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Theater
-
0set 프로젝트, 〈관람모드-있는 방식〉: 극장으로써 다른 삶의 존재 방식을 자각하기REVIEW/Theater 2021. 10. 8. 16:02
이동―출발과 도착, 그리고 머묾―은 〈관람모드-있는 방식〉의 시작과 끝, 곧 형식적 골자를 이룬다. 출발과 도착의 장소는 같고, 한국장애인개발원이 운영하는, 국회의사당역 앞 이룸센터가 그 장소가 된다. 사실상 여기서 무언가가 진행되지 않지만 이 장소는 공연 자체가 장소의 서사라는 전제에서 텅 빈 기표의 공간을 질문으로 채우게 하는데, 공교롭게도 법을 제정하는 의회와 인접된 곳이라는 점에서, “법”을 키워드로 한 페스티벌의 전체 지향점과 맞물린다. 〈관람모드-있는 방식〉은 법이 있기 전의 장애인 시설에 대한 법적 규정이 미흡했을 때부터, 오늘날 법의 탈시설의 수용과 같이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지는 역사의 변곡점에 새겨진 법의 무늬들을 확인할 수 있다. 폐쇄된 장소에서 이전의 기억을 듣는 것과 탈시설 운동의 ..
-
이오진 작, 연출, 〈청년부에 미친 혜인이〉: 현실에 개입하는 목소리REVIEW/Theater 2021. 10. 5. 21:52
정중앙 상단에 십자가가 자리하고 그 아래, 목사의 단상이 배정되는 교회의 물리적 장소성을 극장 전체로 전유한 것은, 이 연극의 언어가 사실임 직한 무언가를 전달하려는 것과 맞물리는 한편, 장소적 아우라가 한 개인―여성, 청소년, 약자―에게 가해지는 위계와 폭력이 극의 주요한 모티브임을 지시한다. 드라마 연극의 외양을 갖고 있지만, 한편으로, 극의 드라마는 전개가 빠르며, 최소한의 간결한 전사를 전하는 데 그친다. 다른 한편으로, 일상의 시간을 지나치게 드러내는 식으로 극은 극사실주의적으로 편집된 것 같고, 이는 특히 라이브 연주와 노래가 나온다는 것에서 그러한데, 라이브 공연의 경우, 장소의 아우라가 단지 무대 세트라는 간극을 은폐하기 위함이거나 공연을 통한 매체적 확장을 전시한다는 것 외에 별다른 특이..
-
〈김이박이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 김이박이 고등학교에 입학한다〉: 아카이브로서 몸의 정동REVIEW/Theater 2021. 9. 22. 00:55
1992년 고등학교에 입학한 김이박과 2008년 고등학교에 입학한 김이박, 전자에서 후자로 건너가는 지점에 복수의 김이박, 곧 하나의 김이박들이 있다. 곧 〈김이박이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 김이박이 고등학교에 입학한다〉(이하 〈김이박〉)의 제목에서의 동어반복의 제스처는 두 개의 다른 시간을 하나의 더 먼 곳에서부터 오는, 그리하여 합쳐지며 다시 과거가 되는 하나의 시간으로 구성됨을 의미한다. 분명 처음에 두 다른 김이박이 전제되지만, 이 둘은 무대라는 하나의 시간대에 있으며, 그러한 흐름 가운데 하나의 김이박과 다른 김이박은 역할을 교환하는 듯 보인다. 둘은 서로의 시간을 구성하지만 실은 거울처럼 상대를 비추고 그 상대에 의해 자신이 구성되는 관계로 엮여 있다. 1992년에서 2008년을 거쳐, 2021년..
-
한현주 작, 이양구 연출, 〈집집〉: 하나의 집(을 지배하는 시스템) 아래 무수한 존재들이 있다!REVIEW/Theater 2021. 9. 22. 00:19
극장에 들어서면 작은 집 구조가 만들어져 있다. 낡은 나무로 된 싱크대장 표면에 흰색 패널을 부착하는 것으로 극 중 유일한 사물의 변화가 여러 장면에 걸쳐 단속적으로 꽤 느리게 일어나는 것처럼, 리얼함은 임대아파트를 재현한 이 집 안 곳곳을 지시하는 것으로 드러나며, 마찬가지로 그 사물을 만지고 지시하며 인물의 발화가 구성되듯 일상은 한없이 느리고 세세한 시간성으로 구성된다. 리얼함은 곧 이 집의 외양, 곧 그 속의 사물들, 그중에서도 싱크대가 지지하며, 이 집은 20년의 시차를 둔 두 인물, 박정금(박명신·이윤화 배우_더블캐스팅)과 연미진(이나리 배우)의 삶을 오가는 공간이자 리얼함의 공통된 토대이기도 하다. 곧 그 둘은 다른 시간에서 마주할 수 없는 반면, 이 집은 마치 그 둘을 응시하듯 제 모습을 ..
-
극단문, 〈외로운 개, 힘든 사람, 슬픈 고양이〉: 시대를 말하거나 역사를 구성하는 연극의 언어REVIEW/Theater 2021. 9. 13. 21:33
예술인에 대한 비하 장면을 포함한다고 하는 〈외로운 개, 힘든 사람, 슬픈 고양이〉는 예술을 하나의 범주로 두며, 또 다른 정치의 한 범주로서 동물권이라는 의제를 다루고자 한다. 정확히는 그러한 의제를 다루는 사람들의 재현을 통해 예술에서의 새로운 의제로서 동물권을 내세운다. 여기서 예술은 보이지 않는 현실, 곧 동물권이 법으로 자리하는 데 역할을 했을 사람들의 말과 사유를 구성하고 보여주며, 법이 만들어진 절차와 과정을 인간 다시 배우의 그것으로 전유한다―동시에 법을 인간의 언어로 전유한다. 이러한 역할에는 배우의 기술과 개성이 반영되며, 정진새 연출이 함께해온 극단 문의 연기 양식 역시 살펴볼 수 있다. 이를 통해 가시화되지 않은 동물권의 법에 대한 역사의 시공이 그려진다. 이에 따르면, (진보적) ..
-
극단 적, 〈햄릿의 비극〉: 독백, 무대, 수행의 조각들REVIEW/Theater 2021. 8. 30. 09:12
〈햄릿의 비극〉은 극 대부분 햄릿(박하늘 배우)과 거트루드(곽지숙 배우), 클로디우스(김은석 배우) 세 명의 인물 간의 발화로써 진행된다. 이는 첫째 마주하는 대신 시종일관 정면을 향한다. 특히 햄릿과 거트루드의 비중이 높다. 어느 정도의 대화가 있지만, 셋 모두 극 대부분에서 각자의 독백의 심리를 전개하는 것에 가깝다―이 셋의 말은 대부분 어느 정도의 독백을 가정하며, 따라서 특정한 수신자를 위한 발신으로 감각되지 않는다. 대화랄 것은 햄릿과 거트루드 둘 사이에서 가장 직접적으로 발생하며 이는 예외적으로 현실의 평면을 구성한다. 특히 햄릿과 다른 둘과의 발화의 간극은 하나의 평면에 이 셋이 속하지 않는다는 것에서 오는데, 햄릿이 관객석에 더 가깝게 위치한다는 것, 거트루드와 클로디우스는 더 뒤에서 그를..
-
〈거리두기〉, 애도에 관하여REVIEW/Theater 2021. 7. 25. 00:49
‘살아갈, 사라진, 사람들: 2021 세월호’의 일환으로 열린 0set프로젝트의 〈거리두기〉는 4.16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단원고 학생 오준영 군의 가족(오민영_오준영 군의 동생, 오홍진_오준영 군의 아버지, 임영애_오준영 군의 어머니)의 이야기를 담은 영상, 그리고 실제 등장한 오준영 군의 어머니의 이야기, 그리고 그 가족이 남긴 메모를 읽는 것, 그리고 극장 주변을 한 바퀴 도는 투어의 역순으로 구성된다. ‘세월호’라는 단어는 정치적으로든 미학적으로든 너무나도 강력하며 따라서 세월호를 언급하지 않고 그것을 다른 식으로 말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곧 세월호를 다루는 작업의 과제는 궁극적으로 세월호와 현실의 틈을 언급하면서 공고한 우리, 곧 공고해질 수 없는 우리를 재정초하는 것이라 할 수 있을까. ‘..
-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거리두기’효과 창출을 위한 연출과 연기술 연구 – 코로나 바이러스를 中心으로〉, 효과는 의미를 초과하는가REVIEW/Theater 2021. 7. 22. 10:22
브레히트의 서사극 양식은 어떻게 현재의 연극 메소드로 활용될 수 있을까. 그것은 오늘날 어떤 의미를 획득하는가. 형식이 내용과의 거리를 두게 하는 것이라면, 그 내용은 순전히 전달을 포기하기 위한 것일까. 아니면 그 내용을 토대로 또 다른 내용을 구성하기 위한 것일까. 비판적 거리는 내용과의 순전한 불화를 구성하는가, 내용 너머 진리의 주체라는 자리를 수여하는가. 물론 이러한 양자택일의 질문은 브레히트의 극작법이 다양한 매체 활용과 유희적인 요소를 근거 삼아 ‘재미’를 주려 했다는 점을 은폐할 것이다.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거리두기’효과 창출을 위한 연출과 연기술 연구 – 코로나 바이러스를 中心으로〉은 브레히트의 서사극을 메소드로 활용해 동시대적 의제에 관한 비판적 입장을 취할 것을 요청한다. 합판으로..
-
〈자연빵〉, 징후적 주체, 전윤환의 자기만의 방REVIEW/Theater 2021. 7. 16. 11:47
코인 열풍의 막차에 탑승해 전 재산을 투여한 자신의 실화를 바탕으로 실제 하루치 관객 수입의 동시 투자와 함께 진행하는 전윤환의 수행적 연극인 〈자연빵〉은, 전윤환의 삶의 불순물들을 매끄러운 짜임으로 구성하는 대신 단순히 시간을 축적하는 식으로 흘려보낸다. 달리 말해 전윤환은 여러 파편적 화두에 관한 자기 생각들을 본인의 의식의 흐름인 양 제시하는데, 이는 하나의 내러티브로, 완결된 인물로 구조화되지 않고, 단지 전윤환이라는 인물의 역사, 곧 개인사로 자리하게 된다. 따라서 전 작 〈전윤환의 전윤환_자의식 과잉〉(2020)은 오히려 혼자 무대를 누비는 〈자연빵〉에서 온전히 수행된다. 엔딩 크레디트는 올라가지 않지만 관객이 자리를 뜨게 하는 마지막 엔딩 곡, 허정혁의 ‘알지 못한 채’의 가사는 이 극을 적..
-
2019 서울변방연극제, <사랑 및 우정에서의 차별금지 및 권리구제에 관한 법률>(김원영 x 0set프로젝트): 미학의 언어와 예술의 언어REVIEW/Theater 2019. 8. 4. 21:07
▲ 김원영 x 0set프로젝트) 공연 모습, ⓒ한민주 [사진 제공=서울변방연극제] (이하 상동)제목에서 드러나듯, 퍼포머 김원영은 장애를 가진 스스로의 신체가 타인의 시선을 방어하기 어려운 불리한 상황에 놓일 때 보지 말 것을 법으로 제안하고자 한다. 이러한 법의 항목들은 개인적이고 미시적인 리스트를 이룬다. 그리하여 인격에 대한 보존의 욕망과 존중의 회피가 맞물리는 지점에서 직접적인 시선이 해체되는 합의가 형성된다. 하지만 관객은 중대한 기로에 놓인다. 이는 김원영이 한 개인이면서 퍼포머-주체이기 때문인데, 실은 이미 그러한 리스트를 작성하면서 이를 예시로 보여줘야 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이러한 장면은 기억의 증상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결국 똑같은 것이 반복되는 순간에 이를 피해야 한다. 이런 알면서..
-
<명왕성에서>: 책임질 수 없는 판타지!REVIEW/Theater 2019. 6. 20. 21:41
▲ (작,연출 박상현) 포스터 는 세월호 당시를 정리하고 죽은 자의 목소리를 재현하는 차원에서 징후적이다. 이제는 그것을 거리를 갖고 볼 수 있는 시점에 이른 것일까. 결론에 이르러 ‘명왕성’은 그 죽은 자들의 발신지라는 점에서, 그리고 그로부터 그들의 안부가 전해지고 있다는 점에서, ‘애도 불가능성’이 소실되어 가는 작품은 그 자체로 비정치적이며 무지의 판타지를 구현하고 있는 것 아닐까 하는 의문을 안긴다. 그러한 판타지를 통해 이 작업은 신파에 도달한다. 저 작업을 보며 울고 있는 당사자들을 부정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그 반대로 이 작업의 발신 방향이 즉물적으로 당사자성에 쉬이 기대고 있음으로 되돌이켜 그 의도를 반문할 수 있을 것이다. 곧 그러한 위로의 효과를 부정하는 것이 아닌 그 방식과 형식..
-
<녹천에는 똥이 많다>: 뛰어난 공간(에의) 감각, 문학적 소실점, 그리고 현재에 안착하기REVIEW/Theater 2019. 6. 20. 21:27
공간, 형태, 세계관의 연장 ▲ 드레스 리허설 장면 [사진 제공=두산아트센터](이하 상동) 를 구성하는 공간은 블랙박스의 형태를 비껴나서 작품의 세계의 면모를 구성한다. 또는 역설적으로 그렇게 하기 위해 존재한다. 이 공간에의 경험이 말과 캐릭터와 이야기를 파악하는 데 있지 않도록 무대는 하나의 공간을 이루고, 캐릭터와 말을 포함한 소리가 그 공간을 더듬어 나가는 것이 이 작업의 과정이 된다. 마지막에 이르러 주인공(화자)의 “거대한 오욕의 세계”는 물리적인 공간에서는 간접적으로 드러난다. 이는 문학적 서술 방식을 띤 탓에, 그리고 중간 중간 구체적으로 주인공 내면의 목소리가 3인칭 시점으로 전환되는 탓에 현실은 그 바깥이 되고 내면은 파악되어야 할 중핵이 되는데(현실에 위치한 인물들은 바깥으로 전도된다..
-
<Home>: 리얼리티(의 마법)를 관찰하기REVIEW/Theater 2019. 6. 16. 13:12
▲ 제프 소벨, [사진 제공=의정부음악극축제집행위원회](이하 상동)) 은 무대 위에 하나의 집, 한 면이 전면에 드러나게 집을 짓는 과정 속에서 사람들의 속살을 마치 관음증처럼 드러낸다. 가령 옷 갈아입을 때나 화장실을 쓰거나 샤워를 하는 장면에서 누드는 빈번하게 출현한다. 이는 논리적으로 당연한 것인데, 이것이 그야말로 보통의 우리가 집에 있을 때 다른 사람의 이목을 신경쓰지 않는다는 전제가 적용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계속 사라지고 나타나며 지속된다. 그러니까 건축과 해체, 이사가 크게 하나의 사이클을 그리기는 하지만 그 단편들은 삶의 한 부분이라는 점에서 고저 없는 동일 차원으로 반복된다. 그러니까 이 과정의 서사가 인물들에게서(개별적인 목소리나 관계에서) 오기보다는 시간의 변화라는 큰 틀에서 ..
-
<백설공주(또는 베를린 장벽의 붕괴)>: 보이는 것과 들리는 것의 동기화(봉합/간극), 그리고 또 다른 서사 가능성REVIEW/Theater 2019. 6. 16. 12:50
▲ 라꼬르도네리 [사진 제공=의정부음악극축제집행위원회](이하 상동) 는 제목과 같이 ‘백설공주’를 현대적으로 각색했다고 볼 수 있지만, 무엇보다 이 작업은 우선 스크린에 현장 더빙과 연주가 더해진다는 사실이 전적으로 중요하다고 할 수 있겠다. 이는 음악극이라는 축제 자체의 장르적 명명 속에서 한층 미묘하게 접힌다. ‘음악-극’, 곧 음악으로도 연극으로도 수렴되지 않는, 반면 그 둘을 더하는 것으로도 구성되지 않는 장르의 예외적 개념이랄까. 현장의 소리를 듣기 위해 원래의 소리를 삭제한/음소거한 스크린을 본다는 것은, 그 스크린이 온전하거나 그 자체로 충만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우리는 스크린 속 인물의 입과 그 바깥의 소리를 일치시키려 애쓰는데, 이는 단순히 연습/훈련을 통한 뛰어난 퍼포머들의 동기화에 놀..
-
프로젝트 XXY, 〈여기에는 메데이아가 없습니다〉: 재현으로서의 표현REVIEW/Theater 2019. 3. 12. 15:14
▲ 프로젝트 XXY, 〈여기에는 메데이아가 없습니다〉 공연 사진 [사진 제공=두산아트센터](이하 상동) 두 가지 재현이 있다. 타자의 재현과 연극의 재현. 우선 배우들은 타자를 유형화하고 다시 타자를 연기한다. 곧 타자는 이방인이거나 여자이거나 장애인이거나 하는 식의 제한된 도식으로 한정된다. 연극은 스테레오타입적 편견으로서 타자를 불러들이고 이를 연기함으로써 편견을 복제, 재생산한다. 재현 이전에 재현이 있다. 한편 이는 오디션이라는 형태를 통해 각 배우의 역량을 시험/실험하는 표현형이 된다는 점에서 창의적 지지대가 되며 재현은 이제 재현을 하는 이, 재현에 접근하는 이 자체를 보여주는 것으로 변환된다. 연기를 통한 재현에의 접근은 경쟁과 평가의 규준에 따라 과도함을 향해 치닫고, 연극의 장식성은 극단..
-
연극 <하이타이>(작/연출: 김명환): 역사와 진실이 갖는 무게…REVIEW/Theater 2019. 3. 12. 14:46
▲ 작/연출: 김명환 공연 사진 [사진 제공=두산아트센터] (이하 상동)(작/연출: 김명환)는 혼자 무대의 모든 시간을 채우는 일인극으로, 배우 김필은 프로야구 최초 응원단장으로 광주 해태 타이거즈의 호루라기 아저씨로 유명한 ‘임갑교’를 분하는데, 임갑교 분이 응원 관련한 생생한 일화를 포함해 아내와 아들이 죽음을 맞았던 굴곡의 역사를 연기한다. 실상 여러 역할과 신이 존재하는 일인극의 경우, 배우의 연기는 과도함과 소진을 낳게 되어 있다. 이는 무엇보다 에너지/신의 치밀한 분배와 계산에 따른 것인데, 배우가 느끼는 피로를 배우와 같이 느끼는 관객은 그 피로로부터 (벗어나) 어떤 지루함과 지겨움을 느낄 소지 역시 크다. 또는 그 한 명에 정박된 몸, 아니 무대의 제한적 다양함 속에서 배우에 대한 인정과 ..
-
디오라마비방씨어터 <언 강 위에서 스케이트를 타는 사람들>: 장치(로부터)의 서사REVIEW/Theater 2019. 3. 12. 14:33
▲ 디오라마비방씨어터(송주호 연출/무대디자인), (2019) 연극, 90분, 플랫폼엘 컨템포러리 아트센터 (사진: 김진호) (이하 상동)극장 로비 공간은 주요한 무대가 된다. 아니 이것은 ‘거의’ 무대의 전체이다! 여기서 극장의 로비를 재현/수행하는 무대 공간이 실질적인 무대가 된다는 것은 전도된 발상일 것이다. 그렇다면 실질적인 무대는 끝끝내 비가시화되어 나타나지 않는 가설의 무대라는 것―이것은 곧 중대한 스포일러!―으로 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진짜 무대는 저 바깥에서 펼쳐지고 이곳은 로비 공간으로서 극이 전반적으로 펼쳐지기 이전의 전 단계로 보게 만드는 것은, 사실 이 작업을 보며 겪는 크나큰 혼동이자 믿음이다. 곧 극장이 진짜/다시 열리기 전에 뭔가 밋밋한 것 같은 극의 지난 밀도는 이제 극..
-
연극 <오셀로의 식탁>: 절합된 텍스트들로부터 폭력REVIEW/Theater 2018. 2. 6. 12:06
▲ 연극 [사진 제공=극단/소극장 산울림](이하 상동) 은 몇 개의 차용과 번역의 과정이 그 가운데 자리한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오셀로’의 인물(의 이름)들과 (어렴풋한) 관계망을 가져오고, 이를 베트남 전쟁과 이라크 파병의 전쟁 경험의 두 세대를 설정하며 국내 상황으로 바꾸고, 해롤드 핀터의 「생일파티」를 모티브로 후반부를 구성해서 결과적으로 비극으로 끝맺지 않고 여성에 대한 남성(들)의 폭력과 남성 화자가 상정하는 분위기를 부조리에 대입해서 핀터식 부조리극을 동시대적 알레고리로 재구성하고자 한다. 말과 함께 음식을 한다는 것과 먹는다는 두 행위로 채워지는 무대는, 요리를 남성의 적극적인 역량(경제 행위)과 권위의 가치로, 베트남전에 참전한 데스데모나(김해나)의 아버지 브라반시오(이상일)에서 오셀로(..
-
<‘미인도’ 위작 논란 이후 제2학예실에서 벌어진 일들>: ‘사실을 작동시키는 거짓의 힘’REVIEW/Theater 2017. 12. 23. 02:51
▲ (작 강훈구, 연출 김현회) 콘셉트 컷, (사진 좌측부터) 배우 신윤지, 송희정, 송철호, 김보나 [사진 제공=극단 위대한모험](이하 상동) 무대 벽에는 여러 대의 TV가 동일한 영상들의 복제를 가능케 하는 스크린으로 기능하는데, 무대 전면은 사무실로 설정되어 있고 그 경계에 턱이 있고, 길의 역할을 한다. 사무실의 경계에 있는 세 모서리의 턱들로부터 사무실의 세 책상은 평행하지만, 문 옆의 책상은 비스듬하게 배치됐고, 정상적인 각도로 보이는 세 개의 책상과 그 바깥의 세 모서리는 사실상 객석에서 비스듬하게 측정된다. 이로써 관객석으로부터 비정상적 시각을 산출한다. 이는 정상적이지 않은 것에 대한 신념 체계, 이데올로기적인 지배에 의한 지식의 우위를 역설하(려)는 무대 장치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바깥..
-
연희단거리패, <억척어멈과 그의 자식들>: ‘이념으로서 전쟁과 생의 의지’REVIEW/Theater 2017. 12. 23. 02:26
▲ (작: B.브레히트, 번역: 이원양, 번안ㆍ연출: 이윤택) 공연 장면 [사진 제공=연희단거리패](이하 상동) 전쟁은 공허한 당위를 그 안의 사람들에게 스스로 만들어내게 하는가. 에서 전쟁은 세계의 질서를 바로잡기 위한 세계의 일시적인 혼란의 상태로 믿어지고, 이후 평화의 세계가 찾아올 것이라는 유예된 평화에 대한 환상이 이를 이념적으로 뒷받침하는 역할을 한다. 억척어멈(김미숙)은 전쟁을 적극적으로 장사의 수완으로 사용하며 전쟁의 유일한 승리자가 되는 듯 일견 보인다. 이는 돈에 대한 지나친 집착에 근거하는데, 사실상 그는 자신의 자식 셋을 모두 전쟁 통에 잃게 되며, 마치 그는 유일하게 전쟁을 벗어난 유유자적한 삶을 누릴 수 있는 듯하나 마찬가지로 전쟁의 영향을 벗어나지 못하며 결과적으로 전쟁으로 인..
-
성기웅 연출, <랭귀지 아카이브>: 언어가 구획하는 사랑의 이름들REVIEW/Theater 2017. 12. 23. 00:25
▲ (성기웅 연출, 줄리아 조 작, 마정화 번역/드라마투르그) 공연 장면, (사진 좌측부터) 배우 이윤재, 안다정 [사진 제공=K아트플래닛](이하 상동) 사라지는 언어를 아카이브 하고자 하는 언어학자 조지(이윤재)와 그를 곧 떠나려는 마리(전수지)의 사랑, 인류의 사라지는 언어인 엘로웨이어를 쓰는 단 두 명, 노부부 레스텐(박상종)과 알타(백현주)의 사랑, 그리고 엠마(안다정)의 조지에 대한 짝사랑, 언어와 사랑이 교착되는 지점을 그리는 듯한 작품은, 처음과 끝에 서사극적 요소를 차용함으로써 관객을 접속시킨다. 막이 오르면, 조지는 혼잣말로 화자가 되어 대사를 전달하며 제4의 벽 바깥에 있는 관객을 가상의 관객으로 상정한다. 조지는 보이지 않는 지문의 내레이션과 대화를 서로 주고받듯 무대에 있으면서 내레..
-
<당신이 알지 못하나이다>: ‘의미는 삶을 유예하고, 때때로 삶은 의미를 초과한다’REVIEW/Theater 2017. 12. 5. 00:28
▲ (권여선 원작, 박해성 각색/연출), (사진 좌측부터) 배우 신지우, 우정원, 신사랑, 노기용, 황은후 [사진 제공=남산예술센터] 연극의 시작과 함께 튀어나오는 ‘삶의 의미는 없다’는 말은 신은 없다는 말을 의미한다(제목이 수렴하는 지점은 당신이 알지 못한다는 사실이 아니라, 알지 못하는 것이 하필 ‘당신’이라는 것이다. 이는 당신‘이’에서 주격 조사의 차이에 기인한다). 사실 이는 신의 존재를 의심하며 신의 부재를 차라리 믿겠다는 유신론자의 좌절로 읽힌다. 삶의 커다란 고통, 죽음의 멍에를 짊어진 인물들, 특히 언니 해언이 돌연 살해된 이후 그 부재를 희미한 기억들로 채우고자 하는 애도 불능의 시기를 겪으며 삶의 의미를 논하는 다언(신사랑 배우)의 물음에서 이는 의존할 데 없는, 긍정할 수 없는 삶..
-
이해성 작/연출, <비명자2>: ‘사회적 의제의 직접적 반영’REVIEW/Theater 2017. 11. 28. 23:25
▲ (작/연출 이해성) [사진 제공=극단 고래] (이하 상동) ‘(소수의) 타인의 한정할 수 없는 고통은 결국 사회적 고통으로 전이된다’는 작업의 교훈은, 타인의 고통을 사회적 고통으로 체감해야 한다는 것을 전제한다. 측정할 수 없는 고통으로 정의되(지 않)는 그들의 고통은 결국 소통이 불가능한 비언어의 양적 크기로 측정되며(‘반경 4km까지 물리적 영향을 끼치는’) 동시에 이해 불가능한 이해로, 말할 수 없는 우리 자신으로 수렴된다. 곧 이 작업에서 ‘타자의 고통은 우리의 고통이다’라는 명제와 ‘타자의 고통은 절대적인 것이다’라는 명제는, 그런 ‘타자의 고통을 우리가 이해할 수는 없어도 공감할 수는 있다’는 명제를 더하며, 완전히 동일한 것으로 나아가게 된다. 우리는 비명을 끊임없이 지르는 끊임없이 죽..
-
<비평가>: ‘비평과 창작’에 대한 알레고리REVIEW/Theater 2017. 11. 28. 22:44
▲ 후안 마요르가(Juan Mayorga) 작/김재선 역, 이영석 연출, 포스터, (사진 왼쪽부터) 김승언, 이종무 배우 [사진 제공=K아트플래닛] 어느 날 한 극장에 오른 작품이 기립박수를 받는다. 그 희곡을 쓴 작가가 자신의 작업에 대해 꾸준히 비평을 해온 비평가의 집을 찾는다, 와인을 들고. 이런 설정은 이후 두 사람의 강력한 설전으로 숨 가쁘게 이어지며, 작가와 관계 맺는 비평가의 역할, 나아가 연극의 기능과 정의를 상기시키는 것으로 나아간다. 작업이 재미있는 부분은 각자의 날 선 입장이 팽팽하게 대립하는 가운데, 주로 ‘대비’되는 층위에서 비평과 창작에 대한 관점이 지금에 있어서도 유효한 부분이 있다는 것인데, 거기서 체현되는 건 인물이라기보다 수사의 설득력과 그 자체의 매력, 곧 말일 것이다...
-
이경성, <워킹 홀리데이>: ‘재현이라는 장치’REVIEW/Theater 2017. 11. 13. 19:28
인트로: 세 가지 방식들 배우들과 공연 스태프의 DMZ 일대(파주, 연천, 철원부터 고성까지)를 걷는 여정은 무대로 반영된다. DMZ를 상징적으로 표상하는 사물들, 철모와 소총, ‘삐라’ 등의 미니어처가 무대 중앙의 모래 바닥에 깔린 채 무대는 카메라에 의해 매개된다. 동시에 이들이 겪은 현장은 무대로부터 관객석을 둘러싼 나무 패널로 짜인 구조물 위의 걸음으로 보완된다. 배우들의 경험은 말하기와 걷기의 두 가지 방식으로 되살아난다. 카메라의 시간 ▲ ‘두산아트센터 창작자육성 프로그램’ (이경성 연출), (사진 좌측부터) 배우 장성익, 나경민, 김신록, 성수연 ⓒ정찬민 ‘내 속도대로 걸을 수 있다’는 성수연 배우의 말은, 걷기가 오롯한 물리적인 몸의 쓰임을 지시하기보다 자율적인 질서를 가진 몸의 생성을 의..
-
영진 리 연출, <용비어천가>의 모호함이란!REVIEW/Theater 2017. 7. 25. 14:40
소재주의적 나열? 혼합적 병치? ▲ [사진 제공=국립극단](이하 상동) 재미교포로 나오는 김신록은 한국인들에 둘러싸여 한 걸음씩 호기심을 안고 앞을 건넌다. 마치 이질적 시공간에 대한 체험과 여행을 하는 듯한 설렘으로 그는 한발 앞서거나 뒤따르는데, 백인 사회에서의 한국인에 대한 스테레오타입을 연기해 백인의 경멸, 혐오적 시선을 미러링하는 것으로 볼 수 있는 이 작업에서, 김신록은 어떤 분노나 감정을 드러내지 않은 채 웃음을 띠고 있다. 마치 마네킹 같은 표정을 지녔다. 그러한 얼굴이 그를 지배한다. 한복을 입은 한국인들, 아니 동양인들의 영속되는 신화의 재현과 표상에 대한 낯섦과 거리 두기가 또한 그를 통해 체현된다. 그의 몸 자체가 곧 디아스포라다. 중간에 비스듬하게 앉아 뺨을 맞고 고개를 오른쪽으로..
-
이보 반 호브 연출 <파운틴헤드>: 질문을 통한 확장과 매개의 극REVIEW/Theater 2017. 4. 11. 23:24
▲ 한국 공연 장면 [사진 제공=LG아트센터] (이하 상동) 백색 공간의 무대는 거대한 실험실 같은 인상을 준다. 계단을 따라 내려오면 하나의 테이블에 주인공이 위치하여 원작 소설을 읽는 것으로 시작되는 것과 같이, 이 무대는 거대한 단인 동시에, 그것의 연장으로서 일종의 프로시니엄 아치의 경계에 의도적으로 걸친 상태 역시 가져가며 배우의 모습을 관객의 시선에 맞추면서 진행해 간다고도 할 수 있다. 그 결과 조금 더 입체적으로 보이는 무대는 또 다른 테이블 위의 스크린을 통해 단 아래 테이블을 포함해 실시간으로 그려지는 건축 도면들과 신문을 통해 전해지는 소식들을 매개한다. 따라서 공간의 물리적 분배와 입체적 증폭 및 가상 미디어적 덧셈을 통해 연극은 무대와의 관계 맺기를 수행한다. 인상적인 실로폰 등의..
-
<나, 말볼리오> 리뷰, '극에 참여하고 있다'REVIEW/Theater 2016. 12. 5. 12:17
공연은 현대인을 대표하는 관객을 상정하고 그런 의식화된 관객을 끊임없이 조소하고 비판하며 진행된다. 관객과 직접적으로 대면하고 관객에게 말을 걸면서 무력하게 앉아 있는 수동적인 관객의 의식을 깨우는데, 이러한 직접적 인터랙션과 셰익스피어의 희곡, '십이야'의 말볼리오라는 캐릭터가 희곡의 줄거리를 이야기하는 장면은 거의 반반으로 나뉜다. 극에 참여한다는 의식으로부터 극을 본다/듣는다는 의식으로 넘어감은 후자를 일종의 극 중 극 차원으로 볼 수 있는 메타 의식을 갖게 한다. 두 부분은 엄밀히 구분되는데, 전자가 후자의 주석이 아니라, 후자가 전자의 인용 차원이 된다는 점을 인지할 수 있는 부분이다. 궁극적으로 극은 말볼리오라는 불운한 캐릭터에 대한 해설이자 현대적 주석쯤이 된다. 한편으로 연극은 기본적인 희..
-
2016 프린지페스티벌 5작품 리뷰REVIEW/Theater 2016. 12. 5. 11:41
이지현, ▲ [사진 제공=2016 프린지페스티벌](이하 상동) '요정'(이라고 소개하는 아티스트 이지현)을 따라 가상의 공간('이곳은 일본 해안가')을 상정하고, 신문지로 사람을 빚고 또 욕조에 담가 신문지를 찢어 만든 물에 씻기고, 신문지를 찢어 손으로 뭉쳐 거품을 뿌려준다. 신문지는 생명과 물질의 매체가 된다. 예약을 통해 일 대 일로 진행되는 퍼포먼스는, 역할놀이를 한다는 점에서는 어린 시절 소꿉놀이와 비슷하지만 레디메이드 사용을 가급적 줄이고, 인형('자신이 돌연 생각한 사람')을 실제 제작하고 그에 생명을 불어넣는 극을 가정한다는 점에서는, 접촉을 통한 몰입으로써 일종의 원시적인 형태의 염원의 주술적 미디어를 구현하는 바 있다. 지성은, 관객은 일시를 선택해 스테레오타입화된 이상적 신부를 위한 ..
-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 '숨 쉴 구멍이 없다'REVIEW/Theater 2016. 4. 29. 16:20
작품의 제목에서 방점이 찍히는 건 '모든'이다. 거기에는 군인이라는 특정 계급/신분에 따른 명명만 있을 뿐, 결국 그것을 말하는 이까지 불분명하게 흐트리며 포함한다. 다만 피해자(에 대한 탄식과 연민)만이 존재할 뿐이다. 극 속에서 유일하게 아들과 같이 자리하는 (탈영병의) 아버지는, 탈영을 한 아들과의 대면에도 태연하다. 아들이 어디에도 설 자리가 없다는 것, 코너에 몰렸다는 것, 그가 잠시 사회로부터 이탈된 채 공기처럼 부유하고 있다는 것에 맞서 어떤 초조함도 없다는 것은 어떤 사회의 외부도 상정하고 있지 않음을 의미하는 듯하다. 자신이 하나의 매체로서 전화를 받고 그것을 매개하는 것, 층간소음이 발생했을 때 으레 그에 대한 불만이 접수되고 나서 그것을 다시 전달했음을 알리는 것으로 사건을 종식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