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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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다페 2016 리뷰REVIEW/Dance 2016. 6. 10. 13:01
스코틀랜드 국립현대무용단, Dreamers 클래식 음악은 몸의 충동을 묶어두는 데 부족하며, 따라서 몸은 그것을 초과해 그에 적응하려 하는 듯하다. 이는 한편으로 클래식에 대한 일반적인 적응이라 할 수 있는 유연함의 안무 동작들에 대한 벗어남을 의도하는 것으로, 과잉된 움직임으로 음악을 전유하며 기존의 춤에 비평적 시선을 덧댄 것으로도 읽힌다. 또 한편으로는 음악은 강박인 동시에, 그 강박으로부터 분열되는 몸이 하나의 메시지로 드러난다. 샤론 에얄과 가이 베하르, Process Day 테크노 사운드에 따른 움직임은, 어떤 메시지를 담아내려는 의도가 없으며, 음악의 파장에 대한 움직임을 최대한도로 끌어올려 밀도 있게 움직임을 그에 적응하며 나타내는 간명한 안무의 방안이다. 테크노의 분절된 사운드가 몸의 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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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군인은 불쌍하다> '숨 쉴 구멍이 없다'REVIEW/Theater 2016. 4. 29. 16:20
작품의 제목에서 방점이 찍히는 건 '모든'이다. 거기에는 군인이라는 특정 계급/신분에 따른 명명만 있을 뿐, 결국 그것을 말하는 이까지 불분명하게 흐트리며 포함한다. 다만 피해자(에 대한 탄식과 연민)만이 존재할 뿐이다. 극 속에서 유일하게 아들과 같이 자리하는 (탈영병의) 아버지는, 탈영을 한 아들과의 대면에도 태연하다. 아들이 어디에도 설 자리가 없다는 것, 코너에 몰렸다는 것, 그가 잠시 사회로부터 이탈된 채 공기처럼 부유하고 있다는 것에 맞서 어떤 초조함도 없다는 것은 어떤 사회의 외부도 상정하고 있지 않음을 의미하는 듯하다. 자신이 하나의 매체로서 전화를 받고 그것을 매개하는 것, 층간소음이 발생했을 때 으레 그에 대한 불만이 접수되고 나서 그것을 다시 전달했음을 알리는 것으로 사건을 종식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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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나이> 시선의 정치학/미학REVIEW/Dance 2016. 4. 29. 13:04
▲ [사진 제공=국립극장](이하 상동) 공연은 호세 몽탈보의 시선과 몸이 겹쳐져 있다. 이는 국립무용단의 움직임에 대한 관찰로부터 포착된, 그리고 몽탈보의 움직임을 무용수들이 전유한, 두 가지 결은 시선의 층위를 각각 몽탈보와 관객으로 달리 분배한다. 그 결과 몽탈보의 시선에 딸려 들어갔다가(소환됐다가) 몽탈보가 머금지 못한 (몽탈보로부터 비껴난) 시선의 나머지를 보게 된다. 이런 측면으로 인한 문화 차이의 간극은 어색한 옷을 입은 것 같다는 느낌을 언뜻 주는 일면이 있다(어떻게 우린 몽탈보를 통과할 것인가, 혹은 어떻게 이 관문을 몽탈보는 통과할 것인가의 물음을 낳는다). 여기에 영상과 음악이란 레이어는 움직임을 이미 선취하거나 다른 차원에서 개입한다. 가령 대도시의 삶을 떼를 지은 새들의 모습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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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제국> 침묵과 어둠의 말-짧은 노트REVIEW/Theater 2016. 4. 29. 12:53
▲ [사진 제공=국립극단](이하 상동) 시종일관 전면에 투사되는 영상은 등장인물들의 일상을 클로즈업으로 잡고, 도시 풍경을 비춘다. 그것과 대비적으로 회색빛 무대와 인물들의 의상은, 건조한 사무 공간, 그리고 그것에 연장돼 그 속에 위치한 텅 빈 공간에는 말의 자리가 주어진다. 테이블을 둘러싸고 앉은 인물들은 각자의 시선으로 말을, 또 영상을 관찰하고, 그 말은 청자를 비껴나며 공허하게 공간에 울린다. 도입부에서 나온 샤워 실에서 이를 닦는 모습에서 소리는 영상의 바깥, 소리가 울리는 공간의 크기를 상정했다. 그러나 이후 영상의 소리는 단락되고, 다만 그건 여느 일상의 이미지 정도의 지위로 추락한다. 거기엔 관찰하는 이의 거리 두기와 함께 반복의 영원이라는 숙명이 쓰인다. 영상은 말이 없는 한편 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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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에이티브 바키 <그녀를 말해요>, '입체적인 복원과 정치적인 호명 사이'REVIEW/Theater 2016. 4. 29. 12:43
크리에이티브 바키, 대화의 기술/정치 비트겐슈타인은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침묵하라라고 했다. 이는 에서는 윤리적 심급으로 적용된다. 배우들은 세월호 유가족을 보고 들으며 그들을 우선적으로 연극적으로 '체현'하는 한편, 죽은 아이들에 대한 그들의 기억을 그들의 말이 아닌, 유가족을 통과한 목소리에 '접근'해 간다. 처음에 유가족에게 던진 다양한 질문을 답변에 대한 시간 없이 계속 이어 붙이는 장면은 유가족에게는 대단히 폭력적이고 무식한 행동인 듯 드러난다, 그들이 경황이 없는 가운데 그러한 생각을 종용하는 것과 같은. ▲ 공연 사진[사진 제공=남산예술센터](이하 상동) 마치 세월호 유가족을 연극을 위한 소재적 착취로 가져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이 행동 이후, 곧 이어 장수진 배우가 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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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티벌 봄, <셰익스피어 니즈유>(빌리 코위); 제작 방식 자체의 구현REVIEW/Theater 2016. 4. 7. 07:21
_공연 ⓒBilly Cowie 빌리 코위의 공연은 사실 하나의 공연 형식으로 엄밀히 파악되기보다는 하나의 공연을 만드는 과정의 방법론 자체에 더 방점이 찍힌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는 (유럽 컨템퍼러리의) 좋은 작품을 들여오(고 이로 인해 예술 담론도 함께 주장/선언하)는 데 방점이 찍힌 초기 페스티벌 봄에서 어떤 작품을 콘텐츠화하는 데 있어 국내 예술 환경과 결부해서 그러한 작품의 살아남기 자체를 시험/실현하는 방식 곧 마치 지금 페스티벌 봄의 전혀 다른 기조가 징후적으로 이 작품에서 체현된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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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P무용단, <Nerf>/<나는 애매하지 않습니까? 당신에게>REVIEW/Dance 2016. 3. 22. 18:32
▲ ⓒBAKI "인간의 두려움을 인지하는 뇌와 그 인지 내용을 근육에 전달하는 매개체로서의 '신경'"을 뜻한다고 하는 '네흐'를 제목으로 한 는 '두려움'이라는 생래적 감정을, 그러한 상황에 놓인 인류를 괄호 친 뒤, 체현한다. 감각적인 몸의 표출과 그것의 내용이 갖는 합목적성을 합치시키는 차원에서 인간의 시초와 변천사가 두려움이라는 하나의 전제를 가정하는 가운데 펼쳐진다. 이는 개인의 복잡다단한, 감정과 관계의 측면에 집중을 요하는 대신, 파국적인 상황에 몰린 각자 도생의 인류 차원에서 절박한 몸짓의 표현이 눈앞에 펼쳐짐을 가능하게끔 만든다. 긴장 어린 사운드는 이내 군중 속의 한 명으로, 군중 자체의 무의식으로 빨려 들어가게끔 한다. 군중에는 개인 내재적인 파열이 모두의 이름으로 쓰이는 상황이다.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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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익정 <스폿>: 선명한 체험은 어디에 놓이는가REVIEW/Interdisciplinary Art 2016. 3. 22. 18:24
공연의 무대는 전시가 열린 우정국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는데, 관객은 무대와 공간 사이의 틈에 끼인 형국이 된다. 공간 활용도가 매우 높은(?) 무대 세트라고 할 수 있는데, 이를 통한 관객의 체험은 매우 직접적이며 무대와의 거리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없게 만든다. 비계 구조로 짠 견고하고도 임시적인 설치 구조물은 뒤쪽에서 앞쪽으로 급한 경사가 지어져 있고 전체를 나무판자로 감싸 퍼포머들이 위아래로 급격히 또 빠르게 오르내리는 흐름을 만들어 낸다. 작가의 유년기 어떤 원장면적인 체험으로부터 비롯된 작업임이, 작가가 관객을 등지고 관객과 괴리되며 동시에 관객의 시선을 대리하는 중후반 지점에서의 작가의 대사로부터 비로소 드러나는데, 그렇다면 처음부터 빠르게 무대를 뛰어 내려오는 그리고 이어서 한 명에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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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현듯, 부아가 치밀 때가 있다>: 붙박인 공간에서의 영속된 현대인의 흐름REVIEW/Interdisciplinary Art 2016. 3. 22. 18:18
▲ [사진 제공=Beta Project] 극 초반 일상을 포착한 풍경들과 극이 끝난 이후 사람들을 인터뷰한 영상이 수미상응을 이룬다고 할 수 있다. 곧 이 작품은 삶으로부터 튀어나온 것들을 재료화하며 그 결과 삶의 목소리와 얼굴로 극을 전경화하며 삶과 다시 작품을 결부시키는 것이라 하겠다. 이는 삶의 재현이라기보다 삶에 틈입하는 시선 자체를 부여하는 것으로 보인다. 무대는 여러 일상 공간의 레이어가 연결되어 중첩되며 그 속에서 사람들은 우에서 좌로 이동하며 단계적으로 일상의 제의들을 밟아 나간다. 그러한 시간의 경과에서 행위들은 매우 너저분한 일상 풍경을 만들어낸다. 불특정한 인물의 유형들로 현대인이라는 하나의 전형들을 만드는 묘사적 풍경은 공간의 중첩을 통해 지속되는 동시대의 솔기를 보여준다. 극에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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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인페스트 '퍼포먼스의 유동적이고 느슨한 짜임의 플랫폼'REVIEW/Interdisciplinary Art 2016. 2. 4. 18:45
하루 동안 문래예술공장에서 열린 '나인페스트'는 '1'이란 시리즈 첫 번째로서 이후 잠재된 기획의 기표와 함께, '서바이벌'이라는 부제가 더해져 있었다. 9팀이 협업을 통하거나 전체적으로 맞물려 진행되는 상황이 '서바이벌'에서의, 경쟁보다는 생존의 의미를 존속시켰는데, 여기서 '서바이벌'은 하나의 시공간을 공유하는 관객 전체로의 확장적 경험의 의미로 재전유된다고 볼 수 있었다. ▲ 나인페스트 공연 ⓒ박수환[사진 제공=아이디언](이하 상동) 가령 이로경 작가의 은 입구 반대편에 설치되어, 물 웅덩이에 발을 담군 성수연 배우가 간헐적으로 즉흥적 대사를 쏟아내거나 했고, 이로경 작가는 초반 이후 투입되어 이를 영상으로 매개하는 과정이 3시간 내내 진행됐다. 그리고 물과 연결된 음향을 공간 전체로 분사하는 박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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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진 <안무사용법>, '기본'의 의지적 적용REVIEW/Dance 2016. 1. 29. 02:00
▲ 조용진 안무 공연 모습 [사진 제공=국립무용단] (이하 상동) '기본'을 '현재(라는 의식)'에 출현시키고 음악에 적용하며, 또 춤을 추는 과정 자체 안에서 발현되게 하는 과정으로서 안무를 '사용'하는 법은 주로 따라 하기라는 중간 단계를 거친다. 선글라스를 낀, 표정을 소거한 존재들로부터 상호 닮음이라는 기초적인 동작들이 나오는 긴 인트로 쯤을 지나, '기본'은 매일 익히고 반복 숙달하여 이미 몸에 익은 것으로 기호화되며, 이는 중간 중간 출현하며 그 사이를 메우는 따라서 그것을 분절하는 따라 하기를 비롯한 수많은 동작들이 존재하고, 또는 '기본'을 한 사람이 수행하는 가운데 다른 한 사람의 빈 시간은, 상대방의 몸짓을 잇고 자신의 몸짓으로 기본을 궁구하고 새로운 동작들로 그것을 연장하는 과정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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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장현 안무 <칼 위에서>: 제도-현실 비판의 외양 아래 이는 파열음REVIEW/Dance 2016. 1. 29. 01:57
▲ 류장현 안무 공연 모습 [사진 제공=국립무용단] (이하 상동) 검은 옷으로 얼굴부터 전신을 가린 개성을 탈색한 이들은 관객 한 명 한 명을 객석에서 무대 위로 소환해 이 시대의 캐치프레이즈들과 대면시키고 그것을 들고 있게 하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이들이 좇는 건 잡히지 않고 달아나는 달(스포트라이트)인데, 이는 객석에 흰옷을 입은 이(무용수)를 무대에 불러내 신성한 제물로 삼고 그녀가 광기로 폭발하는 가운데 모두가 검은 옷을 벗어 하얀 옷으로 한판 굿을 크게 하는 것까지가 비교적 단순한 공연의 전반적인 구성이다. 피켓 시위와 밑에 길게 늘어뜨려진 걸개그림은 이곳이 원래 열린 극장이라는 사실과 밀접한 연관을 맺는다. 통제되지 않는 에너지는 각자의 춤에 자율성을 안긴 안무 방식인 동시에 공간을 최대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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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 SO TIRED>(아임 쏘 타이어드), '비주체들과 주인공'REVIEW/Dance 2016. 1. 22. 10:34
공연 사진후반 3호선 버터플라이의 보컬 남상아의 거의 독무대로 기록할 만한 '스모우크 핫 커피 리필' 부분은 기존 연주와는 달리 특이하게도 밴드가 어느 순간 개입되지 않으며 마치 하나하나의 음절이 드럼부터 시작해 베이스, 기타로 나아가는 단계들을 누락하며 그것으로부터 벗어난다. 곧 보통 음악이 무용 작업에서 배경음악으로 쓰이는 데서 벗어나서 이 무대의 수많은 움직임들에 대한 주체의 서사를 주인공으로서 그제야 기입한다. 마치 그녀가 커튼콜에서 다른 무용수들과 한 무대에 서서 박수를 받을 수 있는 이유다. 수열로 이뤄진 장애물들을 뛰어넘기라는 정형화된 공식으로부터의 이탈과 그와 동시에 생겨나는 결과물인 환락을 무대 중심에 올린 이후, 음악은 무대 전체에 스피커를 통해 투과하는 한편 마찰음들을 통해 그 자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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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일치>, '분배된 주어라는 문제'REVIEW/Visual arts 2016. 1. 22. 10:24
포스터 [출처: 가변크기 페이스북] 제목이 가리키듯 이번 전시는 결과의 제시 측면보다는, 과정에서 결정되지 않은 상태에 대한 초점을 묘사하는 데 방점이 찍힌다. 사실상 우정을 전제로 한 여러 명의 논의자가 하나의 합의로서 전시를 완성해 나가는 과정은 크레디트의 명기와 드러나지 않는 아티스트 피의 합리적인 적용의 합목적적인 과정의 일환으로 수렴된다. 어떻게 보면 작업의 결과는 이미지가 아닌 그것을 구성하는 모든 것의 결과이자 작가의 이름값에 다름 아니다. 거기에 더해 작가의 참여했다는 나아가 합의했다는 의식이 결과로 나타난다. 그리고 이러한 결과의 합리적인 분배로서, 노동과 역할에 대한 정당한, 동시에 모두가 납득/이해 가능한 비용 산출/책정은 지원금 내에서의 삶/생존의 모색이란 하나의 전제에 포섭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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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연시', 비워진 전시장을 채우는 퍼포먼스REVIEW/Interdisciplinary Art 2016. 1. 22. 10:13
지하의 정세영 작가의 냉장고 폴 댄스는 우스꽝스러움과 숭고함을 기이하게 엮은 작업이다. 냉장고를 통해 들리는 소음을 증폭해, 일상 감각을 이화시키는 한편, 계속적으로 문이 열리고 닫히는, 그래서 사실상 반만 열린/닫힌 냉장고의 빛은 온전하지 않은 시각으로 거대한 소리의 몸체 일부를 이루며 (그 시각을 비롯해) 파악되지 않는 숭고함/기괴함을 이룬다. 정세영 작가는 전시에서 마치 작가로서의 지위 자체까지를 소거하는 듯하며 이는 일견 최승윤 퍼포머를 송주호 작가의 작업과 잇는 영상으로 수행적 과정물의 일환을 담당하는 것에서 완결되는 듯 보인다. 일층 최승윤 안무가의 작업은 주변 사람들로부터 증여받은 옷들을 늘어놓고 관(람)객이 마음에 드는 옷을 골라 탈의실 용도의 간이 시설에 들어가 갈아입고 10초 타이머 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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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메테우스>: 고전을 더하고 빼며 현재에 비뚤어매기REVIEW/Theater 2016. 1. 10. 14:46
▲ 공연 모습 [사진 제공=산울림소극장] (이하 상동) 이 극에는 두 가지 응결 지점이 있다. '힘과 폭력의 시대에 미래의 정의가 그것을 심판할 것이다' 하고 곧 이어 등장하는 '이 모두는 흙으로 뒤덮이게 될 것'. 전자가 지금 현 시대를 반영하며 그에 대한 무력함을 은폐하고 저항의 기치를 올리며 쾌락을 관객에게 수여하는 전언 형식의 너무 가까운 말이라면, 후자는 모든 존재를 필멸의 삶으로 바꾸는 불멸의 역사라는 존재에 맹목의 심판을 유예하는 너무 먼 말이다. 역사라는 평평한 땅에서 모두는 평등한 이름으로 묻힐(호출될) 것이라는 이상은 (민중을 가로지르는) 정의의 심판론보다는 오히려 더 낭만적이다. 하지만 거기에는 프로메테우스의 본질적 존재론이 자리한다. 곧 그는 역사에의 어떤 의지 그 자체다. 순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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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황주 안무 <Contact변태>: 시선과 말의 부재 혹은 과잉REVIEW/Dance 2016. 1. 10. 14:22
'몸의 새로운 내러티브' 공연은 작은 삼각형 바닥으로부터 점점 넓어지는 식으로 또 조명의 변화에 따른 어둠에서 빛으로 공간의 감각적인 부분이 확장되며 열려 가는 구조를 띤다. 세 퍼포머의 구도는 대칭적으로 짜이는데, 이는 작은 삼각형 구도를 하나의 유일한 움직임 공간으로 상정하고 있기 때문이며, 이는 상징적인 도상 기호로 작용하거나 오직 미적인 안무 기호를 창출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다. 여기서 발생하는 마찰은 그러한 셋의 움직임 도식이 원활하게 작용하지 않음을 가리키며 그것은 다시 이 공간의 협소함, 그리고 그것을 지켜야 하는 암묵적 규칙에 따른 비평적 시선이 곁들어 있음을 의미한다. 의식 없는 신체들의 마찰과 그로 인해 촉발되는 단말마적인 신음이 보여주는 무의식적 저항의 기제가 곧 각자의 공간 속 움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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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분의 1초>, ‘넘어짐의 기술’로부터REVIEW/Dance 2015. 12. 22. 19:03
▲ 연습 컷 @ 프로젝트 뽑기 이 작품은 전체적으로 '넘어짐의 연습'에서 '걷기의 육화'로 나아가는 과정 전반을 그린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표현 과정은 매우 자유롭고 또 구체적인 한편, 일종의 일반적인 신체 자세와의 상관성으로 현실적인 감각과 밀접하게 연관된 부분이 있다. 그럼에도 뗄 수 없는 맥락의 초점은 '세월호'라는 것으로, 공간 자체의 흔들림, 어떤 하나의 좁은 공간의 상정 등으로써, 지난 작품에서 어둠이 켜지며 눈을 덮는 것과 같이-곧 어둠이 있기에 눈을 감는다가 아닌 눈 자체로 어둠이 옮겨간다- 잠겨가는 신체에 대한 유비가 마지막을 장식했던 것의 연장선상에서, 현실의 맥락이 투여, 연장되는 바 있다. 메리홀의 무대와 객석 사이를 무대로 재구축해, 벽의 질감이 평면으로 곧장 들어오고 그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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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무용단 <여전히 안무다>REVIEW/Dance 2015. 9. 16. 12:30
대부분의 안무가들에게는 텍스트와의 길항 작용이 느껴졌다. 이는 ‘실험실’이라는 진공의 비움직임적 장소에서의 생각들의 나눔이 나은 하나의 결과로 볼 수 있는 부분인가? 어쨌건 간에 두 시간을 전후로 나눈다면, 점점 흥미진진해지는 전반전에서 후반전은 꽤 지루해졌다. 그 정점은 아마 윤자영의 의 후반부 이후여서였을 것이다. 진향래 안무가는 객석 입구 들어가기 전 로비에서 관객을 줄 세우고 좁은 텐트 안으로 통과시키기를 종용한다. 극장을 소수를 위한 매우 좁은 문으로 바꾸고, 정신없는 요설로 관객을 안무화한다. 곧 여기에는 안무도, 고정된 관객도, 극장도, 아무것도 없다. 무대 역시 없고 다만 가상의 우주여행을 하는 상황으로 퍼포머를 관객의 자리로 바꾼다. 정신없는 중계 상황은 혼란스런 카메라 워킹으로 연장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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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무사회] <줄자 - / 정류장> 배치적 안무의 동적 역학REVIEW/Dance 2015. 9. 13. 03:34
무대에 놓인 정렬된, 무용수 둘이 갖고 잇는 사적 소유물들의 일종의 아카이브는, 그의 삶을 구성(한다고 판단되게)하며 (삶을 축소 재현하고 은폐한다) 그 하나의 배치된 사물들이 놓인, 정박된 장소성으로부터 그들은 그 물체의 쓰임과 결부돼 일상의 행위를 재현한다. 가령 양치를 한다거나 하는. 노경애의 작업은 사물과 결부된 신체의 배치를 통해 사물이 주는 어포던스 감각을 시현하는 한편, 신체를 사물화하는 극도로 일시적인 순간의 실험을 감행하기도 하는 편인데, 맨 처음 놓인 장면은 그 전자에 해당하고, 이후 이뤄지는 장면은 후자에 해당할 것이다. 두 남녀의 분별된 성의 차이는 가령 여성 무용수가 줄을 감는 행위를 마저 다 하지 않아, 단지 그 사물을 어떤 관객이 인지 가능한 프로그램화된 행위의 일부로서 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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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미래 개인전: 삼합, 발효의 연식술>: 산포하는 카오스와 상징적 정렬 사이에서REVIEW/Visual arts 2015. 9. 13. 03:20
[사진 제공=미메시스 아트 뮤지엄] 전미래 작가가 안무한 퍼포먼스는 해골들이 엮여 만다라 기호를 이루는 거대한 벽면(의 그림) 앞에서 이뤄진다. 검은색과 흰색의 남녀 무용수는 접합되지 않고 균열을 일으킨다. 숨소리가 거칠게 상승하며 파열적 양상으로 확장될 때 결정적으로 남자의 입 꼬리를 타고 오르는 희열의 웃음은 악마를 떠올리게 한다. 이것이 의식적이라면 반면 여자는 눈을 뜨지 않은 채 자신을 끊임없이 삼키려 하는 어둠으로부터 침범되지 않고서,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들로부터 그저 무감한 듯한 인상을 주는데, 이러한 무지의 무의식은 부처의 정자세를 취함으로 자연 돌아간다는 점에서 속에 대비되는 성聖의 도상이 된다. 전미래 작가는 그 둘을 둘러싸고 한 박자에 가볍게 손뼉을 한 박자에 한 발을 내딛는 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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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형제다> 무엇에 대한 테러인가?REVIEW/Theater 2015. 9. 13. 03:08
사건의 재현 아닌 허구적 재생 장치의 내파 ▲ [사진 제공=세종문화회관] (이하 상돌) '나는 형제다', 곧 '나'를 일부 나와 유전자를 공유하는 혈연 공동체의 일부로 정의하는 이 말은, 나와 너의 공속 불가능성에 대한 가능성을 유예한다. 운동과 공부라는 스테레오타입의 구별로써, 또한 성격과 외모로써 그 차이를 선명하게 하는 형제의 모습은, 따로 또 같은 ‘더블’로 대칭 쌍을 이룬다. 그리고 이들은 실제 어둠보다는 사막에서의 생존의 은유가 더 분명해 보이는 고독한 방랑자로서, ‘살아남기의 방식’을 ‘함께 살아가기의 이상’으로 확장해 나간다. 곧 ‘형제에의 숙명’을 ‘형제로의 사명’으로 전치시킨다. 이 과정에서 적대적인 세상과의 관계로부터 나아가, 모두가 형제가 되(어야 하)는 넓은 범주의 ‘형제’ 개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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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djf studio x qhak, 이미지와 나 사이에 레이어와 시선을 한 겹 더하다REVIEW/Visual arts 2015. 9. 4. 02:17
사본1/n 2014ⓒ fldjf 박보마 작가가 비디오 릴레이 탄산에서 선보인 영상 작업은, 실은 다양한 이미지들을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프레젠테이션 형식의 수행적 퍼포먼스 차원에서 보였고, 한편 그 각각의 이미지들은 숫자가 섞인 독해하기 어려운 완벽하지 않은 문장을 이루는 단어들과 함께 나타났는데, 시간과 포토샵 이미지라는 하나의 디지털 매체의 조건 아래 객체 측정의 단위들이 표시되어 일종의 작품에 대한 메타 데이터로서 작품을 지정해주면서 그 낯선 단어들에는 어떤 화자의 순간적 감정의 데이터가 함께 들어가 있었다. 다른 한편 그 이미지를 보여주는 방식은 ‘wix’라는 (페이지 전환 방식이 아닌 끊어짐이 없는, 일종의 파피루스식 읽기를 가능하게 하는) 스크롤의 변신으로 생성되는 홈페이지라는 매체 조건 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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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송, ‘누가 무엇을 보내는가’의 물음REVIEW/Visual arts 2015. 8. 26. 16:59
장소 특정적인 작업과 공간 임대적 작업 사이의 어떤 파생 지점들 ‘동송’이란 원래의 지명을 새로운 동음이의어로서의 의미를 부여하며 재전유한 것으로, 함께 보낸다는 뜻이다. 여기서 그 주체를 무엇으로 상정하느냐는, 언뜻 커뮤니티 아트로도 보이는 이번 프로젝트를 그러한 기준 아래 가늠해 볼 수 있으리라 보이는데, 곧 그 주체가 ‘작가들’이며 그 과정상의 자의적 경험을 (충족시키는 것으로 충분함을) 의미하는지 혹은 마을 전체로 확장된 어떤 이상적 개념을 상정하는지가 이를 통해 드러난다. 한편으로 그 ‘보낸다’는 것이 일종의 매체적 전달 과정을 상정하며 따라서 어떤 메시지를 가정한다면, DMZ를 함축한 동송이라는 지역에 보내는 메시지를 또한 가정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한 마디로 ‘함께’라는 이상적인 의미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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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경, <평화 가라오케> 구성되며 현동화되는 공연REVIEW/Interdisciplinary Art 2015. 7. 27. 16:40
ⓒRanda Mirza 는 즉흥 신체 연기를 하는 배우의 존재를 관객에게 체현한다. 관객은 스크린을 보며 동작을 묘사하는 섭외된 배우가 인이어 이어폰에 의한 청취를 모방하는 것까지를 본다. 배우로서는 귀에 들리는 스크린의 소리와 앞 스크린의 반전된 영상을 바라보며, 언어와 행위의 차원에서 그 둘을 합치시켜야 한다. 언어와 행위라는 ‘이중의 따라 하기’는 시차를 생산하는데, 그것은 현재 즉각적으로 벌어지는 것임을 확증하는 중요한 요소다. 모방/재현으로서 연기는 거울 뉴런적, 인지적 반응에 의한 것이고 관객을 그것을 간격으로 감각적으로 인지하게 된다. 곧 ‘연극은 상연되고 있음을 숨기지 않는다.’ 연극은 지연된, 아니 즉각적 반응으로서 신체를 우리가 매우 즉각적인 시차로 그것과 합치시키려는 노력(?)에 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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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가족> 희극적 전략 속 냉소적 우의REVIEW/Theater 2015. 7. 27. 16:30
▲ 포스터 에서 ‘안전가족’은 이데올로기 개념으로 사용된다. 가족이 사는 집이 안전한 만큼 바깥은 불안전함을 시사하고, 그러한 가족을 건사하기 위해서는 바깥에 나가면 안 된다(는 신화를 구성한다). 단지 가장만이 외부 출입을 할 수 있으며 나머지 가족은 그 선을 넘지 못한다. 그리고 이 가족은 가부장적 위계에 의해 집에서 엄금된다. 밖은 불안전한 것일까. 바깥과 단절됨으로써 언어는 해체·재조립되고 사회의 언어 규약을 따르지 않게 된다. 애초 아이들은 라디오(미디어)를 통해 이상한 언어의 쓰임을 하달 받고 있는데, 우리가 아는 일상 언어에서의 기표와 기의의 불일치가 전제된다. 가령 ‘오토바이=박수’라는 식으로, 바깥과의 관계 맺기가 부족한 가운데 외부의 생명체로서 고양이 역시 핵폭탄이 된다. 하지만 기표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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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희, <감각의 권리>: '감각' 에 대한 (메타) 실험REVIEW/Interdisciplinary Art 2015. 7. 27. 16:19
▲ 김준희, ⓒ 옥상훈 막에 감싸인 무대는 밀폐된 일종의 실험실이자 하나의 공유하는 환경을 이룬다. 앞에서 모여 숨을 들이마시는 동작 혹은 공동의 안무임을 지정하는 동시에 감각 자체에 대한 분별이다. 곧 춤(이 다할 수 없는 감각에 가까운 무엇)을 보여준다. 그러기 위해 곧 모여 숨을 쉰다는 행위만이 펼쳐진다. 하나의 울타리로 놓인 공동 환경이 여기에 작용한다. 여기에 팬티만 입고 소리를 질러대며 서로를 이유 없이 때리며 뛰어다니는 소극을 연출하는 광경 등이 이어지기도 한다. 이는 일종의 논-댄스로 보이기도 한다. 안무화되지 않는/될 수 없는 움직임들을 전개하는 것, 한갓된 몸(것)이 나타나는 것, 감각의 권리는 그렇게 보면, 보는 것이 아니라 만져지는 것, 생생하게 나타나는 것으로서 춤이 아닌 것을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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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 곤조, <아라네스프의 시간>: 주체의 영점에서REVIEW/Interdisciplinary Art 2015. 7. 27. 15:56
▲ 게이 곤조 ⓒ게이 곤조사각 링 안에서 관객은 일종의 환영을 본다. 주변의 네 개의 천은 바람에 따라 유동하며, 거기엔 조각배를 저어나가며 비치는 네 개의 분절된 입체 풍경이 투사된다. 이 영상은 그러니까 바람에 천의 유동을 반영한다. 영상은 같이 흔들린다. 우리는 영상에서 잠기지 않는 주체의 자리, 흔들리는 지점에 있으며 바람의 기울기가 시각화하는 풍경에 따라 정위할 수 없는 몸을 환영적으로 인지한다. 바깥은 그렇게 담긴 채 열려 있다. 과거의 재현적 시간이 영상으로 인해 현전된다. 여기에 바깥의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가 그 환영적 공간의 틈새를 뚫고 다다르는데 이는 내면의 소리로 전이되기 위한 듯 보인다. 흘러가는 흐름을 통과하는 감각만이 있다. 말은 물결과 바람 속에 휩쓸려 간다. 그러면서도 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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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다페 2015 리뷰: 특기할 만한 몸짓들, 현재 유효한 질문에 대한 질문REVIEW/Dance 2015. 7. 1. 11:21
스펠바운드 컨템포러리 발레단의 는 하나의 작은 큐브를 가지고 사계절의 변화와 그 속에 존재들의 관계를 구현한다. 커다란 무대는 작은 하나의 무대이자 공간인 큐브에서부터 시작되며 큐브로 돌아간다. 큐브에서부터 확장되며 큐브로 압축된다. 이 큐브는 입체적이고 모서리가 비대칭적으로 깎여 나간 다변형의 구조로, 계절의 분기에 맞춰 위치를 달리한다. 매우 변화무쌍한 건축적 구조물은, 그럼에도 유선형이 아닌 직각적이고 평면적으로 공간에 상정되며 이와 합치되려는 움직임들은 다분히 딱딱해지는 경향이 있다. 어쩌면 이는 수직 축을 유지하며 그것을 은폐하는 유연함의 몸짓들과 전체적인 활강의 동력을 가져가는 발레를 공간 안에 결부 지으며 다소 더뎌지는 흐름으로 인한 탈은폐의 측면일지도 모른다. 개막작인 만큼, 사계절의 화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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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미숙 <Amore Amore Mio>: 반복의 적층과 순간의 영원REVIEW/Dance 2015. 7. 1. 10:12
막이 오르기 전, 전미숙 안무가의 솔로 무대는 그 자체로 하나의 막이 되어 갔는데, 가령 둥글게 말아 흩어지지 않는 무거운 몸짓의 원환은 어떤 하나의 무게이자 몸으로, 막이 오르기 전에 무겁게 어둠으로 녹았다. 이는 이후 펼쳐진, 화려한 무대의 와 대칭을 이루며, 수많은 문들로 이뤄진, 그러나 그것들은 소통 불가능성으로 소급되는 각각의 모나드들로, 그것들이 만든 가상의 세계 그 문을 열었을 때 마치 그것들 모두가 해체되어 산화되는 것과 같은, 그 빛의 심핵을 건드리고 있는 듯했다. 전미숙의 솔로가 삶의 솟구치며 다져진 이야기의 주름, 그 궤적이라면, 는 그 찬란한 표면의 입자들이었다. 이 분자적 진동을 가리키는 가장 명징한 기호는, 결국 처음 무용수들이 들고 온 찻잔 위의 컵이 떨리며, 자신의 움직임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