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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정 연출, 〈김수정입니다〉: 예술은 어디까지 말할 수 있는가REVIEW/Theater 2022. 2. 16. 18:19
효과로서의 종결과 의미로서의 종결 사이 〈김수정입니다〉는 김수정이라는 연출을 극단 신세계의 연출로서 극단의 시계열에, 그리고 극단 이전에 김수정의 연극사 안에 배치한다. 김수정의 실제 서사를 전면에 드러낸다는 점에서, 나아가 이를 인터뷰 영상의 서술을 동원하는 가운데, 극단 연출이 실제 극 전반에 등장한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극 형태가 아니라 뉴다큐멘터리 연극이라 할 수 있다. 김수정의 등장은 서사의 핍진성을 위한 것이기보다는 김수정의 전면적인 자기 고백이 수행적 발화로 나아가는 데 필요하다. 이 등장 전에 김수정의 시상식 주인공으로서의 모습, 디렉션을 하는 연출로서의 역할이 극 안에 어정쩡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면, 이후 김수정은 그 바깥에서 단독자의 형상으로 발화한다. 곧 김수정의 마지막 발화가 갖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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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Y, 〈탈피〉: ‘바깥의 언어’REVIEW/Theater 2022. 2. 6. 21:34
인간의 부정성 연극 〈탈피〉는 사회의 부정과 억압의 피해 당사자 간의 유폐된 언어를 맞물리는 접점을 구성한다. 자신에게 성폭력 가해를 저지른 남성 교수가 있는 학교에서 동물의 열악한 환경과 조처를 방관하는 동물원으로 탈주한 소진(강서희 배우)은, 탈피하는 중에 멈춘 뱀(알비노 비단 버마 구렁이, 이하 뱀)에게 온 신경을 쏟는 존재로 출현한다. 멈춘 뱀의 움직임을 언어로 소생시킬 방법은 처음 출현한 동물 의학적 지식을 갖춘 전문가인 수의사(정대용 배우)에게도, 마찬가지로 그러한 지식이 없는 그에게도 없다. 다만 이 뱀의 닫힌 시간을 자신의 폐쇄된 시간으로 번역할 수는 있다. 이것은 뱀의 언어를 매개할 수 있음―거꾸로 뱀의 언어가 매개될 수 있음―을 의미하지는 않지만, 뱀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 그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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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명작옥수수밭, 〈메이드 인 세운상가〉: 현재의 그림자로서의 과거REVIEW/Theater 2022. 2. 6. 21:15
왜상을 은폐하는 이데올로기 효과 극단 명작옥수수밭의 〈메이드 인 세운상가〉(이하 〈세운상가〉)는 1986년 북한 수중 공격에 대한 위협에 대처한다는 명목으로 평화의 댐 모금 운동의 정부 선전이 한창이던 시기에서 출발한다. 거북선도 만들 수 있다는 풍문의 세운상가 주인들은 북한 공격으로부터 안전하게 피신할 수 있는 잠수함을 만드는 데 머리를 모은다. 국가라는 거대한 이데올로기―1. 국가가 있고 내가 있다. 2. 북한은 주적이다.―에 부속하는 소시민의 맹신은, 실제 500톤 규모의 잠수함을 만드는 데 이른다. 목선을 주조하고 이를 타고 월북하려는 ‘믿음’을 지닌 주인공을 다룬 그린피그의 〈목선〉(2019)은 〈메이드 인 세운상가〉보다 빨리 왔지만, 〈메이드 인 세운상가〉의 지속하는 미래를 선취하고 있다.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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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재, 〈검은 눈〉에 대하여: 표면과 접촉의 시각적 기술REVIEW/Visual arts 2022. 2. 6. 21:10
조경재 작가는 자투리, 부스러기 같은 주로 목적성을 상실한 이름 없는 사물들을 조합, 배열하고, 이를 사진으로 기록해 왔는데, 나아가 이를 다시 설치로 구성하고, 다시 사진을 이 공간에 배치하는 확장과 수렴의 유희를 수행하는 식으로 전시 공학의 특이한 경로를 구성해 왔다. 먼저 사진의 경우, 완전한 결착이 아닌 (아마도 애드호키즘적 작업 방식에 따른) 패치워크, 임시적인 사물들의 절합들, 곧 사물과 사물, 틈새와 빈 공간을 구성하는 임시적인 구조물이 지닌 입체적인 공간성이, 평면의 매체 안에서 압축되면서 그 안의 사물들은 이미지의 틀어짐과 착시로 나타나는 한편, 다중 레이어의 초점화되지 않은 자리들, 곧 비가시적인 초점들이 겹쳐져 있는, 어느 하나의 온전한 초점을 구성할 수 없는, 기이하고 정리되지 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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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효진 극작, 〈머핀과 치와와〉: ‘인간을 가로지르는 무엇’REVIEW/Theater 2022. 2. 6. 21:07
〈머핀과 치와와〉는 미래 문명의 단면을 ‘라이카’라는 인공지능의 통제 아래 작동하는 단일한 시스템―사각형의 가를 두른 검은 고무판을 하나같이 종종걸음으로 이동하는 배우들은 컨베이어벨트를 따라 이동하는 시스템의 부속으로서 자리한다.―으로 전제한다. 문학적 인간과 새로운 생명력을 가진 존재로의 변이는 이 시스템으로부터 삐져나온 인간적인 무엇, 문학적인 무엇을 보여주지만, 이 같은 존재들은 반동적이거나 체제 위협적인 존재가 아니다. 그들은 체제의 예외적 존재로 자리할 때 그 체제로부터 읽히지 않거나 증발하거나 죽는 존재에 그친다. 시스템에 대한 독해는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을뿐더러 작업의 초점을 벗어난다. 시스템은 일종의 기능적인 표면에 불과하다. 라이카는 강력한 통치 장치 역시 아닌데, 타자가 아니라 자아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