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Thea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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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집단 세 사람, 〈멸종위기종〉: 욕망의 시선 그리고 무심한 시선REVIEW/Theater 2026. 3. 12. 13:11
〈멸종위기종〉은 멸종위기종을 다루는 두 가지 인간의 기술을 겹쳐 놓는 것으로 시작하는데, 이는 그것에 대한 각기 다른 인간의 시선과 태도를 보여준다. 그것을 보호하고 지키는 동물원 사육사 윤정연과 그것을 찍어 인류에게 그것의 숭고함을 메시지로 전파하고자 하는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반우, 그리고 그것을 전유하는 그의 제자 정은호가 그것이다. 동물과 인간 사이에 하이픈을 구성하는, 동물과 소통하는 역량의 전자는 후자의 대중 추수주의적 열망 아래, 동물을 가치의 기호로 정제하는 그 작업의 매개자로서 편입되는데, 이제 그 기호의 발신에 따라 생겨난 세상과 후자의 피드백 고리로부터 모든 상황이 급변하게 된다 그 사이에서 잡지사의 편집장 최유형은 대중의 욕망을 찾고 주조하는 데 두 사진작가 모두를 활용하는 차원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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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해률 작, 윤혜숙 연출, 〈시차〉: 사건을 연결하고 재발명하기REVIEW/Theater 2026. 3. 11. 20:16
배해률 작가가 쓴 〈시차〉는 시차를 둔 참사들의 성좌를 구성하는 가운데, 개인들의 미시사를 조립한다. 연극 바깥의, 실재의 참사들은 그 상징성으로 여전히 바깥에 자리하는데, 이는 엄밀히 인물들의 삶에 내재적으로 영향을 주지 않으며, 참사의 연표라는 순수한 형식으로 존재하는 듯 보인다. 무대 중앙의 천장에는 시간이 하나의 배경이자 전제 조건으로 장의 진행에 앞서 투사되며 강박적으로 참사의 시점 혹은 그것을 전후로 한 시간을 점검하도록 만든다. 그것은 순차적이고 각자의 고유성을 가진 것이지만, 일정 정도 세대와 그다음 세대, 그리고 개인의 세대적 분기와 같은 생애주기에 따라 분배된다. 참사는 기계적으로 조립되고 줄 세워져 있지만, 〈시차〉는 그것들을 똑바로 바라보지는 않는다. 참사는 우연한 것이며, 개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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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성 연출, 〈P와 함께 춤을〉: 피나 밖에서의 현전REVIEW/Theater 2026. 3. 11. 20:14
전설적인 혹은 당대를 대표했던 안무가 고 피나 바우쉬를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 연극 〈P와 함께 춤을〉은, 피나 바우쉬의 연대기를 충실히 따라가는 대신, ‘피나 바우쉬’라는 기표, 신화성의 자리로부터 시작되고 또 그곳을 맴돌며 흔적이 된다. 여기서 ‘흔적’은 사라졌으나 공고한 피나 바우쉬 자체이거나 그것을 좇는 전의식적 워밍업 형태의 대화 형식으로써 접근되는 산만하고 무질서한 이야기라는 무대의 과정을 모두 담는 또 다른 매체적 저장 경로를 가리킨다. 피나 바우쉬라는 실재와 신화의 틈을 비집거나 헤집는 차원 아래, 〈P와 함께 춤을〉은 실재와의 간극을 현재의 발화로 한정하며, 발화의 무한정함을 가정하고, 그렇게 꾸역꾸역 쌓아 올린 현재를 역사의 틈으로 곧장 밀어 넣는다. 아마도 그것은 피나의 이름으로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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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돌파구, 〈튤립〉: 절대적인 사랑의 형상REVIEW/Theater 2026. 3. 11. 19:30
김도영 작, 극단 돌파구의 〈튤립〉은 일제강점기, 일본 도쿄를 배경으로, 학교에서 튤립밭을 키우는 쿠로가 20년 뒤, 부유한 일본인 가정에서 자란 자신의 아들 쥬리프의 집에 초대받게 되면서 20년 전의 진실과 함께 인물들의 갈등이 전면화되어 파국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을 긴박하게 그려낸다. 튤립이 심어진 화분, 곧 쿠로에 의해 화분 안에 검은 흙이 채워지며 화사한 꽃이 들어앉는 이 결착의 이미지는, 작품의 알레고리적 중핵을 이루면서 무대 전반의 환유로 확장된다. 쿠로는 “구근을 키우는 식물”로서 튤립은 구근이 다른 구근을 파생시키기도 한다는 점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더 잘 다뤄야” 한다고 말한다. 간헐적으로 부상하는 사운드는 튤립의 구근이 땅속에서 생명을 움트고 있는 작용으로서 은근하게 무대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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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플레이 테제21, 〈최후의 분대장-제1부 조선의용군〉(김재엽 작/연출): 숭고한 역사의 형상을 재현한다는 것REVIEW/Theater 2026. 3. 10. 14:58
〈최후의 분대장〉은 일제강점기, 조선의용군으로 참전했던 김학철 선생의 일대기를 다룬다. 1941년 태항산 호가장 전투에서 다리에 총상을 입은 채 나가사키형무소에서 옥중 생활을 하면서도 그는 일제 제국주의에 맞서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는다.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폭탄 이후, 출옥한 그는 작가로서 제2의 삶을 살게 된다. 〈최후의 분대장〉은 김학철이 죽음을 받아들인 자신의 침상에서 아들에게 사진에 있던 동료들의 이름과 일화, 특징 등을 기억해 내는 첫 번째 장면으로부터, 어린 시절 과거로 돌아간 후, 그의 시간이 순차적으로 기입된다. 〈최후의 분대장〉은 역사의 재현을 힘겹게 기억으로부터 추출하여 완성해 나가는 첫 장면부터, 청산되지 않은 친일 행위의 잔재에 대한 일념을 부르짖는 김학철의 마지막 모습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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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회 15분연극제] SCENE032, 〈그냥 지루한 말도 해보기로 했다〉(한아름 작/연출): 자기 원환으로서의 무대, 그 내부에서의 현존REVIEW/Theater 2026. 3. 7. 15:18
〈그냥 지루한 말도 해보기로 했다〉는 정신병이 걸린 한 여자(고다희 배우)의 읊조림이다. 이것이 하나의 유일하고도 고유한 형식이다. 하나의 커튼 뒤라는 무대가 그 자신의 내면-공간을 부유하고 탐사하고 증명하기 위한 차원에서 일시적으로 성립하는 가운데, 그의 발화는 소진된 자신을 이미 소진된 자로서 부흥시키기 위해, 존재의 나머지를 증명하기 위해, 언어의 잔여를 언어화하기 위해, 소진 자체를 긍정하기 위해 발화한다. 아니 그 모든 것을 무엇보다 발화로서 접촉하기 위해 발화한다. 발화된 말들은 그 몸을 거쳐 가면서 사라지고 그 말을 하고 있는 신체를 작은 불빛으로, 숨으로 되비추며 사라진다, 다름 아닌 타자로서 자신에게 그 말들은 켜지고 바로 꺼진다. 말들은 그러니까 쌓이고 무덤이 되고, 오직 그것을 마주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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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회 15분연극제] 극단 바바서커스, 〈나시와 락교〉(고경진 작가, 최주현 연출): 관계 혹은 구원의 기호 둘REVIEW/Theater 2026. 3. 7. 15:04
극단 바바서커스의 〈나시와 락교〉(고경진 작가, 최주현 연출)는 조카와 이모의 관계로 압축될 수 있는데, 락교가 조카에게서 이모에게로 향한다면, 나시는 이모에게서 조카로 향한다. 락교는 초밥을 먹을 때 곁들이는, 마늘처럼 생긴 쪽파의 뿌리를 절인 음식으로, 조카의 더위가 기후 위기를 현실과 제도와의 시차로 나타내는 첫 장면, 5월에 동복을 유지하면서 에어컨을 트는 낡은 제도에 대한 클리셰―이는 근미래의 기후 위기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이전시키는 효과를 갖는다.―와 그로부터 전이된 학생들의 팥빙수에 대한 갈망은, 꽤 강렬하다. 거기에는 학교가 없지만 학교를 환유하는 학생들이 있고, 미래가 없지만 그들은 미래를 현재로 체현한다. 그리고 이 팥빙수로 떠나는 모험의 세계에서 자발적으로 이탈하는 조카의 신경증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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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회 15분연극제] 극단 해인, 〈이렇게 덥지만, 이렇게 더운데〉: ‘빈 공간’의 연극REVIEW/Theater 2026. 3. 7. 15:02
극단 해인의 〈이렇게 덥지만, 이렇게 더운데〉(이양구 작, 연출)이 가리키는 현실은 이 공간에 대한 상상력을 기반으로 한다. 이 공간(에)의 현존을 재투자하여 공포와 두려움의 시간에 모두를 묶는다. 관객은 여전히 관객이지만, 이 상황을 배경으로서 체현하면서 그러하며, 관객의 의지를 초과하는 이 상황, 환경에 대한 몰입은 이곳이 정확히 어떤 곳인지의 전사, 배경, 정보가 거의 없는 제약적 상황을 기초로 한다. 몰입, 곧 자신에 대한 반향으로서 공간으로부터 자신으로의 수렴은 자신의 불완전성의 인식에 대한 다른 이름이며, 몰입은 이 환경의 비언어적 차원 자체와 관계 맺는 유일한 자신에 대한 불안과 공포로 현상된다. 공간을 휘저으며 객석에서 나타나는 두 사람은 각각 “이렇게 덥지만” 우리가 희망을 갖고 바깥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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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회 15분연극제] 극단 작은방, 〈경마장 야생마는 어디로 갔을까〉: 이야기(로부터)의 동력REVIEW/Theater 2026. 3. 7. 14:59
극단 작은방의〈경마장 야생마는 어디로 갔을까〉(이하 〈야생마〉, 신재훈 작/연출 )는 두 가지 메타포를, 이야기를 절합하는데, 그것은 상상의 세계로서 이야기와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현실의 이야기를 교환하는 방식을 따른다. 야생마에서 트레이드포춘호로 옮겨가는 과정에서, 야생마는 불가능성에 대한 상상력의, 또는 믿을 수 없는 실재의 체현의 자리를 남북통일에 대한 순간으로 대체된다. 야생마는 트레이드포춘호의 상상적 환유물이고, 트레이드포춘호는 다시 현실에서 과거 속의 부재하는 기호로 위치된다. 결과적으로, 스크린을 찢고 나온 야생마는 남북을 오가는 배의 운항 중지에 대한 곤궁을 해소하는 메타포였던 셈이고, 억압된 동물이 해방되는 순간 사람들이 겪는 쾌락은 남북 교류의 물꼬가 트이는 순간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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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분 연극제: 지역에 촘촘하게 접지되는, 너른 동시대성의 표현들REVIEW/Theater 2026. 3. 7. 14:44
1 15분 연극제는 15분 내외의 짧은 연극들을 모은 축제로, 이는 순차적으로 장소를 옮겨 다니며 진행된다. 2025년의 축제는 무더위로 인해 야외 장소를 활용하지 않는 방침을 적용했는데, 이는 당연히 우연한 관객, 동네 주민들의 단속적 참여를 가져가기 힘든 효과를 가져온다. 이는 비자발적(?) 관객 유치의 소거뿐만 아니라 더 근본적으로 축제 기저의 어떤 서사를 감축하거나 소거하는데, 곧 순차적이며, 모든 공연을 반나절 정도 안에 볼 수 있는 건 축제의 경로적 이행의 서사, 장소와 장소의 연결이라는 부가된 시간의 서사가 이로써 사라져버리게 되는 것이다. 이는 그 전까지는 역설적으로 축제의 규모가 아주 크지 않으며, 이틀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진행되기에 가능했던 부분으로, 만약 야외를 활용해 장소의 연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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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놀이클럽, 〈이상한어린이연극 오감도〉: 횡단하는 존재 혹은 시간REVIEW/Theater 2026. 3. 7. 14:41
〈이상한어린이연극 오감도〉(이하 〈오감도〉)는 이상의 연작시 「오감도」에서 ‘시 제 1호’의 제 1 아해부터 제 13 아해까지 순차적으로 “무섭다고그리오”라는 시의 구조와 함께 문장을 가져와 변주함으로써 13개의 장을 토대로 구성한다. 즉 하나의 장에는 “제○의아해가” ○○ “무섭다그리오”라는 문구가 새겨지는데, 여기에는 각각 1부터 13까지 순차적인 숫자와 무서움의 다른 대상이 기입된다. 처음 아해(박지안)는 “태어나기”를 무서워하는데, 이는 상수에 들어선 줄 하나를 잡고 ㅅ자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와 착지와 함께 줄을 놓고 빽 소리를 지르는, 엄마 자궁에서 나와 울음을 터뜨리고 탯줄을 자르는 것까지를 재가시화한 장면으로부터 차례차례 일렬횡대로 누워 뒤집고 앉고 서고 걷고 달리고 하는, 일련의 아기의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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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공동체 아르케, 〈셋톱박스〉: 부재하는 혹은 삼켜진REVIEW/Theater 2026. 3. 7. 14:34
〈셋톱박스〉에서 주인공 남자(송현섭 배우)의 고통은 대위법적으로 교차하며 그를 곤궁으로 모는데, 가장 심각한 건 일종의 정체 현상으로서, 신체적 차원에서 내장에 음식물이 가득 차 더이상 먹는 것도 싸는 것도 불가능한 사태를 겪고 있는 것, 그리고 정신적 차원에서 그가 보지 않는 TV 요금이 징수되고 있음을 발견했지만, 그는 TV를 보는 인물로 기록되어 있어 TV를 본다는 사실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둘은 전혀 다른 범주이지만 실은 하나의 문제인 듯 보이는데, 계속해서 극은 그에 대한 추리를 유도하며 결국 발화하지만 무위에 그친다. 이는 곧 그의 내장에 셋톱박스가 들어 있다는 것. 그의 집에 셋톱박스가 있다는 것, 그래서 신호가 잡힌다는 것은 그가 TV를 과거에 신청했다는 기록과 함께 TV를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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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영 각색·연출, 〈마른 여자들〉: 여성이라는 신화 혹은 증상REVIEW/Theater 2026. 3. 7. 14:14
〈마른 여자들〉의 쌍둥이 자매 로즈(이세영 배우)와 릴리(황미영 배우)는 첫 등장에서, 서로를 마주한 채 찰싹 붙어서 고개를 정면으로 함께 돌린 포즈로써 어린 시절 마치 하나였던 둘을 보여주는데, 이는 언니 릴리가 로즈를 떠나는 순간에 이르러 로즈의 릴리에 대한 그 애정과 의존의 강도를 드러낸다. 곧 언니의 찢겨져 나감은 마치 나의 신체 일부가 떨어져 나간 것과 같이 상실된 영역이 영구히 지속될 거라는 인상을 주는데, 여기에는 곧 둘의 결합된 육체, 놀이를 통한 긴밀한 공통 감각이 둘이 하나였던 신화적 시간의 응축된 인트로 장면의 효과가 전제된다. 이러한 둘의 친밀한 사적 영토는 사회적 틀로, 더 큰 사회적 관계로 적용되며 희미해진다. 로즈의 삶은 거식증 환자들의 치료를 위한 한 병동에서 고착된다. 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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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혜경, 〈공룡과 공룡동생〉: ‘과’라는 사이의 기호학REVIEW/Theater 2026. 3. 3. 20:35
백혜경의 〈공룡과 공룡동생〉은 언니 ‘공룡’과 동생 ‘재영’ 간의 어릴 적 기억과 경험을 환상적으로 횡단하며 현재를 극복해 나가는 두 자매의 삶을 그린다. 기억은 구체적 사건으로 나타나는 대신에, 그것을 통과해야 하는 문지방성(liminiality)인 쓰레기 섬으로 환유되는데, 그것은 온갖 잡동사니가 육박하며 푹푹 빠지는 구렁텅이가 되어 발목을 붙잡는, 가시화되지 않는 기억의 누층―곧 기억은 복잡다단한 무의식에 싸여 있고 또한 그것에 묶여 있다.―을 환각적 세계, 의사-꿈의 세계로 연장해 낸 것과 같다. 이는 누워서 베개로 얼굴을 감싸면서 수중으로 내려가는 프리폴을 체현하는 의식의 입문 단계가 지닌 환유적 차원이 일정 정도 연장된 바이기도 하다. 공룡과 재영 사이에는 ‘과’가 있는데, 경지은, 이 셋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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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현 작/연출, 〈흙사람〉: 한일 관계에 대한 알레고리로서 등정REVIEW/Theater 2026. 3. 3. 20:29
〈흙사람〉은 태봉등이라는 가상의 산이 한국과 일본 사이에 갑자기 솟아난다면이라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이러한 가정이 한일 관계의 틈을 육박하는 산의 장막으로 형상화하되 그 실제적 원인으로 기후 변화라는 상대적으로 더 체감되는 이슈를 경유한다고 보인다. 곧, 〈흙사람〉에는 한국이라는 역사적, 지정학적, 문화사회적 메타포로서 한일 관계와 심각한 기후 위기의 전세계적 상황이라는 두 가지 문제가 혼재되고 절합되어 있는데, 그렇다면, 그 둘 중에 어떤 명제가 주도적인지 또는 다른 하나의 명제가 기능적인 차원으로 적용되는지를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표면적으로 〈흙사람〉은 개인과 집단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듯 보인다는 점에서, 이러한 가정들은 무력화되는 듯 보인다. 곧 하나의 맥거핀이거나 또 다른 문제를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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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성북동비둘기, 〈걸리버스 2〉: 연쇄적인 이미지 기호들의 병치, 파국에서 쾌락을 맛보다REVIEW/Theater 2026. 3. 3. 20:23
극단 성북동비둘기의 〈걸리버스 2〉(2025)는 영국의 풍자 작가 조너선 스위프트(1667-1745)의 4부로 구성된 『걸리버 여행기』를 모티브로 하는데, 〈걸리버스〉(2022)가 소인국을 다룬 1부를 가져온다면, 이번에는 2부의 거인국을 소재로 한다는 점에서, 4부는 차례대로 무대화되며 일종의 시리즈물의 성격을 띠게 될 것을 예측하게 한다. 〈걸리버스 2〉는 『걸리버 여행기』가 아닌, 〈걸리버스〉 자체와의 연관성을 맨 앞의 부재의 공간을 통해(서만) 구현하며 시작한다. 〈걸리버스 2〉는 〈걸리버스〉와 독립된 작품이며 바로 그 지점을 여기서 공준하고 있지만, 오히려 이러한 ‘빈’ 형식으로서 인용이라는 점에서의 본질, 곧 공통됨이 성립한다. 현진영의 〈흐린 기억 속의 그대〉가 배경음악으로 나오고 텅 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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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돌파구, 〈아이들〉: 주체의 선택을 예기하는 미래REVIEW/Theater 2026. 3. 2. 21:02
극단 돌파구의 〈아이들〉은 쓰나미로 인해 원전 사고가 발생하고 그 주변 지역에서 여전히 살아가고 있는 로빈(권정훈)과 헤이즐(윤미경) 부부를 로즈(조어진)가 방문하면서 시작한다. 부부의 거주 지역이 방사능 오염의 위협을 받는 황폐화된 곳임은 주로 그 효과의 차원에서 드러나기보다는 대응의 차원에서 짐작되는 사실에 가까운데, 이는 초반에 전기가 일상 대부분의 시간에 들어오지 않고,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인다는 것에서 강조된다. 전기는 이따금 일정한 시각에 들어오는 것으로 보이는데, 여기서 전기가 나갔음이 사고의 여파 때문으로 판단되기보다 굳이 이곳을 버리지 않고 불편함을 감수하며 살아가는 부부의 선택의 몫으로 환원된다는 것이 그러하다. 그러니까 방사능 오염의 결과는 비가시적인 축적과 영향의 범주로서 눈으로 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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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비밀기지, 〈몸 기울여〉: 하나로 맞물리는 다른 두 개의 세계REVIEW/Theater 2026. 2. 25. 14:02
극단 비밀기지의 〈몸 기울여〉는 길고양이를 찾는 두 인물과 그 나머지 인물들을 평행 몽타주로 교차시키거나 대위법으로 교차, 중첩시키는데, 특히 후자를 통해, 분화할 수는 있지만 근본적으로 변경할 수는 없는 연극의 물리적 장소를 두 축의 인물이 동시에 경유하는 장면들을 적극 활용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하나의 프레임 바깥으로 비치는 단일한 평면에 모든 인물이 제각각의 포즈를 취하다가 음악에 맞춰 군무의 제스처를 취하는 것은, 〈몸 기울여〉의 심리우화적인 역설을 명시하는데, 이는 그 전에 서로 다른 목적으로 고양이를 찾는 두 인물과 거기에 더해지는 고양이는 삼각 편대를 이루면서 쫓고 쫓기는 인과관계의 폭력적 사슬을 환유적이고 실재적인 차원에서 감각화함을 하나의 코드로 완성 짓는 것이다. 곧 우리는 살기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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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주 작/연출, 〈사사로운 사서〉: 사사로울 수 있는 장소 위의 주체들REVIEW/Theater 2026. 2. 25. 13:22
북부 도서관이라는 가상의 실재하는 도서관의 사서들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사사로운 사서〉는, 도서관 일부를 그대로 옮겨 놓으려 한 무대 세트의 배경 아래, 도서관의 일상 업무의 세부적 요소를 바탕으로 한 대화의 시작으로써 극사실주의적 토대를 마련한다. 물론 이는 일차적인 것이며, 장마 기간의 엄청난 비로 인해 발생한 지하 보존 서고의 침수 피해로부터 책 복원 작업이라는 비일상적 차원의 특수한 업무의 긴급한 미션이 사서들에게 주어지며, 이는 책과 이들의 관계성을 묻고 책을 매개하고 다루는 이들로부터 어떻게 책 자체가 세계를 마주하는지, 나아가 세계를 반영하는 메타포로서 확장된 책의 모습이 펼쳐진다. 보존 서고 한편에 우물이 있다는 괴담은 망각된 한국 근현대사의 알레고리들을 담는 일종의 판도라의 상자로 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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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렉티브 뒹굴, 〈꿈의 방주: Demo〉: 방주 너머 꿈 그리고 누수되는 방주REVIEW/Theater 2026. 2. 24. 19:43
콜렉티브 뒹굴의 〈꿈의 방주: Demo〉(이하 〈꿈의 방주〉)에서 무대는, 극장의 위험과 재난이 발생할 수 있는 가능성의 차원이 형식적 차원의 안내 멘트로 삽입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영점의 시작으로서 형식 자체가 된다. 이 발화는 그 자체로 내재화되고 육화된 하나의 가설 공간으로서, 외부의 형식으로부터 파생된 차원을 뒤집어 거기서 시작하고 거기에 철저히 붙들리는 것이다. 따라서 무대 상수의 사선으로 놓인 창고에서 주인공이 등장하고 공연의 이전과 바깥의 경계에서 안내하는 건 공연의 외부가 아니라, 공연에 달라붙는 그 외부가 바로 공연의 중핵이라는 데서 공연에 대한 하나의 근본적인 정초의 움직임이 된다. “기후정의 창작집단”으로 콜렉티브 뒹굴을 소개하는 것에 이어, 기후위기 속 그것과 너무 지나치게 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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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연출 김예은, 〈이 세상 너머〉: ‘너머’, 두 개의 세계로부터 분열되지 않고서REVIEW/Theater 2026. 2. 20. 20:16
1〈이 세상 너머〉는 주인공, 늑대족 소녀 모울을 경유해 주요한 두 축의 서사에 진입하는데, 이는 늑대족과 바깥 세계를 투과하는 예외적 존재로서 모울의 서사가 어디에서 출발하느냐에 따른 차이로, 늑대족 안에서의 내재적인 분기, 그리고 이후 바깥 세계를 경유하여 성찰되는 변증법적인 분기가 교차된다. 이 둘은 모두 모울을 향해 있고, 모울의 성장 서사의 외양을 연출한다는 점에서 서로를 마주하는데, 문제는 또는 본질은 그 두 방향성 모두가 모울이 감당하기 어려운 차원에 있다는 것이다. 아마도 이 지점에서 성장은 유예되며, 또한 그 충격의 간격을 봉합하기 위해 ‘성장’이라는 관념이 역설적으로 필요해지는데, 〈이 세상 너머〉는 따라서 문제의 중핵을 바라보고 성찰하기보다 그것에 절대적으로 휘말리는 주체의 불안정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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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영, 〈경계넘기: 신진순박소영박뽀또 Part.1〉: 경계를 간직하기 혹은 흔들리는 주체에 머물기REVIEW/Theater 2026. 2. 20. 13:55
박소영의 〈경계넘기: 신진순박소영박뽀또 Part.1〉(이하 〈경계넘기〉)는 공고하고 자연스러운 관습으로 치부되어 온 아버지 성 대신에 어머니 성을 씀을 선택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지 아래, 여러 시도를 해왔던 과정과 제반 리서치를 전한다. 이는 후반, 그가 어머니 신진순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가시화되는데, 어머니의 삶을 존중하고 그 중요성과 가치가 승인되고 기념되며 설파되기를 바라는바, 그 흔적이 자신을 타고 각인되기를 소망함에 따른 것으로서 비로소 그 의미가 결정된다. 그가 이름을 바꾸게 됨에 일정 정도 주저하는 바는 그의 행동이 페미니즘 운동으로 읽히며 그가 페미니즘 전사로 명명될 수 있음에 따른 부분도 있는데, 그보다 추상적인 차원에서는 그에게 올 어떤 즉자적인 변화가 근원적인 변화로 그의 삶을 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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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진 작·연출, 〈히스테리 앵자이어티 춤추는 할머니〉: 혁명의 정동, 그리고 욕망으로의 하강REVIEW/Theater 2026. 2. 4. 21:51
〈히스테리 앵자이어티 춤추는 할머니〉(이하 〈히스테리 앵자이어티〉는 1막과 2막이 절합되어 있는데, 1막이 각 배우들의 자전적 이야기에 입각한 수행성을 띤 발화들이 교차한다면, 2막은 가상의 시점에서 이들이 하나의 삶을 이루는 연극적 상황으로 전개된다. 1막이 강렬한 정동의 소실점을 향해 다양한 음악의 힘을 난사한다면, 2막은 상속 재산의 나눔이라는 공동의 의제 속에 개체들을 분화시킨다. 여기서 여성의 공동의 연대라는 이념은 1막의 “어떤 여자들”로 묶이는 차이의 집합을 개체들의 코러스로서 연장하며 승화되는데, 2막은 이러한 이념을 현실로 떨어뜨려 돈을 경유한 가장 지질하고도 구체적인 차원에서 직접적으로 ‘시험’한다. 1막이 순수하게 육박하는 매니페스토의 형태를 띤다면, 2막은 그것이 현실적으로 갈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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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하, 〈하리보 김치〉: 냄새나는 아시아인에 대한 자각 혹은 정신 승리REVIEW/Theater 2026. 2. 4. 21:14
구자하의 〈하리보 김치〉는 무대 위에 포장마차 세트를 갖다 놓고, 현장의 관객 2명을 초대해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에서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작가의 유학 경험 당시 김치를 고국에서 가져왔다가 겪은 곤궁으로부터 자신의 외로움과 스트레스를 덜어주는 데 역할을 했던 유명한 젤리 브랜드의 하리보 젤리가 합성된 제목에서처럼 이방인으로서 경험을 그렇게 후각적, 미각적 차원의 음식 혹은 식품을 이어나가며 기호들의 환유로써 작품을 완성한다. 그것은 기억으로 체현되고 구자하의 요리로써 수행되는 기호들의 매우 분명한, 그럴듯한 연결, 접촉의 과정으로, 이는 물론 서사의 개연성의 측면, 곧 파편적 소재들의 나열로서 강도 높은 체험의 영역에서의 기호가 단지 표상되는 것만이 아니라 어떻게 그렇게 자리 잡는지, 곧 분절되는지의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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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이온, 〈스와이프〉: 현존을 재정의하기 또는 재설정하기REVIEW/Theater 2026. 2. 4. 21:04
1 〈스와이프〉는 다이애나밴드의 “소리-사물”들이 극장 전반에 배치되어 단속적으로 소리를 내는 가운데, 네 명의 배우가 순차적으로 어떤 관념들을, 돌아가며 발화하며 잇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 교환적, 교차적 놀이의 기저에는 무엇보다 네 명의 배우들이 말을 위임받고 수행하는 존재이며, 관계항으로서 역할들의 위상차가 아닌 이야기 전달자로서 단지 그 역할들을 임의적이고 임시적으로 ‘도입’하기에 동등함, 이야기 전달자로서 효율적으로 또 형식적으로 균형을 맞추는 기술적 차원에서 동등함이 전제된다. 디에게시스의 말하기 방식을 전적으로 구사하는 배우들이 독립적이고 특정적인 자기 자체로서 임하면서 일부 미메시스 차원에서 관계항의 연기가 가능한 지점을 삽입하는데, 이는 현실 차원에서 이 넷의 ‘자신’과 그 관계에서 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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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연극회 : 오픈 오케스트라 쇼〉(2024)에 대한 주석: 기원으로 소급하며 자유로워지기REVIEW/Theater 2026. 1. 27. 20:41
〈열린 연극회 : 오픈 오케스트라 쇼〉(이하 〈열린 연극회〉)는 연극(theater)의 정의를 그 어원, ‘보는 장소’, 곧 고대 그리스 극장의 계단식 객석을 뜻했던 테아트론(Theatron)에서 그곳에서 관객이 바라보는 무대였던 원형의 무대, 오케스트라(Orchestra)의 의미로 재정의하기 위해 전자를 소거한다. 관객을 포함한 배우 모두를 오케스트라에 위치시킴으로써 연극을 보는 자가 아닌 하는 자의 몫으로, 보는 것(거리를 두는 것)이 아닌 수행하며 감각하는 것으로 두는 것이다. 관객과 공연자 사이에 놓인 분할선을 물리적이고 장소적으로 재분할 또는 합치하는 전략을 통해, 관객의 장소, 곧 관객은 사라질 수 있을까. 기원적 장소로서의 오케스트라와 함께, 오케스트라라는 연주대로 추후 전의된 오케스트라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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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새 작/연출, 〈시스터 액트리스〉: 미래를 위한 역사로의 잠입REVIEW/Theater 2026. 1. 19. 20:31
‘중세 시대의 수도원에 위장 전입한 로봇 수녀가 있었다면’이라는 가정으로부터 〈시스터 액트리스〉는 출발한다. 이 가정은 극에서도 하나의 모티브로서 그 주변을 맴도는 네 명의 수녀와 한 명의 이야기꾼을 통해 보존된다. 〈시스터 액트리스〉는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이다. 실제 로봇은 등장하지 않으며, 그것은 거꾸로 로봇 서사를 재현할 임무가 그 주변에 자리한 수녀들에 있음을 의미한다. 이는 로봇과의 관계 속에서 변화되는 캐릭터의 양상과 함께 주어지며, 따라서 로봇을 제외한 여타의 존재들은 상호 관계적인 변화의 흐름 속에 유동적인 실체로 자리하는 한편, 그 관계의 이전을 통해 초점은 그들 자체로 옮겨간다. 곧 “세인트스완”으로 불리는 액트리스원(“시스터 액트리스”)은 이야기 안에 존재하되 등장하지 않는 대상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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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연출 김예은, 〈이 세상 말고〉(2024): 상상적인 그러나 실재적인…REVIEW/Theater 2026. 1. 19. 20:20
16살 이언과 키코, 두 사람이 자신만의 아지트 안에서 학교 테러를 기도한다. 키코는 학교에서 왕따가 돼 괴롭힘을 당하고, 이언은 폭력적인 아버지를 둔 탓에 학교뿐만 아니라 가정 역시 도피처가 되지 못한다. 아지트는 둘만의 테러에 대한 계획과 작전, 모의 시뮬레이션의 주요한 장소일 뿐 아니라 괴롭힘의 사실들을 상기하고, 선언문을 함께 읽으며 테러의 의식을 고취하고 체현하는 한편, 테러로 인한 절멸의 당위성을 끊임없이 확인하는, 둘만의 임시적이고도 최후의 안식처로 자리한다. 〈이 세상 말고〉는 세상에 대한 증오와 복수심, 무기력한 삶의 자각과 포기로서 운명 공동체의 협약을 맺은 둘의 자살과 사회에 대한 테러가 실현될 운명의 시간으로부터 측정된 현재 그 둘의 상태, 행동, 의식의 흐름을 좇아 나간다. 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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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_롤란트 쉼멜페니히/ 연출_윤한솔, 〈안트로폴리스: 프롤로그/디오니소스〉: 서사는 어떻게 시작되고 또 시현되는가에 대한 여정REVIEW/Theater 2025. 11. 12. 16:19
〈안트로폴리스: 프롤로그/디오니소스〉에서, 독일어로 인류세(Anthropozän)와 도시를 뜻하는 폴리스(Polis)를 결합한 조어인 안트로폴리스는, ‘프롤로그’와 ‘디오니소스’, 두 개의 장으로 나뉘는데, 그 사이의 인터미션 20분을 포함하면 3시간에 가까운 상연 시간으로, 대규모 무대 세트, 디자인된 자막과 핍진한 이미지들, 그리고 실시간 영상이 중계되는 중앙의 커다란 막, 라이브 밴드와 18곡의 곡목, 18명의 배우의 연기와 노래, 춤은 총체적인 종합예술로서 연극 무대를 선사한다. ‘프롤로그’가 도시 테베가 설립되고, 그 설립자인 카트모스의 딸 세멜레와 제우스 사이에 생긴 디오니소스의 탄생 신화까지를 다룬다면, ‘디오니소스’는 디오니소스가 테베에 도착하고 난 후, 디오니소스를 숭배하는 축제를 거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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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동, 〈묵티〉: 영속적인 이주민으로서 삶 혹은 끊임없이 유동하는 신체에 대하여REVIEW/Theater 2025. 11. 12. 15:52
〈묵티〉는 이주민, 난민으로 표상되는 존재들을 신화의 기원적 존재로 위치시킨다. 또는 신의 형상은 이주민의 현재적 삶으로 전환된다. 산스크리트어로 ‘해방’이라는 뜻의 ‘묵티‘는 먼곳에서 들려오는 휘파람 소리와 함께 이주민들의 몸을 빌려 이따금 나타나는데, 이는 자막에서 단지 몸을 지닌 본래 그들의 이름으로 처리된다. 하나의 영혼과 다른 하나의 신체의 만남에서 신체가 우선함은, 그것이 비가시적인 것을 현실로 처리하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그리고 영혼과 신체의 이원설을 주장한다기보다는, 오히려 그 신체 자체가 진정 중요하다는 걸 말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결국 멀리서 온 존재인 것처럼 가까이에 있는 이가 타자성으로서 나에게 머물러 있었음을 깨닫는 지점, 곧 구원이 초월적 신의 현실 너머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