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엘리펀트룸 〈세월호 학교〉: 타자에 대한 어떤 교육REVIEW/Theater 2022. 5. 22. 11:45
엘리펀트룸의 〈세월호 학교〉는 세월호 참사를 원점에서 복기한다. 이는 세월호 참사 이후 혜화동1번지가 꾸준히 기획해 온 세월호 시리즈의 하나로서, 메타적으로는 그 기획 자체의 의미를 재확인하는 차원으로도 볼 수 있다. 공연은 진상 규명(이 되지 않았음)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국가의 의미를 검토하고, 새롭게 국가의 모습을 재요청하는 민주주의 시민의 몫에 관객의 자리를 대입하고 있다. 따라서 어린이를 상정한 교육의 형식은 관객의 계몽을 구성하기보다는 계몽된 관객의 시점에서 교육이라는 형식 자체를 검토하게 하는데, 이러한 방식이 복기라는 형식에 기대고 있는 것이다. 곧 〈세월호 학교〉는 교육의 내용 자체를 전달하기보다는 ‘교육은 왜 필요한가.’ ‘교육은 무엇을 향할 것인가.’에 대한 대답을 하기 위해 존재..
-
〈네이처 오브 포겟팅〉: 표현으로서의 재현REVIEW/Theater 2022. 5. 22. 11:36
음악의 전개와 움직임의 긴밀한 협응으로 진행되는 〈네이처 오브 포겟팅〉은 전체적으로 역동적인 음악이 공간을 장악하며 이미지적인 장면들을 만드는 것으로 점철된다. 이러한 충만한 무대로의 입력은 최소한의 대사를 ‘나지막한’ 또는 읊조리는 듯한 목소리로 치환한다. 피지컬 씨어터라는 장르로 명명되는 작업으로, 배우들은 끊임없이 움직이며 음악의 거센 파고에 몸을 싣는다―피아노, 바이올린, 드럼, 퍼커션, 루프 스테이션 등의 2인조 밴드―김치영, 조한샘―가 악기를 다룬다. 참고로 영국 프로덕션 ‘시어터 리(Theatre Re)’의 기욤 피지 연출과 알렉스 저드 작곡가 등이 만든 오리지널 공연이 2019년 외국 배우들의 출연으로 같은 장소인 우란문화재단 우란2경에서 오른 바 있으며, 이번에는 한국 프로덕션의 협업으로..
-
쿵짝 프로젝트 〈툭〉: 판타지는 어떻게 현실에 개입하는가REVIEW/Theater 2022. 5. 10. 04:27
연극실험실 혜화동1번지는 꾸준히 ‘세월호’를 주제로 매년 작업을 선보이고 있다. 아마 이는 이를 어떤 서사로 연장할 수 있을 것인가의 차원에서 소재 고갈 같은 극작술의 시련, 그리고 지속하는 것이 옅어지고 무력화되는 가운데 작업 자체가 더 이상 가능한지에 대한 자기 윤리에 대한 의구심에 대항해야 함을 의미할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이를 포기할 수 없는 곧 지속해야만 하는 제도적 차원에서의 상징적 위치 역시 작용할 것이다. ‘세월호는 직접 드러나서는 안 된다.’ 또한 ‘세월호에 대한 알레고리가 단순히 죽음과 슬픔으로 치환되어서는 안 된다.’ 여기서 이 같은 두 개의 원칙은 아마 세월호를 신중하게 다루는 기본적인 전제가 될 것이다. 그러니까 ‘세월호’와 ‘나’, 그리고 ‘사회’의 어떤 긴장 어린 관계항 속에..
-
국립무용단 《더블빌》, 맞춤옷의 어떤 설기들REVIEW/Dance 2022. 5. 10. 04:13
국립무용단의 《더블빌》은 색채가 다른 젊은 외부 안무가를 초대해 하루에 두 다른 무대를 선보이는 식으로 기획되었으며, 활발하게 동시대 무용 신에서 활동 중인 고블린파티와 차진엽 안무가가 각각 안무한 〈신선〉과 〈몽유도원무〉 두 작업으로 구성됐다. 공연이 오른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은, 중극장 규모로서 그리 크거나 깊지 않게 보였는데, 이는 두 공연 모두 많은 무용수가 출연하고 움직임이 많고 다양하며 무대의 동선을 활발하게 사용하기 때문이다. 무대의 특징이라면, 움직임을 연장하는 글로시한 바닥 자체에 있는데, 〈몽유도원무〉의 경우 두 개의 막을 순차적으로 활용해 단조로운 무대에 변화를 준다. 외부의 동시대 안무가와 국립무용단의 결합은 현대무용의 개념과 전통무용의 기본기가 전통의 변화와 갱신을 꾀할 수 있음을 ..
-
《정해져 있지 않은 거주지: 오드라데크》: 의미화의 전략과 수렴되지 않는 의미 사이에서REVIEW/Visual arts 2022. 4. 14. 02:14
《정해져 있지 않은 거주지: 오드라데크》라는 전시는 도시의 빈 공간을 잠재적 실천의 장소로 재인식하고 나아가 재규정하고자 하는 데서 출발한다. 그렇다면 이 안에서 작가/팀은 실천 전략으로서의 작업을 선보이는가.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1949~)을 경유해 실재계로 옮겨질 수 있을 프란츠 카프카(1883~1924)의 “오드라데크”는 인식하기 어려우며 규정 불가능한 대상의 성질을 띠는데, 이 전시는 이를 도시의 버려진 곳이나 빈 장소, 쓰레기가 모이는 등의 장소로 상정한다. 이러한 장소가 상징계의 잉여 또는 그림자를 보여주는 곳에서 나아가 제도 바깥의 상상력이 틈입할 수 있다는 전제가 곧 이 전시의 출발점이라 하겠다. 도시 빈 공간의 재인식으로서의 실천은 사실 공고한 사회 시스템에 균열을 내고 질문을 생성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