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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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고은, 《에필로그: 세 개의 고래-인간 동그라미》, ‘보지 못하는 자’REVIEW/Visual arts 2022. 1. 20. 00:45
임고은 작가의 《에필로그: 세 개의 고래-인간 동그라미》(이하 《에필로그》)는 그의 지난 퍼포먼스-전시 〈아키펠라고 맵: 세 개의 고래-인간 동그라미〉(이하 〈아키펠라고 맵〉)를 변주한 재버전이라 할 수 있다. 퍼포머가 작품의 순서를 지정하고 개별 작품의 작동을 수행하며 동선에 대한 지침을 수여하며 관객을 일정한 시공간의 틀로 자리하게 했던 반면에, 이번에는 모든 개별 작품/장소가 열린 상태로 진행되는 전시로 자리한다. 여기에는 각기 다른 장소에서 시차를 갖고 열렸던, 두 작업 사이의 지난 과정의 전시 ‘모래-정원 3부작’과 〈모래알 속 정원들〉이나 워크숍 형태의 〈실재하는 두꺼비가 사는 상상의 정원〉(이하 〈상상의 정원〉) 등이 전시에 부가된다. 이는 설치 차원에서 더해지거나 작품 내부적으로 삽입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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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효덕, 《현자의 돌》, ‘구리라는 의미 계열체’REVIEW/Visual arts 2022. 1. 14. 22:30
《현자의 돌》은 ‘구리’라는 재료를 활용해, 병렬, 접합, 서사 등 다양한 방식으로 작업을 창출한다. 그중 입구 오른쪽 벽면에 자리하는 〈용바위〉(2021-2022. 구리판, 바위 표면 캐스팅, 450×280×100cm.)는 구리의 내재적인 연장으로서, 화기의 사용 없이 두드리는 행위를 통한 일종의 연금술적 생성에 가까운데, 구리의 재질을 작가의 노동의 인장으로 번역하는 한편, 각각의 구리판을 차이의 소산들이라는 심미적 기호물로 변환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현자의 돌”이라는 제목은 이러한 전시공학의 문법이 은유적인 서사로 수렴시키고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일까. 〈용바위〉가 색, 바램, 평평함, 접힘, 주름, 입체의 여러 각과 기울기 등을 형성한다면, 〈구리 조각〉(2021-2022. 구리,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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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리와 메테인〉(작/연출: 진나래 ), 어떤 번역의 지층들REVIEW/Interdisciplinary Art 2022. 1. 14. 22:30
“법정극”을 표방하는 〈사리와 메테인〉은 일종의 ‘번역극’이라 할 수 있다. 이는 크게 두 층위에서 그러한데, 우선 법정에서의 진행이 주요하게 자리하는 공연에서 예컨대 첫 번째 장인 “돼지농장 VS 바이러스”에서 중간종과 농장주인, 그리고 암퇘지의 변호를 맡은 변호사의 대리/위임의 역량을 통해, 인간의 언어를 구사하지 않는 비인간 종의 언어가 들릴 수 있다는 가정 아래 일종의 모의 법정이 구성하는, 타자의 세계를 인간의 세계로 옮기는, 정치의 언어가 자리하며, 두 번째로 이 공연의 매체적이고 물리적인 지형, 곧 수화와 자막, 음성해설, 움직임이 동시적으로 출현하는 공연이 좇는 가치로서, 또 다른 비가시적인 타자의 언어로의 전개, 곧 공연의 직접적인 내용이 산출하는 타자들이 아닌 또 다른 은폐된 공동체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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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차의 범위: 픽션들〉: 연극의 발생REVIEW/Theater 2022. 1. 6. 11:38
무대 중앙에는 하나의 빈 의자가 놓인다. 〈오차의 범위: 픽션들〉은 두 명의 배우와 세 개의 의자를 가지고 하는 연극이다. 비정형적으로 놓인 의자들 사이에서 빈 중심으로 한참 놓여 있던 의자에 이지혜 배우가 앉고 이를 마주 보고 앉은 최순진 배우의 거리가 가까워지며 주변(부)의 이야기는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명확하게 만들면서 비로소 초점화된다. 〈오차의 범위: 픽션들〉은 연기-무대-이야기의 관계에 대한 흥미로운 실험이다. 최초의 화자인 김연재와 이휘웅에게 들은 이야기는, 명시되지 않는 누군가에게 들은 것으로 옮겨진다. 이야기의 개연성은 그 이야기의 당사자를 떠나 그 이야기를 옮기는 사람의 번역과 변질, 전용과 같은 과정에서 최종적으로 남은, 유의미한, 그리고 납득 가능한 의미가 구성될 수 있느냐의 부분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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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정 〈3circles〉, 이옥경×이윤정 〈즉흥/discrete circulation〉: 가상에서 장르 간의 탄성으로REVIEW/Performance 2022. 1. 6. 11:16
〈3circles〉은 흡사 엘리베이터를 타고 이동하는 사람의 움직임을 표현하는데, 현실을 가정한 움직임은 아래로의 중력과 위로 솟구치는 힘이 조율되고 있음을 표현하는 것으로써 두 가지 힘의 낙차를 표현한다. 이러한 움직임은 마임의 그것과 유사한데, 점점 엘리베이터라는 네모난 큐브의 프레임은 우주와 같은 미지의 차원으로 연장되고 그 안에서 입의 각도를 틀어 벌린 채 고개를 숙여 침을 흘리며 탈진 상태에 가까워진다. 이러한 움직임과 일련의 서사적 흐름은 다분히 연극적인 것으로도 보인다. 처음 무언가를 벅벅 찢는 듯한 건물 바깥의 소음은 엘리베이터의 파열음을 연상시키는 것으로 보이고, 한동안 지속되다 안쪽의 스피커의 앰비어트 사운드가 겹쳐지며 점점 줄어들다 이내 사라지는데, 후반의 사운드는 극적인 분위기를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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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나예,〈파편들의 ㅈㅣㅂ〉: 유희, 은신술, 그리고 기이한 ‘공’터REVIEW/Performance 2022. 1. 1. 20:31
0 〈파편들의 ㅈㅣㅂ〉은 차 스튜디오라는 1, 2층이 분절/절합된 공간의 특성을 1층의 움직임과 2층의 사운드와 발화의 동시적이고 시차적인 전개 방식으로 진행된다. 사운드가 파편적이라면, 움직임은 지속적이다. 차 스튜디오는 1층과 2층이 하나의 계단을 통해 연결되어 있고, 문가 쪽 2층의 터진 공간으로 1층이 내려다보이는 특이한 순환 구조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이는 온전한 ‘통합’을 이룰 수는 없어서 2층의 사운드의 근원을 따라가기 위해 계단을 오르고 다시 1층의 움직임의 지속을 보기 위해 계단을 내려오는 수행을 끊임없이 관객 스스로 지속하게 되는 풍경이 연출된다. 사실 이러한 교환이 일어나는 건 1층과 2층의 분절된 공간을 통합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1층의 움직임이 보여주기 위한 움직임을 의도적으로 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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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혜진, 〈당신은 x-being을 초대하지 않을 수 없다〉, 어찌할 수 없음의 신체들REVIEW/Dance 2022. 1. 1. 19:55
장혜진 안무가의 〈당신은 x-being을 초대하지 않을 수 없다〉(이하 〈x-being〉)는 일정 부분 〈흐르는.〉(신촌문화발전소)에서 출발한 바 있다. 확장된 무대와 사운드, 오브제, 모빌 등이 더해진 가운데, 장혜진과 서로를 상호 복제 하는 듯한 퍼포머 김명신이 함께 있다는 것 등은 물론 차이를 가져온다. 존재의 상호 얽힘과 차이들의 수용 차원에서 그리고 확장된 공간을 활용한 퍼포머들의 인-아웃 또는 장소 변경을 통해 장면의 복잡도와 시각적 세공도가 더욱 커진다. 그리고 모든 움직임과 장면을 하나의 몸으로, 조금 더 정확히는 하나의 몸에 모든 움직임과 장면을 ‘투과’시키던 장혜진에 대한 집중은 많은 부분 분산되며 (공간적으로) 산란하고 또 (매체적으로) 확장된다. 티머시 모턴의 용어로서 “존재의 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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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은미, 〈Let me change your name〉: 이름을 바꾸는 어떤 행위들REVIEW/Dance 2021. 12. 30. 11:24
〈Let me change your name〉을 표면을 한 문장 정도로 압축한다면, 음악적 주술에 포획된 자동인형들의 무한한 맥놀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음악은 반복된 리듬과 파열음으로 팽팽하게 무대를 옥죈다. 여기에는 시선, 스트립, 위치 짓기, 맞섬 등의 여러 관계 도식이 역시 반복적으로 출현한다. 한편, 무대는 텅 비어 있고, 배경색의 변화만 있다. 무용수들은 좌에서 우로, 우에서 좌로 교차하는 방향성을 갖는다. 이는 안은미 안무가가 자주 구사하는 무대 작법으로, 비슷한 구문을 반복하는 무용수들의 무한한 나타남과 사라짐의 교대는, 텅 빈 무대 위에서 지체 없이 가장 빠른 속도로 가능해지며, 무대가 끊임없이 갱신되는 것을 통해 각 무용수의 존재론적 지위보다는 무대 자체의 변신술쯤으로 공연을 수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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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해숙, 《유토피아 삼경》, 굴절된 주체의 시각상REVIEW/Visual arts 2021. 12. 30. 11:02
《유토피아 삼경》의 사진들은 세계를 담는 거울, 곧 자신의 다면체의 공간―북두칠성의 성좌―으로 세계를 변형하며 2차원 평면의 사진으로 압축한다. 기존의 ‘파노라마 삼부작’은 현장에서 뒤엉키고 너저분하게 널린 파편적 사물들이 만든 풍경과 거기에 일부로 포화되는 작가의 퍼포먼스로 구성되었다면, 《유토피아 삼경》에서 작가는 ‘순전하게’ 거울로 용해되었다. 여러 각도로 연접한 거울은 사물을 각각의 모나드 안에 기울어진 채 수용하는데, 축소되거나 확대되는 크기의 차원, 바깥쪽으로 이탈하거나 안으로 접히는 이행의 차원, 표면 자체가 울거나 반전되게 이미지를 구성하는 왜곡의 차원은 모두 동시적으로 이뤄진다. 이 모나드들이 또한 동시적으로 신체를 포화/불포화시킨다. 이는 이전 작업 ‘파노라마 삼부작’과의 연장선상을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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丙소사이어티, 낭독극 〈물 불 흙 공기〉, 서사를 생성하기REVIEW/Theater 2021. 12. 30. 01:26
〈물 불 흙 공기〉는 메타-서사를 가지고 읽고 투사하고 수행하는 메타-연극이다. 그런 의미에서, 〈물 불 흙 공기〉가 낭독극으로 열린 이유보다는 낭독극이어야 하는 이유를 말하는 것이 더 타당할 듯하다. 낭독극은 보통 보면대에 대본을 놓고 읽는 방식으로 진행되며, 〈물 불 흙 공기〉 역시 그러하다. 낭독극에서 배우는 이 낭독을 처음 하는 것도 아닐 테고, 낭독극을 하기 위한 낭독을 한두 번 한 것이 아닐 것인데, 따라서 이는 이미 머릿속에 대부분 입력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페이지를 넘기기 위해, 나아가 말하는 부분과 페이지의 글자를 맞추기 위해 대본을 봐야 하는 입체적인 행위의 설정이 필요하다. 또는 낭독극을 하는 외양을 재현하기 위해 대본을 중간중간 보는 것일 수도 있다. 최소한의 무대 혹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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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가슴의 발레리나〉: 가슴은 어떻게, 무엇을 발화하는가REVIEW/Theater 2021. 12. 30. 01:09
〈큰 가슴의 발레리나〉는 베로니크 셀의 동명의 소설을 각색해 연극으로 만든 것이다. 베로니크 셀이 실제 고전 발레와 라반의 메소드를 모두 경험한 이라는 점에서, 발레에 대한 일반 사람의 판타지 차원의 상징적 의미 이상으로 메타-발레적 접근이 눈에 띈다. 가령 발레를 예술의 시대적 문법 아래 구분하는 것이 그러하다. 모던과 포스트 모던의 구분, 그리고 실제 주인공인 바르블린 블랭의 고전발레에서 저드슨 댄스 씨어터로 넘어가는 삶은 이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큰 가슴의 발레리나〉는 무대라는 환영과 현실의 격차를 무대 위 발레리나의 활공과 구체적인 서술의 차이로 구성하며, 극적인 대비 속에 전개한다. 발레리나의 움직임은 무용 그 자체의 실시간 전개보다는 그 무용이 전개되고 있음을 서술하는 장면의 차원에서 삽입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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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색이 아프레걸〉, 박남옥의 입체적 형상화REVIEW/Musical 2021. 12. 30. 00:16
영화감독 박남옥의 삶을 창극으로 녹여낸 〈명색이 아프레걸〉은 최초의 여성 감독이라는 수식어라는 과잉 기표를 지우고, 당대 신여성으로서 영화를 하는 것의 갈등을 영화에 대한 그의 태도와 이상과 교차시키며, 시대적인 주체의 한 관점을 개인으로 귀속시키는 대신, 그의 역경을 시대의 정동과 영화의 이념으로 알레고리화하는 것으로써 박남옥을 역사에 입체적으로 위치시킨다. 파도의 형상 아래 좌우로 흔들리는 사람들로 시작되는 무대의 장면은 이후 등장하는 박남옥이 밀선을 타고 바다에 빠져 죽을 뻔했던 경험의 무의식적 원형이면서, 광복 이후 문화적 격변기라는 흔들리며 정확히 좌표를 상정할 수 없는 시대의 정동을 상징한다. 〈명색이 아프레걸〉은 카메라를 고정해 장면들을 담는 영화, 그리고 땅을 딛고 서서 최대한 멀게 포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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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낙엽〉: 문학의 전술, 재현의 전략과 한계REVIEW/Theater 2021. 12. 26. 11:19
〈붉은 낙엽〉은 카렌의 딸 에이미의 실종 사건이 미궁으로 떨어진 일련의 시간이 과정 전반을 이룬다는 점에서는 일종의 스릴러적인 또는 추리를 동반하는 드라마 극의 외양을 띤다. 용의자로 몰린 지미의 아버지인 에릭(박완규 배우)은 〈붉은 낙엽〉의 서술자로서 내면의 심리가 드러나는 유일한 존재라는 점에서, 그는 이 극을 하나의 이야기로 갈음할 수 있는 저자의 위치를 갖는다. 아들 지미를 의심하는 그의 점진적인 심리 전개와 그것이 깨어지고 난 결말에 가까운 시점에서 만신창이가 된 그의 형태, 그리고 이 모든 걸 아우르는, 곧 가장 처음에 모든 비극을 ‘깨어져 나가는 균형’으로서의 알레고리로써 압축적으로 선취하는 그리고 그 연장선상에서 중간중간 삽입되는 그의 서술이라는 세 가지 존재 유형에서, 그의 인식론적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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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젤스 인 아메리카-파트 원: 밀레니엄이 다가온다〉: ‘과도기의 시대 정신’REVIEW/Theater 2021. 12. 26. 10:44
3막으로 구성되는 〈엔젤스 인 아메리카-파트 원: 밀레니엄이 다가온다〉(이하 〈엔젤스〉)는 밀레니엄을 앞둔 미국의 혼란스러운 배경을 동성애와 에이즈, 인종 등의 개념어가 떠다니는 가운데, 인물들의 심리 변화와 관계에 초점을 맞추어 다룬다. 180도로 회전하며 변신하는 무대 위에 숨 막히게 쏟아내는 배우들의 대사들로 휴식 시간을 포함한 4시간의 러닝타임이 그다지 길지 않게 느껴지는 이유다. 다른 말로는 1985년 미국 당시의 컨텍스트를 파악하거나 이해하기 쉽지 않다―사실상 그것을 포기하게 만드는데, 연출의 방향은 그것이 그다지 중요한 무엇으로 다가오지 않게 만든다(이는 번역극의 어떤 과제이기도 하다). 손바닥 뒤집히듯 교체되는 양면의 무대는 어느 한 인물도 주도권을 갖거나 그 바깥을 조망할 수 없이,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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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우스 피스〉, 메타 연극의 하나의 재현 방식REVIEW/Theater 2021. 12. 24. 10:56
〈마우스 피스〉는 글과 현재가 오가며 자연스럽게 시점이 전환되는, 서술과 연기가 중층되는 구조로 진행된다. 이는 리비가 데클란과의 만남과 그에 대한 묘사를 기초로 희곡을 완성해 나가는 극작가이기 때문인데, 이러한 글의 완결이 갖는 구조적 힘과 그것을 벗어나는 생명력을 갖춘 존재의 예외성은 극 후반에 이르러 극단적인 대립의 광경을 이루게 된다. 작가를 잠정적으로 그만둔 리비와 화가를 지망하는 데클란의 언덕의 만남을 시작으로, 데클란의 화가로서 길을 열어주고자 하는 것과 동시에 자신의 글쓰기 역시 다시 시작하는 리비에 의해 데클란은 글의 주인공으로 들어오게 된다. 현실은 글을 위한 글감이 되는 셈인데, 결국 희곡이 완성되고 극장에 오르게 된다. 데클란의 입장에서 보면 리비는 자신의 삶을 착취한 셈이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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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당모의, 〈터키행진곡〉: 존재들의 아우성REVIEW/Theater 2021. 12. 24. 10:56
바다와 나비 김기림 아무도 그에게 수심(水深)을 일러준 일이 없기에 흰나비는 도무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청(靑)무우 밭인가 해서 내려갔다가는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절어서 공주처럼 지쳐서 돌아온다. 삼월(三月)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아서 서글픈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승달이 시리다. -『바다와 나비』, 신문화연구소, 1946. 존재의 이행 문자-발화와 이미지-움직임이 어떤 하나의 세계에서 정합될 수 있다면, 아마도 〈터키행진곡〉은 그와 같이 연극과 무용이, 또는 무대와 배우/무용수가 하나의 평면으로 흘러가는 또는 하나의 평면에서 출현한다는 점에서, 공연의 본원적 차원을 보여준다. 역할과 역할 간의 분리를 구획할 수 없다는 점에서 ‘존재들 간의 교환’ 또는 하나의 역할로 고정할 수 없다는 점에서 ‘존재의 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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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푸름, 〈생산적 생산〉, ‘사라지는 매개물’REVIEW/Dance 2021. 12. 23. 14:00
〈생산적 생산〉은 크게 세 장으로 구분된다. 첫 번째로 사물의 움직임과 그에 조응하는 신체, 두 번째로 영상으로 갈음되는 신체와 두 단어 또는 구문의 절합과 신체, 세 번째로 사물의 동작을 잔상으로 처리하며 미시적인 자장만으로 움직이기로 구분할 수 있다(편의상 이를 각각 1-1, 1-2, 1-3으로 구분하려고 한다). 〈생산적 생산〉은 사물로부터 이양된 움직임, 사물을 재현하는 게 아닌 사물로 분류될 수 있는 어떤 미세한 움직임들로써 일반적인 안무가 구성하는 춤의 클리셰로부터 탈피하고자 한다. 무엇을 표현할 것이냐, 그로부터 어떻게 움직이느냐가가 아니라 어떻게 무엇을 표현하지 않을 것이냐, 그로부터 어떻게 움직일 수 있느냐로 초점이 옮겨온다. 곧 재현을 거스르는 움직임의 형상, 수용은 어떻게 가능할 것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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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마을〉, 급진적 우화REVIEW/Theater 2021. 12. 22. 18:21
〈어느 마을〉은 장애인을 위한 동시적인 언어적 번역의 전개에서 나아가 이를 서사의 내용으로 함입한다. 원형으로 배우와 관객이 함께 둘러앉은, 현위치는 “어느 마을”이다. 그 바깥의 외부인이 등장하며 이 마을에 질문을 던지기 시작하는데, 그 다른 마을은 수어를 쓰는 마을이다. 수어를 쓰는 수의사(홍선우 배우)는 이후 등장하는 그 마을의 심리치료사(박준빈 배우)가 수어만 쓰는 것에 반해 말도 같이 하는데, 이런 이중 언어의 전략은 이 연극이 좇는 어떤 이상적 가치의 형상을 띤다. 따라서 〈어느 마을〉은 연극의 언어적 보완 장치로서 스크린의 자막과 배우 옆에 붙는 수어 통역사가 은폐되기보다 적극적으로 가시화되듯 수의사의 모습은 그런 연극의 주의(主義)를 메타적으로 지시한다. 곧 연극의 전략은 연극의 이념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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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기존의 인형들》: 인형의 바깥, 바깥의 인형REVIEW/Theater 2021. 12. 22. 01:49
《기존의 인형들》은 이지형 작가가 인형을 만들고, 본인은 연출을 포기한 채 연출을 바깥으로 아웃소싱하는 형태의 기획이다. ‘기존의’ 인형들은 그래서 주어진 인형의 어떤 가능성들을 이야기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공연이 오른 순서대로 김보라, 여신동, 이경성에게 이지형은 각각 “관절”, “감탄사”, “언어”라는 키워드를 던져주었다. 이러한 키워드들은 인형을 제시하는 것 외에 연출의 자율적 지위를 완전히 수여하는 규칙에 의해 작품의 주제와 직접 연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이러한 키워드들에서 각각 안무, 무대디자인, 연극을 하는 이들과의 희미한 연관 관계를 살펴볼 수 있다. 《기존의 인형들》은 사실 2018년 신촌극장에서 처음 열렸고, 인형을 주고 연출이 작품화하는 개념을 이번에도 고스란히 연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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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두, 〈구두점의 나라에서〉: 음악의 응전으로서, 그리고 솔기로서 움직임REVIEW/Dance 2021. 12. 15. 00:12
정영두 안무가의 〈구두점의 나라에서〉는 타격감 있는 피아노 연주를 움직임으로 고스란히 연장한다. 음악과 움직임의 상응이 무대를 구성한다. 음악의 밀도를 움직임의 밀도가 지탱한다. 이러한 밀도는 무대를 지탱하기보다 그 자체로 음악을 상대한다. 그리고 관객은 이 밀도들을 버텨내야 한다. 이러한 짜임에는 동명의 그림책 『구두점의 나라에서』(시: 크리스티안 모르겐슈테른, 그림: 라트나 라마나탄)의 서사적 짜임이 전제되고 있을 것이다. 반면 공연만으로는 그 서사를 포착하거나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사실상 책의 짜임은 무대의 짜임 너머를 위해 소환할 필요가 있어 보이지 않는다. 연주의 여닫음으로써 장이 구분되는데, 각 장의 길이는 짧고 휘몰아치듯 전개된다. 여기서 무용수들의 움직임은 그 자체를 쉼 없이 ‘곧이곧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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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이즈미 메이로 〈사슬에 묶인 프로메테우스〉: 내용적 진실으로서 VRREVIEW/Visual arts 2021. 12. 2. 12:01
고이즈미 메이로의 〈사슬에 묶인 프로메테우스〉는 하나의 텍스트에 대응하는 두 번의 관람 방식을 취하는데, 한 번은 VR, 두 번째는 스크리닝이다. 이 매체의 전환이 실은 이 작품의 메시지라는 점에서, VR의 활용은 부차적인 것이면서 필연적인 것이 된다. 동시에 그 텍스트는 순전한 내용이 아니라 두 다른 세계와 연결하는 지표로 기능한다. AI 기계음의 목소리가 가상 공간에 대한 가장 분명한 부재를 지시하는 현존―가령 목소리는 인간의 현존을 어설프게 흉내 내는 기계의 목소리이다.―이라면, 스크리닝에서는 실제 루게릭병 환자의 말과 동기화된다. VR이 기술적 시현을 위해 신체를 ‘구속’한다면, VR 장치를 벗어버린 스크리닝의 시간은 이 지점이 예외적 존재가 발화하는 하나의 시간을 경험하고 있었음을 전한다. 곧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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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족출입금지》_〈닥쳐 자궁〉, 〈♡〉, 〈마지막 인형〉 리뷰REVIEW/Dance 2021. 12. 1. 01:15
안무가 시모지마 레이사의 〈닥쳐 자궁〉은 연극적 캐릭터성을 가진 세 퍼포머의 연기로부터 ‘흐릿한’ 현실적인 서사의 단초들을 제시한다. 휴전선 일부가 무대 중앙의 앞뒤로 자리하는 무대 배경으로부터 연장된 퍼포머의 움직임은 전쟁과 그 기억, 시련을 겪는 공동체의 형상 들을 직조한다―반면 그것은 어떤 정확한 시대 배경과 장소에 대한 정보로 수렴하지는 않는다. 말과 행위, 몸짓 등은 지독한 현실을 감내하는 실존의 양상에 어린 정동을 향한다. 가령 배효섭이 이경구를 뉘어 거꾸로 들고 시모지마 레이사의 허벅지를 밟고 휴전선 바깥으로 시선을 향할 때, 이는 타자를 짓밟는 방식일 뿐만 아니라 타자를 추어올리는 방식이기도 하다. 이 짧은 순간을 의도된 상징으로 볼 수 있기를 기대한 것일까. 그렇다면 이것이 어떻게 폭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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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미인, 〈내 일의 내일, 내일의 내 일〉: 예술가의 그늘을 비추다REVIEW/Theater 2021. 12. 1. 01:15
예술이 노동인가의 질문으로 시작한 〈내 일의 내일, 내일의 내 일〉은 인간의 유희에 대한 본능과 일상의 잉여 짓에 주목하며 예술의 범주를 일상으로 확장하려 한다. 곧 예술이 예술가 고유의 것이 아닌 인간 본연의 것임을 지시하는 것으로써 예술의 고립된 영역을 역설적으로 비판하며 예술가의 현실/법적 소외 또는 예술가의 예외상태에서 우리 모두 예술적 인간이라는 인식의 지점으로 도약한다. 여기서 보이지 않는 매개자로서 예술가들은 담론을 나르고 그것을 상호 간의 몸으로 분배하는 자리를 가져간다. 영화 〈모던타임즈〉를 인용하기도 했지만, 〈내 일의 내일, 내일의 내 일〉은 톱니바퀴처럼 얽혀 들어가며 역할 간의 바통터치로서 분배, 말의 나눔과 움직임의 원환을 구성하는 놀이를 규격화해 수행한다. 마치 노동을 하듯 이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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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병준, 〈유령극단 “심각한 밤을 보내리”〉: 결집과 누락이 공진하는 밤REVIEW/Performance 2021. 12. 1. 00:59
유령극단의 〈심각한 밤을 보내리〉는 단순하게는 남산골한옥마을을 산책하며 헤드폰상의 목소리들과 로봇들의 움직임과 마주치는 공연이다. 한옥 다섯 채의 각 장소에 따라 사운드가 다르게 재생된다. 이 말들은 어떤 내용의 구체성을 가지며 서사의 형태를 갖추기보다 밤에 대한 어떤 정동의 제스처이며, 관계를 위한 구애이자 밤에 대한 감응, 영원에 시간의 동기화에 대한 주문이다. 밤이 이 공연을 평등하게 둘러싸고 있듯 헤드폰이 귀에 눌러앉고 목소리가 가리키는 시간과 화자와 최종적으로 수신자의 불분명성, 그리고 달의 메타포를 갖는 빛나는 구체를 손에 포개고 사람들과 비좁은 길목에서 스쳐 지나가는 모든 압력은 비가시적 환경에의 매체의 협응이라는 제안이 전제된다. 공기처럼 귀를 감싸고 있는 건 사운드이다. 반면 이것이 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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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텐 스팽베르크 〈휨닝엔〉: 공동체의 이념에 대한 몇 가지 질문들REVIEW/Dance 2021. 11. 15. 13:09
〈휨닝엔〉은 마텐 스팽베르크의 춤에 관한 철학은 어떤 형태로 드러나는가에 대한 질문을 안고 있었다. 어떤 스타일이나 문법, 훈련된 신체, 나아가 안무로부터 벗어난 무엇은 어떤 춤일까. 〈휨닝엔〉은 매우 더디게 진행된다. 시간은 멈춰 있는 듯 진행된다. 단체(박상미, 박진영, 박한희, 서영란, 이경후, 이민진, 정다슬)로 정면을 응시하는, 그것이 관객을 향한 것도 어떤 사물을 향한 것도 아닌 그런 멍하면서도 흐릿하지는 않은 시선이 그 시작이다. 공연의 시간이 황혼을 상정한다면, 그 눈은 붉게 타오르는 모닥불을 보는 시선에 가깝다. 곧 관객과 퍼포머 사이에는 어떤 경계가 있다. 그 경계는 이 시간으로 휩쓸려 가는 주술의 발현을 기원하는 거리이다. 시간이 무화되는 공간. 찰랑대는 투명 원환 오브제들이 달린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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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희수, 〈코어〉: 전시를 분절하는 퍼포먼스의 언어, 퍼포먼스 바깥의 전시REVIEW/Performance 2021. 11. 15. 13:09
〈코어〉의 퍼포먼스는 기본적으로는 기존 전시에 세 몸이 얹히는 방식이다. 그렇다면 ‘몸은 순전히 전시를 강화하거나 연장하며 보족하는 매체인가.’, 아니면 ‘몸은 전시와 불화하면서 자신의 지위를 주장하는가.’ 이렇게 질문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코어〉는 이 둘을 미묘하게 벗어난다. 이 글은 주로 전시와 별개로 퍼포먼스에서 몸이 어떻게 작동하며 전시를 재구성하는지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결론적으로 전시와 퍼포먼스는 완전히 다르며, 그 전해지는 감각 역시 다르다. 그럼에도 몸은 전시와 다른 무엇을, 전시의 바깥을 보여준다기보다 전시로 수렴하는 방식을 선택하고 있다. 반면 사운드가 주가 되는 전시에서의 청각적 감각을 강화하기보다는 시각적인 차원에서 이를 저어한다는 점은 불화를 만드는 것이라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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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민하, 〈Self-Salutation ver.3〉: 매(개)체로서 카메라의 도입이 갖는 효과REVIEW/Performance 2021. 11. 15. 13:05
고프로 카메라를 손에 든 두 퍼포머가 이를 자기 신체를 비추는 매체로 대부분 활용하고, 그러한 반영을 서로 간의 교환으로 확장하면서 진행되는 퍼포먼스 〈Self-Salutation ver.3〉는, 미디어아트와 퍼포먼스를 접목시키고, 몸의 미디어로의 동시간적 확장을 꾀한 작업으로, 비교적 단순한 매체 간 융합의 형태를 띠는 한편, 그 전제와 시작점을 몸에 두고 있다. 매체의 도입이 갖는 효과를 산출하는 것은 카메라가 자기를 찍고 있음을 인지하는 것이 몸을 어떻게 바꾸는가 또는 구성하는가를 염두에 두고 작업을 바라보는 것에서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관점에서 퍼포머 간의 차이를 보는 것 도움이 될 것이다. 두 퍼포머의 양상은 사뭇 다른데, 김보민이 주로 카메라로부터 조금 더 자유롭다고 볼 수 있을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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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서영, 《눈부신 미래》: 눈에 대한 보고서REVIEW/Visual arts 2021. 11. 15. 13:04
제목 “눈부신 미래”는 즉자적으로 ‘눈’이 부신 ‘미래’로 분쇄된다. 〈백내장〉(2021. 싱글 채널 비디오, 6분 17초.)의 한 구절을 가리키는 이러한 알레고리는 미래로 수렴하지 않고 눈이라는 매체로 다시 회귀한다. 구와 돔은 눈의 수정체와 도상학적으로 닮았으며, 리서치 슬라이드에 의해 그 유사성의 형태들에 대한 몽타주가 이뤄지는 가운데, 그 옆 〈구, 돔, 파이프〉에서 언어적 결합을 이루는 것으로 연결된다. 한 면으로 펼쳐지는 병풍형 구조의 책인 〈구, 돔, 파이프〉에서의 “빛나는 구체가 비추는/미래 도시/를 이루는 구, 돔, 파이프”(p.1-3.)에서 “머리에 구를 뒤집어쓴 사람들”(p.10.)의 “안구/를 덮는 콘택트 렌즈.”(p.12-13.)로 이어지는 일련의 문장/과정/서사는 ‘구’라는 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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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각반응, 〈슈미〉: 드라마적 완성도와 동시대적 질문의 낙차REVIEW/Theater 2021. 11. 15. 12:43
〈슈미〉는 원작 ‘헤다 가블러’를 각색해 재창작한 작업이다. 원작의 주인공이 제목과 동명이었던 것처럼, 〈슈미〉에서 주인공은 헤다 가블러를 치환한 슈미가 된다. 〈슈미〉는 흡입력 있는 대사와 움직임을 갖춘 탄탄한 드라마로 관객을 몰아세운다, 슈미가 다른 인물들에게 그러한 것처럼. 일종의 가스 라이팅으로 볼 수 있을 타인의 심리와 행동을 자의대로 조종하는 슈미의 행동은, 소위 ‘피씨함’의 범위를 많이 벗어나 있으며, 고전이 갖는 인간의 “광기”나 “불안” 같은 심리의 근간을 떠받드는 것만으로는 동시대의 언어로는 과도할 것이다. (아님 이를 포섭하기 위한 또 다른 언어를 개발해야 할 것인가.) 이러한 슈미와 엮이는 인물들 간의 관계는 어떤 군더더기가 없다. 적어도 누군가를 조종하고 조종받는다는 인식을 갖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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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혜진, 〈흐르는.〉: 언어와 몸을 재접재시키기REVIEW/Dance 2021. 11. 8. 18:05
〈흐르는.〉은 소극장 규모의 신촌문화발전소 극장을 기존의 무대와 객석의 낙차를 그대로 수용하면서 관객석을 둥근 울타리 안에 배치한다. 결과적으로 극장 안의 비선형적인 분포는 극장을 해체하며 재편하는데, 장혜진 안무가는 그 안을 배회하며 퍼포머가 관객과 접면하는 경계를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중앙 천장에 달려 내려온 마이크는 퍼포머에서 역동적으로 반대편 객석으로 허공을 가로지른다. 객석 중간, 벽에 붙인 의자에 앉아 있던 장혜진은 한 손을 얼굴 가로 올린 뒤 움직임을 연다. 전체적으로 노이즈 사운드가 군데군데 묻어 나오며 의식을 지배하는데, 이러한 사운드 역시 같이 시작된다. 장혜진의 움직임은 중심을 신체 전체로 퍼뜨리고 미세하게 옮기며 소위 흐늘거리고 바들거리는 신체 양상을 만든다. 이러한 신체의 움직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