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
〈sŏnans〉, 라이브니스 안에 산포되는 협업의 형상REVIEW/Performance 2021. 7. 22. 08:33
〈sŏnans〉는 「오이디푸스 왕」 이라는 희곡이 가진 서사 전개는 희미한 가운데, 박한결의 여러 작업자와의 문어발식 네트워크의 실현이 공연을 이룬다. 또한 〈sŏnans〉는 공연을 만드는 과정에 집중하고 있음을 전시하는데, 이러한 현재성의 명백함은 그 중간마다 삽입되는 자막을 통한 주요한 「오이디푸스 왕」의 플롯을 일종의 고정된 뼈대로 지시하는 동시에 그 바깥으로 마구 튀어나오는 자신의 위치를 결정지으며 그 둘의 위계를 전도시켜 버린다. 「오이디푸스 왕」 안의 플롯들은 각 장의 창작자들이 등장하는 시공간 사이의 간주 구간이 된다. 실상 이런 어둠 속 자막은 창작자들의 극장 대기 공간에서부터 극장 안으로 그들 한 명 한 명이 등장할 때 카메라로 중계되는 형식인, 각 창작자의 동일한 등장 방식을 통한 환기..
-
〈자연빵〉, 징후적 주체, 전윤환의 자기만의 방REVIEW/Theater 2021. 7. 16. 11:47
코인 열풍의 막차에 탑승해 전 재산을 투여한 자신의 실화를 바탕으로 실제 하루치 관객 수입의 동시 투자와 함께 진행하는 전윤환의 수행적 연극인 〈자연빵〉은, 전윤환의 삶의 불순물들을 매끄러운 짜임으로 구성하는 대신 단순히 시간을 축적하는 식으로 흘려보낸다. 달리 말해 전윤환은 여러 파편적 화두에 관한 자기 생각들을 본인의 의식의 흐름인 양 제시하는데, 이는 하나의 내러티브로, 완결된 인물로 구조화되지 않고, 단지 전윤환이라는 인물의 역사, 곧 개인사로 자리하게 된다. 따라서 전 작 〈전윤환의 전윤환_자의식 과잉〉(2020)은 오히려 혼자 무대를 누비는 〈자연빵〉에서 온전히 수행된다. 엔딩 크레디트는 올라가지 않지만 관객이 자리를 뜨게 하는 마지막 엔딩 곡, 허정혁의 ‘알지 못한 채’의 가사는 이 극을 적..
-
국립현대무용단의 ‘그 후 1년’, 팬데믹 이후 어떤 예술의 양상들REVIEW/Dance 2021. 7. 16. 11:34
국립현대무용단의 ‘그 후 1년’은 2020년 국립현대무용단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공연이 취소되고 일 년 후에 재개한 의미를 담고 있다. 이러한 제목은 팬데믹이 어느 정도 공연의 판도를 변경시키고 다르게 만들었는지, 1년의 경계가 얼마나 확연하게 관객되는지를 관객 역시 공유하고 있음을 전제한다. 각기 다른 세 개의 공연은 이러한 환경에 맞추어 그 매체 자체가 변경되거나(〈승화〉) 또는 직접적인 팬데믹 환경을 알레고리로 하거나(〈점.〉) 그것과 결부 지어 예술의 조건을 의제화하는(〈작꾸 둥굴구 서뚜르게〉) 등 그 대응의 정도가 모두 다르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예술의 대응들을 볼 수 있다는 차원에서 ‘그 후 1년’을 보는 하나의 시점을 구성할 수 있을 것이다. 랄리 아구아데+백종관, 〈승화〉 〈..
-
술술+실천+비평(오정은)REVIEW/Visual arts 2020. 8. 20. 16:43
술술+실천+비평(2019)오정은 (미술비평)blog.naver.com/aquablue_0 다른 개인나는 지금 문래동의 한 건물 앞에 서 있다. 「문래 술술랩」(이하 「술술랩」)으로 이름하게 된 지하 1층, 지상 5층짜리 건물의 문 앞이다. 용도를 다한 낡은 건물이 영등포문화재단의 으로 한 달여 동안 예술가의 공유지로 사용된 장소가 「술술랩」이다. 나는 한 기획자의 소개로 한 달 전 이 공간을 처음 만났다. 노래방 업소로 운영되던 흔적이 역력한 지하 1층, 남은 간판과 구조로 보아 작은 식당과 주차장이었을 지상 1층, 그리고 고시원이었을 2~5층이 집기류의 온전성과 청결, 수도와 전기를 잃고 예술이라는 국면을 기다리고 있었다. 2층부터 5층까지 기획자 네 명이 한 층씩을 맡아 창작자 몇 명을 공모하거나 섭..
-
이해반, ‘가변적 풍경을 직조하다’REVIEW/Visual arts 2020. 3. 16. 19:02
Intro ▲ 이해반, 한탄강(작업 세부), 2014. 리넨에 오일, 오리엔탈 잉크, 제소, 193.3×130.3cm. 서구/근대의 풍경(화의 탄생)은 대상과의 적당한/안전한 거리를 통한 시선의 지배를 전제한다(‘조망의 시선’). 반대로 동양/전근대의 풍경(화, 가령 산수화로도 불리는 그림)은 대상과의 마주침과 뒤섞임을 가정할 수 있었다(‘함입의 시선’). 풍경에 대한 이분법적 도식은 동시대에는 풍경과 주체의 복잡한 역학 관계, 곧 세계를 보는 또는 세계에 위치하는 특정한 주체의 방식으로 다시 성찰될 수 있다. 풍경으로부터 사라지는 주체(에 대한 비판)이거나 실재로서의 풍경이 주는 기호(에 대한 긍정)이거나 풍경은 이제 투명한 가시성이 아니라 세계를 보는 하나의 알레고리이자 당대(의 시각적 사유)를 일별..
-
[SIDance 2019] 휴먼후드, <토러스>: '공간(에)의 체현'REVIEW/Dance 2020. 3. 16. 16:56
각자의 움직임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고 하나의 무리를, 대형을 그린다. '동류'의 움직임이 시공간의 지시 없이 지속된다. 어슴푸레한 공간에서 느린 속도로 움직이는 것, 가다가 한 번씩 멈추면서 속도를 느릿하게 분배하는 것, 이러한 집단적 에너지는 우주적 공간 외에 다른 메타포를 가리키지는 않는 것 같다. 이 움직임 자체가 일종의 전자음악적 공명이 그리는 무한한 시공간의 체현으로 보인다. 일군의 무리는 반복된 동작을 선보인다. 먼 곳을 그리는 사람의 반대편에서 가장자리를 그린다. 이는 겹의 무늬로부터 이루는 간결한 선분(의 유동성)으로 축약된다. 공간은 이 단순한 선분들의 궤적 아래 떨리고 공명하며 여기에 의도적으로 바람을 의태한 사운드, 땅을 두드리는 소리 등 자연의 유사 효과음이 이 공연이 가리키는 바..
-
[SIDance 2019] 파울라 킨타나, <환희>: 변환으로서 거울 공간REVIEW/Dance 2020. 3. 16. 16:56
어슴푸레한 공간, 밝아지는 스크린, 천장에 매달린 옷, 무엇보다 물을 채운 수조 위에 형체의 비침과 일렁거림 그리고 표층의 소리, 파울라 킨타나는 바닥에 흡착되어 움직인다. 다리를 찢은 채 몸을 땅에 붙여 이동하는데, 처음 어떤 벽이 긁히는 소리 같은 사운드는 물보라를 일으키는 몸과 기이하게 동기화된다. 어느새 더 밝아진 조명으로 인해 아래로 신체는 물에 비치게 된다. 이러한 일종의 스크린으로 기능하는 물의 반영은 신체를 깊이로 잇고 동시에 마주하게 한다. 여기에 미미한 이동이라고 볼 수 있을 동작은 거의 같고, 이는 거의 측정할 수 없는 속도의 양상을 띠므로, 관객이 확인하는 건 움직임의 순간들이라기보다 움직임의 지속이라는 사실 자체이다. 또한 순간의 변화이다. 똑같은 속도와 동작으로 정방형의 공간을 ..
-
[SIDance 2019] 프란체스카 포스카리니, 안드레아 코스탄초 마르니티: '탈얼굴의 타자성'REVIEW/Dance 2020. 3. 16. 16:53
프란체스카 포스카리니의 은 두 가지 차원에서 실험을 전개한다. 하나는 이들의 움직임이 공간 안에 몸을 어떻게 구성하느냐의 측면에 집중한다는 점에서 다분히 공간 측정적이라는 점인데, 순간의 심미적 기호의 발산이 아니라 공간을 어떻게 움직임이 반영, 반추하는지를 인지하는 작업이라는 것이다. 사실상 처음 팔을 뒤로 보내는, 앞뒤로 대칭적인 두 번의 움직임이 가진 간결함(이 주는 심미성)을 제한다면, 대부분의 움직임은 따라서 대단히 재미가 없다. 이는 무미건조하게 공간을 이동하고 정위하며 또 배분하는 움직임의 프로세스를 만드는 과정이다. 다른 하나는 사운드를 움직임의 물리적인 지지체로 두고 몸의 움직임과의 상관관계를 실험해본다는 것이다. 루프 스테이션을 활용해 이들은 현장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녹음하고 이후 같은..
-
[SIDance 2019] 아트프로젝트보라, <<무악舞樂> 보고, 듣다>: 재현의 지지체로서의 행위REVIEW/Dance 2020. 3. 16. 16:49
▲ 아트프로젝트보라 <<무악> 보고, 듣다>ⓒCreamart [사진 제공=서울세계무용축제](이하 상동) 는 춤이라는 형태를 지지하지 않는 듯 보인다. 동시에 어떤 사운드 장치를 재전유하여 다른 사운드를 구성하는 것을 최종 목적으로 하는 듯 보인다. 여기에 전제된 명제는 가령 이와 같은 것이다. '모든 소음은 '들을 만한 어떤 것'(음악적 사운드)이 될 수 있다.' 그리고 '모든 행위는 (춤이 아니라) 사운드의 일종이다. (움직임 역시 들을 수 있는 어떤 매질이다)' 결과적으로 사운드의 재구성으로서의 움직임은 행위 자체로 움직임을 확장하며 짜인 안무로부터 자유로움을 획득하는 동시에 그러한 움직임의 자율성을 주장하는 듯 보인다. 그리하여 이 움직임은 사운드를 구성하기 위한 도구적 움직임(으로 귀결되는 것)이..
-
[SIDance 2019] 로베르토 카스텔로, <우리는 밤에 방황하고 불로 소멸한다>: 강박에의 황홀REVIEW/Dance 2020. 3. 16. 16:48
▲ ALDES/로베르토 카스텔로 <우리는 밤에 방황하고 불로 소멸한다>ⓒPark Sang Yun[사진 제공=서울세계무용축제](이하 상동) 일정하게 아래로 흘러내리는 방향성으로 인지되는 패턴 무늬의 무대 전면의 프로젝션 아래의 움직임. 일종의 스크린으로서 극장 안에서 그 무늬와 교접하며 동기화되는 움직임은 스크린의 연장으로 기능하며 마치 흘러내리는 스크린 같다. 여기서 몸은 준자율적이며 스크린에 복무한다고 할 수 있다. 반면 스크린은 이러한 생명력에 감화되어 움직임을 지시하며 신체적 움직임 자체가 된다. 여기에는 타악류의 일정한 사운드 리듬이 전제되는데, 이는 이 무한한 걸음으로 대변되는 움직임의 지속을 안으로 접히게 한다―만약 영상과 같이 사운드의 강박적 작동이 없었다면, 영상으로 인해 내부가 구성되지 ..
-
[SIDance 2019] 마리 슈이나르 무용단, <앙리 미쇼: 무브먼트>: 세계를 읽는 법REVIEW/Dance 2020. 3. 16. 16:47
하나의 게임의 법칙이 전제되고 이는 끊임없이 중첩된다. 양면으로 펼친 책의 도상을 띤 스크린에는 끊임없이 오른쪽 장에서 상형문자들이 뜨고 이를 퍼포머들은 표현하고, 다시 문자는 왼쪽 장에서 축소돼 쌓인다. '문자의 움직임 도해'로 볼 수 있는 공연은, 스코어 자체가 거의 동시적으로, 하지만 선제적으로 지시된다고 할 수 있다. 각각의 포즈 또는 움직임은 매우 파편적인 데다 구현과 동기화에 모든 게 맞춰 있으므로 공연은 매우 명확할 뿐더러 움직임에는 어떤 다른 의미가 부여되지 않는 듯 보인다. 개별의 2차원 시각적 기호들은 3차원의 움직임의 제약 조건이 되지 못하는데, 이는 무엇보다 3차원의 움직임이 움직임의 시각적 표상 (불)가능성을 시현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 공연이 보여주는 건 매체 간의 번역(이미..
-
존버 미술가의 미술가 게임REVIEW/Visual arts 2019. 9. 18. 19:28
오정은 *『Art in Culture』 8월 호에 한편의 픽션 에세이가 실렸다. 제목은 「존버의 일주일 -2019년 한국 젊은 미술가의 창작 분투기」. 말 그대로 존버세대 작가의 일상을 1인칭 시점의 픽션으로 쓴 글인데 작가로서의 입지를 찾기도, 안정적인 생계를 맛보기도 어려운 요즘 청년의 우울한 상황과 자조 섞인 한탄을 묘사했다. “세상엔 작업 잘 하는 똑똑한 사람들이 왜 이리도 많은 걸까?”라는 문장에서, 어쩐지 포화상태로 분출구 없이 노오력하는 이 세대의 비극이 묻어난다. 그러나 ‘세대’라고 하는, 전 인류에 적용 가능한 생물학적 연령 개념을 들어 이들을 보편의 상에 묶기에는, “그렇게 많은 사람이 내 작품만 보면서 한마디씩 해 주는 일이 없거든.”이라는 화자의 외로운 푸념에서 드러나는 애태움을 지..
-
Art Project BORA & Guests, <Silicone Valley>, <PARADISE>, <꼬리언어학> 리뷰REVIEW/Dance 2019. 8. 4. 21:51
샤하르 빈야미니, : ‘밀도를 지속하기’▲ 샤하르 빈야미니(Shahar Binyamini) 안무, [사진 제공=아트프로젝트보라] (이하 상동)샤하르 빈야미니(Shahar Binyamini)의 안무작, 에서 퍼포머들의 하나하나의 동작은 매우 강렬하게 인식된다. 음악의 강렬함과 고양된 움직임이 어떤 여지없이 펼쳐진다. 붉은색 조명의 레이브 파티에서 신체들은 음악과 스스로의 움직임에 전염, 도취된 것처럼 보인다. 관객의 몰입은 빵빵하게 스피커를 올린 음악이 갖는 공간 전체의 공명이 그 움직임으로 수렴하는 데서 비롯된다. 곧 몸이 체현하는 음악과 음악을 그 신체로 수렴시키는 시청각적 감상이 만나는 지점에서 관객은 붙들린다. 퍼포머들은 허리는 꽂꽂하게 유지한 채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의 동작이나 리듬체조의 동작 일..
-
안무가 마르코스 모라우(Marcos Morau), <코바(Kova)>, <쌍쌍(Ssang-Ssang)>: ‘상상력을 구현하지 못할 때’REVIEW/Dance 2019. 8. 4. 21:31
▲ ⓒAiden Hwang [사진 제공=국립현대무용단] 는 수직 체계의 몸에서의 프로세스를 변경한다. 허리는 바닥에 닿는 일종의 두 발이 되며, 이러한 보행으로서 매체의 전환은 땅 자체에서의 유영을 가능하게 한다. 두 다리는 일종의 긴 팔이거나 허리로부터의 움직임이 되며 움직임의 궤적은 구불구불하거나 원형을 그리게 된다. 두 발이 곧 허리가 됨으로써 땅 위에서의 유영은 땅에 붙은 신체 전체가 한 덩어리가 되고, 이에 따라 뭉툭하고 묵직한 신체로서 다른 존재가 가진 질서를 수여한다. 곧 기괴한 존재의 움직임을 만든다. 여기에 관절을 꺾는 움직임이 주가 되므로 몸의 분절들이 다른 속도와 궤적을 지닌 한 덩어리의 몸의 지층에서 출현한다. 이 신체 둘[로레나 노갈(Lorena Nogal), 마리나 로드리게스(M..
-
구동희, 《딜리버리》: ‘수렴’하지 않는 공간REVIEW/Visual arts 2019. 8. 4. 21:23
▲ 구동희, 《딜리버리》 전시 전경 [사진 제공=아트선재센터] (이하 상동)전시는 배달 서비스가 일반화된 한국 사회의 물류 유통 체계를 일종의 알레고리로 가져왔지만, 실은 그에 대한 직접적인 설명이나 해석이 아닌, 일종의 복잡한 구조 자체라는 형상과 체험만을 남겼다. 물론 입구를 인트로로 보자면, 조각은 피자에 들어 있는 여러 토핑을 비롯한 사물들의 일부가 겹겹이 쌓여 기괴한 형태의 구조물로 확장되어 있고, 그 옆의 영상에서 배달원이 아닌 피자의 시각에서 잡은 배달 과정이 나오는데, 이는 직접적인 사회 현상을 반영하기보다 각각 손과 그 밖의 일부 광경만 나오는 이미 해체된 시선과 추상화와 집적을 통해 재구조화된 의사-사물만이 있는 것이다.공간에 진입하면 실은 그 안과 바깥, 그리고 어느덧 입구와 출구마저..
-
2019 서울변방연극제, <사랑 및 우정에서의 차별금지 및 권리구제에 관한 법률>(김원영 x 0set프로젝트): 미학의 언어와 예술의 언어REVIEW/Theater 2019. 8. 4. 21:07
▲ 김원영 x 0set프로젝트) 공연 모습, ⓒ한민주 [사진 제공=서울변방연극제] (이하 상동)제목에서 드러나듯, 퍼포머 김원영은 장애를 가진 스스로의 신체가 타인의 시선을 방어하기 어려운 불리한 상황에 놓일 때 보지 말 것을 법으로 제안하고자 한다. 이러한 법의 항목들은 개인적이고 미시적인 리스트를 이룬다. 그리하여 인격에 대한 보존의 욕망과 존중의 회피가 맞물리는 지점에서 직접적인 시선이 해체되는 합의가 형성된다. 하지만 관객은 중대한 기로에 놓인다. 이는 김원영이 한 개인이면서 퍼포머-주체이기 때문인데, 실은 이미 그러한 리스트를 작성하면서 이를 예시로 보여줘야 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이러한 장면은 기억의 증상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결국 똑같은 것이 반복되는 순간에 이를 피해야 한다. 이런 알면서..
-
극장을 구성하는 두 개의 안무: <미니어처 공간 극장>과 <나는 그 사람이 느끼는 것을 생각한다>REVIEW/Dance 2019. 8. 4. 21:00
▲ 허윤경 안무, 공연 모습, ⓒ한민주 [사진 제공=서울변방연극제] 의 안무가 지시문을 수행하는 관객들의 즉흥적인 행위가 교차하고 축적되는 비선형적 과정으로 구성되는 가운데, 퍼포머로 위치한 안무가는 유일한 스포트라이트의 주체 대신에 현장의 반응을 즉각적으로 재생성하는 과정의 일부가 되는 매개자가 되었다면, 의 안무는 안무가가 세 명의 퍼포머, 그리고 관객과 함께 원형의 관객석에 위치하고 세 명의 퍼포머는 미세한 응시를 통해 서로의 움직임을 확인하며 기본적인 단위의 움직임들을 조금씩 확장하는 가운데 무대를 구성한다. 곧 관객석이 무대이고, 그 중앙은 비어두고 시작함으로써 관객은 (옆의 퍼포머로부터의) 직접적인 경험과 (퍼포머 옆에 앉은 다른 관객의) 매개된 경험을 동시적으로 하게 된다.이 관객을 퍼포머로..
-
2019 서울변방연극제, <나는 그 사람이 느끼는 것을 생각한다>(안무가: 황수현): 통제된/되는 감각REVIEW/Dance 2019. 8. 4. 20:55
▲ 황수현 안무, 공연 모습, ⓒ한민주 [사진 제공=서울변방연극제] (이하 상동) 는 원으로 배치된 관객 사이사이에 피드백 루프로 미세하게 움직임을 확장하는 세 명의 퍼포머의 움직임을 감지하고 감각하는 과정으로 구성된다. 제목은 사실 모든 것을 말하고자 한다. ‘나는 그 사람이 느끼는 것을 생각한다’에서 ‘나’는 관객을 그리고 ‘그 사람’이 퍼포머를 의미한다면, 퍼포머의 감각을 나는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인식하는 것으로, 퍼포머와 관객은 일종의 거리와 지연을 반영한다. 이를 퍼포머와 퍼포머 사이로 바꾸어볼 수도 있겠지만, 세 퍼포머 사이에서는 지연에 따른 간극이 미세하게 반영되는 정도이다. 또는 그 간극은 하나의 거대한 흐름(루프)을 형성하는 단위에 속하게 된다.구체적으로 아래로 떨어뜨린 머리에 ..
-
2019 서울변방연극제, <미니어처 공간 극장>(안무: 허윤경): 관객을 제1의 전제로 배치하기REVIEW/Dance 2019. 8. 4. 20:46
“머리 바로 위로원 모양의 물체가보이는 곳에 머물러주세요.” “공간 곳곳을 자신만의 방식으로살펴보거나 자유롭게 움직이면서공연을 관람하실 수 있습니다.원하시는 때에 위 지시문의 내용을 수행해주세요.”(공연 중간 허윤경 안무가의 지시로 다른 관객과 한 번의 교환을 통해 남은 두 번째이자 최종의 지시문)▲ 허윤경 안무, 공연 모습, ⓒ한민주 [사진 제공=서울변방연극제] (이하 상동)은 이른바 관객 각자에게 주어진 지시문을 통한 비선형적 수행이 구성하는 복잡계다. 이러한 개인에게 묻은 그러니까 일종의 비밀스런 스코어는 관객 자신이 원할 때 개입할 수 있음으로 지시된다는 점에서(쪽지의 접힌 면을 기준으로 위에는 지시문이 있고, 아래에는 그것을 알아서 그러니까 ‘자의적으로’ 결정할 것을 지시하고 있다.), 관객 스..
-
최강프로젝트 안무, <여집합_강하게 사라지기>: 보기의 시선을 분할하다REVIEW/Dance 2019. 6. 28. 16:22
▲ 최강프로젝트(강진안, 최민선), ⓒBokco [사진 제공=국립현대무용단](이하 상동)는 한쪽의 무대와 다른 쪽 무대 한편의 영상 두 개가 교차되며 진행된다. 그리고 무대의 움직임을 찍는 카메라가 있는데, 카메라가 영상으로 즉각 매개되지 않는다는 점이 이 작업의 주요한 출발점이 된다. 즉 카메라는 현재의 무대 움직임을 단지 찍기 위해 존재하고, 이를 다음 막에서 영상으로 송출하고 다시 현재의 움직임을 찍는다. 카메라는 움직임에 부착/부가되는 또 다른 동시 움직임인데, 움직임에 따라 가지만 움직임을 그 즉시 반영해 내는 건 아니다. 오히려 카메라는 이후의 움직임을 선취하고 움직임은 이후 장면으로의 출현을 기다리며 찍히기 위해 존재하게 되는 식으로, 움직임은 굴절되기 시작한다. 그것은 영상에서는 편취되어(..
-
정철인 안무, <0g>: 속도를 체현하기, 그리고 이후의 것은.REVIEW/Dance 2019. 6. 28. 16:13
▲ ⓒAiden Hwang [사진 제공=국립현대무용단](이하 상동) 길게 줄을 돌리고 그보다 빠르게 달려 거기를 뛰어넘는 퍼포머들, 그리고 혼자 남아 그 줄을 돌리는 퍼포머. 전자가 바깥으로의 장력에서 시작된다면, 후자는 그 스스로가 칭칭 감기며 속도의 중심은 계속 변전된다. 두 장면에서 미치는/닿는 힘은 다시 음악의 출력으로 상승된다. 그러니까 는 현란한 몸 동작이 아닌 움직임의 속도, 그 속도가 어떤 힘의 작용 아래 구현되는지를 보여주고자 하는 작업이다. 그렇다면 순전히 물리학적인 몸의 방정식에 가깝다. 반면 힘껏 달리다가 어느덧 바닥에 누운 사람들을 홀깃 뒤로 보며 가는 남자의 시선은, 이 작업을 일종의 내러티브를 내포한 작업으로 볼 수 있는가라는 의구심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반사신경의 반응, 공..
-
이은경 안무, <무용학시리즈 vol. 2.5: 트랜스포메이션>: 리듬 생산―비워지며 채워진 몸REVIEW/Dance 2019. 6. 28. 16:07
▲ ⓒ목진우 [사진 제공=국립현대무용단](이하 상동) 신재희, 이은경, 피터 암페, 이 셋은 몸을 튕기며 계속 큰 숨과 동시에 소리를 뱉어내며 움직인다. 이러한 개별 단위의 무한한 반복이 작품 전체를 이루며, 그 단위들의 집적이 하나의 시퀀스가 되는 것, 곧 다른 시퀀스로의 전환을 이루게 되는 것이 이 무한한 움직임의 소진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인식하는 것은, 조금 중요해 보인다. 사실 이 전환의 순간은 계속 반복된 엇비슷한 자극에 따라 온전히 개별적인 것들의 차이로 인식되기 힘들다―하지만 그것은 분명 온전히 개별적인 것들의 차이인 것이고, 이를 지켜내는 것이 이 작업을 ‘지겹도록 잘’ 보고 있는 것이겠다. 그것은 거의 하나가 끝없이 반복되는 형상이다. 동시에 끊임없이 미세하게 지각 변동을 일으키..
-
이재영 안무, <디너>: ‘일상의 시공간을 무대화하기’REVIEW/Dance 2019. 6. 28. 15:30
▲ ⓒ목진우 [사진 제공=국립현대무용단](이하 상동)의 실험은 일상 자체로부터 움직임을 만든다는 것에 있다. 이는 결과적으로 춤의 전형적 움직임 자체를 탈피하려는 데 그 궁극적 목적이 있는 대신 이 일상이라는 조건으로부터 자연스런 움직임을 무대로 확장시키는 차원에서 보는 게 더 맞다. 3명의 무용수는 일렬로 넘어지는 도미노의 부속이 된다. 이재영 안무가는 예전 둘이 짝지어 그 둘이 농구공이 되는 식의 퍼포먼스식 무대(물론 공연 형태로 짜인 것이었다. (2011))를 한 적도 있는데, 그에 비해 유기적인 사물의 양태를 띠는 것은 아니다. 가령 일상을 전유한 무대에서 그 속의 사물들로 도미노를 만들어 그 사이에서의 빈틈을 구르기나 등등으로 이어 채우는 식이다. 이 안에서는 온갖 잉여적 행위들을 안무로 재구성..
-
<Utopia : [고래]>: ‘유토피아는 어떻게 가시화될 수 있는가’REVIEW/Dance 2019. 6. 25. 12:42
IntroE-conscious Dance Project의 (신희무 안무/연출)는 크게 대별되는 두 개의 신(scene)으로 구성된다. 하나의 신에서 다음 신으로 넘어감은 바닷속에서 그 바깥으로의 이동, 그리고 개체에서 사회로, 의태적 움직임에서 집단적 몸짓으로의 변화를 상정한다. 무용수들은 공간에의 분포를 통해 형태를 만들고, 이어 공간 속에서 사회적 신념 체계를 이야기한다, 또는 공간을 하나의 사회로 상정한다. 이후, 그에 대해서는 주로 움직임이라는 몸의 매체적 쓰임에 대한 묘사에 기초하기로 하자. #1.▲ 신희무 안무/연출, E-conscious Dance Projectⓒ김덕원[사진 제공=E-conscious Dance Project](이하 상동)인트로에서 신수연의 모습은 고래를 상기시키는 것이었다...
-
<명왕성에서>: 책임질 수 없는 판타지!REVIEW/Theater 2019. 6. 20. 21:41
▲ (작,연출 박상현) 포스터 는 세월호 당시를 정리하고 죽은 자의 목소리를 재현하는 차원에서 징후적이다. 이제는 그것을 거리를 갖고 볼 수 있는 시점에 이른 것일까. 결론에 이르러 ‘명왕성’은 그 죽은 자들의 발신지라는 점에서, 그리고 그로부터 그들의 안부가 전해지고 있다는 점에서, ‘애도 불가능성’이 소실되어 가는 작품은 그 자체로 비정치적이며 무지의 판타지를 구현하고 있는 것 아닐까 하는 의문을 안긴다. 그러한 판타지를 통해 이 작업은 신파에 도달한다. 저 작업을 보며 울고 있는 당사자들을 부정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그 반대로 이 작업의 발신 방향이 즉물적으로 당사자성에 쉬이 기대고 있음으로 되돌이켜 그 의도를 반문할 수 있을 것이다. 곧 그러한 위로의 효과를 부정하는 것이 아닌 그 방식과 형식..
-
<녹천에는 똥이 많다>: 뛰어난 공간(에의) 감각, 문학적 소실점, 그리고 현재에 안착하기REVIEW/Theater 2019. 6. 20. 21:27
공간, 형태, 세계관의 연장 ▲ 드레스 리허설 장면 [사진 제공=두산아트센터](이하 상동) 를 구성하는 공간은 블랙박스의 형태를 비껴나서 작품의 세계의 면모를 구성한다. 또는 역설적으로 그렇게 하기 위해 존재한다. 이 공간에의 경험이 말과 캐릭터와 이야기를 파악하는 데 있지 않도록 무대는 하나의 공간을 이루고, 캐릭터와 말을 포함한 소리가 그 공간을 더듬어 나가는 것이 이 작업의 과정이 된다. 마지막에 이르러 주인공(화자)의 “거대한 오욕의 세계”는 물리적인 공간에서는 간접적으로 드러난다. 이는 문학적 서술 방식을 띤 탓에, 그리고 중간 중간 구체적으로 주인공 내면의 목소리가 3인칭 시점으로 전환되는 탓에 현실은 그 바깥이 되고 내면은 파악되어야 할 중핵이 되는데(현실에 위치한 인물들은 바깥으로 전도된다..
-
<Home>: 리얼리티(의 마법)를 관찰하기REVIEW/Theater 2019. 6. 16. 13:12
▲ 제프 소벨, [사진 제공=의정부음악극축제집행위원회](이하 상동)) 은 무대 위에 하나의 집, 한 면이 전면에 드러나게 집을 짓는 과정 속에서 사람들의 속살을 마치 관음증처럼 드러낸다. 가령 옷 갈아입을 때나 화장실을 쓰거나 샤워를 하는 장면에서 누드는 빈번하게 출현한다. 이는 논리적으로 당연한 것인데, 이것이 그야말로 보통의 우리가 집에 있을 때 다른 사람의 이목을 신경쓰지 않는다는 전제가 적용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계속 사라지고 나타나며 지속된다. 그러니까 건축과 해체, 이사가 크게 하나의 사이클을 그리기는 하지만 그 단편들은 삶의 한 부분이라는 점에서 고저 없는 동일 차원으로 반복된다. 그러니까 이 과정의 서사가 인물들에게서(개별적인 목소리나 관계에서) 오기보다는 시간의 변화라는 큰 틀에서 ..
-
<백설공주(또는 베를린 장벽의 붕괴)>: 보이는 것과 들리는 것의 동기화(봉합/간극), 그리고 또 다른 서사 가능성REVIEW/Theater 2019. 6. 16. 12:50
▲ 라꼬르도네리 [사진 제공=의정부음악극축제집행위원회](이하 상동) 는 제목과 같이 ‘백설공주’를 현대적으로 각색했다고 볼 수 있지만, 무엇보다 이 작업은 우선 스크린에 현장 더빙과 연주가 더해진다는 사실이 전적으로 중요하다고 할 수 있겠다. 이는 음악극이라는 축제 자체의 장르적 명명 속에서 한층 미묘하게 접힌다. ‘음악-극’, 곧 음악으로도 연극으로도 수렴되지 않는, 반면 그 둘을 더하는 것으로도 구성되지 않는 장르의 예외적 개념이랄까. 현장의 소리를 듣기 위해 원래의 소리를 삭제한/음소거한 스크린을 본다는 것은, 그 스크린이 온전하거나 그 자체로 충만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우리는 스크린 속 인물의 입과 그 바깥의 소리를 일치시키려 애쓰는데, 이는 단순히 연습/훈련을 통한 뛰어난 퍼포머들의 동기화에 놀..
-
다니엘레 니나렐로(Daniele Ninarello)의 <쿠도쿠(KUDOKU)>: ‘움직임은 보는 것인가?’REVIEW/Dance 2019. 6. 16. 11:28
▲ 다니엘레 니나렐로 안무 ⓒ조태민(이하 상동) 무대의 불이 켜지지 않고, 한동안 완전한 어둠 속에서 음악의 향연이 펼쳐진다. 사실 어떤 움직임도 볼 수 없다. 하지만 그 움직임은 분명 음악이 주는 실재를 환영으로 치환한 결과를 가져온다. 움직임은 정위되지 않는 음악처럼 눈앞에서 어른거린다. 이와 같은 인트로에서 볼 수 있듯 는 붙잡을 수 없음의 차원에서 움직임을 제시/지시하는 작업이다(‘움직임은 하나의 단위가 아니라 파편이거나 그 파편들의 끝없는 흐름이다’). 조명이 밝아지고 어떤 형상이 나타났을 때 그것은 실제 사람의 몸이고 또한 움직임을 펼치지 않는 고정된 형태인데, 여기서 음악의 연주자 역시 일자라는 사실이 발견된다. 따라서 보이지 않음으로써 그러나 음악의 매개를 통해서만 가능한 그런 보기의 방식..
-
<유도2.0>: <유도>의 대극장 버전!?REVIEW/Dance 2019. 6. 16. 11:19
▲ 박순호 안무 ⓒ조태민(이하 상동) 박순호가 안무로 참여하고 새롭게 Rising Tide Dance Theatre로 팀을 구성하여 대극장으로 옮겨진 이번 작업은, 이전 중극장 정도의 규모에서 열렸던 박순호의 작업 (2014)와는 다른 구성과 형태를 지향한다. 애초 이 작업이 지향하던 바와 현재의 작업이 갖는 의미를 지난 작업과의 비교를 통해 구성할 수 있을 것이다. 은 대극장용의 커다란 음악에 힘입어 반복된 구문들을 반복하여 정형화된 군무의 형태를 띤다. 그것은 현장에서 감식되는 음악 바깥의 틀, 곧 동기화될 수 없는 어떤 타격이 주는 이차적 음들을 생략하고, 이미 결론에 다다른 어떤 형태들을 반복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그것이 어떤 몰입이라는 것을 가정하는 스펙터클의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한 타협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