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e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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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헤이 나와(Kohei Nawa)×다미엥 잘레(Damien Jalet), 〈플래닛[방랑자](Planet[Wanderer])〉: 미래라는 은밀한 기원REVIEW/Dance 2026. 7. 8. 13:56
어떻게 공간에서 움직임이 출발한 것인가 〈플래닛[방랑자]〉(2021, 이하 〈플래닛〉)은 조각가 코헤이 나와와 안무가 다미엥 잘레의 협업으로 이뤄진 공연으로, 그들의 두 번째 협업의 산물이다. 〈플래닛〉은 나와의 공간 위의 결정체로서 조각을 유동하는 생명체들의 움직임으로 바꾸는 잘레의 공연인바, 이 멈춰짐의 전제 조건을 신체가 어떻게 수용할 것인지, 그리고 연장할지가 관건이다. 이때 신체에 가해지는 제약이 표현의 자율성과 표현의 변주 폭을 줄이거나 소거하는 방식이라고 비판하는 건 이 작품을 통상적인 무대 공연으로 환원시키는 협소한 비판의 한계에 갇힌다. 아마도 신체의 제약과 신체의 생명력을 가장 극적이면서도 명석하게 그린 장면인, 무대에 난 구멍들 위의 점성을 띤 하얀 액체를 앞뒤로 오가는 편재하는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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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에이티브 윤슬, 〈왝왝이가 그곳에 있었다〉(이로아 원작, 장윤하 각색/연출): 기억의 지지체로서 공동체REVIEW/Theater 2026. 7. 8. 13:56
비언어적 존재 〈왝왝이가 그곳에 있었다〉(이하 〈왝왝이〉)는 동명의 소설을 연극으로 각색한 작업으로, 사회적 참사의 여파, 참사 관련 당사자성을 지닌 생존자와 유가족이 겪는 트라우마와 애도 불가능성, 그리고 사건의 부정성과 봉합을 강조하는 사회적 분위기 아래, 정치적 존재로 변모해 가는 당사자들의 양상을 그린다는 점에서, 세월호 참사 이후를 환기시킨다. 지하차도 침수 참사에서 살아남은 연서는 추모제 준비단 활동을 반강제적으로 그만두게 되면서 학교 바깥을 배회하게 되고, 평소 돌보던 길고양이 옥이를 찾다가 하수구 아래 왝왝이란 존재와 만나게 된다. 강력한 트라우마적 기억에 시달렸을 연서가 공동의 추모를 위한 활동으로 나아갈 때 그는 성숙한 주체로 나아가며 중압적 기억으로부터도 해방될 근거를 얻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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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숙제 이애주류 주연희 춤, 《의례》: 근본적 몸짓의 시간으로 돌아가다REVIEW/Dance 2026. 7. 8. 13:55
주연희, 〈태평춤본〉 〈태평춤본〉은 긴장감 속 결연함으로부터 출발한다. 음악이 요란해지며 앞발을 힘차게 차 내밀 때까지 걷고 어슬렁거리고 재고 땅을 밟고 점하며, 공간을 만지고 다듬는 공간(에)의 육화가 있다. 이는 익딘 유인상의 장구와 완만하게 거리를 잴 때 그리하여 춤과의 거리를 잴 때 놓이는 춤이며, 장구의 채편이 거세지고 잦아질 때 몸은 땅을 딛은 채 몰입되고 장구를 타며 분절되기 시작한다. 곧 공간 ‘위’에서 몸짓들이 쪼개진다. 하나의 중심이 공간에 박힌다. 몸에 생기를 돋우는 요란함은 몸을 이완시키고 재간을 수용한다. 덜그럭거리는 장구와 단속적 징(박주홍)의 잦아짐에 따라 몸은 활주한다. 곧 잦아들고 징이 주조음 격으로 장구보다 좀 더 무게가 실린다. 곧 장구가 무심하게 흐른다면 징은 배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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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건형, 〈한국인을 관두는 법〉에 대한 주석: 냉소라는 형식REVIEW/Visual arts 2026. 7. 8. 13:55
안건형 감독의 〈한국인을 관두는 법〉(2018/2024. 2채널 비디오, 흑백, 사운드. 66분 24초. 오리지널 버전 제10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커미션.)은 각각 이미지와 내레이션(좌측 스크린), 인용 문구와 사진(우측 스크린)으로 병치되는 2개의 스크린을 통해 “한국인”의 특정한 역사 문화적 DNA를 추상, 조감해 낸다. 기회주의자 한국인에 대한 강령 속에서 구분/분별의 방식을 통한 한국인 안의 경계를 내는 과정은 특정 한국인에 대한 범주와 그 바깥의 범주를 반드시 전제하므로, “한국인을 관두는 법”은 한국인임을 전적으로 포기하기보다 (기존의 것을 새롭게 범주화하고 바로 그것을) 선택함을 의미한다. 이러한 선택의 주술은 한결같이 반어적인 데다 메스꺼움을 유래하도록 전면화되어 있고, 따라서 비가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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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속하는 몸: 아시아 여성 미술가들 Connecting Bodies: Asia Women Artists》에 대한 메모: 통합과 신화화의 기제로서 고착되는 여성이라는 형상REVIEW/Visual arts 2026. 7. 8. 13:55
《접속하는 몸‒아시아 여성 미술가들》(이하, 《접속하는 몸》)은 타자의 형상으로서 여성과 아시아를 하나의 범주로 구성하는 거대한 기획을 전면에 내세우는데, 이는 이 두 범주를 담론적 차원에서 혹은 미술사적 차원에서 새롭게 갱신하기 위함이라기보다는 괄호 치기의 방식, 곧 포함과 확장의 차원을 꾀하기 위함으로 보인다. 곧 아시아와 여성, 그로부터의 미술에 대한 차원은 각기 다른 범주에서 출발하는 하나의 교집합이 아니라, 처음부터 유기적인 하나의 형상으로 꾀어 있는 듯 보인다. 아시아의 여성의 미술가‘들’로 매끈하게 수렴하는 이 도식은 결국 다시 서구의 남성 미술(가들)이라는 도식의 변증법적 기술이 전제되었음을 가정한다. 곧 (제대로) 쓰이지 않은 역사를 쓰는 건 ‘다시’인가, 아님 ‘새롭게’인가? 이는 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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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페르튜토 스튜디오, 〈다페르튜토 문래(이런 꿈을 꾸었다)〉: 몰입적 지각, 그리고 바깥의 바깥REVIEW/Performance 2026. 7. 8. 13:55
물질의 꿈 〈다페르튜토 문래(이런 꿈을 꾸었다)〉(이하 〈다페르튜토 문래〉)는 철공소들이 밀집한 문래동이라는 장소적 근거로부터 “문래의 철”이라고 하는 공연의 오브제들을 끌고 오는데, 이는 “특정한 목적 없이” 만들어졌다고 지칭된다. 주물 혼 스피커와 같이 애초에 소리 확성의 매체로서 작용할 것이라면, 금속 파이프나 곡선 파이프는 전체를 이루는 최소 단위로서 불특정한 용도로서 무한의 가능성을 갖는다. 이 후자의 차원에서 그것은 일정한 단위로 결정된 것이지만, 최종 사용의 이미지는 열려 있으며, 이 지점에서 그것이 갖는 잠재성은 일원화된 형태로의 환원, 또는 그러한 형태가 소급되는 지점이 부재하다는 지점에서 ‘특정한 목적’이 없다. 이를 적극은 생명의 메타포로서 연장하는데, 이후 인간이 DNA로서 환치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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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감독 김화숙, 안무 최상철, 미디어아트 황선정, 남영동 대공분실 이머시브 퍼포먼스 〈민주주의에 말을 걸다〉: 과거와 현재의 민주주의의 두 주체를 교차시키기REVIEW/Performance 2026. 7. 8. 13:55
〈민주주의에 말을 걸다〉는 치안본부 대공분실(‘남영동 대공분실’)을 전신으로 한 민주화운동기념관의 개관과 함께, 건물 곳곳을 돌아다니며 공연을 관람하는 이머시브 immersive 형식을 차용한다. 분실동 마당에서 시작해, 민주광장 일대로 나가는 결론부의 사이에는 건물 내부의 다섯 공간을 4개의 그룹으로 나뉘어 다른 시간의 경로 안에서 방문하게 되는데, 은밀하게 자행되던 수많은 고문이 자행되던 건물이라는 총체적 개념 아래, 제각각의 장소들은 목적성을 지닌 이동의 양태, 곧 최소한의 이동 경로만을 통해 도달하게 되는 가운데, 촘촘하고도 미로처럼 박혀 있는 방들, 수직축의 좁은 폭의 나선형 계단과 같이 건물의 구조를 일부 들여다볼 수 있게 된다. 1970년대 유신 체제 속에서 만들어진, ‘조작간첩’의 무고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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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트타임스위트, 〈초 다음 초〉에 대한 주석: 민중미술의/이라는 흔적REVIEW/Visual arts 2026. 7. 8. 13:55
파트타임스위트, 〈초 다음 초〉(2017. 단채널 HD 비디오, 컬러, 사운드. 25분 14초. 서울시립미술관 커미션.)는 민중미술이 동시대에서 어떤 형상으로 논의될 수 있는지, 혹은 어떤 매체로써 반복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영상에서 등장하는 어린아이들은 전반적으로 광장을 가고 노동가요인 ‘동지가’를 부르고 사물놀이를 하며 1980년대 민주화운동의 형식을 전유한다. 이들로부터 나오는 것으로 보이는 시선은 아래로 떨어지거나 어지럽고 불안정하다. 이들의 정처없음을 강조하는 촬영은 정처 없는 이들의 행위에 대한 반향으로 생각된다. 곧 물리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초과되는 기술은 이들을 바라보기보다 촉각적으로 미치면서 온전히 장악, 파악할 수 없는 무력함의 가능성으로 일부러 자리하고, 그러한 혼란스러움이 거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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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포사이스, 〈하나의 편평한 것, 복제된(One Flat Thing, reproduced)〉에 대한 주석: 안무를 시차적인 것 안에서 재현한다는 것REVIEW/Dance 2026. 7. 8. 13:55
대위법적 안무로 유명한, 윌리엄 포사이스의 20여 년 전의 작업 〈하나의 편평한 것, 복제된〉(이하 〈하나의 편평한 것〉)을 다시 소환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아무래도 이는 김성용 단장의 현재 작품에 초점을 맞추기 위한 사전 포석이자 광고적 셈법이 전제한다는 느낌을 피하기 어려워 보이는데, 더군다나 이 작업의 구조적 차원의 기술이 명료하고 적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는 인상은, 그것의 역사화가 성립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역사화가 현재화로 인해 지연된다는 인상에 가까운 것이다. 이 작품의 결정적인 건 철제 구조물과 무용수 간의 대위법적 구도에 있을 것인데, 이는 그 사물이 하나의 신체로서, 신체의 연장으로서, 또한 신체의 지지체로서 기능한다는 것을, 곧 그 사물이 결코 배경에 그치지 않고 진정 주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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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춤회 무아, 《무의 길, 이매방에서 이어지다》: 시각적 구조화로서 안무REVIEW/Dance 2026. 7. 8. 13:55
전통춤회 무아의 《무의 길, 이매방에서 이어지다》는 안정되고 정적인 움직임들은 하나의 이미지적 가시성으로 확장됨을 살펴볼 수 있었는데, 이는 이미지적 구상과 설계의 토대 아래 정돈된 움직임들의 화려한 세부적 기술이 운용됨을 의미한다. 악단이 무대 앞쪽에 등장해 뒤돌아 앉는 것으로 시작되는 극장의 첫 설계는 악단이 관객의 시선을 체현함을 의미한다. 그 시선을 따라 무대는 광활하게 펼쳐진다―포스트극장에서 오르는 대부분의 공연에서, 악단은 하수에 위치해서 그들이 무용수를 바라보고 있고 그에 맞추어 가며 연주를 한다는 것이 가시화된다. 이 더욱 ‘가까워진’ 무대에서 한눈에 펼쳐진 장면으로 무용수들의 움직임이 들어온다. 이윤혜, 김정경, 김주연, 최지은, 〈장고춤〉 이윤혜, 김정경, 김주연, 최지은의 〈장고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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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조, 《산보다 큰 것을 아무리 태워도》: 공간을 지시하는 회화REVIEW/Visual arts 2026. 7. 8. 13:53
장소에 대한 대응으로서 회화 《산보다 큰 것을 아무리 태워도》(이하 《산보다 큰 것》)는 회화와 설치를 아우르는 전시인데, 이때 회화는 설치라는 외부로의 표현 자체를 내재적으로 함축하는 것들이다. 이때 깨어지는 건 회화 자체의 시간과 표현 양식이 철저히 자족적이라는 환영인데, 문 조의 회화들은 대부분 장소를 인계하여, 그 장소에 놓일 바를 예상해서 그려졌기 때문이다. 이는 그 장소에 부속되는 기능적인 차원, 그리고 인덱스적 차원에서 장소를 매개함을 의미하는데, 그것은 장소와의 비교를 통해 일정 정도 재현적이며, 또 실재에서 열화된 차원을 의도하게 됨을 알 수 있다. 곧 그것은 회화를 뭔가 더 단순하고 그 자체의 표현에 머물지 않게 하기 위한 전략적 차원이 기인하는 지점이며, 한편으로 외부로 나아가게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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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대와 간(남우찬·이유·최인엽), 〈테테테테테테테잎〉: 인간 너머에서 되돌아오는 대상REVIEW/Theater 2026. 7. 8. 13:52
삽입된 기억 〈테테테테테테테잎〉에서 테이프는 기억의 보존과 재생 장치로서 상정되는데, 이는 중반 이후에 사용된, 1951년 세계 최초 시연을 보인 후 1990년대 전성기를 거쳐 2000년대 사라진 비디오테이프라는 특정 기록 매체의 성질에 기억이 조응됨을 의미한다. 비문법적으로 늘어뜨린 제목은 테이프에 대한 말더듬이의 어법을 경유해, 늘어난 테이프의 속성과 그로 인해 화면 역시 늘어나고 끊기는 물리적 매체의 소진, 열화 현상을 기입한다. 기억은 어떤 순간에 명확하지 않은 것으로 변용되거나 소거된다고 보이는데, 비디오는 그것을 물리적 이미지로서 재생한다. 일종의 뇌 재세팅 용도로 전유되는 미용실에 한 남자―김의태―가 손님으로 찾아오고, 할아버지와의 언쟁에서 교통사고로 이어지는 불쾌한 경험을 처리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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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컴퍼니, 〈Next Move〉: 사물의 도입, 그리고 춤으로의 연장REVIEW/Dance 2026. 7. 8. 13:52
김민주, 〈숨(삶-사람-사랑)〉: 세계를 포집하는 숨, 그리고 행위 〈숨(삶-사람-사랑)〉은 꿈속의 집을 찾아가는 상상적이고도 비의식적인 차원의 여정을 보여주는 것과 같은데, 이는 너른 벌판-조각 이불보를 지나 종래 이르는 미니어처 모형 집을 손에 넣는 것으로 이어진다. 처음 이 패치워크된 천은 개어져 있으며, 상수 쪽 그 끝단에는 굴뚝이 달린 모형 집이 있다. 그리고 눕고 허우적대는 여자(김민주)가 있다. 혼란스러운 노이즈에 정위되지 않은 몸짓들을 틈 타 일종의 프로젝션-조명이 크게 이 터를 실루엣으로서 덮는다. 그것은 하나의 전체적인 덩어리로서 틀이자 윤곽이며 단속적으로 그 전체가 다른 전체로 전도된다. 그러니까 이미지가 아니라, 바닥과 맞물리는 네모난 틀의 바뀜이 공간을 주조한다. 이는 무용에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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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훈, 《손과 얼룩》: 시간의 잠재적 계열로서 회화’들’REVIEW/Visual arts 2026. 7. 8. 13:52
“손과 얼룩”은 그야말로 회화 작가가 작업을 만드는 과정에서의 그 둘의 직접적인 연관성을 드러낸다. 이는 작품의 특질이 아닌,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의 필연적인 사전 절차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그와 같이 전시의 제목이 작품으로서 어떤 (특별한/예외적) 의미를 내포하지 않는다는 사실, 얼룩이 곧 그림은 아니라는 사실로부터 이 전시는 어떻게 그 평범한 진실을 마주하는가, 또는 그 평범함이 어떻게 새로운 언어가 될 수 있는가의 질문으로부터 전시를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손과 얼룩》은 우선 그리고 아마도 결정적으로 그림들의 물리적 집산 그 자체로 드러난다. 전시장 자체가 분별할 수 없는 차원에서 하나의 얼룩이라는 사실은, 기존 전시에 대한 냉소적 회의를 동반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곧 전시와 작업의 불가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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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윤택, 《액체 순간 Memorandus momentum》에 대한 메모: 시간의 매듭으로서 눈-구멍REVIEW/Visual arts 2026. 7. 8. 13:52
사윤택 작가의 《액체 순간》은 시간성을 담지해 내는 회화의 여러 양태들을 보여준다. 곧 전시명은 시간이 맺히는 하나의 이미지로서, 유동적(=“액체”) 시간과 시간성을 지향하는 이미지―“순간”―에 대한 물리적 귀결로 보인다. 이는 너른 차원에서는, 20세기 이후의 인간과 세계에 대한 패러다임의 전환과 맞물려 있는 듯 보이는데, 시간의 지속을 담아내고자 했던 20세기 이후의 회화의 영점을 상기시키는 이미지의 즉물적 표현―자코모 발라의 ―에서부터 선형적인 시간 구조를 해체하고 기억과 시간의 관계를 고찰하는 철학적 의식―베르그송―, 역동적이고 유동적인 시간의 형상이라는 양자역학의 관점을 들 수 있다. 결과적으로, 《액체 순간》은 존재의 엉킴 또는 중첩된 시간에 대한 관점을 지시함으로써 시간에 대한 철학과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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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회 서울국제즉흥춤축제] 《100분 Relay 즉흥 공연》: ‘곁’으로서 춤추기REVIEW/Dance 2026. 7. 7. 15:05
26회를 맞은 서울국제즉흥춤축제는 대개 라이브 연주와 안무가-퍼포머와의 협업에 기초해 진행되는데, 이는 움직임에 선행하는 음악이 또한 움직임 이후에 출현하는 것이 됨을 의미한다. 그리고 연주자는 움직임을 보조하지만 어느 정도 움직임을 시험한다는 인상 역시 주는데, 연주자는 보통 퍼포머를 지켜보는 시선과 함께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퍼포머를 객관화하고 동시에 조정하는 건 연주자다. 그런데 동시에 연주자의 자율성으로부터 일정한 포맷이 아니라 비예측적이고 반구조적인 즉흥이 일어나는 것으로 보인다. 곧 연주의 단락화는 퍼포머의 세계 자체를 자족적인 것으로 두기보다 그를 하나의 시험의 장에 둔다. 연주는 계속 변경된다. 이때 그 흐름 자체는 유기성의 차원보다 중요하며, 그것을 대체하게 되는데, 이는 대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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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다페 초이스] 윤나라 프로젝트, 〈껍데기〉: 트라우마 흔적의 외화된 형상REVIEW/Dance 2026. 7. 7. 15:04
〈껍데기〉는 군무 안에서 예외적인 일자의 위치를 대비, 분별하는데, 후자는 곧 인형극적 수행으로서 나타난다. 그리고 이는 ‘껍데기’에 대한 물질적 증거물이다. 그런데 이 인형극의 수행 질서에 따라 그 의미는 모호해지는데, 곧 마네킹 얼굴과 그에 붙어 있는 회색 상의와 그 뒤에서 그것을 조종하는 존재는 누가 누구에 대해 껍데기인 것인가. 이 인형 조종자는 대개 어둠 속에서 인형을 일자로 분화시키지만, 밝음 속에서 자신을 드러내며 일종의 2인무를 성사시킨다. 처음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리며, 영어 문장들을 발화하는데, 이는 공통적으로 바깥에서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는지의 여부를 가늠하는 차원에서 이뤄진다. ‘나’에 대한 실존 차원에서의 인식―“Can you hear me?”―과 존재 차원에서의 인식―“Do 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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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주, 〈고 故 The Late〉: 떠도는/유리된 신체로부터 죽음을 분별하기REVIEW/Visual arts 2026. 7. 7. 15:02
배치: 절단된 동시성 임영주의 〈고 故 The Late〉(2023-2025. 비디오, 사운드, 물체, 퍼포먼스, 웹사이트, 책, 60분.)는 12채널 영상으로 이뤄진 작업으로, 공간 전체는 영상에 맞춘 시각을 기준으로 크게 3면의 배치로써 재조정되며 부분적으로 적용되는 어포던스, 곧 일정한 자리 잡음에 대한 모순과 비틀림을 초래한다―아마도 이러한 물리적 차원의 배치를 제외하고 순수 형식으로 전시를 환원한다면, 고정된 스크리닝의 핵심적 차원만을 추출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그것은 혼동으로서 이 전시의 포맷 자체를 애써 무시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곧 관객은 영상들의 동시성의 산출 아래, 시간과 이미지 들의 비선형적 전개를 물리적으로 그리고 시간적으로 해제해야 함의 곤궁을 초래한다―하지만 결국 전시는 그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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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옥 예술감독, 《정민류 교방춤》: ‘정’중동의 미학REVIEW/Dance 2026. 7. 7. 14:38
《정민류 교방춤》의 일곱 개의 춤은 정중동의 미학에서도 ‘정’에 방점을 찍고 있다고 보였는데, 이는 동으로 가기까지 정이 움직임의 요체를, 근거를, 기본을 안고 있음을 나타낸다. 또한 이는 동으로부터 정이 신중함을, 단단함을, 동요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악사의 연주가 동의 기운을 안고 있다면, 춤은 정을 잡고 좀처럼 흔들리지 않고 그것을 더디게 풀어낸다는 인상을 준다. 아마도 이것이 동으로서 가장 확장된 춤은, 또는 기꺼이 혹은 쉬이 자신을 내어주는 게 부채춤, 〈화선무〉였다. 결국, ‘정’은 내부의 중심으로 놓을 수 있을 것이다. 이 내재적 중심은 손에 든, 손안에 있는 어떤 대상과의 관계에서 발현된다. 곧 그것이 부채이든, 수건이든, 칼이든, 장구에 맞닿는 채든 간에 그것은 신체의 중심, 나아가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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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지원, 〈잔향:나무의 노래〉: 의식으로서 장소, 그리고 수행REVIEW/Music 2026. 7. 7. 14:14
〈잔향:나무의 노래〉는 무대 중앙에 턱 하고 놓인 거대한 뒤집힌 나무를 중심으로, 구석과 가장자리에서 자리하며 나무를 주체로 한 여러 의식 음악의 갈래를 선보인다. 다분히 수행적으로, 이는 형식적인 차원을 흡수한다. 심미적 형태는 수행적 시간에 녹아든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수행은 ‘의식’ 음악의 본질, 그것이 향하는 목적에 부합한다. 나무는 뒤집혀 자리해 인간의 신체 유비를 연장하며, 신성한 존재로서 특별한 의식적 대상이 된다. 나무는 마을 입구의 당산나무와 같이 종교적 대상으로 삶의 입구를 상징하기도 하는데, 그 옆으로 쳐진 투명 갈래 막들은 한지로 친 막들을 대체하고, 이 막들과 허공에 프로젝션 영상이 투사된다. 이는 단순한 배경 이미지라기보다 비가시적 생명체들이나 굿에 쓰이는 무구의 확장 오브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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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BIN Company, 〈귀신날〉(김주빈 안무): 인간과 귀신을 또는 전통을 매개하기REVIEW/Dance 2026. 7. 6. 14:27
초재적인 목소리의 권능 〈귀신날〉은 귀신의 비가시적 존재를 상정하기 위해 마이크로 증폭된 목소리를 사용하는데, 처음과 끝 모두 그러하듯 이때 화자의 신체는 비가시화된다. 이는 크게는 또 주요하게는 장소 너머에서 출현하는, 특정 장소에 결착되지 않는, 그곳에 근거를 두지 않는 유령적 신체성을 가정하기 위함이다. 여기에는 예측 불가능한 차원을 향해, 공간의 더 많은 곳에서 편재하는 것, 변칙적으로 출현하는 것과 같이 가시성을 일부 유예하는 방식 역시 포함하는데, 그 외에도 신체를 부풀리거나 또 다른 신체를 도입하는 것으로써도 시도되는데, 이는 모두 장소를 수직으로 확장하는 방식이 된다. 곧 처음 무대 뒤쪽 전면에 높게 솟아있는, 발이 어둠에 잠겨 희미하게 보이는 귀신의 지배적 이미지와 이내 공중을 일정한 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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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철인 & 이진형, 〈어떤 힘 (Invisible Forces)〉: 신비주의적인, 그리고 기술적인REVIEW/Dance 2026. 7. 6. 14:25
정철인과 이진형의 〈어떤 힘〉은 어떤 힘이 누군가의 세계에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가시화한다. 그의 바깥에서 순전히 미치는 영향력으로서 사운드는 그 세계가 예상치 못한 것으로 이 세계에 새롭게 접지되는 경계를 지정한다는 점에서, 그의 주변에서 덜그럭거리고 진동하며 움직이는 여러 사물의 움직임보다 한층 더 ‘어떤’ 알 수 없는 힘의 차원을 선취하고 또 전제한다. 이름이 정의되지 않는 홀로 사물들과 사투를 벌이는 남자(정민수 무용수)는 이 사태를 정의할 수도 구분할 수도 장악할 수도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도 쉽지 않다. 어떤 힘을 보여주기 위해 남자의 곤궁하고도 수동적인 양상이 강조됨으로써 〈어떤 힘〉은 일종의 소극적 양상이 된다. 남자는 그 어떤 힘에 붙잡히는 하나의 실험 대상이 됨으로써 그 반대의 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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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메이크랩, 핍진한 미래에 대한 거리 두기 혹은 틈새: 〈뉴 빌리지〉(2025)와 〈비미래를 위한 생태학〉(2023)을 중심에 두고REVIEW/Visual arts 2026. 7. 6. 14:15
언메이크랩의 영상들이 시작되는 장소는 모두 비어 있다. 그곳에 어떤 미래를 가설하기 위함이다. 〈뉴 빌리지〉(2025)에서 석양의 델타 위, 그리고 〈비미래를 위한 생태학〉(2023)에서의 불탄 산, 그리고 〈시시포스의 변수〉(2021)의 꼭대기가 그것으로, 이는 끊임없는 역설을 초래한다. 그것들은 일견 파국과 폐허에 대한 상상력과 연접해 있는 듯 보이는데, 〈시시포스의 변수〉에서 꼭대기에서 떨어지는 돌들은 〈비미래를 위한 생태학〉에서 온갖 비인간, 인간 존재들에게 무차별적으로 가해지는 ‘신적 폭력’으로, 〈뉴 빌리지〉에서 도시 자체의 떨어짐으로 변주된다. 그리고 다시 쌓아 올릴 수 있는 건 인간을 경유한 언어, 이미지 따위를 데이터셋으로 다시 뭉쳐 인공지능 학습을 통해 재산출하는 것이다. 〈뉴 빌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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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단, 〈태풍〉(2025. 원작 윌리엄 셰익스피어, 번역·재구성 마정화, 연출 박정희): 세상만사로부터 소거의 수행을 통해 영원한 안식에 이르기REVIEW/Theater 2026. 7. 6. 13:58
박정희 연출의 〈태풍〉은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를 재구성해 밀라노의 공작 프로스페로와 나폴리의 왕 알론조를 각각 프로스페라와 알론자라는 여성 캐릭터로 전환하는데, 일종의 젠더 프리 캐스팅의 일환은 극의 전제가 되는, 공작의 음모로 왕에서 내려와 섬에 유폐되었다는 전사에서 대비되는 권력의 정점의 두 인물을 여성으로 바꾼다. 이는 남성 가부장 중심의 사회의 제일 윗단을 변경했다는 점에서, 그 외의 배역에 대한 성별 전환에 대한 고민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방식이다. 중요한 건 이로써 주인공 프로스페라를 예수정 배우가 맡게 되었다는 것인데, 주도적인 여성이 주인공이면서 유명한 배우가 그것을 승계한다는 점에서, 전 작 〈헤다 가블러〉의 주인공을 배우 이혜영이 맡은 바를 떠올리게 한다. 프로스페라는 자신이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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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라, 〈안녕, 평안굿〉: 평안함, 여성들이 이룬 세계REVIEW/Music 2026. 7. 6. 13:34
〈안녕, 평안굿〉의 도입부는 “여성농악이 누렸던 부흥의 순간”을 기도한 것과 같이, 가장 열린 형태의 공간에서 현장을 구축하는데, 이는 극장 뒤편에서 하나둘 등장해서 관객을 연희자들이 에워싼 채 일종의 현존 차원의 입체 서라운드 환경을 조직한 후, 무대에 오르는 제법 긴 시간의〈어헛〉이다. 전자 사운드의 단속적 출현 아래, 무대로 온전히 소리 환경이 옮겨져 단단한 초점이 그로부터 응결되어 확장되는 〈열림의 굿, 다시 연결되는 우리〉의 시작까지 〈어헛〉의 고양된 순간은 매끈하고 밀도 있게 연장된다. 〈어헛〉은 또한 끊임없이 혼돈을 안겨주는 곡이기도 한데, “아~”를 길게 끄는 가운데 소리의 진폭이 내내 요동치며 하나의 주기를 이루는데, 이때 “헛”의 결단은 단호하지만 그만큼의 짧은 여운을 남긴다. 이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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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시랑, 《뒤의 달 Black Moon》: 심연적 실재를 거스르기 혹은 뒤돌아서기REVIEW/Visual arts 2026. 7. 5. 14:14
막 너머에서 금시랑의 《뒤의 달》에서 “뒤의 달”은 우주와 같은 검은 배경에서 유추 가능한 것으로 드러나는데, 그 ‘앞’에 놓이는 건 무지개와 같은 얇고 출렁이는 천막과 같은 것이며, 이때 현실은 본질을 잠시 가리고 있는 일시적인 이미지의 상연으로 보인다. 그 일종의 베일을 펀치로 뚫어 나타난 작은 구형의 구멍이 ‘검은 달’인 셈으로, 그것이 예외적으로 두 개의 작품에서 검지 않은 것으로 나타날 때, 비로소 현실은 제대로 흘러가고 있고, “뒤의 달”이 ‘검은 달(Black Moon)’임을, 곧 뒤집힌 현실의 이면을 보고 있었음이 분명해진다. 여기서 검은색은 그야말로 어둠으로서 곧 화면의 절대적인 무게를 차지하며, 상대적으로 혹은 거의 절대적으로 높은 채도의 베일은 산뜻하면서 가벼운 그리고 생동하는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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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디아스포라영화제] 폴 토마스 앤더슨 Paul Thomas ANDERSON,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혁명 너머가 아닌 혁명 이전의 시간으로REVIEW/Movie 2026. 7. 5. 14:13
혁명의 의식 없는 두 번째 삶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하나의 혁명이 실패하고 또 다른 혁명을 그려보는 것으로 나아가는, 곧 두 개의 단락된 혁명의 시기가 연결되는 구조를 취하는데, 그 중심에는 여성이 있고, 이는 어머니와 딸의 관계로 이뤄진다. 그리고 그사이에는 아버지가 있다. 첫 번째 혁명은 과격하고 급격하게 나타나고 또 사라진다. 먼저,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교량을 지나는 첫 번째 장면의 지배적 이미지는 그 첫 번째 여성, 레지스탕스 집단 프렌치 75의 퍼피디아로, 그의 내레이션으로 그는 혁명의 닫힘과 자신의 세계의 종식을 동시에 선고한다. 경찰에 붙잡혀 감옥행의 기로에서 동료를 밀고한 그는 쓸쓸하고 무력한 퇴장을 하며, ‘과거’ 역시 그러하다. 실제로 그는 살아있지만 정신이 죽었기 때문에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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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희윤, 이초록, 《핑킹가위 증후군》: 하나의 공간으로서 작품, 디자인 혹은 명명을 통한…REVIEW/Visual arts 2026. 7. 5. 14:13
《핑킹가위 증후군》은 세운상가의 상품을 적재하는 공간인 10의 n승을 활용해, 여러 오브제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적재함으로써 가장 긴 면이 3미터 남짓인 윈도우 공간을 잡동사니 사물들의 우주로 ‘나열’하며 ‘디자인’한다. 두 명의 작가로 양희윤과 이초록이 각각 글과 디자인으로 참여했는데, 그 둘의 역할은 꽤 모호하게도 혼재되고 또 혼동된다. 우선 《핑킹가위 증후군》은 하나의 윈도우 공간 전체가 하나의 작품이며, 수많은 사물 배치로 이뤄진 이 하나의 작품을 일일이 나열한 캡션을 일종의 하나의 글로 볼 수 있는데, 일종의 서문 역할을 하는 또 다른 글에서 양희윤은 우리, 곧 양희윤과 이초록에 포함되는 최초의 순간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는 이 전시 제목이 탄생하는 순간이기도 하며, 동시에 이 두 주체의 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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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정, 〈나는 여기에서 모든 것을 숨쉰다〉: 숨을 바라보는 법REVIEW/Dance 2026. 7. 5. 14:13
이윤정의 〈나는 여기에서 모든 것을 숨쉰다〉(이하 〈숨쉰다〉)는 제목이 가리키는 바와 같이, 숨의 가시화, 숨의 제어와 숨을 통한 신체 전반의 제어로써 숨의 언어를 보여준다. 여기서 숨은 숨을 다루는 테크닉 혹은 메소드인 동시에, 그것의 결과 자체이기도 하다. 지금 여기의 근거가 강조되는바, 그것을 채우는 건 숨으로 바뀌는 모든 것이다. 이 문장에는 두 개의 목적어가 자리하는데, “나”는 ‘숨을 쉰다’라면, 그 나머지의 것 혹은 그를 포함한 “모든 것”은 자율적으로 숨을 쉰다라기보다 타동적으로 숨을 쉬는 것이 된다. 그럼에도 ‘나’가 그 모든 것을 숨을 쉬게 한다 이윤정 안무가는 지난 〈아무도, 아무 것도, 아닌 것이 아닌〉에 이어 이번 작업의 제목 역시, 언어를 내파하는, 언어가 교착되는 지점에서 움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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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무회, 〈몸시〉(2024)에 대한 주석: 언어로서 몸과 몸의 언어 그사이REVIEW/Dance 2026. 7. 5. 14:13
창무회의 〈몸시〉는 몸시라는 개념의 정초와 함께 그 개념의 구현으로서 열 두 편의 예시들을 나열한다. 열 두 장은 각각의 몸시이며, 몸시의 철학을 명징화하는 것이 된다. 중간에 빈 무대에 내레이션으로 도입되는 몸시에 관한 시는 “나”를 숨·춤·빛·땅·하늘·가락·놀이로 명명한다. 이 병렬되는 서로 다른 범주와 층위의 개념들을 통해 ‘나’가 정의되는데, ‘나’는 서술어들 안에 내포되거나 접속되며, 그것들 안에 매개됨으로써 또는 체현됨으로써 나타나는 특별한 주체가 된다. 그리고 ‘몸시’가 발생할 것이다. 몸이 지극한 경지에 이르러 발생하는 시적 풍경 또는 시로서 몸은 일차적으로 몸을 전제하고, 그다음으로 몸의 매개적, 변전의 위상을 전제한다. 따라서 ‘나’의 정의에서, 어떤 몸은 춤을 포함하면서 그 춤의 범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