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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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진 <안무사용법>, '기본'의 의지적 적용REVIEW/Dance 2016. 1. 29. 02:00
▲ 조용진 안무 공연 모습 [사진 제공=국립무용단] (이하 상동) '기본'을 '현재(라는 의식)'에 출현시키고 음악에 적용하며, 또 춤을 추는 과정 자체 안에서 발현되게 하는 과정으로서 안무를 '사용'하는 법은 주로 따라 하기라는 중간 단계를 거친다. 선글라스를 낀, 표정을 소거한 존재들로부터 상호 닮음이라는 기초적인 동작들이 나오는 긴 인트로 쯤을 지나, '기본'은 매일 익히고 반복 숙달하여 이미 몸에 익은 것으로 기호화되며, 이는 중간 중간 출현하며 그 사이를 메우는 따라서 그것을 분절하는 따라 하기를 비롯한 수많은 동작들이 존재하고, 또는 '기본'을 한 사람이 수행하는 가운데 다른 한 사람의 빈 시간은, 상대방의 몸짓을 잇고 자신의 몸짓으로 기본을 궁구하고 새로운 동작들로 그것을 연장하는 과정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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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장현 안무 <칼 위에서>: 제도-현실 비판의 외양 아래 이는 파열음REVIEW/Dance 2016. 1. 29. 01:57
▲ 류장현 안무 공연 모습 [사진 제공=국립무용단] (이하 상동) 검은 옷으로 얼굴부터 전신을 가린 개성을 탈색한 이들은 관객 한 명 한 명을 객석에서 무대 위로 소환해 이 시대의 캐치프레이즈들과 대면시키고 그것을 들고 있게 하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이들이 좇는 건 잡히지 않고 달아나는 달(스포트라이트)인데, 이는 객석에 흰옷을 입은 이(무용수)를 무대에 불러내 신성한 제물로 삼고 그녀가 광기로 폭발하는 가운데 모두가 검은 옷을 벗어 하얀 옷으로 한판 굿을 크게 하는 것까지가 비교적 단순한 공연의 전반적인 구성이다. 피켓 시위와 밑에 길게 늘어뜨려진 걸개그림은 이곳이 원래 열린 극장이라는 사실과 밀접한 연관을 맺는다. 통제되지 않는 에너지는 각자의 춤에 자율성을 안긴 안무 방식인 동시에 공간을 최대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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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 SO TIRED>(아임 쏘 타이어드), '비주체들과 주인공'REVIEW/Dance 2016. 1. 22. 10:34
공연 사진후반 3호선 버터플라이의 보컬 남상아의 거의 독무대로 기록할 만한 '스모우크 핫 커피 리필' 부분은 기존 연주와는 달리 특이하게도 밴드가 어느 순간 개입되지 않으며 마치 하나하나의 음절이 드럼부터 시작해 베이스, 기타로 나아가는 단계들을 누락하며 그것으로부터 벗어난다. 곧 보통 음악이 무용 작업에서 배경음악으로 쓰이는 데서 벗어나서 이 무대의 수많은 움직임들에 대한 주체의 서사를 주인공으로서 그제야 기입한다. 마치 그녀가 커튼콜에서 다른 무용수들과 한 무대에 서서 박수를 받을 수 있는 이유다. 수열로 이뤄진 장애물들을 뛰어넘기라는 정형화된 공식으로부터의 이탈과 그와 동시에 생겨나는 결과물인 환락을 무대 중심에 올린 이후, 음악은 무대 전체에 스피커를 통해 투과하는 한편 마찰음들을 통해 그 자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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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일치>, '분배된 주어라는 문제'REVIEW/Visual arts 2016. 1. 22. 10:24
포스터 [출처: 가변크기 페이스북] 제목이 가리키듯 이번 전시는 결과의 제시 측면보다는, 과정에서 결정되지 않은 상태에 대한 초점을 묘사하는 데 방점이 찍힌다. 사실상 우정을 전제로 한 여러 명의 논의자가 하나의 합의로서 전시를 완성해 나가는 과정은 크레디트의 명기와 드러나지 않는 아티스트 피의 합리적인 적용의 합목적적인 과정의 일환으로 수렴된다. 어떻게 보면 작업의 결과는 이미지가 아닌 그것을 구성하는 모든 것의 결과이자 작가의 이름값에 다름 아니다. 거기에 더해 작가의 참여했다는 나아가 합의했다는 의식이 결과로 나타난다. 그리고 이러한 결과의 합리적인 분배로서, 노동과 역할에 대한 정당한, 동시에 모두가 납득/이해 가능한 비용 산출/책정은 지원금 내에서의 삶/생존의 모색이란 하나의 전제에 포섭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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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연시', 비워진 전시장을 채우는 퍼포먼스REVIEW/Interdisciplinary Art 2016. 1. 22. 10:13
지하의 정세영 작가의 냉장고 폴 댄스는 우스꽝스러움과 숭고함을 기이하게 엮은 작업이다. 냉장고를 통해 들리는 소음을 증폭해, 일상 감각을 이화시키는 한편, 계속적으로 문이 열리고 닫히는, 그래서 사실상 반만 열린/닫힌 냉장고의 빛은 온전하지 않은 시각으로 거대한 소리의 몸체 일부를 이루며 (그 시각을 비롯해) 파악되지 않는 숭고함/기괴함을 이룬다. 정세영 작가는 전시에서 마치 작가로서의 지위 자체까지를 소거하는 듯하며 이는 일견 최승윤 퍼포머를 송주호 작가의 작업과 잇는 영상으로 수행적 과정물의 일환을 담당하는 것에서 완결되는 듯 보인다. 일층 최승윤 안무가의 작업은 주변 사람들로부터 증여받은 옷들을 늘어놓고 관(람)객이 마음에 드는 옷을 골라 탈의실 용도의 간이 시설에 들어가 갈아입고 10초 타이머 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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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메테우스>: 고전을 더하고 빼며 현재에 비뚤어매기REVIEW/Theater 2016. 1. 10. 14:46
▲ 공연 모습 [사진 제공=산울림소극장] (이하 상동) 이 극에는 두 가지 응결 지점이 있다. '힘과 폭력의 시대에 미래의 정의가 그것을 심판할 것이다' 하고 곧 이어 등장하는 '이 모두는 흙으로 뒤덮이게 될 것'. 전자가 지금 현 시대를 반영하며 그에 대한 무력함을 은폐하고 저항의 기치를 올리며 쾌락을 관객에게 수여하는 전언 형식의 너무 가까운 말이라면, 후자는 모든 존재를 필멸의 삶으로 바꾸는 불멸의 역사라는 존재에 맹목의 심판을 유예하는 너무 먼 말이다. 역사라는 평평한 땅에서 모두는 평등한 이름으로 묻힐(호출될) 것이라는 이상은 (민중을 가로지르는) 정의의 심판론보다는 오히려 더 낭만적이다. 하지만 거기에는 프로메테우스의 본질적 존재론이 자리한다. 곧 그는 역사에의 어떤 의지 그 자체다. 순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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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황주 안무 <Contact변태>: 시선과 말의 부재 혹은 과잉REVIEW/Dance 2016. 1. 10. 14:22
'몸의 새로운 내러티브' 공연은 작은 삼각형 바닥으로부터 점점 넓어지는 식으로 또 조명의 변화에 따른 어둠에서 빛으로 공간의 감각적인 부분이 확장되며 열려 가는 구조를 띤다. 세 퍼포머의 구도는 대칭적으로 짜이는데, 이는 작은 삼각형 구도를 하나의 유일한 움직임 공간으로 상정하고 있기 때문이며, 이는 상징적인 도상 기호로 작용하거나 오직 미적인 안무 기호를 창출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다. 여기서 발생하는 마찰은 그러한 셋의 움직임 도식이 원활하게 작용하지 않음을 가리키며 그것은 다시 이 공간의 협소함, 그리고 그것을 지켜야 하는 암묵적 규칙에 따른 비평적 시선이 곁들어 있음을 의미한다. 의식 없는 신체들의 마찰과 그로 인해 촉발되는 단말마적인 신음이 보여주는 무의식적 저항의 기제가 곧 각자의 공간 속 움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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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분의 1초>, ‘넘어짐의 기술’로부터REVIEW/Dance 2015. 12. 22. 19:03
▲ 연습 컷 @ 프로젝트 뽑기 이 작품은 전체적으로 '넘어짐의 연습'에서 '걷기의 육화'로 나아가는 과정 전반을 그린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표현 과정은 매우 자유롭고 또 구체적인 한편, 일종의 일반적인 신체 자세와의 상관성으로 현실적인 감각과 밀접하게 연관된 부분이 있다. 그럼에도 뗄 수 없는 맥락의 초점은 '세월호'라는 것으로, 공간 자체의 흔들림, 어떤 하나의 좁은 공간의 상정 등으로써, 지난 작품에서 어둠이 켜지며 눈을 덮는 것과 같이-곧 어둠이 있기에 눈을 감는다가 아닌 눈 자체로 어둠이 옮겨간다- 잠겨가는 신체에 대한 유비가 마지막을 장식했던 것의 연장선상에서, 현실의 맥락이 투여, 연장되는 바 있다. 메리홀의 무대와 객석 사이를 무대로 재구축해, 벽의 질감이 평면으로 곧장 들어오고 그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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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무용단 <여전히 안무다>REVIEW/Dance 2015. 9. 16. 12:30
대부분의 안무가들에게는 텍스트와의 길항 작용이 느껴졌다. 이는 ‘실험실’이라는 진공의 비움직임적 장소에서의 생각들의 나눔이 나은 하나의 결과로 볼 수 있는 부분인가? 어쨌건 간에 두 시간을 전후로 나눈다면, 점점 흥미진진해지는 전반전에서 후반전은 꽤 지루해졌다. 그 정점은 아마 윤자영의 의 후반부 이후여서였을 것이다. 진향래 안무가는 객석 입구 들어가기 전 로비에서 관객을 줄 세우고 좁은 텐트 안으로 통과시키기를 종용한다. 극장을 소수를 위한 매우 좁은 문으로 바꾸고, 정신없는 요설로 관객을 안무화한다. 곧 여기에는 안무도, 고정된 관객도, 극장도, 아무것도 없다. 무대 역시 없고 다만 가상의 우주여행을 하는 상황으로 퍼포머를 관객의 자리로 바꾼다. 정신없는 중계 상황은 혼란스런 카메라 워킹으로 연장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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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무사회] <줄자 - / 정류장> 배치적 안무의 동적 역학REVIEW/Dance 2015. 9. 13. 03:34
무대에 놓인 정렬된, 무용수 둘이 갖고 잇는 사적 소유물들의 일종의 아카이브는, 그의 삶을 구성(한다고 판단되게)하며 (삶을 축소 재현하고 은폐한다) 그 하나의 배치된 사물들이 놓인, 정박된 장소성으로부터 그들은 그 물체의 쓰임과 결부돼 일상의 행위를 재현한다. 가령 양치를 한다거나 하는. 노경애의 작업은 사물과 결부된 신체의 배치를 통해 사물이 주는 어포던스 감각을 시현하는 한편, 신체를 사물화하는 극도로 일시적인 순간의 실험을 감행하기도 하는 편인데, 맨 처음 놓인 장면은 그 전자에 해당하고, 이후 이뤄지는 장면은 후자에 해당할 것이다. 두 남녀의 분별된 성의 차이는 가령 여성 무용수가 줄을 감는 행위를 마저 다 하지 않아, 단지 그 사물을 어떤 관객이 인지 가능한 프로그램화된 행위의 일부로서 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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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미래 개인전: 삼합, 발효의 연식술>: 산포하는 카오스와 상징적 정렬 사이에서REVIEW/Visual arts 2015. 9. 13. 03:20
[사진 제공=미메시스 아트 뮤지엄] 전미래 작가가 안무한 퍼포먼스는 해골들이 엮여 만다라 기호를 이루는 거대한 벽면(의 그림) 앞에서 이뤄진다. 검은색과 흰색의 남녀 무용수는 접합되지 않고 균열을 일으킨다. 숨소리가 거칠게 상승하며 파열적 양상으로 확장될 때 결정적으로 남자의 입 꼬리를 타고 오르는 희열의 웃음은 악마를 떠올리게 한다. 이것이 의식적이라면 반면 여자는 눈을 뜨지 않은 채 자신을 끊임없이 삼키려 하는 어둠으로부터 침범되지 않고서,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들로부터 그저 무감한 듯한 인상을 주는데, 이러한 무지의 무의식은 부처의 정자세를 취함으로 자연 돌아간다는 점에서 속에 대비되는 성聖의 도상이 된다. 전미래 작가는 그 둘을 둘러싸고 한 박자에 가볍게 손뼉을 한 박자에 한 발을 내딛는 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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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형제다> 무엇에 대한 테러인가?REVIEW/Theater 2015. 9. 13. 03:08
사건의 재현 아닌 허구적 재생 장치의 내파 ▲ [사진 제공=세종문화회관] (이하 상돌) '나는 형제다', 곧 '나'를 일부 나와 유전자를 공유하는 혈연 공동체의 일부로 정의하는 이 말은, 나와 너의 공속 불가능성에 대한 가능성을 유예한다. 운동과 공부라는 스테레오타입의 구별로써, 또한 성격과 외모로써 그 차이를 선명하게 하는 형제의 모습은, 따로 또 같은 ‘더블’로 대칭 쌍을 이룬다. 그리고 이들은 실제 어둠보다는 사막에서의 생존의 은유가 더 분명해 보이는 고독한 방랑자로서, ‘살아남기의 방식’을 ‘함께 살아가기의 이상’으로 확장해 나간다. 곧 ‘형제에의 숙명’을 ‘형제로의 사명’으로 전치시킨다. 이 과정에서 적대적인 세상과의 관계로부터 나아가, 모두가 형제가 되(어야 하)는 넓은 범주의 ‘형제’ 개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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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djf studio x qhak, 이미지와 나 사이에 레이어와 시선을 한 겹 더하다REVIEW/Visual arts 2015. 9. 4. 02:17
사본1/n 2014ⓒ fldjf 박보마 작가가 비디오 릴레이 탄산에서 선보인 영상 작업은, 실은 다양한 이미지들을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프레젠테이션 형식의 수행적 퍼포먼스 차원에서 보였고, 한편 그 각각의 이미지들은 숫자가 섞인 독해하기 어려운 완벽하지 않은 문장을 이루는 단어들과 함께 나타났는데, 시간과 포토샵 이미지라는 하나의 디지털 매체의 조건 아래 객체 측정의 단위들이 표시되어 일종의 작품에 대한 메타 데이터로서 작품을 지정해주면서 그 낯선 단어들에는 어떤 화자의 순간적 감정의 데이터가 함께 들어가 있었다. 다른 한편 그 이미지를 보여주는 방식은 ‘wix’라는 (페이지 전환 방식이 아닌 끊어짐이 없는, 일종의 파피루스식 읽기를 가능하게 하는) 스크롤의 변신으로 생성되는 홈페이지라는 매체 조건 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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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송, ‘누가 무엇을 보내는가’의 물음REVIEW/Visual arts 2015. 8. 26. 16:59
장소 특정적인 작업과 공간 임대적 작업 사이의 어떤 파생 지점들 ‘동송’이란 원래의 지명을 새로운 동음이의어로서의 의미를 부여하며 재전유한 것으로, 함께 보낸다는 뜻이다. 여기서 그 주체를 무엇으로 상정하느냐는, 언뜻 커뮤니티 아트로도 보이는 이번 프로젝트를 그러한 기준 아래 가늠해 볼 수 있으리라 보이는데, 곧 그 주체가 ‘작가들’이며 그 과정상의 자의적 경험을 (충족시키는 것으로 충분함을) 의미하는지 혹은 마을 전체로 확장된 어떤 이상적 개념을 상정하는지가 이를 통해 드러난다. 한편으로 그 ‘보낸다’는 것이 일종의 매체적 전달 과정을 상정하며 따라서 어떤 메시지를 가정한다면, DMZ를 함축한 동송이라는 지역에 보내는 메시지를 또한 가정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한 마디로 ‘함께’라는 이상적인 의미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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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경, <평화 가라오케> 구성되며 현동화되는 공연REVIEW/Interdisciplinary Art 2015. 7. 27. 16:40
ⓒRanda Mirza 는 즉흥 신체 연기를 하는 배우의 존재를 관객에게 체현한다. 관객은 스크린을 보며 동작을 묘사하는 섭외된 배우가 인이어 이어폰에 의한 청취를 모방하는 것까지를 본다. 배우로서는 귀에 들리는 스크린의 소리와 앞 스크린의 반전된 영상을 바라보며, 언어와 행위의 차원에서 그 둘을 합치시켜야 한다. 언어와 행위라는 ‘이중의 따라 하기’는 시차를 생산하는데, 그것은 현재 즉각적으로 벌어지는 것임을 확증하는 중요한 요소다. 모방/재현으로서 연기는 거울 뉴런적, 인지적 반응에 의한 것이고 관객을 그것을 간격으로 감각적으로 인지하게 된다. 곧 ‘연극은 상연되고 있음을 숨기지 않는다.’ 연극은 지연된, 아니 즉각적 반응으로서 신체를 우리가 매우 즉각적인 시차로 그것과 합치시키려는 노력(?)에 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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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가족> 희극적 전략 속 냉소적 우의REVIEW/Theater 2015. 7. 27. 16:30
▲ 포스터 에서 ‘안전가족’은 이데올로기 개념으로 사용된다. 가족이 사는 집이 안전한 만큼 바깥은 불안전함을 시사하고, 그러한 가족을 건사하기 위해서는 바깥에 나가면 안 된다(는 신화를 구성한다). 단지 가장만이 외부 출입을 할 수 있으며 나머지 가족은 그 선을 넘지 못한다. 그리고 이 가족은 가부장적 위계에 의해 집에서 엄금된다. 밖은 불안전한 것일까. 바깥과 단절됨으로써 언어는 해체·재조립되고 사회의 언어 규약을 따르지 않게 된다. 애초 아이들은 라디오(미디어)를 통해 이상한 언어의 쓰임을 하달 받고 있는데, 우리가 아는 일상 언어에서의 기표와 기의의 불일치가 전제된다. 가령 ‘오토바이=박수’라는 식으로, 바깥과의 관계 맺기가 부족한 가운데 외부의 생명체로서 고양이 역시 핵폭탄이 된다. 하지만 기표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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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희, <감각의 권리>: '감각' 에 대한 (메타) 실험REVIEW/Interdisciplinary Art 2015. 7. 27. 16:19
▲ 김준희, ⓒ 옥상훈 막에 감싸인 무대는 밀폐된 일종의 실험실이자 하나의 공유하는 환경을 이룬다. 앞에서 모여 숨을 들이마시는 동작 혹은 공동의 안무임을 지정하는 동시에 감각 자체에 대한 분별이다. 곧 춤(이 다할 수 없는 감각에 가까운 무엇)을 보여준다. 그러기 위해 곧 모여 숨을 쉰다는 행위만이 펼쳐진다. 하나의 울타리로 놓인 공동 환경이 여기에 작용한다. 여기에 팬티만 입고 소리를 질러대며 서로를 이유 없이 때리며 뛰어다니는 소극을 연출하는 광경 등이 이어지기도 한다. 이는 일종의 논-댄스로 보이기도 한다. 안무화되지 않는/될 수 없는 움직임들을 전개하는 것, 한갓된 몸(것)이 나타나는 것, 감각의 권리는 그렇게 보면, 보는 것이 아니라 만져지는 것, 생생하게 나타나는 것으로서 춤이 아닌 것을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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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 곤조, <아라네스프의 시간>: 주체의 영점에서REVIEW/Interdisciplinary Art 2015. 7. 27. 15:56
▲ 게이 곤조 ⓒ게이 곤조사각 링 안에서 관객은 일종의 환영을 본다. 주변의 네 개의 천은 바람에 따라 유동하며, 거기엔 조각배를 저어나가며 비치는 네 개의 분절된 입체 풍경이 투사된다. 이 영상은 그러니까 바람에 천의 유동을 반영한다. 영상은 같이 흔들린다. 우리는 영상에서 잠기지 않는 주체의 자리, 흔들리는 지점에 있으며 바람의 기울기가 시각화하는 풍경에 따라 정위할 수 없는 몸을 환영적으로 인지한다. 바깥은 그렇게 담긴 채 열려 있다. 과거의 재현적 시간이 영상으로 인해 현전된다. 여기에 바깥의 소리, 보이지 않는 소리가 그 환영적 공간의 틈새를 뚫고 다다르는데 이는 내면의 소리로 전이되기 위한 듯 보인다. 흘러가는 흐름을 통과하는 감각만이 있다. 말은 물결과 바람 속에 휩쓸려 간다. 그러면서도 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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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다페 2015 리뷰: 특기할 만한 몸짓들, 현재 유효한 질문에 대한 질문REVIEW/Dance 2015. 7. 1. 11:21
스펠바운드 컨템포러리 발레단의 는 하나의 작은 큐브를 가지고 사계절의 변화와 그 속에 존재들의 관계를 구현한다. 커다란 무대는 작은 하나의 무대이자 공간인 큐브에서부터 시작되며 큐브로 돌아간다. 큐브에서부터 확장되며 큐브로 압축된다. 이 큐브는 입체적이고 모서리가 비대칭적으로 깎여 나간 다변형의 구조로, 계절의 분기에 맞춰 위치를 달리한다. 매우 변화무쌍한 건축적 구조물은, 그럼에도 유선형이 아닌 직각적이고 평면적으로 공간에 상정되며 이와 합치되려는 움직임들은 다분히 딱딱해지는 경향이 있다. 어쩌면 이는 수직 축을 유지하며 그것을 은폐하는 유연함의 몸짓들과 전체적인 활강의 동력을 가져가는 발레를 공간 안에 결부 지으며 다소 더뎌지는 흐름으로 인한 탈은폐의 측면일지도 모른다. 개막작인 만큼, 사계절의 화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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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미숙 <Amore Amore Mio>: 반복의 적층과 순간의 영원REVIEW/Dance 2015. 7. 1. 10:12
막이 오르기 전, 전미숙 안무가의 솔로 무대는 그 자체로 하나의 막이 되어 갔는데, 가령 둥글게 말아 흩어지지 않는 무거운 몸짓의 원환은 어떤 하나의 무게이자 몸으로, 막이 오르기 전에 무겁게 어둠으로 녹았다. 이는 이후 펼쳐진, 화려한 무대의 와 대칭을 이루며, 수많은 문들로 이뤄진, 그러나 그것들은 소통 불가능성으로 소급되는 각각의 모나드들로, 그것들이 만든 가상의 세계 그 문을 열었을 때 마치 그것들 모두가 해체되어 산화되는 것과 같은, 그 빛의 심핵을 건드리고 있는 듯했다. 전미숙의 솔로가 삶의 솟구치며 다져진 이야기의 주름, 그 궤적이라면, 는 그 찬란한 표면의 입자들이었다. 이 분자적 진동을 가리키는 가장 명징한 기호는, 결국 처음 무용수들이 들고 온 찻잔 위의 컵이 떨리며, 자신의 움직임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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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헨 롤러 <그림문자>, 다만 이것은 하나의 음악-춤의 리듬과 속도!REVIEW/Dance 2015. 6. 20. 13:05
▲ 요헨 롤러 , 사진 제공=국립현대무용단(이하 상동) 가령 두 사람의 얽힘에서 상하의 위치 전환의 양상과 그에 따라 달라지는 음악의 판은, 일종의 몸이 시각적으로 드러난 기계 버튼이 된 디제이 믹싱의 변전에 다름 아니었다. 이는 전체적으로 보면 음악과 맞물린 무대가 몸을 촉발하고 움직임은 그 음악에 합당한 지점에 위치함을 의미한다. 음악은 몸을 위한 일종의 수많은 참조자료들의 성격을 띤다. 단지 음악과 춤 그 하나로 합쳐지며 무한하게 달려 나가는 무대가 주는 쾌감은, 곧 변화에 있었다. 어떤 과거나 돌아감 따위는 없다. 의식을 갖춘 주체나 존재 양상도 찾을 수 없다. ‘구성은 없다!’ 다만 뭔가 흘러가는 양태들만이 있을 뿐이다. 이 단순한 무대 구성의, 그러나 화려한 흐름은 감각을 완전히 사로잡기에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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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안산 국제거리극축제 리뷰: '시민적 일상 공간의 모색' 그 과도기에서REVIEW/Interdisciplinary Art 2015. 5. 8. 17:26
▲ 실존하는 거리극 축제로서는 가장 많은 인파를 모은다고 보인다. 일자형 이차선 도로를 모두 축제의 장소로 바꿈으로써 각기 다른 장소를 찾아다니며 얻는 장소 특정적인 경험의 상존 대신, 사이트로서의 구별 가능함으로 일종의 투명한 경계의 부스 형태로 공연들이 시간의 분배에 따라 온/오프되는 것으로 변화되어 있었다고 보인다. 한 마디로 비워진 공간이 도시 질서의 해방 출구를 체현하는 안산 국제거리극축제를, 오랜만에 찾았을 때 느낀 것은 한 마디로 별로 볼 것이 없다는 것. 장소 특정적인 무대로의 전환에 드는 비용은, 몰입의 관객 대신, 평범한 공공 설치물들과 함께 ‘셀카’ 찍는 시민의 관광객들로 수렴되었고, 그것이 붙잡아둘 수 없는 시간의 공연 대신, 함께 기억할 수 있는 추억의 기념 장소들을 구축하는 것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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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티벌 봄 2015] <멈출 수 있는 미래의 환영>, 적나라한 파국에서 시야각 바깥으로REVIEW/Interdisciplinary Art 2015. 5. 8. 17:14
@ 차지량 119 구조대 공간에 들어서 본 건 ‘여기’가 아닌 ‘저기’, 곧 한강 위 오리 배에 탄 난민들이었다. 미래에서 온 난민의 입국을 허용하는 협상의 자리에서, 그것과 거리를 좁힐 수 없이, 멀리서 중계되는, 매우 미소하게나마 시차를 허용하는 지연을 거쳐 그것과 마주하는 것이다. 구조 보트를 구동시킬 때 흔들림을 경험하고 전체적으로 땅에 뿌리박지 않은 공간에서 관객은 응시 대신 기다림과 지루함을 겪는, 일시적인 폐쇄 공동체의 운명을 띠게 된다. 이러한 답답하고 어두운 공간은 결국 차지량 작가가 미래로 전이한 현실의 알레고리를 실제적으로 체현하는 것이라 하겠다. 한편 난민 협상의 타결을 보기보다, 이 화면이 언제 끝날지가 기다림의 끝으로, 그 생명력은 곧 보이지 않는 미디어의 암묵적 권력에 있는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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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티벌 봄 2015] <필드워크 : 오피스>, '가상 현존의 전략들'REVIEW/Interdisciplinary Art 2015. 5. 8. 16:58
ⓒHeine Avdal 장소 특정적인 퍼포먼스로 지시된, 공연은 입국 수속 서류를 작성하듯 자신의 정보를 써내어 일종의 통과 의례를 거치며 임시적인 자아 정체성을 형성한다. 사무실에 들어가서 근무하는 축제 스태프 사이에서 이곳을 찍은 주변 광경들을 통한 재현된 내비게이션으로 현재 위치화를 시도하고자 한다. 공연을 관통하는 애니메이션은 지시하는, 현장의 오브제들을 반쯤 덮어 그것의 윤곽으로써 그 사물의 반절을 완성한다. 구성된 현실을 지시하는 에이 포 용지의 불투명한 표식들은 앞서 가는 퍼포머의 흔적으로 들어오는 셈으로, 아날로그이자 재현된 사물의 일부 스케치는 현실을 증강한다고 볼 수 있다. 애니메이션이 ‘생기를 띤animated 것’이라면, 동시에 ‘연속성’을 띤 생명체animal라면 이러한 사물-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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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무용단 끝-레지던시: 안무가 초청 프로젝트 리뷰REVIEW/Dance 2015. 4. 14. 13:52
언어-움직임-이미지의 균열적 총체▲ 국립현대무용단 끝-레지던시 공연 [사진 제공=국립현대무용단] (이하 상동)‘짏어’는 ‘싫어’와 ‘질어’(‘짊어’/‘집어’……) 등의 무수한 유사 기표의 착시를 ‘짊어’진다. 이것은 그 어떤 확정/이해 가능한, 단어를 거부(‘싫어’)하며 그것을 포섭한다. 독립적인 단어의 쓰임을 이탈하는 초과된 단어의 전시는 말을, 침묵을 대신한다. 말의 침묵은 침묵으로서 말하기가 된다. 무대의 현존은 그러나 그 앙다문 그러나 비죽 나온 두꺼운 입술에, 그 입술이 지니는 묘한 웃음의 흔적으로 수렴된다. 곧 눈과 입의 다른 층위에서 이 작품은 어쩌면 전적으로 쓰이고 있다. 곧 보는 것과 말하는 것의 간극이 이 작품을 추동한다. 이 기묘한 마스크의 무용수, 최민선이 갖는 침묵의 말은, 각각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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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다페르튜토 스튜디오>: 구성되는 연극, 발생하는 행위REVIEW/Theater 2015. 2. 13. 16:13
▲ 연극 [사진 제공=두산아트센터] (이하 상동) 다섯 개의 장/막/연극으로 이뤄져 있는 연극(들)을 통해 다페르튜토 스튜디오(적극)은 연극 자체를 따로 또 같이 말하고 있다고 보인다. 첫 번째 연극()은 양 한 마리를 세며-정확히는 타자打字를 치고- 화면에서 하나씩 증가되는 수열로서, 숫자의 증가로 수식되는 양으로 지정됨을 관객은 인식하게 된다. ‘숫자+양’ 이후 무대의 구멍에서 양으로 분장한, 양의 역할을 맡은 배우가 나타난다. 제목을 따른다면, 한 프랑스 패션 디자이너의 꿈속에서 양을 세는 가운데, 각기 다른 기괴한 양이 나타나는 형국이다. 표면적으로 이러한 시놉시스(타자)와 나타남의 시차적인 합치는, 재활용 물품들과 절합된-곧 분장이라기보다 덧붙이고 껴안고 들고 하는 식으로 일시적이고 분절적인 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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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 디스토피아>, 단순한 부정에의 열망인가REVIEW/Theater 2015. 2. 13. 15:33
▲ 디스 디스토피아_사진 김도웅 [사진 제공=컬처버스](이하 상동) 디스 디스토피아(This distopia)는 부정적인 장소, 디스토피아를 지시한다. 이것은 디스토피아라는 프레임은 무대를 구획한다. 곧 디스토피아라는 세계에 침잠·전염되기보다 이러한 디스토피아를 인지하는 주체로서 극을 바라보게 된다. 한편 ‘디스-디스’라는 발음/표기가 반복됨은 일종의 언어유희로 이해·인지 가능하며, 두 개의 ‘디스’가 자리바꿈을 하는 것으로 바라볼 수 있다. ‘this distopia’는 ‘dis-this-topia’로 볼 수 있고, 그에 따르면 이 부정적인 장소는 부정적인 이 장소로 전치되며, 전자가 저기의 부정적인 장소를 바라보는 이곳의 시선이라면, 후자는 여기 장소 자체를 부정하는 것에 가깝다. 이는 디스토피아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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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무용단 <춤이 말하다>: 춤의 전형적인 재구성과 아카이브에의 열망REVIEW/Dance 2015. 1. 5. 14:25
▲ 국립현대무용단, [사진 제공=국립현대무용단](이하 상동) 는 춤을 보는 것에서 춤의 말을 듣는 것으로 춤의 위치 전환을 감행한다. 그러나 렉처 퍼포먼스의 형식을 차용한 이 작품이 제목에서 가리키는, 이 위치 전환은 추상적이고 비언어적 춤에 대한 구체적이고 언어적인 해설/해석의 차원이 더해지는 것만을 이야기하진 않는데, 말하는 주체를 춤에 관련된 누군가가 아닌, 춤 그 자체로 본질적이고 환원적인 차원으로 돌렸기 때문이다. 곧 ‘춤을 말하다’의 메타 차원이 아닌, 곧 말 자체의 자율성을 가져가기보다, ‘춤이 말하다’라는 그 춤 자체의 신비주의 강령을 온전히 해체/재구성하기보다 춤 그것의 본질에 다시 사로잡힐 공산이 큰 것이다. 여섯 명의 춤꾼/무용가들은 한국무용계를 대표할 만한 다양한 분야에 속한다.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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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진엽 개인전 <춤 그녀 미치다>: 정면을 마주하며, 감각을 의식하기REVIEW/Dance 2015. 1. 5. 14:13
▲ 차진엽 개인전 ⓒKIMWOLF (이하 상동) 한국 춤계에서의 인지도나 나이 측면에서나 여러모로 어떤 현재적 지표가 될 만한 점에서, 그리고 독자적인 안무가-무용수로서의 입지를 시험·시현하는 자리라는 점에서, 차진엽의 공연은 춤계에서 무엇보다 이목이 집중됐다고 보인다. 5시 평일(수요일) 공연에서도 관객석은 80퍼센트 이상 찼던 것으로 보인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꽤나 명확했고 단단했다. 여러 아이디어와 무대의 짜임을 시험했고, 하나의 춤의 결로 소급되는 움직임을 구축하려 했고, 내용/서사 면에서도 완결성을 갖추려 했다. 시간도 길지 않았고, 각 신들은 모두 정확한 이유를 갖고, 명확하게 감각되는 움직임들로 짜였다. 또한 자신의 삶을 드러내는, 자기 목소리로써-처음 인사말부터- 기입하는 연출은 개인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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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나훈무용단 <씨저테일 서전트>: 파열과 기울기의 연쇄적 안무REVIEW/Dance 2014. 12. 31. 11:36
▲ 박나훈무용단 [사진제공=한국문화예술위원회] (이하 상동) ‘드르륵’의 더딘 가격과 일시적인 파열, 곧 시선을 무력화하는 일시적 멈춤과 굼뜬 움직임을 체현하는 규칙적인 박자가 형성하는 리듬과 그것을 빠르게 재생하며 입체적으로 뿌리고 펼치는 ‘드르륵’ 갈리는 소리의 이어짐, 가령 움직임들의 교차와 반복을 지속케 하는 사운드들이 생생하게 의식을 조인다. 이 우화 같은 반복에의 강박적 리듬은 작품 전체의 리듬의 규격이 되는데, 이 작품이 경사진 탄력적 4면의 정사각형 판에 올라탄 존재자들이 일종의 머릿속을 유영하는 식의 알레고리를 형성하는 부분과도 관계를 맺는다. 이 사각형의 경계에서 잔디를 만지며 이 땅을 하나의 세계로 구성하는 시선, 동시에 그 세계에 파묻히는 시선을 그 사각형의 세계/잔디밭에 세 명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