준, 〈유령극단 “심각한 밤을 보내리”〉: 결집과 누락이 공진하는 밤REVIEW/Performance 2021. 12. 1. 00:59
유령극단의 〈심각한 밤을 보내리〉는 단순하게는 남산골한옥마을을 산책하며 헤드폰상의 목소리들과 로봇들의 움직임과 마주치는 공연이다. 한옥 다섯 채의 각 장소에 따라 사운드가 다르게 재생된다. 이 말들은 어떤 내용의 구체성을 가지며 서사의 형태를 갖추기보다 밤에 대한 어떤 정동의 제스처이며, 관계를 위한 구애이자 밤에 대한 감응, 영원에 시간의 동기화에 대한 주문이다. 밤이 이 공연을 평등하게 둘러싸고 있듯 헤드폰이 귀에 눌러앉고 목소리가 가리키는 시간과 화자와 최종적으로 수신자의 불분명성, 그리고 달의 메타포를 갖는 빛나는 구체를 손에 포개고 사람들과 비좁은 길목에서 스쳐 지나가는 모든 압력은 비가시적 환경에의 매체의 협응이라는 제안이 전제된다. 공기처럼 귀를 감싸고 있는 건 사운드이다. 반면 이것이 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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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포먼스는 무엇의 이름인가Column 2021. 11. 21. 15:23
김민관 *주로 최근 들어 미술에서 퍼포먼스라 불리는 것들 중 어떤 특정한 형상을 추상화하며 분석하고, 이를 통해 왜 퍼포먼스가 행해지는지를 추측해보고자 한다. 전시와 퍼포먼스 퍼포먼스는 무엇의 이름인가. 퍼포먼스는 예외적이고 특별한 제스처이지만 한편으로 너무 흔한 이름이 되었다. 퍼포먼스는 과잉 기표인 셈이다. 주로 전시의 이벤트적 성격으로 전시에 부착되는 그리하여 흔히 전시의 스펙터클로 확장되는 퍼포먼스의 중심에는 흔히 퍼포머라는 현존에 기댄 시간이 놓인다. 이는 한시적인 물량과 인원의 투입이 그 시간에의 몰입을 위해서만 예외적으로 존재함을 의미한다. 이는 동시에 전시장이 평소 비어 있는 곳임을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현실적으로는 퍼포먼스는 전시를 보는 데 방해가 된다. 퍼포먼스뿐만 아니라 퍼포먼스를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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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텐 스팽베르크 〈휨닝엔〉: 공동체의 이념에 대한 몇 가지 질문들REVIEW/Dance 2021. 11. 15. 13:09
〈휨닝엔〉은 마텐 스팽베르크의 춤에 관한 철학은 어떤 형태로 드러나는가에 대한 질문을 안고 있었다. 어떤 스타일이나 문법, 훈련된 신체, 나아가 안무로부터 벗어난 무엇은 어떤 춤일까. 〈휨닝엔〉은 매우 더디게 진행된다. 시간은 멈춰 있는 듯 진행된다. 단체(박상미, 박진영, 박한희, 서영란, 이경후, 이민진, 정다슬)로 정면을 응시하는, 그것이 관객을 향한 것도 어떤 사물을 향한 것도 아닌 그런 멍하면서도 흐릿하지는 않은 시선이 그 시작이다. 공연의 시간이 황혼을 상정한다면, 그 눈은 붉게 타오르는 모닥불을 보는 시선에 가깝다. 곧 관객과 퍼포머 사이에는 어떤 경계가 있다. 그 경계는 이 시간으로 휩쓸려 가는 주술의 발현을 기원하는 거리이다. 시간이 무화되는 공간. 찰랑대는 투명 원환 오브제들이 달린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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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희수, 〈코어〉: 전시를 분절하는 퍼포먼스의 언어, 퍼포먼스 바깥의 전시REVIEW/Performance 2021. 11. 15. 13:09
〈코어〉의 퍼포먼스는 기본적으로는 기존 전시에 세 몸이 얹히는 방식이다. 그렇다면 ‘몸은 순전히 전시를 강화하거나 연장하며 보족하는 매체인가.’, 아니면 ‘몸은 전시와 불화하면서 자신의 지위를 주장하는가.’ 이렇게 질문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코어〉는 이 둘을 미묘하게 벗어난다. 이 글은 주로 전시와 별개로 퍼포먼스에서 몸이 어떻게 작동하며 전시를 재구성하는지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결론적으로 전시와 퍼포먼스는 완전히 다르며, 그 전해지는 감각 역시 다르다. 그럼에도 몸은 전시와 다른 무엇을, 전시의 바깥을 보여준다기보다 전시로 수렴하는 방식을 선택하고 있다. 반면 사운드가 주가 되는 전시에서의 청각적 감각을 강화하기보다는 시각적인 차원에서 이를 저어한다는 점은 불화를 만드는 것이라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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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민하, 〈Self-Salutation ver.3〉: 매(개)체로서 카메라의 도입이 갖는 효과REVIEW/Performance 2021. 11. 15. 13:05
고프로 카메라를 손에 든 두 퍼포머가 이를 자기 신체를 비추는 매체로 대부분 활용하고, 그러한 반영을 서로 간의 교환으로 확장하면서 진행되는 퍼포먼스 〈Self-Salutation ver.3〉는, 미디어아트와 퍼포먼스를 접목시키고, 몸의 미디어로의 동시간적 확장을 꾀한 작업으로, 비교적 단순한 매체 간 융합의 형태를 띠는 한편, 그 전제와 시작점을 몸에 두고 있다. 매체의 도입이 갖는 효과를 산출하는 것은 카메라가 자기를 찍고 있음을 인지하는 것이 몸을 어떻게 바꾸는가 또는 구성하는가를 염두에 두고 작업을 바라보는 것에서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관점에서 퍼포머 간의 차이를 보는 것 도움이 될 것이다. 두 퍼포머의 양상은 사뭇 다른데, 김보민이 주로 카메라로부터 조금 더 자유롭다고 볼 수 있을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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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서영, 《눈부신 미래》: 눈에 대한 보고서REVIEW/Visual arts 2021. 11. 15. 13:04
제목 “눈부신 미래”는 즉자적으로 ‘눈’이 부신 ‘미래’로 분쇄된다. 〈백내장〉(2021. 싱글 채널 비디오, 6분 17초.)의 한 구절을 가리키는 이러한 알레고리는 미래로 수렴하지 않고 눈이라는 매체로 다시 회귀한다. 구와 돔은 눈의 수정체와 도상학적으로 닮았으며, 리서치 슬라이드에 의해 그 유사성의 형태들에 대한 몽타주가 이뤄지는 가운데, 그 옆 〈구, 돔, 파이프〉에서 언어적 결합을 이루는 것으로 연결된다. 한 면으로 펼쳐지는 병풍형 구조의 책인 〈구, 돔, 파이프〉에서의 “빛나는 구체가 비추는/미래 도시/를 이루는 구, 돔, 파이프”(p.1-3.)에서 “머리에 구를 뒤집어쓴 사람들”(p.10.)의 “안구/를 덮는 콘택트 렌즈.”(p.12-13.)로 이어지는 일련의 문장/과정/서사는 ‘구’라는 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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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각반응, 〈슈미〉: 드라마적 완성도와 동시대적 질문의 낙차REVIEW/Theater 2021. 11. 15. 12:43
〈슈미〉는 원작 ‘헤다 가블러’를 각색해 재창작한 작업이다. 원작의 주인공이 제목과 동명이었던 것처럼, 〈슈미〉에서 주인공은 헤다 가블러를 치환한 슈미가 된다. 〈슈미〉는 흡입력 있는 대사와 움직임을 갖춘 탄탄한 드라마로 관객을 몰아세운다, 슈미가 다른 인물들에게 그러한 것처럼. 일종의 가스 라이팅으로 볼 수 있을 타인의 심리와 행동을 자의대로 조종하는 슈미의 행동은, 소위 ‘피씨함’의 범위를 많이 벗어나 있으며, 고전이 갖는 인간의 “광기”나 “불안” 같은 심리의 근간을 떠받드는 것만으로는 동시대의 언어로는 과도할 것이다. (아님 이를 포섭하기 위한 또 다른 언어를 개발해야 할 것인가.) 이러한 슈미와 엮이는 인물들 간의 관계는 어떤 군더더기가 없다. 적어도 누군가를 조종하고 조종받는다는 인식을 갖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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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혜진, 〈흐르는.〉: 언어와 몸을 재접재시키기REVIEW/Dance 2021. 11. 8. 18:05
〈흐르는.〉은 소극장 규모의 신촌문화발전소 극장을 기존의 무대와 객석의 낙차를 그대로 수용하면서 관객석을 둥근 울타리 안에 배치한다. 결과적으로 극장 안의 비선형적인 분포는 극장을 해체하며 재편하는데, 장혜진 안무가는 그 안을 배회하며 퍼포머가 관객과 접면하는 경계를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중앙 천장에 달려 내려온 마이크는 퍼포머에서 역동적으로 반대편 객석으로 허공을 가로지른다. 객석 중간, 벽에 붙인 의자에 앉아 있던 장혜진은 한 손을 얼굴 가로 올린 뒤 움직임을 연다. 전체적으로 노이즈 사운드가 군데군데 묻어 나오며 의식을 지배하는데, 이러한 사운드 역시 같이 시작된다. 장혜진의 움직임은 중심을 신체 전체로 퍼뜨리고 미세하게 옮기며 소위 흐늘거리고 바들거리는 신체 양상을 만든다. 이러한 신체의 움직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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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그리 픽스달, 〈내일의 그림자〉: 간격의 공동체를 구성하다REVIEW/Dance 2021. 11. 8. 00:13
〈내일의 그림자〉는 공동체를 현상한다고 보인다. 이는 이 공연에 대한 거의 몇 안 되는, 그중 가장 커다란 범주의 은유가 될 것이다. 화려한 색감의 점퍼와 치마 그리고 얼굴을 두른 손수건까지 일괄적인 복장 아래 원으로 퍼포머들이 도열해 있음에서 출발하는 공연은, 간격으로부터 벌어지는 움직임의 변형태들로 나아간다. 이러한 움직임은 간격에서 시작돼 간격의 형태를 시험하고 기입한다. 그리고 그러한 간격은 공동체의 이상을 은유하는 것으로 보인다. 가려진 얼굴은 앞을 보지 못하고 감각한다. 짜인 동작들은 무리로 확대되는데, 이는 동시적이며 예외적인 선두의 리듬을 가진다. 곧 시작하는 예외적인 누군가가 있고, 이는 급속히 전파된다. 시간 대부분은 이들이 군집한 상태에서 진행된다. 무릎을 살짝 접고 펴는 동작이 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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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유진, 《안티바디와 싸이킥에너지》: 근미래에 대한 도착적 희망REVIEW/Visual arts 2021. 11. 8. 00:01
비계 같은 골격과 이음부 구조로 확장되는 대부분의 설치물은 연결된 전자 회로 기판에 의해 제어되며 움직인다. 거기에는 되게 슬로건 같은 문장이 따라붙는다. 이러한 구조적 설치의 형태는 (인간의 정상적인 몸을 바디로 칭한다면) 안티바디의 메타포로 여겨진다. 이러한 안티바디는 각자의 전자적 원동력을 통해 바디의 입구를 탐색하는 듯 보인다. 여기서 “중증근무력증이라는 자가 면역 질환을 앓고 있는 작가”의 경험은 기계 장치의 신체로 체현되기보다는 언어적으로 발화되거나 은유적으로든 재현된다. 제목에서 이 안티바디를 “싸이킥에너지”로 연결하는 것, 곧 안티바디의 “신체의 근본적인 취약성”을 ‘상쇄’시키는 싸이킥에너지를 도입한 것처럼 안티바디는 싸이킥에너지과 같은 도약의 순간을 마련함으로써 또는 그와 같은 순간을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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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고은, 〈아키펠라고 맵: 세 개의 고래-인간 동그라미〉: 신화적 세계와 그 공백에 대한 이야기REVIEW/Performance 2021. 11. 7. 23:59
〈아키펠라고 맵: 세 개의 고래-인간 동그라미〉는 고래에 대한 이야기다. 더 정확히는 그 고래가 있던 시간을 떠나 보낸 현재의 시점에서 그 존재와 시간을 애도하고 오마주하는 상연이다. 이러한 상연은 두 명씩의 한정된 관람으로 조건 지어졌는데, 장소 이동에 따른 관람 방식과 매체 활용이 달라지며, 이를 퍼포머가 라이트를 통해 이동의 동선을 관람객에게 안내하며, 매체의 켜고 끔을 수행하고 때론 제시하기 때문이다. 마지막 나누어 준 쪽지에 담긴 허먼 멜빌의 고래가 없어진 것에 대한 은유적 나열은 이 상연이 지시하는 언어의 내용과 형식을 갈음한다. 고래는 우리와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존재로서 감각의 저변을 확장하고 새로운 감각을 수여하는 낭만적 존재라면, 휘발유가 고래를 구원했다는 대사처럼 고래기름을 사용하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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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에이티브 바키, 〈보더라인〉: ‘무엇을’ 말할지가 아니라 ‘어디에서’ 발화할 것인가의 문제REVIEW/Theater 2021. 11. 7. 23:36
〈보더라인〉은 국경과 언어를 뛰어넘는 평화로운 국제 질서의 세계를 염원하는 작업이다. 그리고 그러한 이념을 쌓아나가는 과정은 뉴다큐멘터리 연극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극장에 처음부터 자리한 한 명의 배우와 극장 바깥의 한국과 독일의 배우 네 명의 화상 연결이 비로소 실시간으로 이루어지는 마지막 장면―사실 그 전에는 기록된 영상의 범주가 어디까지인지 확인할 수 없어서 비로소 배우의 존재가 실시간으로 연결되는 것을 증명하는 것으로 볼 수 있기도 하다.―까지 과거의 기록을 교차시켜 쌓아나가던 공연의 존재 방식은, 리얼타임의 성격을 강조한다. 이는 결국 무대 위의 현존이 아닌 화면에 기록되는 배우들 대부분의 존재 방식, 현재의 이야기가 아닌 과정의 시간을 보고해 나가며 누적된 시간을 해명하는 한편 그 시간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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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빗홀 씨어터, 〈당신을 초대합니다〉: 경계 넘기로서의 초대REVIEW/Theater 2021. 11. 3. 17:33
〈당신을 초대합니다〉는 언어에 대한 분열로부터 출발해, 현상학적 타자의 호출로서 제목의 함의에 도달하기까지 매체의 변위에서 장소의 변위로 옮겨가며 체험의 층위를 달리하는 과정으로 진행된다. 특히 헤드폰을 끼고 모니터를 보고 앉은 중반까지의 과정이 무대 전면의 위치를 반전시키는 순간, 타자에서부터 내재적 차원의 경험으로 옮겨온다. 곧 우리가 타자를 언어적으로 정의하고 인식하려는 불가능성의 조건이 타자를 마주하기 위해 뒤틀린 우리의 신체에 직접적으로 반전되며 현상된다. 먼저 입방체로 구획된 무대에 종횡으로 빽빽하게 놓인 큐브들 위에 관객은 앉는다. 그 앞뒤 간격은 좁으며, 이후 몸을 틀어 뒤를 볼 때 옆의 관객이 곁으로 인식되는 조건으로 연장된다. 큐브에 앉고 그 옆에 걸린 헤드폰을 끼고 음성을 순전히 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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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디자인Column 2021. 11. 2. 23:09
안대웅 얼마 전 ≪서울, 25부작≫의 홈페이지와 관련해 SNS상에서 자그마한 논란이 있었다. 시작은 최황이라는 이름의 작가로, ≪서울, 25부작≫의 웹사이트가 자신이 기획하고 작가로 참여한 ≪광장조각내기≫와 “아이디어와 보여주는 형식”이 몹시 유사하다는 것이 이유였다. ≪서울, 25부작≫의 웹사이트는 미술계 일을 꽤 많이 맡아서 하는 것으로 알려진 디자인 스튜디오인 일상의실천이 만든 것으로, 공교롭게 일상의실천은 ≪광장조각내기≫ 웹사이트의 디자이너이기도 했다. 흥미롭게도, 일단, 최황은 일상의실천이 아니라 ≪서울, 25부작≫의 실무자를 비판의 대상으로 삼았는데, 아마 ≪광장조각내기≫의 웹사이트의 제작자가 일상의실천으로 동일하므로 표절까지 가기에는 무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테다. 그러다 약 4시간 뒤 최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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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혜, 〈로드킬 인 더 씨어터〉: 인간의 시점을 도륙하기REVIEW/Theater 2021. 10. 27. 00:54
〈로드킬 인 더 씨어터〉의 시작은 이 작품의 극장과 작품의 구조를 지시하고 장면을 예고한다. 공연의 입구를 확장한 시간은 이 공연의 윤리적 차원이 공연의 형식 자체가 되는 과정의 일환이다. 문자 해설과 수어 통역, 음성 해설이 한 덩어리로 흘러갈 것을 예고하며, 표기법을 통일하고 몇몇 기술을 간략하게 줄이기 위한 절차이기도 하다. 이 공연은 이제 완전히 다른 감각을 가진 존재들과 기존의 일반적 차원으로 간주된 존재들의 동거로서 체험된다. 이제 펼쳐질 세계는 우리와 언어 체계가 다른 동물들의 언어 체계이다. 물론 재현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동물들의 말은 극단적으로 그 양을 늘리거나 더듬거리며 지연을 발생시키거나 되돌아오며 누군가의 말인지 중요하지 않게 되는 또는 어느 끝을 지정하지 않는 시간의 늪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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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정호, 〈이것은 유희가 아니다〉: 사회 현상을 비추는 외양들REVIEW/Dance 2021. 10. 25. 12:26
〈이것은 유희가 아니다〉는 유희와 그것이 부정되는 과정을 반복하며 진행된다. 초록색 무대에서 열두 명의 무용수는 한 명씩 탈락하고, 탈락의 순간마다 그 초상이 스크린에 뜬다. 그리고 그 가의 색과 같이 검은색 천이 하나씩 깔린다. 검은색의 바깥 영역에 있는 죽음의 사도가 그 역할을 하는데, 탈락한 이들도 그에 합류한다. 하나의 무대는 하나의 음악이 사용되는 독립적 장으로 연출되므로, 각기 다른 무대는 공연의 개별적인 고유의 부분으로 분절되는 한편, 살아남음과 탈락이라는 하나의 서사에 종속된다. 이러한 지점은 서사를 강화하지만, 움직임은 그 서사 바깥으로 나오지 못하는 한계를 보인다. 곧 열두 개의 무대는 각기 다른 음악과 함께 때로는 왈츠와 같은 장르적 움직임을 택하기도 하는데, 각 무대는 탈락될 각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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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Y, 〈제1강: 거절하는 방법〉: 공동의 이야기로 외전을 이룩하기REVIEW/Theater 2021. 10. 25. 12:04
편지는 늘 미래를 향한다 〈제1강: 거절하는 방법〉은 자기계발의 일종으로서 인간관계의 요령 같은 걸 알려주거나 그래서 성공한 삶의 욕망을 추동하는 그런 유의 작품과는 거리가 있다. 그 제목만으로 그러한 시시콜콜한 관계 맺기의 기술을 보고 들어야 할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34살의 리아(강서희 배우), 선주(백혜경 배우), 현(강다현 배우), 미소(배선희 배우)가 17살의 자신에게 보내는 편지로부터 〈거절하는 법〉이 출발하며, 거절하는 것에 대한 변명의 궁핍함, 상대방에게 상처를 또는 실망을 안기지 않을까에 대한 죄책감 또는 불안감 등 온갖 걱정이 따라붙었던 존재라면, 곧 그들이 스스로의 언어를 쌓아 나가던 그리고 질풍노도의 성장기에 있던 존재임을 알게 된다면 그제야 제목에 무게가 실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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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판야무 , 《오》: 금배섭 안무의 중간 점검 혹은 다시 보기REVIEW/Dance 2021. 10. 19. 17:48
〈?〉, 〈니가 사람이냐?〉, 〈미친놈널뛰기〉, 〈섬〉, 〈포옹〉: 존재의 바탕을 구축하기 금배섭의 춤판야무의 안무 작업들은 퍼포먼스에 가깝다. 극장 공간은 장소의 실천적 의미로 변한다. 금배섭의 움직임은 이 안에서 사물로 연장된 행위의 분명한 단위들을 설정하고 반복하는 것에 가깝다. 그 사물들과의 관계 맺기는 움직임을 제약하는 한편 재분절한다. 이 속에서 금배섭은 어떤 감정에도 휩싸이거나 드러내지 않는, 공간을 측정하고 사물을 제어하며 기계적인 움직임을 구사한다. 가령 〈?〉에서 두 팔을 양옆으로 휘저으며 연장시키는 움직임은 순전히 심미적 차원, 또는 형식적 차원으로 바라볼 수 있는 순간을 구성한다. 반면, 이러한 움직임은 더 나아가는 대신, 곧 그치고 이후 다시 반복되지 않는다. 이러한 행위로서 움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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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과 판지》, 극장의 경계를 시험하는 퍼포먼스REVIEW/Performance 2021. 10. 19. 17:29
한국-스위스 공동창작 프로젝트: 돌과 판지, 6편의 솔로 작업 리뷰 극장은 판지의 무게로, 판지의 차갑고 푹신푹신한 재질로, 공간을 메우는 빈 부피로 현상된다. ‘돌과 판지’라는 제목에서처럼 판지가 공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단지 그 양적 차원이 아니라, 몇 가지 판지의 특질을 곳곳에서 체현한다. 반면 돌은 정지혜의 무대에서 한 번 등장하는데, 브로슈어에서 판지와 대조적인 재질로서 지시되는 돌이 무대에서 거의 부재한 것은 인공의 특질과 관련을 맺는 공연의 직접적 성격으로 수렴한다. 곧 이 공연은 현재 각종 박스가 뒤덮고 있는 우리의 삶, 그러한 재현 가능한 어떤 삶의 양태를 고스란히 추출하고 있다. 그리고 세 퍼포머의 불연속적이고 단속적인 무대는 어떤 관련을 지시하지는 않지만, 그들의 행위에 대한 질문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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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혜림, 《Night Movers》: ‘바깥’의 기호들REVIEW/Visual arts 2021. 10. 19. 16:49
전시 《Night Movers》는 상징으로 파악되거나 도상으로 수렴되지 않는 기호적 사물들의 불연속적이고 불균질한 매듭들이 점철된다. 이 말이 없는, 또는 말이 되지 않는 엮음에 따라 그 사물의 이름이 지워지며 갱신되는 전시의 이념을 구현하기 위해 지웠을 언어, 곧 캡션 없는 이 사물들의 전시에서, 어떤 언어가 있는 세계의 현재를 표상하는, 그 내용을 유추해볼 수 있는 그림이자 가장 거대하게 자리하는, 본문이 없는 책들이 군데군데 있는 이 전시장에서 유일하게 읽을 수 있는 본문에 해당하는 그림 역시 명확하지는 않다. 우선 기름종이에 그려진 이 그림(〈Recall〉, 우레탄 비닐, 마커 펜, 600×400cm, 2021.)은 도구를 다루는 사람들, 작업하는 사람들을 표한다. 당연히 그것들은 어떤 멈춰진 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