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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애순 안무, <HereThere>: 개별적인 것들과 뒤섞임의 무늬REVIEW/Dance 2019. 6. 15. 16:06
▲ 안애순 안무 ⓒ조태민(이하 상동) 에서 우리가 보는 건 우리가 기존에 생각하는 강강술래의 ‘전통적’ 형태는 아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그 전통이라는 건 과거와 현재의 분리주의적 입장보다는 현재에 잔존하는 파편적인 과거를 상정할 때 유의미한 진단에 이를 수 있다. 그리고 어쩌면 그러한 형태는 현재에 있어 재탐문됨으로써 동시대적 위상을 갖는다. 이러한 현재는 그 자체로 다성부적인 존재들의 구성에 의거한다. 이것이 의 독특함의 한 차원을 구성한다. 하나의 원이 있고, 이는 하나의 방향으로 일정하게 돌며 피치를 올리기 시작한다―강강술래의 ‘전통적’ 형태. 하지만 다시 하나의 원이 있고, 그 원에서 한 명이 나와 다른 한 명을 향한다. 이것이 바로 의 시작이다. 그리고 그 채워짐을 비움으로 바꾸는 움직임이 뒤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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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P] <사이>, <Knock Knock> 리뷰REVIEW/Dance 2019. 4. 24. 17:46
LDP 무용단의 작업들을 조금 단순하게 결정화하자면 ‘움직임들의 향연’이랄까. 많은 무용수가 대극장에 동원되며 그들은 제각각의 움직임을 추구한다. 이들은 어떤 비슷한 스타일을 간직하고 있되 자신이 가장 잘하는 방식으로 춤을 춘다. 곧 비슷한 스타일이라는 느낌을 주지만 그 안에서 자율적인 방식으로 움직인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듀엣이나 그룹으로 곧 확장되며 개별 움직임의 유려함들 역시 종합된다. 사실 이런 파편적인 움직임들은 순간적인 미적 표상이며 곧 사라짐이다. 이는 어떤 안무의 반복적 코드를 구성하는 단편이 아니다. 곧 끊임없는 움직임의 선형적인 나열에 가까우며, 움직임에 있어서 시간의 구조적 내러티브를 만드는 대신 어떤 스타일들이라는 느낌으로 수렴됨에 가깝다. 이는 어떤 주제 의식을 전제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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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 XXY, 〈여기에는 메데이아가 없습니다〉: 재현으로서의 표현REVIEW/Theater 2019. 3. 12. 15:14
▲ 프로젝트 XXY, 〈여기에는 메데이아가 없습니다〉 공연 사진 [사진 제공=두산아트센터](이하 상동) 두 가지 재현이 있다. 타자의 재현과 연극의 재현. 우선 배우들은 타자를 유형화하고 다시 타자를 연기한다. 곧 타자는 이방인이거나 여자이거나 장애인이거나 하는 식의 제한된 도식으로 한정된다. 연극은 스테레오타입적 편견으로서 타자를 불러들이고 이를 연기함으로써 편견을 복제, 재생산한다. 재현 이전에 재현이 있다. 한편 이는 오디션이라는 형태를 통해 각 배우의 역량을 시험/실험하는 표현형이 된다는 점에서 창의적 지지대가 되며 재현은 이제 재현을 하는 이, 재현에 접근하는 이 자체를 보여주는 것으로 변환된다. 연기를 통한 재현에의 접근은 경쟁과 평가의 규준에 따라 과도함을 향해 치닫고, 연극의 장식성은 극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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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애순 안무 <평행교차(Parallel Cross)>: 전유, 도상, 배치REVIEW/Dance 2019. 3. 12. 15:08
1.말의 감각▲ 안애순 안무 , 2018 창작산실 / ⓒ옥상훈 (이하 상동)‘동작과 동작을 잇는 것’, 다섯 명이 이를 수행하는 것, 단순히 말하면 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움직임은 무목적적인―그 자체가 목적인―동시에 미적인 기호나 코드로도 읽히지 않았다. 여기에 하나의 선언이 있다. 과연 드라마투르그 역할의 장혜진이 무대에 등장해 먼저 쓰인 춤을 동시에 다시 명명하는 행위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지만 여기서 말은 일단의 청각적 매체로 분류될 수 없고, 춤과도 엄연히 분리될 수 없다. 언어는 춤과 분리되는 매체가 아니라 춤을 규정하고 구성한다(이른바 ‘말은 감염의 매체이다!’). 움직임을 구분 동작으로 분쇄하고 어떤 구분 동작이 ‘~하는 것 같은’ 느낌을 자아내는 것으로서, 춤은 인식과 느낌의 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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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은정무용단 <매스? 게임!(MASS? GAME!)>: ‘포스트모던으로서의 혐의’REVIEW/Dance 2019. 3. 12. 14:56
▲ 장은정무용단 포스터거대한 높이로 쌓은 플라스틱 구조물 아래 제대로 제어되지 않는 신체의 대조는 작품 전반을 지배한다. 간간이 울리는 안정화(stabilizing)라는 경보는 강박적이고, 주체의 불완전한 포섭을 강제한다. 그러니까 이러한 신체는 매끄럽게 움직이지도 온전한 중심을 지지받지도 않는다. 사실상 이러한 가시적인 물리적 대비, 거대한 구조물과 신체의 부조응적인 조우가 드러내는, 시스템 아래 포획된 신체는, 중첩된 사운드 레이어로써 더욱 명확히 드러난다. 예컨대 일종의 신체를 육화하는 현과 그것을 뒤덮는 전자음악은 이런 두 층위를 간극으로서 드러낸다. 신체들은 일종의 게임의 룰을 따른 전자음악의 일정한 박자로 움직이고 라이브 리듬은 이것을 가르며 그 자체로 신체의 부분들로 자리한다. 한편 ‘가시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