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Visual a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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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의 경계를 뚫는 변성 공간의 체험 – 김도희, 《빛선소리》REVIEW/Visual arts 2024. 8. 6. 12:28
도병훈(작가·비평) Ⅰ. 현대미술은 고정 관념과 기존의 의미망을 깨트리며, 명사적 ‘의미’가 아닌 동사형 ‘사건’으로 확장되어왔다. 이러한 국면에서는 ‘X란 무엇인가’ 대신 ‘무엇을 X라고 하는가?’라는 질문, 또는 자문이 요구된다. 따라서 ‘예술이란 무엇인가’는 ‘무엇을 예술이라고 하는가?’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폴 세잔(Paul Cézanne)의 자문은 “이것이 과연 내가 보고 있는 것인가?”였다. 그는 치밀한 관찰과 함께 색채의 차이와 한 번의 터치가 화면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점에 고심하며 화면 부분마다 긴 시간을 소요해 천천히 작업했다. 세잔의 후기 원작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 이러한 머뭇거림이 생생하다. 세잔의 이러한 태도와 유례없는 회화의 특성은 ‘멜랑콜리아(melanchol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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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슬픈 나의 젊은 날》: 세계와 접면하는 현존재들REVIEW/Visual arts 2023. 8. 13. 15:13
《슬픈 나의 젊은 날》은 부산 지역 출신의 작가 세 명이 참여한 전시로, 물론 부산이라는 지역의 언어와 직결되지는 않는다. 곧 다른 범주가 요청된다. 이를 묶는 건 큐레이팅의 언어(안대웅 학예연구사)이자 그것의 감각적이고 물리적인 설치로의 구현이다. 세 명의 작가에 맞춘 전시장은 “가속”, “에너지 흐름”, “인상”의 키워드와 함께 세 공간으로 구획되었고, 작가의 작업은 어느 정도 섞이며 조정환, 김덕희, 오민욱의 순으로 이어진다. 인상적인 건 핸드아웃을 대신하는 서문과 모든 개별 작품의 캡션과 설명을 담은 팸플릿이다. 그런 차원에서 어쩌면 《슬픈 나의 젊은 날》은 큐레이팅의 이념을 분명하게 언어화하고 그 주체를 투명하게 만들며 매개의 몫을 이전하지 않으려는 독특한 전시일 수 있다, 그것이 드물다고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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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광주비엔날레: 명확한 전형의 미래를 향해 투사된 전통과 차이의 존재들REVIEW/Visual arts 2023. 8. 13. 15:05
2022 부산비엔날레가 비좁고 결과적으로 불편한 환경 제공했다면, 2023 광주비엔날레는 어찌 됐건 공간이 작품과의 유격을 적절하게 또는 그 이상으로 확보한다―둘은 일 년의 간격을 두고 서로를 마주한다. 이는 큐레이팅의 차원보다는 어느 정도 아웃소싱된 설치의 영역에서 기인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조금 더 흥미로운 건 그러한 전시 환경이 발전된 도시와 상대적으로 낙후된 도시 환경을 체현한다는 것이다. 부산비엔날레가 도시에 대한 은유, 그것도 무의식적인 차원이 응결된 것이라면, 광주비엔날레는 기조성된 광주비엔날레관 전시관이든 무각사와 같은 문화유산이든 갖춰진 하드웨어에 적절한 관람 환경의 동선을 확보했다. 반면, 광주비엔날레의 주제관인 광주비엔날레 전시관에 비해 부산비엔날레의 주제관인 부산현대미술관은 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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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비엔날레》에 관한 몇 가지 인상들REVIEW/Visual arts 2023. 1. 3. 02:32
프롤로그: 과잉의 몸짓들 비엔날레는 과잉의 경험을 요청한다. 이것은 분명 요청이 아닌 제안이었을 것이다. 이를 ‘제안’으로 두기 위해서는 경험의 아카이브 방식이 역으로 요청된다. 《2022부산비엔날레》(이하 《비엔날레》)는 일반적인 작가, 작품 정보를 전시 현장에 덧붙이는 것과 동시에 홈페이지에 이를 재현하고, 홈페이지 안에서만 볼 수 있는 작품들을 통해 경험을 오프라인과 온라인으로 편재하는 또는 축적하며 분산하는 방식을 택했다. 물론 이러한 부분만으로 작품 간의 다종다기한 횡단과 전시의 총체가 제대로 종합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물론 전시장을 그저 둘러보는 것만으로는 더욱 가능하지 않다. 적어도 무언가를 다 볼 수 없게 비엔날레가 구성되어야 한다는 강박은 처음부터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겨져 온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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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서영 개인전 《스키드》 : ‘변경되는 감각의 지도’REVIEW/Visual arts 2022. 6. 7. 00:44
장서영 작가가 아마도 예술공간에서 선보인 지난 개인전 《눈부신 미래》(2021. 아마도 예술공간, 서울.)가 여러 공간에서 작업들이 분절되어 있었다면, 이번 전시 《스키드》는 상대적으로 작은 폭에 비해 기다랗게 일자로 펼쳐진 복도 공간을 따라 일점투시의 빈 시공간으로 수렴한다. 이는 전시의 ‘속도’와 ‘흐름’과 같은 키워드와 맞물리며, 관람객의 동선과 작품 간의 밀접한 연결에 있어 순환의 체계를 ‘매끄럽게’ 구성한다. 일점투시의 끝에는 얼굴 혹은 빨대가 있다. 〈드링크미드링크〉(2022. 단채널 영상, 흑백, 2분 51초.)가 그것이지만, 너무 그것과의 거리가 멀어 관객의 시선은 빈 공간의 떠 있는 파편적 작업들의 양상으로 가라앉는다. 장서영 작가의 개인전 《스키드》(2022. 신도문화공간, 서울.)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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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규민 개인전 《RE:RE》: 연약한 자아의 주체로서의 선언REVIEW/Visual arts 2022. 5. 31. 01:44
리혁종이라는 울타리 혹은 그늘 “개성을 강조하고 남과 차별화된 창의성을 요구하는 작가상을 기르고 그로부터 전제된 일관성 있는 개념 및 양식의 작품 생산을 배양하려는 대학(과 대학원)에서의 미술 전공 과정. 양식적 새로움에 대한 경합의 무대를 위한 감각의 투여는 내게 어떤 동기보다는 피하고 싶은 어지러움을 준다.”_황규민, 「작가 노트: 대학 미술 출구 및 우회로를 찾아서」 황규민 작가의 개인전 《RE:RE》는 리혁종 작가의 작업을 참조자료로 동원한다. 여기에는 작가의 작업의 다음 경로를 모색하는 데 따르는 곤경, 작업 방법론의 미결정 상태의 곤궁 모두 작용한다. . 여기서 리혁종 작가 자체가 모델―〈넝마 철학 조각가 RE:〉(2022. 캔버스에 유화, 162.2×260.6cm.)―이 되기도 하지만, 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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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져 있지 않은 거주지: 오드라데크》: 의미화의 전략과 수렴되지 않는 의미 사이에서REVIEW/Visual arts 2022. 4. 14. 02:14
《정해져 있지 않은 거주지: 오드라데크》라는 전시는 도시의 빈 공간을 잠재적 실천의 장소로 재인식하고 나아가 재규정하고자 하는 데서 출발한다. 그렇다면 이 안에서 작가/팀은 실천 전략으로서의 작업을 선보이는가.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1949~)을 경유해 실재계로 옮겨질 수 있을 프란츠 카프카(1883~1924)의 “오드라데크”는 인식하기 어려우며 규정 불가능한 대상의 성질을 띠는데, 이 전시는 이를 도시의 버려진 곳이나 빈 장소, 쓰레기가 모이는 등의 장소로 상정한다. 이러한 장소가 상징계의 잉여 또는 그림자를 보여주는 곳에서 나아가 제도 바깥의 상상력이 틈입할 수 있다는 전제가 곧 이 전시의 출발점이라 하겠다. 도시 빈 공간의 재인식으로서의 실천은 사실 공고한 사회 시스템에 균열을 내고 질문을 생성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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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희, 《배꼽불》: 신체(와)의 관계성을 조각하기REVIEW/Visual arts 2022. 3. 12. 16:25
《배꼽불》은 2018년 이후 최근까지 진행해온 〈뱃봉우리〉 작업을 비롯해, 비교적 최근까지 다년간의 여러 작업이 뒤섞이는 가운데, 매체의 분화와 주제/시점의 차이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동시에 직관과 감각에 의한 직조의 기술로써 이를 종합하는 전시이다. 각 작업이 갖는 힘은 각 작품에 머물기도 하고, 곧 다른 작업과 다른 이질성을 간직하기도 하고, 나아가 다른 작업과의 어떤 감각적인 연결을 추동하기도 한다. 《배꼽불》은 작가의 방대한 작업에서의 어떤 정수를 볼 수 있는 가운데, 주제를 언어로써 정교하게 시현하지는 않는 전시이다. 소위 작업은 작가의 정념과 작업력을 보여준다. 이는 아마도 작가의 작업이 감각을 고스란히 전달하는 매체로 연장된다는 것과 그러한 감각적인 차원이 작가의 힘과 사고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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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재, 〈검은 눈〉에 대하여: 표면과 접촉의 시각적 기술REVIEW/Visual arts 2022. 2. 6. 21:10
조경재 작가는 자투리, 부스러기 같은 주로 목적성을 상실한 이름 없는 사물들을 조합, 배열하고, 이를 사진으로 기록해 왔는데, 나아가 이를 다시 설치로 구성하고, 다시 사진을 이 공간에 배치하는 확장과 수렴의 유희를 수행하는 식으로 전시 공학의 특이한 경로를 구성해 왔다. 먼저 사진의 경우, 완전한 결착이 아닌 (아마도 애드호키즘적 작업 방식에 따른) 패치워크, 임시적인 사물들의 절합들, 곧 사물과 사물, 틈새와 빈 공간을 구성하는 임시적인 구조물이 지닌 입체적인 공간성이, 평면의 매체 안에서 압축되면서 그 안의 사물들은 이미지의 틀어짐과 착시로 나타나는 한편, 다중 레이어의 초점화되지 않은 자리들, 곧 비가시적인 초점들이 겹쳐져 있는, 어느 하나의 온전한 초점을 구성할 수 없는, 기이하고 정리되지 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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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화수, 《잡초의 자리》: 세계들에 대한 어떤 언어들REVIEW/Visual arts 2022. 2. 4. 23:51
유화수 작가의 《잡초의 자리》는 투명한 원형 파빌리온의 특성에 맞춰 수직적 위상을 지닌 작품 한 쌍을 일종의 미심쩍은 관문으로 전면 중앙에 세우고, 나머지 작업을 수평축으로 평행하게 분배한다. 좌우 대칭으로 〈SMART〉(2021. 180×50×150cm, 괴목, 드론 부품.), 〈워킹홀리데이〉(2021. 300×60×175cm, 나무, 철, 소금, 고춧가루, 모터, led, 가습장치, 팬, 채소.)가 위치하며, 그 뒤로 〈잡초의 자리〉(2021. 150×50×175cm, 80×50×175cm, 100×5×5cm, 스마트 팜 시스템, 잡초, 나무, 이끼.)가 분배된다. 이는 입구를 지난 이후의 본문에 해당할 것이다. 공간 가장 안쪽에는 CCTV가 자리하며 〈데이지와 이상한 기계〉(2021. 가변크기, 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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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고은, 《에필로그: 세 개의 고래-인간 동그라미》, ‘보지 못하는 자’REVIEW/Visual arts 2022. 1. 20. 00:45
임고은 작가의 《에필로그: 세 개의 고래-인간 동그라미》(이하 《에필로그》)는 그의 지난 퍼포먼스-전시 〈아키펠라고 맵: 세 개의 고래-인간 동그라미〉(이하 〈아키펠라고 맵〉)를 변주한 재버전이라 할 수 있다. 퍼포머가 작품의 순서를 지정하고 개별 작품의 작동을 수행하며 동선에 대한 지침을 수여하며 관객을 일정한 시공간의 틀로 자리하게 했던 반면에, 이번에는 모든 개별 작품/장소가 열린 상태로 진행되는 전시로 자리한다. 여기에는 각기 다른 장소에서 시차를 갖고 열렸던, 두 작업 사이의 지난 과정의 전시 ‘모래-정원 3부작’과 〈모래알 속 정원들〉이나 워크숍 형태의 〈실재하는 두꺼비가 사는 상상의 정원〉(이하 〈상상의 정원〉) 등이 전시에 부가된다. 이는 설치 차원에서 더해지거나 작품 내부적으로 삽입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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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효덕, 《현자의 돌》, ‘구리라는 의미 계열체’REVIEW/Visual arts 2022. 1. 14. 22:30
《현자의 돌》은 ‘구리’라는 재료를 활용해, 병렬, 접합, 서사 등 다양한 방식으로 작업을 창출한다. 그중 입구 오른쪽 벽면에 자리하는 〈용바위〉(2021-2022. 구리판, 바위 표면 캐스팅, 450×280×100cm.)는 구리의 내재적인 연장으로서, 화기의 사용 없이 두드리는 행위를 통한 일종의 연금술적 생성에 가까운데, 구리의 재질을 작가의 노동의 인장으로 번역하는 한편, 각각의 구리판을 차이의 소산들이라는 심미적 기호물로 변환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현자의 돌”이라는 제목은 이러한 전시공학의 문법이 은유적인 서사로 수렴시키고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일까. 〈용바위〉가 색, 바램, 평평함, 접힘, 주름, 입체의 여러 각과 기울기 등을 형성한다면, 〈구리 조각〉(2021-2022. 구리,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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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해숙, 《유토피아 삼경》, 굴절된 주체의 시각상REVIEW/Visual arts 2021. 12. 30. 11:02
《유토피아 삼경》의 사진들은 세계를 담는 거울, 곧 자신의 다면체의 공간―북두칠성의 성좌―으로 세계를 변형하며 2차원 평면의 사진으로 압축한다. 기존의 ‘파노라마 삼부작’은 현장에서 뒤엉키고 너저분하게 널린 파편적 사물들이 만든 풍경과 거기에 일부로 포화되는 작가의 퍼포먼스로 구성되었다면, 《유토피아 삼경》에서 작가는 ‘순전하게’ 거울로 용해되었다. 여러 각도로 연접한 거울은 사물을 각각의 모나드 안에 기울어진 채 수용하는데, 축소되거나 확대되는 크기의 차원, 바깥쪽으로 이탈하거나 안으로 접히는 이행의 차원, 표면 자체가 울거나 반전되게 이미지를 구성하는 왜곡의 차원은 모두 동시적으로 이뤄진다. 이 모나드들이 또한 동시적으로 신체를 포화/불포화시킨다. 이는 이전 작업 ‘파노라마 삼부작’과의 연장선상을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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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이즈미 메이로 〈사슬에 묶인 프로메테우스〉: 내용적 진실으로서 VRREVIEW/Visual arts 2021. 12. 2. 12:01
고이즈미 메이로의 〈사슬에 묶인 프로메테우스〉는 하나의 텍스트에 대응하는 두 번의 관람 방식을 취하는데, 한 번은 VR, 두 번째는 스크리닝이다. 이 매체의 전환이 실은 이 작품의 메시지라는 점에서, VR의 활용은 부차적인 것이면서 필연적인 것이 된다. 동시에 그 텍스트는 순전한 내용이 아니라 두 다른 세계와 연결하는 지표로 기능한다. AI 기계음의 목소리가 가상 공간에 대한 가장 분명한 부재를 지시하는 현존―가령 목소리는 인간의 현존을 어설프게 흉내 내는 기계의 목소리이다.―이라면, 스크리닝에서는 실제 루게릭병 환자의 말과 동기화된다. VR이 기술적 시현을 위해 신체를 ‘구속’한다면, VR 장치를 벗어버린 스크리닝의 시간은 이 지점이 예외적 존재가 발화하는 하나의 시간을 경험하고 있었음을 전한다. 곧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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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서영, 《눈부신 미래》: 눈에 대한 보고서REVIEW/Visual arts 2021. 11. 15. 13:04
제목 “눈부신 미래”는 즉자적으로 ‘눈’이 부신 ‘미래’로 분쇄된다. 〈백내장〉(2021. 싱글 채널 비디오, 6분 17초.)의 한 구절을 가리키는 이러한 알레고리는 미래로 수렴하지 않고 눈이라는 매체로 다시 회귀한다. 구와 돔은 눈의 수정체와 도상학적으로 닮았으며, 리서치 슬라이드에 의해 그 유사성의 형태들에 대한 몽타주가 이뤄지는 가운데, 그 옆 〈구, 돔, 파이프〉에서 언어적 결합을 이루는 것으로 연결된다. 한 면으로 펼쳐지는 병풍형 구조의 책인 〈구, 돔, 파이프〉에서의 “빛나는 구체가 비추는/미래 도시/를 이루는 구, 돔, 파이프”(p.1-3.)에서 “머리에 구를 뒤집어쓴 사람들”(p.10.)의 “안구/를 덮는 콘택트 렌즈.”(p.12-13.)로 이어지는 일련의 문장/과정/서사는 ‘구’라는 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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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유진, 《안티바디와 싸이킥에너지》: 근미래에 대한 도착적 희망REVIEW/Visual arts 2021. 11. 8. 00:01
비계 같은 골격과 이음부 구조로 확장되는 대부분의 설치물은 연결된 전자 회로 기판에 의해 제어되며 움직인다. 거기에는 되게 슬로건 같은 문장이 따라붙는다. 이러한 구조적 설치의 형태는 (인간의 정상적인 몸을 바디로 칭한다면) 안티바디의 메타포로 여겨진다. 이러한 안티바디는 각자의 전자적 원동력을 통해 바디의 입구를 탐색하는 듯 보인다. 여기서 “중증근무력증이라는 자가 면역 질환을 앓고 있는 작가”의 경험은 기계 장치의 신체로 체현되기보다는 언어적으로 발화되거나 은유적으로든 재현된다. 제목에서 이 안티바디를 “싸이킥에너지”로 연결하는 것, 곧 안티바디의 “신체의 근본적인 취약성”을 ‘상쇄’시키는 싸이킥에너지를 도입한 것처럼 안티바디는 싸이킥에너지과 같은 도약의 순간을 마련함으로써 또는 그와 같은 순간을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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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혜림, 《Night Movers》: ‘바깥’의 기호들REVIEW/Visual arts 2021. 10. 19. 16:49
전시 《Night Movers》는 상징으로 파악되거나 도상으로 수렴되지 않는 기호적 사물들의 불연속적이고 불균질한 매듭들이 점철된다. 이 말이 없는, 또는 말이 되지 않는 엮음에 따라 그 사물의 이름이 지워지며 갱신되는 전시의 이념을 구현하기 위해 지웠을 언어, 곧 캡션 없는 이 사물들의 전시에서, 어떤 언어가 있는 세계의 현재를 표상하는, 그 내용을 유추해볼 수 있는 그림이자 가장 거대하게 자리하는, 본문이 없는 책들이 군데군데 있는 이 전시장에서 유일하게 읽을 수 있는 본문에 해당하는 그림 역시 명확하지는 않다. 우선 기름종이에 그려진 이 그림(〈Recall〉, 우레탄 비닐, 마커 펜, 600×400cm, 2021.)은 도구를 다루는 사람들, 작업하는 사람들을 표한다. 당연히 그것들은 어떤 멈춰진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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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산가옥》: 중층의 시간과 시각REVIEW/Visual arts 2021. 10. 15. 11:38
문화연구의 시각을 도입하기 적산가옥이 산재한 동인천 부근에 새롭게 자리한 부연에서 열린 전시 《적산가옥》은 해당 지역의 역사를 현재에 각인시킨다는 점에서 미술 전시로서는 매우 드문 경우다. 세 명의 작가는 이의중 건축가와 같이 현대 미술 작가만으로 구성되지 않았는데, 건축사와 근대사를 연결하는 리서치를 작업으로 연장해 온 카마다 유스케와 실제 『신흥동 일곱주택』이라는 책을 이의중 건축가 외에 여러 작가와 함께 만든 오석근 작가가 참여하며, 건축에 대한 전문성과 실제 경험을 공유하며 전시로 연장할 수 있었다고 보인다. 레퍼런스가 모인 테이블 위에 함께 놓인 『신흥동 일곱주택』은 전시의 밑거름이자 전시를 참조하는 데 도움을 준다. 적산(敵産)은 자기 나라에 있는 적국(敵國)의 재산(財産)을 의미한다. 적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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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민, 최진한, 《Other Ghost Lives》: ‘현실을 머금은 몸’REVIEW/Visual arts 2021. 9. 22. 00:36
밤에 전시 《Other Ghost Lives》를 재개한다는 것은 전시로서는 꽤 예외적인 경우이지만, 여기서는 그 자체의 새로움보다는 어둠 속에서 전시를 본다는 콘셉트가 중요한 전시라는 점에서 그 온당함을 이야기하는 게 적절할 듯하다. 윈도우가 개방된 Keep in Touch Seoul에 암막 커튼을 달고 관객은 레이저 포인터와 조명이 다 되는 작은 손전등을 받아 들고 벽을 더듬어 간다. 벽에는 하얀 포스트잇 위에 문장이나 단어 들이 있다. 사방의 벽의 중앙에는 높이가 긴 작은 면적의 테이블이 있다. 맥도날드 포장지로 만든 조각을 주로 선보여 온 작가의 작업은 보이지 않는다. 하얀 포스트잇은 크게 두 가지 서사가 전개된다. 하나는 작가의 현실을 주로 반영하는 말이라면, 다른 하나는 『바냐 아저씨』에서 나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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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차연, 《집으로》: 여정을 위한 의식으로서의 퍼포먼스-전시REVIEW/Visual arts 2021. 8. 29. 00:42
대안공간 루프에서 열린, 하차연 작가의 개인전 《집으로》는 쓰레기를 갖고 하는 행위, 작업, 쓰레기에 대한 관찰 등이 주를 이룬다. 행위는 퍼포먼스를 기록한 영상으로 주로 드러나는데, 이는 시각적인 차원과 시간적인 차원에서 퍼포먼스 일부분이라 할 수 있다. 쓰레기를 갖고 물리적으로 제작한 작업인 〈매트, 보트, 카펫-나의 매트, 가족을 실을 배, 모두를 위한 양탄자〉(1988, 2021)―이 작업의 경우 1988년에 작가가 시도했던 페트병들을 활용해 새롭게 만든 것이다.―는 업사이클링 아트와는 조금 다른 부분이 눈에 띄는데, 이는 심미화되지 않은 각각의 쓰레기를 고스란히 드러낸 바에 따른다. 쓰레기는 쓰레기로서 지시되고, 그 쓰레기라는 기표에 관점이 실리는 방식이다. 〈Balade de Carola〉(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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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술+실천+비평(오정은)REVIEW/Visual arts 2020. 8. 20. 16:43
술술+실천+비평(2019)오정은 (미술비평)blog.naver.com/aquablue_0 다른 개인나는 지금 문래동의 한 건물 앞에 서 있다. 「문래 술술랩」(이하 「술술랩」)으로 이름하게 된 지하 1층, 지상 5층짜리 건물의 문 앞이다. 용도를 다한 낡은 건물이 영등포문화재단의 으로 한 달여 동안 예술가의 공유지로 사용된 장소가 「술술랩」이다. 나는 한 기획자의 소개로 한 달 전 이 공간을 처음 만났다. 노래방 업소로 운영되던 흔적이 역력한 지하 1층, 남은 간판과 구조로 보아 작은 식당과 주차장이었을 지상 1층, 그리고 고시원이었을 2~5층이 집기류의 온전성과 청결, 수도와 전기를 잃고 예술이라는 국면을 기다리고 있었다. 2층부터 5층까지 기획자 네 명이 한 층씩을 맡아 창작자 몇 명을 공모하거나 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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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반, ‘가변적 풍경을 직조하다’REVIEW/Visual arts 2020. 3. 16. 19:02
Intro ▲ 이해반, 한탄강(작업 세부), 2014. 리넨에 오일, 오리엔탈 잉크, 제소, 193.3×130.3cm. 서구/근대의 풍경(화의 탄생)은 대상과의 적당한/안전한 거리를 통한 시선의 지배를 전제한다(‘조망의 시선’). 반대로 동양/전근대의 풍경(화, 가령 산수화로도 불리는 그림)은 대상과의 마주침과 뒤섞임을 가정할 수 있었다(‘함입의 시선’). 풍경에 대한 이분법적 도식은 동시대에는 풍경과 주체의 복잡한 역학 관계, 곧 세계를 보는 또는 세계에 위치하는 특정한 주체의 방식으로 다시 성찰될 수 있다. 풍경으로부터 사라지는 주체(에 대한 비판)이거나 실재로서의 풍경이 주는 기호(에 대한 긍정)이거나 풍경은 이제 투명한 가시성이 아니라 세계를 보는 하나의 알레고리이자 당대(의 시각적 사유)를 일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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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버 미술가의 미술가 게임REVIEW/Visual arts 2019. 9. 18. 19:28
오정은 *『Art in Culture』 8월 호에 한편의 픽션 에세이가 실렸다. 제목은 「존버의 일주일 -2019년 한국 젊은 미술가의 창작 분투기」. 말 그대로 존버세대 작가의 일상을 1인칭 시점의 픽션으로 쓴 글인데 작가로서의 입지를 찾기도, 안정적인 생계를 맛보기도 어려운 요즘 청년의 우울한 상황과 자조 섞인 한탄을 묘사했다. “세상엔 작업 잘 하는 똑똑한 사람들이 왜 이리도 많은 걸까?”라는 문장에서, 어쩐지 포화상태로 분출구 없이 노오력하는 이 세대의 비극이 묻어난다. 그러나 ‘세대’라고 하는, 전 인류에 적용 가능한 생물학적 연령 개념을 들어 이들을 보편의 상에 묶기에는, “그렇게 많은 사람이 내 작품만 보면서 한마디씩 해 주는 일이 없거든.”이라는 화자의 외로운 푸념에서 드러나는 애태움을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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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동희, 《딜리버리》: ‘수렴’하지 않는 공간REVIEW/Visual arts 2019. 8. 4. 21:23
▲ 구동희, 《딜리버리》 전시 전경 [사진 제공=아트선재센터] (이하 상동)전시는 배달 서비스가 일반화된 한국 사회의 물류 유통 체계를 일종의 알레고리로 가져왔지만, 실은 그에 대한 직접적인 설명이나 해석이 아닌, 일종의 복잡한 구조 자체라는 형상과 체험만을 남겼다. 물론 입구를 인트로로 보자면, 조각은 피자에 들어 있는 여러 토핑을 비롯한 사물들의 일부가 겹겹이 쌓여 기괴한 형태의 구조물로 확장되어 있고, 그 옆의 영상에서 배달원이 아닌 피자의 시각에서 잡은 배달 과정이 나오는데, 이는 직접적인 사회 현상을 반영하기보다 각각 손과 그 밖의 일부 광경만 나오는 이미 해체된 시선과 추상화와 집적을 통해 재구조화된 의사-사물만이 있는 것이다.공간에 진입하면 실은 그 안과 바깥, 그리고 어느덧 입구와 출구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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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hibition of Exhibition of Exhibition》: 전시라는 이름을 작동시키기REVIEW/Visual arts 2018. 6. 20. 14:12
컬렉션으로서 작품, 고유명으로서 큐레이터▲《Exhibition of Exhibition of Exhibition》 전경 ⓒ김진호(이하 상동)아카이브(?)된 50명의 작가 중 49개의 작품은, 한정된 그러나 꽤 풍요로운 선택지 속에 큐레이터들의 선택으로 분절된다. 선택의 교집합은 필연적인 것이 아니다. 이 작품들의 ‘선택’들은 가령 큐레이터마다의 하루에 해당하는 개별적 전시들의 얼개를 띤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전시는 작품의 확장(적 수렴) 대신, 큐레이터 각각의 컬렉션 자체로 소급되며, 컬렉션 내 작품들은 의미로부터 표백된다(마치 90년대 히트 팝송 모음 테이프들처럼 그것들은 일종의 명확하지만 불투명한 비-아카이브다). 전시‘들’은 큐레이터(들의 서문)들을 통해 필터링되지만, 작품의 의미와 내용은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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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인트 카운터 포인트(Point Counter Point)》: '공간에의 분포'REVIEW/Visual arts 2018. 3. 16. 03:06
▲ 《포인트 카운터 포인트(Point Counter Point)》 2층 전시 전경 ⓒ김연제[사진 제공=아트선재센터] 5명의 작가가 아트선재센터 2, 3층을 사용한 전시 《포인트 카운터 포인트(Point Counter Point)》[기획: 김해주(아트선재센터 부관장)]는 공간 디자인의 성격이 강한데, 작업은 공간의 재형성을 통해 관람객을 공간에 대한 인식으로 이끈다. 따라서 작업은 공간을 포함하며 공간에 포함된다. 모든 작업은 2018년 제작된 것으로, 한편 2층과 3층으로 분리되는 동일 작가(이수성, 김동희, 김민애)의 작업에서, 이수성 작가의 작업()의 경우, 한 작업의 다른 판본으로서 공간의 중심에 자리하며 연결돼 두 개 층을 잇고 횡단시키는데, 반면 김동희 작가의 공간적으로 분리된 두 작업()은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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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송은미술대상전 리뷰REVIEW/Visual arts 2018. 3. 9. 12:25
▲ 진기종, , 혼합매체, 가변설치, 2017 [사진 제공=송은아트스페이스](이하 상동) 플라이 낚시는 미끼가 되는 수서곤충의 이미테이션 제작을 통해 실제 물고기를 잡아낸다. 결과적으로 잡은 고기를 다시 방생하는 낚시는 작가의 취미 생활로, 수서곤충에 대한 공부 및 자연에 대한 관찰이 전제된다. 이러한 과정은 자연과 물고기를 한 화면으로 병치한 사진들, 수서곤충과 물고기를 그린 수채화들, 동물의 털로 모방한 바늘들을 과정을 담은 비디오, 제작 키트 등의 아카이브로 구성된다. 곧 그 자체가 결정물이라기보다 그러한 작업의 전반적인 과정을 보여주며 작업을 재구성하는 데 가깝다. ▲ 진기종, , 사진_32개, 각 21×29cm, 2017 이는 흥미로운 취미생활이라기보다는 실재와 모사물에 대한 예술의 오래된 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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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젤리카 메시티, 《릴레이 리그(Relay League)》: 번역의 수행적 확장REVIEW/Visual arts 2018. 3. 2. 12:55
▲ , 2017, 3채널 비디오 설치, 8분, [사진 제공=아트선재센터](이하 상동) 3개의 스크린이 막으로 구분되어 설치된 는 마치 회전문처럼 분할되는 공간에서 소리의 간섭으로써 또 이전 영상의 잔해로써 스크린-공간을 접합한다. 이 문은 물론 돌아가지 않으므로 세 개의 분리된 스크린을 지나야만 입구를 출구로 대체할 수 있다. 3개의 영상은 공통되는 원본에 대한 번역으로서 또(는) 그 번역의 또 다른 번역으로서 존재하는데, 그 번역의 원본이라 할 “수신자 전원에게 알림. 이것은 영원한 침묵에 앞선 우리의 마지막 함성”은, 1997년 1월 31일, 130여 년 만에 해양 조난 통신에 사용되던 모스 부호의 종언을 알리며 송출한 프랑스 해군의 마지막 전신의 기의이다. ▲ 이를 장단음의 분리로써 (하나의 고정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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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스트 씨어리, 《당신이 시작하라》: ‘관객의 탄생’REVIEW/Visual arts 2017. 12. 5. 00:05
▲ , 2015, 싱글 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1시간 45분 ⓒPatrica Marcoccia and Oscar Tosso [사진 제공=백남준아트센터] (2015)는 연속되는 하나의 쇼트 안에 한 명씩 연결해 도시를 걷는 일곱 명의 사람을 다룬다. 동시에 이는 온라인과 극장에 실시간 스트리밍되었었다. “당신이 바꾸었으면 하지만 바꿀 수 없는 건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이 일곱 명을 관통하고, 일곱 명을 향한 질문은 다른 답을 도출한다, 아니 질문은 다른 세계로의 접속을 요청하는 질문으로 환원된다. ▲ , 2009, 싱글 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5분 ⓒAnne Brassier [사진 제공=백남준아트센터] (2009)에서 전화를 받은 관객이 율리케와 아이몬 중 한 명을 선택하고 도시 곳곳을 걷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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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의 전시》: ‘장소와의 간극을 수행하는 전시’REVIEW/Visual arts 2017. 11. 20. 18:06
작업들은 두 작가(조형섭, 이소의)의 작업을 제하고는, 미술관에서 풀려나 낯선 장소와 헐겁게 맞물려 있다. 커뮤니티 스페이스 리트머스마저도 전시장을 찾는 이를 전시장‘에서부터’ 나아가는 첫 번째 키를 제공하는 입구이자 전시장을 벗어나며 새롭게 전시, 《장소의 전시》(큐레이터: 안대웅, 어시스턴트 큐레이터: 전수현)가 시작되는 출구의 ‘유일한’ 장소이다. 그러나 이 전시장은 전시장의 ‘바깥’에 위치한 이들, 전시장의 문법 따위는 상관없는 현실에 소재를 둔 사람들에게는 결코 인접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마찬가지로 작업은 일상에서, 현실에서 잘 보이지 않는다. 그것을 작품으로 감별하러 온 이들은, ‘실재의 장소’에 있는 이들에게서 낯선 이로 구별된다. 대부분의 미술관이라는 장소가 실은 작품을 위해 여전히 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