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Thea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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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현 작·연출, 〈스고파라갈〉: 동시대인의 공백을 노래하기REVIEW/Theater 2023. 11. 7. 02:50
〈스고파라갈〉은 창작을 한다는 것, 창작자로서 지금 여기에 존재한다는 것을 자문한다. 하나의 사회 구조 아래 한 몸으로 묶인 듯한 배우들은 경쟁의 일선에 서는데, 이는 진화론을 즉물적으로 대입한 결과이다. “스고파라갈”이라는 제목은 과학자 다윈이 진화에 관한 힌트를 얻은, 에콰도르의 제도 ‘갈라파고스’를 뒤집은 이름으로, 이는 다윈이 갈라파고스에서 가져온 거북이의 신체가 뒤집히는 이미지를 상기시키면서도 현재를 역사로 객관화할 수 없는, 또는 그러한 현재‘들’의 하나를 선택하는 데 실패한 또는 포기한 동시대 창작자의 현기증 또는 무력감을 자조적으로 드러내는 듯 보인다. 거기에는 역사는 참조점이 되지 못하고, 새로운 시대는 이미 도래한 것으로 보이지만, 그에 관해 연극으로써 무언가를 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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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신세계,〈부동산 오브 슈퍼맨〉: 슈퍼맨이라는 맥거핀REVIEW/Theater 2023. 11. 7. 02:12
극단 신세계의 〈부동산 오브 슈퍼맨〉(이하 〈부동산〉)은 부동산 전세 사기라는 현실을 극에 외삽한다. 〈부동산〉은 일상으로 돌아간 슈퍼맨(이강호 배우)의 모습을 비추는 것으로 시작하고, 부동산 전세 사기의 피해자 중 한 명이 되는 슈퍼맨의 모습과 이에 절망하고 또 극복하려는 과정에서 부동산 경제 관련 사설 교육을 받는 모습 등을 보여줌에도, 이는 슈퍼맨조차도 당할 수밖에 없는 실재로서의 현실을 증명하기 위해 동원되는 것에 가깝다. 따라서 방점은 슈퍼맨이 아니라,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않는 일반인이다. 곧 슈퍼맨의 함의는 특별한 이의 지위를 일반인의 신분으로 격하해야만 가시적인 대상으로 그나마 될 수 있다는 것. 실제 〈부동산〉은 피해자의 입장에서 발화함을 무대 전면에 배치한다. 프로시니엄 아치가 아닌 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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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잘못된 성장의 사례〉: 공간에의 서사를 세공하기 또는 넘어서기REVIEW/Theater 2023. 11. 7. 01:33
연극 〈잘못된 성장의 사례〉(이하 〈잘못된 성장〉)는 “지방 소도시 국립대학 식물분자생물학 연구실”에 있는 관련 종사자들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히라타 오리자의 과학연극 시리즈를 떠올리게 한다. 극사실주의의 외피를 입은 공과 사가 혼합된 제3의 공간에서 등장인물들은 전문적인 지식이 자연스레 뒤섞이는 일상적인 대화 속에서 인간에 대한 성찰과 질문을 향해 나간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잡초인 애기장대의 저항성 유전자 발현을 연구하며 박사 과정을 밟는 주인공 혜경(류혜린 배우)을 통해 〈잘못된 성장〉 역시 비인간 자체에 대한 연구, 곧 식물 주체성에 대해 이야기하기보다는 전문 직종을 가진 존재들의 언어, 그리고 보편적인 인간 정서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 참고로, 여기서 전자와 후자는 구체성과 보편성의 차원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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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숲우화-짐승의 세계〉: 연극을 만들어 나가는 힘의 요체란REVIEW/Theater 2023. 9. 12. 00:24
〈이숲우화-짐승의 세계〉(이하 〈이숲우화〉)는 착시를 불러일으키는 제목이 말해주듯 ‘이솝우화’의 여러 서사를 언어 유희적 농담으로써 전유하는 것으로 시작한다―‘이솝이란 남자’. 뒤이어 ‘여우와 두루미’, ‘토끼와 거북이’, ‘개미와 배짱이’, ‘달에 간 까마귀’로 이어지는 네 개의 에피소드는 마지막 막에 이르러서야 파생 서사의 일단락을 짓는다. 곧 서사의 유희로써 유희적인 서사를 갈음하는 실험이든 유희이든 그 형식은 서사의 내용을 명확하게 만들기보다는 서사를 이렇게 간단하게 작동시킬 수 있다는 차원을 보여준다. 곧 서사와 유희 사이에 무수한 서사‘들’이 자리한다. 반면, ‘달에 간 까마귀’는 앞선 작업들을 일종의 예열 작업으로 두면서 사이의 서사로서 위치하는 게 아닌, 서사 자체의 동력을 가시화한다. 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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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옥 연출, 〈혁명의 춤〉: 구조는 완결되는 것인가REVIEW/Theater 2023. 9. 12. 00:09
〈혁명의 춤〉은 혁명의 이념을 혁명의 이미지로 대체한다. 여기서 혁명의 이미지는 작품 전체의 이미지는 아니다. 짧은 대사들, “이쪽이야!”, “뭐지?”, “기다려!”, “들려?”, “그들 거야!”, “누가 오고 있어” 등, 위치를 지정하는 지시 대명사, 하나의 동사이거나 두세 개의 단어로 이뤄진 구문은, 상대방과의 관계를 맺으며, 각기 다른 여덟 개의 장면으로 반복된다. 이 여덟 개의 장면에서 엄밀히 혁명의 이미지를 수여하는 건 마지막 단계 직전에 이르러서이며, 그 전의 이미지들이 혁명을 위한 모종의 단계로 적용되는 것 역시 아니다. 다시 말하지만, 혁명의 이미지는 작품 전체의 이미지가 아니다. 이러한 이미지를 둘러싸고 있는 건 긴장과 긴박함의 정서이다. 하지만 이러한 정서는 그것을 그 자체로 두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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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변방연극제: 연극을 파훼하기REVIEW/Theater 2023. 8. 18. 11:37
변방연극제는 “취약하고 오염되고 더러운 것들의 축제”를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웠다. 이는 “변방”에 대한 새로운 정의이면서 연극제 안의 작품들의 다양한 코드로 분화하게 된다. 오염과 더러움이 같은 의미라면, 취약함은 조금 다른 양태의 단어라 하겠다. 전자가 세상의 시선으로부터의 부정적 규정을 뜻한다면, 후자는 어떤 부분의 구조적인 결여나 미비함 따위를 지시하지만 전자에 비해 그 자체가 절대적인 부정이 되지는 않는다. 이는 말 그대로 하나의 유기체적인 전체의 구조가 지닐 수밖에 없는 한계를 일컫기 때문이다. 내적인 차원에서는 후자가 연약함과 맞닿는다면, 전자는 그런 부정적인 규정에 대한 저항으로 전복될 수 있다. 바로 이런 차원에서 이번의 변방연극제는 세상의 원칙을 파훼하는 형식을 더욱 적극적으로 찾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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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이온(연출: 김상훈), 〈연극 안 하기 - 영화관 가기〉: 균열적 극장REVIEW/Theater 2023. 8. 7. 01:41
〈연극 안 하기 - 영화관 가기〉(이하 〈영화관 가기〉)는 극장에 커다란 스크린을 가설하고, 연극이 상연된다는 설정을 전복하고자 한다. 극장을 영화관으로서 지시하고 스크린을 둘러싼 환경에 연극적 시공간을 삽입한다. 그럼에도 감축되고 은폐된 연극의 언어를 구성하는 이러한 위치 바꿈 혹은 위치 교란은 연극을 지우기보다 그제야 성립되는 연극의 위치를 검토하게 만든다. 연극은 외화면의 잉여로서 부상하고, 거꾸로 영화는 사라진 연극을 지지하는 매체가 된다. 두 개의 영화 사이의 전환은 시공간을 재정의하는 결정적인 자국을 남긴다. 먼저 첫 번째 영화는 제목 없는 일종의 반복되는 이미지-계열체라면, 두 번째 영화는 〈Runaway Train(폭주 기관차)〉(1989)이라는 실제 영화다. 첫 번째 영화는 중력이 없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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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단(김광보 연출),〈벚꽃 동산〉: 사라지는 것들에 대해서REVIEW/Theater 2023. 8. 7. 01:11
사실주의 연극으로 알려진 체호프의 작업 중 〈벚꽃 동산〉이 갖는 현재의 함의는 무엇일까. 물론 이는 의미에 대한 맹신이 아니라 고전이라 불리는 것의 관성적 도입에 대한 우려와 회의의 반문이다. 그것이 갖는 사실성은 표현의 층위와 함께 컨텍스트의 차원에서도 유효한가. 일종의 사실주의라는 지지난 기표를 어떻게 재인지할 것인가. 무엇보다 김광보 연출의 〈벚꽃 동산〉은 원작을 무대 위의 시점 속에서 재편하며 인물들이 가진 역량을 새롭게 구성해 낸다. 러시아 혁명 이후의 시대 상황에서, 혁명의 언어와 일상의 언어는 서로를 마주하고 있지 않은 듯 보인다. 시대정신은 응결된 양상을 보여주지 않는다. 〈벚꽃 동산〉이 혼란과 격변의 불안정함을 투사하고 있다면, 오히려 이는 새로운 시대와의 조응에서가 아니라 그 반대의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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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장(임도완 연출),〈우리 읍내〉: 고전은 유효하게 현재에 기입되는가REVIEW/Theater 2023. 8. 7. 00:43
〈우리 읍내〉는 원작, 손턴 와일더의 희곡 「아워 타운(Our Town)」의 1900년대 미국 뉴햄프셔주를 배경을 1980년대의 대한민국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로 설정하는데, 이는 가장 비슷한 인구수를 가진 지역이라고 한다. ‘자동-결정’에 따른 이러한 설정은 표면적으로는 원작에 대한 엄밀한 고증의 명목을 띰에도 실은 원작이 가진 문화적 특성을 보여주는 것도 아니며 국내 현실에 대한 합목적적 유인 역시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나이브하다. 게다가 1980년대의 현실은 오늘날의 현실과는 꽤나 거리가 있어 보인다. 여기에는 시대에 대한 재현의 과제뿐만 아니라, 재현이 향하는 이념의 새로움이 요구된다. 〈우리 읍내〉는 활발하게 국내 무대에 올라왔었지만, 어느 순간 이후에는 소강상태로도 보인다는 점에서, 이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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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놀이클럽 제작, 〈버건디 무키 채널 오프닝 멘트〉: 핍진한 재현과 서사 너머의 공터REVIEW/Theater 2023. 6. 1. 00:05
〈버건디 무키 채널 오프닝 멘트〉(이하 〈버건디〉)는 긴박하고도 속도감 있게 진행된다. 말들의 섞임과 침투, 존재의 투여와 재투여를 통한 커뮤니케이션의 가속도는 역할과 역할을 섞고 말과 말의 자리를 바꾼다. 이는 관계의 갈등과 역할의 존재감이 툭툭 불거져 나옴을 의미한다. 동시에 중간중간 삽입되는 이미지나 전환 음악 등을 통해 감각적 편집의 효과가 현실에 적용된다. “버건디 무키”라고 하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이들의 현실을 다룬 〈버건디〉의 일상은 채널 송출의 이미지의 연장선상에서 존재하며, 이러한 이미지들로 수렴되는 이미지, 곧 메타-이미지로서 스크린이 그 일상을 되비추며 잠식하고 있다. 참고로 “버건디”는 색상의 이름, “무키”는 이들이 키우는 고양이 이름으로 여러 단어의 조합이 이룬 채널명과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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쿼드(적극 연출), 〈다페르튜토 쿼드〉: 연극을 정의하는 놀이REVIEW/Theater 2023. 5. 31. 23:46
〈다페르튜토 쿼드〉는 어떤 말이 있고, 그것을 수행하는 순서를 가져간다. 프롬프터의 말이 무대로 흘러나오고, 그것이 규칙이 되고 표현의 근거가 된다. 곧 각각 연출의 말과 배우의 수행이 그것이다. 그 말에 따라 관객은 빛과 어둠의 경계를 분별하며 어둠에 자리해야 한다. 마지막에 어둠과 빛의 경계를 무력화하는 것 역시 말이다. 쿼드 극장을 말(제목)과 공간으로 전유한, 〈다페르튜토 쿼드〉는 불, 물, 흙, 공기의 4막으로 태초의 세계를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는 기원을 재현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 또는 기원을 재현해야 한다는 강박으로부터 자유롭다. 순차적으로 흐르는 말과 움직임 또는 말과 이미지, 곧 언제나 이미지에 앞서 선행하는 말은 태초에 말이 있었다는 공연 바깥의 어떤 말을 따르는 것일 수도 있다.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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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페이스 타임〉: 부재를 현상하기REVIEW/Theater 2023. 3. 14. 01:10
창작집다 ‘여기에 있다’의 〈페이스 타임〉은 박세련 연출의 사라지지 않은 어머니의 번호로부터 영상 통화—“페이스 타임”—가 걸려 온다는 가정에서 시작한다. 여기서 전화번호라는 흔적은 부재를 현재로 기입하고 있으며, 이를 눌렀을 때 뜨는 빈 화면은 과거를 미래로 위치시킨다. 물론 이 화면은 가능하지 않을 것이고, 결말에는 정대진과 이진경 두 배우의 얼굴이 대체한다. 배우들의 발화와 극중극으로 투여되는 인형극 형식의 교차로 진행되는 극에서, 가상의 차원에서 이뤄진 현전은 후자와 관련되는 듯하다. 해와 바람의 다툼, 그리고 이를 방관하는 구름으로 인해 비가 내리고 제어되지 않고 홍수가 나서 생물들이 죽고 무덤으로 뒤덮인 세상이 된다. 이제 세상의 수많은 구멍은 갖은 생명체의 무덤이 된다. 또는 세상은 구멍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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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직, 〈아파야 낫는다 건강백세!〉: 애도라는 놀이의 효과REVIEW/Theater 2023. 3. 13. 23:37
이성직의 〈아파야 낫는다 건강백세!〉는 개인의 사적 추모 혹은 애도에 대한 몇 가지 형식을 구성한다. 이성직의 친할머니, 1933년생 이명숙을 이야기하고(1막) 그가 잘 담갔다는 물김치를 대신 담그고, 또 그를 대리하게 하며, 그를 대리한 이의 친구를 대리(2막)한 이가 꽃꽂이(3막)를 하는 일련의 행위가 그것이다. 1막의 이명숙에 관한 상기가 실상 그에 관한 비평적 해부에 가깝다면, 2막과 3막의 수행들은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명숙을 재현하는 차원으로 전개된다. 물김치 담그기는 이명숙이 구성했던 맛에 다가가려는 시도로 시작되지만, 그 맛은 공연이 끝나고 별도로 약속을 잡아야지만 실행되는 사후적인 증거로만 남는다. 곧 이명숙의 물김치와 그것을 구현하고자 한 이성직의 물김치와의 관계는 후자를 통해 전자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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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집단 세사람, 〈노스체(NOSCE)〉: 재난을 상상하기REVIEW/Theater 2023. 2. 23. 01:47
프로젝트집단 세사람의 〈노스체(NOSCE)〉(황정은 작가, 윤성호 연출)는 원전 폭발 후 25년째 고립된 채 살아가는 한 마을을 배경으로 한다. 할머니 옥(김은희 배우)과 20대 두 친구인 현(윤정로 배우), 희(김민주 배우)과 살아가는 이 마을에, 재난 구조 로봇 노스체(최희진 배우)라는 비인간 타자와 연(박윤정 배우), 필(선명균 배우)이 차례차례 찾아오며 마을에는 혼란과 균열이 생겨난다. 각종 빈티지한 가구와 집기로 촘촘하게 쌓아놓은 무대는 다른 일상의 시간과 세계의 환경을 강렬하게 보여주기 위한 시각적 양식이며, 나아가 외부와 분리된 게토화된 공간이자 폐허의 잔해로서의 시공간임을 드러낸다. 멧돼지의 침입으로 벽을 쌓는 일상의 시간이 지리하게 이어지던 이곳은 사회 안전망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곳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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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비밀기지,〈라이더〉: 두꺼운 미시사의 표면들REVIEW/Theater 2023. 1. 24. 22:52
아마 현실을 다루는 대부분의 연극은 현실을 인지하게 하는 메타-현실의 관점을 창안하고자 할 것이다. 물론 이는 전적인 형식이 되지는 않더라도/않겠지만 일부분 그러한 지점에서 ‘현실’을 반향하는 바가 생겨날 것이다. 그리고 〈라이더〉의 물리적이고 형식적인 차원에서 가장 특이한 점은 바로 자신의 장면이 끝나고서도 그 무대를 떠나지 않는 배우들에 있다. 이들은 다른 등장인물들의 갈등을 바라보며 의도치 않은 개입에 적잖이 당혹하면서도 자신의 역할의 연장선상에서 이 연극과도 같은 현실에 부가적으로 동기화되어야 한다. 언제든지 개입할 수 있다는 차원에서 주로 무용 공연의 일종의 워크숍적 순환의 차원으로 종종 등장하는 이러한 구도가 〈라이더〉에서는 조금 더 지나친데, 이들의 존재가 무대로 함입되기 때문이다. 이는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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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로켓캔디〉: 연극이라는 SF를 가지고 놀기REVIEW/Theater 2022. 12. 26. 16:32
공놀이클럽의 〈로켓캔디〉는 인간은 달을 개척하고 로봇이 노동을 대체해 더 이상 노동을 하지 않아도 되는 2043년을 다루지만, 정교한 우주 과학적 정보와 변화된 세계의 구체성을 특별히 가져가지는 않는다. 이는 한편, 등장부터 “더 나은 삶…”을 줄기차게 읊는, 솔라리아 최초 개발자 노아―버디-x가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게 되었다고 한다.―가 화성에 가려고 하는 기업가 일론 머스크에 대한 기시감을 주는 것과 같이, 2043년 역시 미래가 (또한 달에) 완전히 도착했다기보다 염원과 희망의 슬로건이 세계에 남아 있는 현재의 양상을 띠며, 다른 한편, 질산칼륨과 설탕을 섞은 로봇캔디를 추진제로 해서 아버지를 보러 달로 떠나려는 ‘지구’의 상상계적이고 도착적인 관점에서 극이 연장되기 때문이다. 곧 지구(와 그와 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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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동비둘기, 〈걸리버스〉: 역사의 어떤 형상들REVIEW/Theater 2022. 12. 26. 16:09
성북동비둘기의 〈걸리버스〉는 조나단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를 모티브로 가져오되 원작을 해체하고 분해하며 완전히 새로운 작업으로 나아간다. ‘조나단 여행기를 쓰는 걸리버 작가’라는 소설과 현실이 뒤바뀐 세계는, 관객과 직접 닿아 있는 화자의 시점이 화면―제4의 벽―에 자리하는 이미지들을 매개하는 구조에 대한 관점으로 연장되는 것으로 치환해 볼 수 있다. 현실과 가상의 모든 걸 뒤섞는 다중 초점의 세계상은 각 세계를 하나의 중심적 위상으로 두지 않게 만들며, 종잡을 수 없이 매번 다른 세계를 마주하는 ‘걸리버’의 모험에서 유발되는 감각들을 생생한 차원으로 전이한다. 곧 〈걸리버스〉는 『걸리버 여행기』를 재현하지 않고 현전시킨다―그럼에도 사회 고발 소설의 성격은 연장한다. 이는 영화 〈명량〉을 소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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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사월의 사원〉: 두 개의 공간(으로 이뤄진 극장)REVIEW/Theater 2022. 12. 26. 15:30
〈사월의 사원〉은 무대 위에 좌우, 맞은 편으로 3면의 객석을 구성하고 기존 극장의 객석까지를 무대로 활용한다. 무대 위의 두 개의 방 공간을 중심으로 무대 뒤쪽 객석은 그 바깥이 되거나 캄보디아 현지, 그 여타의 장소들로 분한다. 뜨개질 공방을 운영하는 영혜(우미화 배우)의 집과 세상을 떠난 자신의 딸을 찾으러 간 메싸(박수진 배우) 두 존재는 각각 전자와 후자에 해당되는 두 공간에서 대별된다. 〈사월의 사원〉은 무대의 전환이나 교체 없이 극장 공간 전체를 활용하는데, 동시에 수어 통역이 함께 진행되면서 그러하다. 이는 ‘무대 뒤쪽’에서 배우들의 연기가 진행될 때, 집의 소파 위에 앉거나 실내 공간 안에서 수어 통역이 진행되어 극장 전반은 변화되지만 ‘변경’되지는 않는 결과를 낳는다. 무대는 완전히 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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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의 인형들: 인형의 조건들》: ‘인형이 거기 있다!’REVIEW/Theater 2022. 12. 26. 14:26
‘기존의 인형들’은 2018년 에르베, 여신동, 적극이 참여하며 처음 시작된 이후, 2021년 이경성, 여신동, 김보라가 참여한 《기존의 인형들: Post Pupperty》[참조: https://www.artscene.co.kr/1794]에 이어 세 번째 공연에는 남긍호, 양종욱, 입과손스튜디오가 참여했다. 인형 제작자 이지형은 각각 이 세 창작자/팀에게 “인형의 조건”으로 조종자(관절), 등장인물(언어, 배우), 소리(감탄사)를 제시했고, 동시에 창작자/팀은 인형 1, 2, 3이 관절을 갖게 된 시점 이후 이를 변형 가능한 상태의 조건에서 전달받아 작업을 진행했다. 양종욱의 〈몸에 대한 말들〉은 인형의 관절들을 테이블에 늘어뜨려 놓은 채 그것들을 향해, 그리고 이후 얼굴과 함께 발화한다. 그 말들은 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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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극작, 〈클래스〉: 메타-문학, 그리고 삶과 예술 사이의 경계 혹은 경로REVIEW/Theater 2022. 11. 16. 12:44
연극 〈클래스〉는 학생 B(정새별 배우)와 교수 A(이주영 배우) 사이에서 진행되는 극작 수업에서 고조되는 갈등의 양상을 좇아간다. A는 시종일관 B의 희곡에 대해 지적하지만, 마지막에는 B의 희곡에 참여하는 배우가 되며 자신의 개입을 멈춘다. 동시에 A의 교수이기도 했던 원로교수와 그와 역시 사제 간이었다가 고인이 된 B의 친구의 이야기가 수면에 오르고, 이에 대한 A의 방어는 희곡에 대한 비판에서 나아가 희곡을 쓰는 작가의 태도에 대한 지적과 완전히 분리할 수 없는 것으로 보인다. 결국 A에 대한 방어를 무너뜨리기 위함, 친구의 결백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진실로 기입함은 B가 A를 찾은 진짜 이유이기도 할 것이지만, 〈클래스〉는 원로 교수와 친구 간에 있었던 교류와 창작에서 사실 친구의 창작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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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집단 키타카, 〈프리미엄 유기농 복숭아〉, 〈우주를 여행하는 라이카가 남긴 마지막 메시지〉: 두 다른 SF는 어떻게 현실을 재현하는가.REVIEW/Theater 2022. 11. 16. 01:54
창작집단 키타카는 서울미래연극제에서 올린 ‘일단 SF’는 〈프리미엄 유기농 복숭아〉와 〈우주를 여행하는 라이카가 남긴 마지막 메세지〉 두 작업을 묶은 제목으로, 공연 시작에서 이 둘을 묶어 연극으로 가는 입구를 노정하는 차원으로서의 소개 멘트를 덧붙였다. 이 둘을 “일단” SF라고 지칭한다면,’ 두 공연을 뒷받침하는 어떤 토대를 찾는 건 또는 그러한 토대의 차이를 구성하는 건 키타카의 세계관에서 정의하는 SF가 될 것이다. 〈프리미엄 유기농 복숭아〉(황나영 작, 이하 〈프리미엄〉)는 기후 위기로 인해 벌이 멸종한 이후, 드론 벌이 그 역할을 대신하게 된 세계에서 인간 벌이 돼 “프리미엄 유기농 복숭아”를 유일하게 생산하는 “서진과수원”에 취직한 흙수저 은하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은하는 과수원 사장인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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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새 작·연출, 〈극동 시베리아 순례길〉: 미래 앞에서 우리는…REVIEW/Theater 2022. 11. 8. 14:14
끊임없이 지구의 끝을 향해 걷는 ‘여행자’, 산티아고 순례길 반대편으로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는 시베리아 길을 향한 그의 여정은, 온라인 게임 유저들의 화제를 모은다. 동시에 기상청 소속의 기상탐지 시스템 연구원들의 관찰 대상이 된다. 〈극동 시베리아 순례길〉(이하 〈순례길〉)에는 알 수 없는 자의 미지의 좌표가 전제되고, 이는 그 바깥에서 사유되고 추적되어 현재의 삶에 들어온다. 그의 좌표는 일반적인 인간 사회의 바깥에 있지만 현실 세계를 기반으로 한 VR 체험 방식의 가상 세계에서는 새로운 이정표가 된다는 점에서, 기술은 일견 현실을 더 잘 매개하는 역할을 하는 것 같지만, 그 기술이 재현할 수 있는 사전 데이터 확보 차원에서 오히려 ‘그’의 존재는 특별하다. 비가시화된 장소의 영역을 볼 수 있게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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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재, 박유라, 〈장면싸움; 커튼문계단벽〉: 북극 배우에게 주어진 시각장REVIEW/Theater 2022. 11. 8. 12:34
무대는 탐험적 지대로 놓인다. 무대는 의도와 시도를 위한 긴장으로 남는다. 미술 작가 조경재는 빈 공간으로서 극장을 운동과 적용의 산물로 구성했기 때문이다. 박유라 안무가는 안과 밖, 경계와 지대들로 나뉜 곧 비가시적 영역과 가시적 영역, 그리고 영역들 자체의 구분을 가시화한 검은 공간 속에서 자신의 ‘중심’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본질과 적용 사이에서, 현존과 허구 사이에서, 이미 있는 몸과 표면의 몸 사이에서 그는 적응하기를 선택한다. 적어도 적응 이후에 전개를 생각한다. 가령 경계 안, 비가시적 공간 안에서 그는 일정 부분의 신체만을 드러낸 채 머문다. 어떤 에너지를 모으는 데 시간을 들인다. 이러한 공간은 비의적인 것으로 신비화되거나 알 수 없는 시간을 담고 있는 것으로 여겨질 수도 있지만, 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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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미니 프로토콜, 〈부재자들의 회의〉: 배우에 관한 존재론REVIEW/Theater 2022. 11. 7. 14:12
리미니 프로토콜의 〈부재자들의 회의〉(이하 〈부재자들〉)를 채우는 건 관객들이다, 회의의 대리자를 자처함으로써 또는 대리자의 가능성을 전제함으로써. 부재를 상기시키는 각기 다른 10개의 스크립트가 있고, 이는 미리 녹음된 내레이션이 현재에 놓인다. 이들은 헤드폰을 끼고 소리를 하달받는데, 서류 봉투에 든 지시문 따라 읽기에서 시작해 인 이어 모니터로 매개하는 프롬프터 방식, 종이에 새겨진 글자를 보여주는 일종의 수동 자막 입히기, 움직임 스코어 수행 등으로 스크립트를 구현한다. 스크립트는 물론 스크립트 ‘사이’까지 모든 과정이 예측된 절차를 수행한다는 점에서 작품은 이미 구성된 바를 단지 구현하는 것이지만, 현장에서 누가 나올지―그것 자체가 의문시된다.―어떤 변수가 작동할지 약속되어 있지 않다는 점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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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우재 작/연출, 〈A·I·R 새가 먹던 사과를 먹는 사람〉:(비)인간을 상상하는 법REVIEW/Theater 2022. 9. 9. 01:04
현재를 향한 미래의 구상 〈A·I·R 새가 먹던 사과를 먹는 사람〉(이하 〈A·I·R〉)이 그리는 2060년대는 사실상 오늘날의 사회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음이 체감된다. 그것은 우리가 아는 몇몇 사회의 이념형을 분할한 것이다. 자본주의가 지배하며 과학 기술이 집약된 스마트 시티의 미래상이 1구역인 국가라면, 동등하고 평등한 공동체의 자율적 역량을 신망하는 곳이 2구역 “네크”이며, 선주민이 살며 국가 바깥의 통제되지 않는 자연이 곧 3구역이다. 이러한 구분은 사실상 그 안에 각기 사는 사람들의 모습으로 재현되지 않으며, 비로소 이 세 구역을 횡단하는 등장인물들에 의해 정치체제와 사회 현실, 그리고 제도 바깥의 삶과 기후 위기 이후의 삶이 혼합―거꾸로 〈A·I·R〉는 이를 분할하여 횡단 불가능한 공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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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주 작/연출, 〈들뜬〉: 촉각의 연극REVIEW/Theater 2022. 8. 29. 21:10
떠도는 이야기들을 쓸어 담는 공간-신체 〈들뜬〉은 짐을 다 뺀 황량한 집에서 시작한다. 이는 물론 소극장의 검은 바닥 자체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것은 물론 방이 아닌 다른 공간은 아니다. 남자의 맨발은 그것을 지시한다. 물론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배우의 현존은 장소로부터 체결된다.’ 아마도 이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남자는 오랜만에 아내인 여자를 맞는다. 여자의 머리 위에 센서 등이 깜빡인다. 남자(최태용 배우)는 한참 동안 여자(김정아 배우)를 마주하지만 그를 응시하지는 않은 채 그 자리에 있다. 그는 허공을 보는 것 같지만, 사실 공간 안의 한 점을 보고 있다. 이 짧은 순간을 비교적 길게 늘이며 공간이 그의 몸에 담긴다. 시간이 멈추고 멈췄던 시간이 몰려온다. 〈들뜬〉은 발화를 통한 배우의 현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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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코미디캠프: 파워게임》: 발화하며 현재화되는 경계로서의 ‘극’REVIEW/Theater 2022. 8. 29. 20:46
1인극의 스탠드업 코미디를 표방하며 대략 30분 정도의 시간으로 규격화되는 것으로 보이는《2022 코미디캠프: 파워게임》(이하 《코미디캠프》)에서, ‘코미디’라는 장르를 전면에 내세운 건 연극(인) 바깥의 다양한 이야기를 수용할 수 있는 적당한 포장으로도 보인다. 안담을 제외한 김은한, 배선희, 신강수 세 명 모두 평소에는 코미디 바깥에서 연극을 한다―《코미디캠프》에서는 안담이 유일하게 마이크를 사용한다면, 이 셋은 마이크 없이 무대에 선다. 반대로 이들은 《코미디캠프》에서 연극이 아니지만 연극에서 하지 못하는 것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코미디캠프》가 상대하는 건 일종의 연극이고, 《코미디캠프》가 지향하는 건 오히려 연극의 잔여이며 연극 바깥의 존재하지 않는 어떤 연극일지 모른다. 이는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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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지 연출 〈누구와 무엇〉: 현실은 이념을 장악한다!REVIEW/Theater 2022. 7. 28. 23:11
그린피그의 박현지 연출이 연출한 연극 〈누구와 무엇〉은 미투 이후 지금 여기의 차원에서 보면 가부장적인 가정에 복속된 전통적인 여성에 대한 관념이 어느 정도 형해화되었는지 또 그것을 뚫고 나오는 현재의 목소리가 어떻게 여전히 지난 관념과 타협하거나 병렬하는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여전히 현실적이고 또한 비판적이고 메타적인 시선의 규준을 마련하며 유의미한 지점을 구성한다. 파키스탄계 미국인 작가 에이아드 악타(Ayad Akhtar)는 서구 근대와 아시아 전근대의 경계에 위치한 동시대인의 질문을, 〈누구와 무엇〉에서 파키스탄계 미국인 무슬림 가족, 곧 절실한 무슬림 신자인 아버지 아프잘과 페미니즘을 경유해 선지자 무함마드와 그에 대한 상을 재구성하는 소설 작가인 딸 마위시의 관계 속에서 던진다. 종교에 관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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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편입생〉: 진리를 향한 질문들REVIEW/Theater 2022. 7. 28. 23:08
연극 〈편입생〉은 면접을 앞둔 두 인물의 모습에서 시작해, 이들이 면접을 거치고 어떤 삶의 변화로 수렴하는지를 보여준다. 인물의 전사와 이 인물들이 외부의 시선을 통과하며 한 개인들의 삶은 사회적 실재의 한 예시가 된다. 닫힌 공간에서 인물의, 또는 인물 간의 발화는 매우 집중력 있게 진행된다. 뉴욕 슬럼가에서 자란 두 인물이 장학생 추천을 받고 명문대 편입생 후보가 되어 시민단체 직원 데이비드 데산토스(조의진 배우)와 모의 면접을 치루가 되기 위해 한 모텔 방에서 만나는 것으로 시작한다. 여기서 〈편입생〉이 ‘편입생’이 되기 위한 클라런스 매튜(김하람 배우)와 크리스토퍼 로드리게스(최호영 배우)의 살아온 환경과 트라우마와 같은 강렬한 기억에 의존해 그 둘의 고유성을 부각하는 데 집중한다면, 이후 조지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