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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엽 연출 〈커뮤니티 대소동〉: 하나의 커뮤니티를 가설하기란…REVIEW/Theater 2022. 4. 14. 01:48
접촉을 통한 우리의 형성 〈커뮤니티 대소동〉은 접촉에 대한 감각을 강화한다. 안대를 쓰고 들어간 어둠으로 뒤덮인 극장에서 안대를 벗으며 시작된다. 아무것도 안 보인다는 감각은 무언가를 보지 못한다는 감각과 다르다는 것을 인지하게 된다. 곧 어둠을 보는 것이다. 이제 모든 것은 ‘시각적으로 판별되지 않는’ 세계에서 목소리와 타자를, 무엇보다 발 디딜 공간에서 그것들을 예측할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상 〈커뮤니티 대소동〉은 이진엽 연출이 속한 ‘코끼리들이 웃는다’의 〈몸의 윤리〉(2015)의 재판본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몸의 윤리〉가 보이지 않는 곳이 우리의 변화를 시도하게 하는 동력으로 작용함을 의도하고 동시에 다른 우리의 감각을 활성화하고자 했다면, 총 아홉 명 중 과반수의 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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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조 이야기〉, ‘부채의식을 떠안고’REVIEW/Theater 2022. 4. 14. 01:28
〈금조 이야기〉는 한국전쟁 당시 딸을 잃어버린 채 딸을 찾아 나서는 금조의 여정을 주된 서사로 하되, 거기에 그 주변의 여러 역사적 맥락을 교차 편집한다. 여기서 여러 이야기는 역사에 대한 다각적이고 입체적인 시각보다는, 동시에 그 모든 인물의 내적 동기를 형성하며 그들 간의 관계를 구성하기보다는 전쟁 안에서 비이성적인 인간으로의 형질 변화를 보여주는 것으로 수렴하며, 결과적으로 정주할 수 없는 금조의 삶, 그의 지연되는 도착을 더욱 강조한다고 보인다. 관객에게 그 고통은 곧 다른 시간만큼 더 유예된다. 금조는 그와 여정을 함께하는 들개 아무르와 함께 유일하게 거의 모든 곳을 경유하며 존재들을 스쳐 지나갈 뿐 그 모든 서사가 그와 온전히 결부되거나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는 안을 점유하지 못하고 밖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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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애순 안무(국립현대무용단 제작), 〈몸쓰다〉: 부재하는 몸‘들’의 생채기적 몽타주, 그리고 박유라라는 전사(前史)REVIEW/Dance 2022. 4. 5. 23:39
터널같이 펼쳐진 넓은 공간에는 한 존재가 뒤돈 채 이동한다. 그의 움직임은 유려하다가도 결정적으로 엉덩이를 긁는 제스처로 옮겨 간다. 하나의 정동으로 기꺼이 수렴되지 않으며 하나의 이미지에서 분화되는 종래 균열을 일으키는 움직임의 한 초상은, ‘몸을 쓰는’ 것을 다양하게 기술하는 것이 안무의 초점임을 역설하는 듯하다. 여기에 한두 무용수가 무대에 진입할 때 등장과 함께 이전의 무용수와 동기화가 이뤄지며 무대는 쌓여 나간다. 여기서 전략은 한 존재의 이중적 분화를 각 존재의 병치를 통해 각 존재를 다초점으로 ‘분쇄’하는 것으로 옮겨 간다. 안애순 안무가의 〈몸쓰다〉는 각 무용수 고유의 몸의 무늬와 흔적을 다중 레이어의 사운드 평면 속에 배치하는, 비교적 간략한 전술을 펼친다. 가장 큰 구조적인 분기는 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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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피그, 〈나무는 신발가게를 찾아가지 않는다〉: 문명 이후에 대한 어떤 태도REVIEW/Theater 2022. 4. 5. 22:55
〈나무는 신발가게를 찾아가지 않는다〉는 윤영선의 7쪽짜리 초고로 된 동명의 원작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2012년 윤영선 연극제에서 초연된 작업이다. 당시 공동 창작 과정과 전성현 작가의 참여로 단편들이 더해지며, 원작이 새롭게 재구성, 연장되었고, 이번 공연은 현재의 시점에서 일부 갱신되었다. 2012년 작이지만, 현재 시점에 조금 더 부합하며 동시에 전위적이다. 이 단편들은 물리적으로 하나의 서사로 연결되지 않음을 의미하지만, 총 4개의 에피소드 각각은 “신발”이라는 모티브를 반복하며, 마지막 ‘나무는 신발가게를 찾아가지 않는다’ 편에서 원숭이탈을 쓴 배우가 탈을 벗고 대사를 하면서 원전의 시점으로 돌아감―초고 일부와 초고가 쓰인 시점을 명시한다!―으로써 각 에피소드의 연관성은 언어적으로 정립되기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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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돌파구, 〈XXL레오타드 안나수이 손거울〉: 활극과 정치적 주체의 변경 사이에서REVIEW/Theater 2022. 3. 24. 00:43
“XXL레오타드 안나수이 손거울”이란 제목은 세 명의 등장인물들이 소유한 각각의 주요한 오브제다. 즉물적이고 감각적인 사물에 대한 지시처럼, 작품은 현실에 기반을 두며, 역할들은 저마다의 개성을 갖고 동시대와 공명할 것을 요청한다. 이러한 역할이 갖는 보편적 특정성은 시대적 생산양식으로서의 주체들로서 배우들이 어떤 역할을 맡는지에 대한 소개와 함께 그 역할을 입는 것임을 소개하며 시작하는 출발 지점에서부터 드러난다. 이는 이 연극의 유일한 메타-연극의 연출 지점이라는 데서 특기할 만한데, 통상 전제된 희곡에서 연극으로의 번역을 지시함으로써 이를 한 번 더 꼰 또는 내파하는 시점을 제시한다. 곧 연극을 희곡으로 되돌리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인데, 오로지 수행적으로만 이것들이 앞으로 놓일 수 있음을 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