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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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원, 《순환하는 매듭, 완결은 없습니다.》: 형상들을 가설하기REVIEW/Visual arts 2026. 3. 10. 14:45
정혜원 작가의 개인전, 《순환하는 매듭, 완결은 없습니다.》에서 문장으로서 제목은 일종의 당위이거나 선언의 성격 속에서, 이중적으로 해석되는데, 부재하는 것이 “순환하는 매듭”의 “완결”인 것인지, “순환하는 매듭”과 “완결”인 것인지 하는 부분이다. 그러나 다른 가능성도 있다. 그 두 사이의 쉼표가 두 개의 구문을 만들고 잇고 있음이 그것인데, 곧 순환하는 매듭이기 때문에 완결되지 않는다라는 것이다. 서사의 공작임을 지시하는 이 “완결”의 부정은 완결의 부재가 아닌, 완결의 속성을 고스란히 내포함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다시 이 “순환하는 매듭”이 중요해지는데, 이는 우선 〈순환/돌/매듭〉(2025. 가변 설치.)에서 직접 지칭되고 있다. 전시장 중앙 기둥을 철망으로 둘러싸며 그 위에 새끼줄과 돌,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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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영, 〈Performance Test〉: 인간에의 테스트REVIEW/Performance 2026. 3. 7. 15:57
박수영의 〈Performance Test〉는 엑스봇(Xbot)을 소개하고 그것과 동반된 일련의 여정을 재현한다. 엑스봇은 디지털상에서 뼈대를 심는 리깅 과정을 경유하며 생성된 자신의 3D 캐릭터 모델로, 이를 다시 오프라인으로 가져옴으로써 생기는 물리적 차원의 ‘부하‘, 곤궁을 연출하는데, 이것들은 그야말로 실재로 그를 엄습하는 감각의 차원을 수여한다. 현실에서 그에 대응하는 물리적 신체는 유사한 형태를 일차적으로 조직하는 것에 그친다는 점에서 지극히 환원적인데, 그것은 살이 아니라 딱딱한 피부, 3D 프린터로 용출한 플라스틱 소재의 갑옷 같은 싸개 조각들을 쇠구슬로 이어붙인 조립된 일종의 박수영의 휴먼 스케일에 대응하는 프라모델 모델에 가깝다. 곧 그 안에서 어떤 소프트웨어의 구동 장치가 연장되지 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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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회 15분연극제] SCENE032, 〈그냥 지루한 말도 해보기로 했다〉(한아름 작/연출): 자기 원환으로서의 무대, 그 내부에서의 현존REVIEW/Theater 2026. 3. 7. 15:18
〈그냥 지루한 말도 해보기로 했다〉는 정신병이 걸린 한 여자(고다희 배우)의 읊조림이다. 이것이 하나의 유일하고도 고유한 형식이다. 하나의 커튼 뒤라는 무대가 그 자신의 내면-공간을 부유하고 탐사하고 증명하기 위한 차원에서 일시적으로 성립하는 가운데, 그의 발화는 소진된 자신을 이미 소진된 자로서 부흥시키기 위해, 존재의 나머지를 증명하기 위해, 언어의 잔여를 언어화하기 위해, 소진 자체를 긍정하기 위해 발화한다. 아니 그 모든 것을 무엇보다 발화로서 접촉하기 위해 발화한다. 발화된 말들은 그 몸을 거쳐 가면서 사라지고 그 말을 하고 있는 신체를 작은 불빛으로, 숨으로 되비추며 사라진다, 다름 아닌 타자로서 자신에게 그 말들은 켜지고 바로 꺼진다. 말들은 그러니까 쌓이고 무덤이 되고, 오직 그것을 마주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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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혜진, 〈흐르는〉: 말과 움직임은 서로를 향해 어떻게 흐르는가REVIEW/Dance 2026. 3. 7. 15:10
〈흐르는〉 의 천장 중앙으로부터 내려온 마이크는 중심 오브제를 넘어, 공간 전체를 환유한다. 그것은 구심과 원심의 자장 아래 있는 하나의 원의 공간이다. 이 마이크-공간과 하나의 신체의 상호작용이 곧 〈흐르는〉의 움직임이다. 공간과 신체 사이에는 마이크가 있다. 따라서 신체-마이크와 마이크-공간의 각각의 연합체는 신체-마이크-공간의 하나의 계열을 이룬다. 마이크는 점토가 덧대어 있고, 그 덧댐의 흔적이 전이되어 있다. 손(의 형상)이 거기에 있다. 그것은 만짐에 의한, 만짐을 수용하는 사물이다. 동시에 마이크는 소리를 반향하는 사물이며, 그것을 당겨서 놓았을 때 그 자체로 공기를 가르며 내는 자신으로부터의 노이즈를 동시에 반향할 수 있다. 그리하여 후반의 클라이맥스는 장혜진의 말, 신체를 마이크로 옮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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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용, 〈수의 감각〉: 돈에 대한 감정 그리고 (재)사고를 위한 의례 혹은 놀이REVIEW/Performance 2026. 3. 7. 15:09
김보용의 〈수의 감각〉 은 돈을 수로 치환하고, 그 순전함과 순수함을 증명, 체현해 보려는 시도이다. 이러한 돈 자체의 관점을 투사하기 위해, 그룹원들은 돈을 수로서 상기하고 치환해 낼 필요가 있는데, 이는 일종의 집단적 명상 치유의 시간이자 수행과 의례의 차원이 동반된 공통의 시간성 아래 진행된다. 돈에 대한 이전의 감정을 들여다보고, 매체로서 재정의하는 사전 의견 교환의 시간은, 〈수의 감각〉에 대한 이념을 즉자적으로 드러낸 부분으로, 곧 워크숍 자체의 의미를 경계 바깥으로 제시하고, 규정하는 근거가 될 수 있는 이 부분에서처럼, 〈수의 감각〉은 두 가지 단계, 시간성을 가져간다. 한편으로는 개체들의 고유한 돈에 대한 각각의 병리적 차원들이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차원의 견지에서 바라볼 수 있다는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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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회 15분연극제] 극단 바바서커스, 〈나시와 락교〉(고경진 작가, 최주현 연출): 관계 혹은 구원의 기호 둘REVIEW/Theater 2026. 3. 7. 15:04
극단 바바서커스의 〈나시와 락교〉(고경진 작가, 최주현 연출)는 조카와 이모의 관계로 압축될 수 있는데, 락교가 조카에게서 이모에게로 향한다면, 나시는 이모에게서 조카로 향한다. 락교는 초밥을 먹을 때 곁들이는, 마늘처럼 생긴 쪽파의 뿌리를 절인 음식으로, 조카의 더위가 기후 위기를 현실과 제도와의 시차로 나타내는 첫 장면, 5월에 동복을 유지하면서 에어컨을 트는 낡은 제도에 대한 클리셰―이는 근미래의 기후 위기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이전시키는 효과를 갖는다.―와 그로부터 전이된 학생들의 팥빙수에 대한 갈망은, 꽤 강렬하다. 거기에는 학교가 없지만 학교를 환유하는 학생들이 있고, 미래가 없지만 그들은 미래를 현재로 체현한다. 그리고 이 팥빙수로 떠나는 모험의 세계에서 자발적으로 이탈하는 조카의 신경증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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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회 15분연극제] 극단 해인, 〈이렇게 덥지만, 이렇게 더운데〉: ‘빈 공간’의 연극REVIEW/Theater 2026. 3. 7. 15:02
극단 해인의 〈이렇게 덥지만, 이렇게 더운데〉(이양구 작, 연출)이 가리키는 현실은 이 공간에 대한 상상력을 기반으로 한다. 이 공간(에)의 현존을 재투자하여 공포와 두려움의 시간에 모두를 묶는다. 관객은 여전히 관객이지만, 이 상황을 배경으로서 체현하면서 그러하며, 관객의 의지를 초과하는 이 상황, 환경에 대한 몰입은 이곳이 정확히 어떤 곳인지의 전사, 배경, 정보가 거의 없는 제약적 상황을 기초로 한다. 몰입, 곧 자신에 대한 반향으로서 공간으로부터 자신으로의 수렴은 자신의 불완전성의 인식에 대한 다른 이름이며, 몰입은 이 환경의 비언어적 차원 자체와 관계 맺는 유일한 자신에 대한 불안과 공포로 현상된다. 공간을 휘저으며 객석에서 나타나는 두 사람은 각각 “이렇게 덥지만” 우리가 희망을 갖고 바깥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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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회 15분연극제] 극단 작은방, 〈경마장 야생마는 어디로 갔을까〉: 이야기(로부터)의 동력REVIEW/Theater 2026. 3. 7. 14:59
극단 작은방의〈경마장 야생마는 어디로 갔을까〉(이하 〈야생마〉, 신재훈 작/연출 )는 두 가지 메타포를, 이야기를 절합하는데, 그것은 상상의 세계로서 이야기와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현실의 이야기를 교환하는 방식을 따른다. 야생마에서 트레이드포춘호로 옮겨가는 과정에서, 야생마는 불가능성에 대한 상상력의, 또는 믿을 수 없는 실재의 체현의 자리를 남북통일에 대한 순간으로 대체된다. 야생마는 트레이드포춘호의 상상적 환유물이고, 트레이드포춘호는 다시 현실에서 과거 속의 부재하는 기호로 위치된다. 결과적으로, 스크린을 찢고 나온 야생마는 남북을 오가는 배의 운항 중지에 대한 곤궁을 해소하는 메타포였던 셈이고, 억압된 동물이 해방되는 순간 사람들이 겪는 쾌락은 남북 교류의 물꼬가 트이는 순간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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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분 연극제: 지역에 촘촘하게 접지되는, 너른 동시대성의 표현들REVIEW/Theater 2026. 3. 7. 14:44
1 15분 연극제는 15분 내외의 짧은 연극들을 모은 축제로, 이는 순차적으로 장소를 옮겨 다니며 진행된다. 2025년의 축제는 무더위로 인해 야외 장소를 활용하지 않는 방침을 적용했는데, 이는 당연히 우연한 관객, 동네 주민들의 단속적 참여를 가져가기 힘든 효과를 가져온다. 이는 비자발적(?) 관객 유치의 소거뿐만 아니라 더 근본적으로 축제 기저의 어떤 서사를 감축하거나 소거하는데, 곧 순차적이며, 모든 공연을 반나절 정도 안에 볼 수 있는 건 축제의 경로적 이행의 서사, 장소와 장소의 연결이라는 부가된 시간의 서사가 이로써 사라져버리게 되는 것이다. 이는 그 전까지는 역설적으로 축제의 규모가 아주 크지 않으며, 이틀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진행되기에 가능했던 부분으로, 만약 야외를 활용해 장소의 연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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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놀이클럽, 〈이상한어린이연극 오감도〉: 횡단하는 존재 혹은 시간REVIEW/Theater 2026. 3. 7. 14:41
〈이상한어린이연극 오감도〉(이하 〈오감도〉)는 이상의 연작시 「오감도」에서 ‘시 제 1호’의 제 1 아해부터 제 13 아해까지 순차적으로 “무섭다고그리오”라는 시의 구조와 함께 문장을 가져와 변주함으로써 13개의 장을 토대로 구성한다. 즉 하나의 장에는 “제○의아해가” ○○ “무섭다그리오”라는 문구가 새겨지는데, 여기에는 각각 1부터 13까지 순차적인 숫자와 무서움의 다른 대상이 기입된다. 처음 아해(박지안)는 “태어나기”를 무서워하는데, 이는 상수에 들어선 줄 하나를 잡고 ㅅ자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와 착지와 함께 줄을 놓고 빽 소리를 지르는, 엄마 자궁에서 나와 울음을 터뜨리고 탯줄을 자르는 것까지를 재가시화한 장면으로부터 차례차례 일렬횡대로 누워 뒤집고 앉고 서고 걷고 달리고 하는, 일련의 아기의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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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수 기획, 《물의 왕: 동학과 화엄의 두물머리》: 여성-신체, 생태-길, 구멍-응시의 연결망REVIEW/Visual arts 2026. 3. 7. 14:39
《물의 왕: 동학과 화엄의 두물머리》(이하 《물의 왕》)는 김지하의 『수왕사』라는 책을 모티브로 한다. 전시는 책을 이미지로 연장하려 하며, 이를 통해 책의 비의적 속성을 더 ‘적극적인’ 독해의 방식으로 읽어낼 수 있음을 전제하며 출발하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책은 절대적인 아이디어이며 전시는 그것에 다가서는 매(개)체로 자리한다. 또는 전시를 통해 책의 세계가 펼쳐질 수 있는, 일종의 전도된 순간을 기약하는 것일 수도 있다. 전시는 여러 이미지가 난립하며 전시장 벽면 대부분을 채우는 방식으로 이뤄져 있다. 서판 읽기로서 도상과 기호의 분자적 지평은 형식과 스타일의 차이로 구분, 수렴되지 않는다. 『수왕사』는 동학의 새로운 여성 접주 이수인의 사상을 조명한다. 이수인을 통해 새로운 동학의 물꼬가 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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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 이은경, 〈생존감각 - 여와의 방〉: 존재를 함입하기, 그리고 변화하기REVIEW/Visual arts 2026. 3. 7. 14:36
유선, 이은경의 〈생존감각 - 여와의 방〉(이하 〈생존감각〉)은 조금 특수한 맥락을 바탕으로 마련된 전시인데, 기획자 정윤진의 글에서 산모와 태아의 관계 양상에 대한 비유로 드러나고 있는 ‘생존감각’이라는 제목이 엄밀히 두 작가의 작업 모두에서 소재나 모티브의 차원에서 주요한 근거로 작용하며 내재적 차원으로 표현되는 공통의 부분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 오히려 이 작업의 외재적 근거, 곧 이 둘의 친연성이라는 관계에 근거하는 데 가깝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두 사실은 조응하며 전자 역시 절반의 진실을 갖는데, 곧 이 둘이 모녀 관계이며, 이은경은 어느 정도 이 모녀의 관계와 기억을 성찰하는 시간을 통해 몇몇 작업을 완성했다는 것이다. ‘모녀 관계임에도 불구하고’가 성립하려면, 분명 그것은 서로 다른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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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공동체 아르케, 〈셋톱박스〉: 부재하는 혹은 삼켜진REVIEW/Theater 2026. 3. 7. 14:34
〈셋톱박스〉에서 주인공 남자(송현섭 배우)의 고통은 대위법적으로 교차하며 그를 곤궁으로 모는데, 가장 심각한 건 일종의 정체 현상으로서, 신체적 차원에서 내장에 음식물이 가득 차 더이상 먹는 것도 싸는 것도 불가능한 사태를 겪고 있는 것, 그리고 정신적 차원에서 그가 보지 않는 TV 요금이 징수되고 있음을 발견했지만, 그는 TV를 보는 인물로 기록되어 있어 TV를 본다는 사실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둘은 전혀 다른 범주이지만 실은 하나의 문제인 듯 보이는데, 계속해서 극은 그에 대한 추리를 유도하며 결국 발화하지만 무위에 그친다. 이는 곧 그의 내장에 셋톱박스가 들어 있다는 것. 그의 집에 셋톱박스가 있다는 것, 그래서 신호가 잡힌다는 것은 그가 TV를 과거에 신청했다는 기록과 함께 TV를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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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영 각색·연출, 〈마른 여자들〉: 여성이라는 신화 혹은 증상REVIEW/Theater 2026. 3. 7. 14:14
〈마른 여자들〉의 쌍둥이 자매 로즈(이세영 배우)와 릴리(황미영 배우)는 첫 등장에서, 서로를 마주한 채 찰싹 붙어서 고개를 정면으로 함께 돌린 포즈로써 어린 시절 마치 하나였던 둘을 보여주는데, 이는 언니 릴리가 로즈를 떠나는 순간에 이르러 로즈의 릴리에 대한 그 애정과 의존의 강도를 드러낸다. 곧 언니의 찢겨져 나감은 마치 나의 신체 일부가 떨어져 나간 것과 같이 상실된 영역이 영구히 지속될 거라는 인상을 주는데, 여기에는 곧 둘의 결합된 육체, 놀이를 통한 긴밀한 공통 감각이 둘이 하나였던 신화적 시간의 응축된 인트로 장면의 효과가 전제된다. 이러한 둘의 친밀한 사적 영토는 사회적 틀로, 더 큰 사회적 관계로 적용되며 희미해진다. 로즈의 삶은 거식증 환자들의 치료를 위한 한 병동에서 고착된다. 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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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광주비엔날레: 소리라는 형식REVIEW/Visual arts 2026. 3. 7. 14:05
2024 광주비엔날레는 집요하게 소리를 측정, 전시한다. 매체의 확장성과 다양성 혹은 풍부함의 차원에서, 그리고 비가시화된 것에 소리가 자리함을 새삼스럽게 상기시키는 차원에서 그러하다. 뜬금없지만 여기에 주제에서의 ‘판소리’는 전시와 (어떻게) 연결되(야 하)는가. 그것은 윤리적 차원에서 진작될 수 있는 부분이며, 어떠한 형식적 차원의 한계를 설정할 수 있는 것인가. 이러한 물음은 미학적 차원과 윤리적 심급의 관계성을 상정하며, 그것을 다루는 주체의 ‘자격’을 전제한다. 가령, 판소리라는 문화적 원형을 고스란히 투영시키지 않는다는 것이 오리엔탈리즘 혹은 서구 중심적인 전유의 그릇된 태도로 치환할 수 있을까. 판소리를 우리가 용인할 수 있는 원형으로서 제시해야 한다는 건 판소리라는 대상을 기존의 재현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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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지, 《듣기를 위한 가이드 : Ear duct, us》: 듣기의 조건을 가설하기REVIEW/Music 2026. 3. 7. 13:50
《듣기를 위한 가이드 : Ear duct, us》(이하 《듣기를 위한 가이드》)는 동명의 『듣기를 위한 가이드』라는 사전에 제공된 가이드북과 이를 참조한 김예지의 가이드로부터 시작된다. 관객은 별도로 기획된 웹사이트에서의 소리 도면을 통해 사전에 선택하게 되는데, 이 16개의 자리는 미세한 소리 풍경의 차이를 반영한다. 그리고 이는 김예지가 관객이 눈을 감은 상태에서 공간에 산포한 소리 중에 자신을 가장 가깝게 향하고 있는 소리를 따라 몸의 방향을 전환해 볼 것을 요청할 때 가장 명확하게 체현된다. 눈을 떴을 때 네 명의 연주자, 비올라 다모레의 Olivier Marin, 저음제금의 동이, 해금의 김예지, 가야금의 조선아가 자리하는데, 이는 공간 전체로 퍼져 있고, 기다란 삼각형의 공간은 꼭짓점에서 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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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혜경, 〈공룡과 공룡동생〉: ‘과’라는 사이의 기호학REVIEW/Theater 2026. 3. 3. 20:35
백혜경의 〈공룡과 공룡동생〉은 언니 ‘공룡’과 동생 ‘재영’ 간의 어릴 적 기억과 경험을 환상적으로 횡단하며 현재를 극복해 나가는 두 자매의 삶을 그린다. 기억은 구체적 사건으로 나타나는 대신에, 그것을 통과해야 하는 문지방성(liminiality)인 쓰레기 섬으로 환유되는데, 그것은 온갖 잡동사니가 육박하며 푹푹 빠지는 구렁텅이가 되어 발목을 붙잡는, 가시화되지 않는 기억의 누층―곧 기억은 복잡다단한 무의식에 싸여 있고 또한 그것에 묶여 있다.―을 환각적 세계, 의사-꿈의 세계로 연장해 낸 것과 같다. 이는 누워서 베개로 얼굴을 감싸면서 수중으로 내려가는 프리폴을 체현하는 의식의 입문 단계가 지닌 환유적 차원이 일정 정도 연장된 바이기도 하다. 공룡과 재영 사이에는 ‘과’가 있는데, 경지은, 이 셋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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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현 작/연출, 〈흙사람〉: 한일 관계에 대한 알레고리로서 등정REVIEW/Theater 2026. 3. 3. 20:29
〈흙사람〉은 태봉등이라는 가상의 산이 한국과 일본 사이에 갑자기 솟아난다면이라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이러한 가정이 한일 관계의 틈을 육박하는 산의 장막으로 형상화하되 그 실제적 원인으로 기후 변화라는 상대적으로 더 체감되는 이슈를 경유한다고 보인다. 곧, 〈흙사람〉에는 한국이라는 역사적, 지정학적, 문화사회적 메타포로서 한일 관계와 심각한 기후 위기의 전세계적 상황이라는 두 가지 문제가 혼재되고 절합되어 있는데, 그렇다면, 그 둘 중에 어떤 명제가 주도적인지 또는 다른 하나의 명제가 기능적인 차원으로 적용되는지를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표면적으로 〈흙사람〉은 개인과 집단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듯 보인다는 점에서, 이러한 가정들은 무력화되는 듯 보인다. 곧 하나의 맥거핀이거나 또 다른 문제를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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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근영, 《활활》에 대한 주석: 하나의 수많은 얼굴들REVIEW/Visual arts 2026. 3. 3. 20:26
홍근영 작가의 《활활》은 얼굴을 전면화하는 일련의 도자 군집을 구성한다. 이 군집이 전시의 유일한 전략이며, 이는 전체적인 공간에의 산포와 그룹화의 경계 지대로의 구분으로 나뉜다. 이를 통해 군집은 복잡계의 기호학적 생태라는 의미를 구성하는 한편, 수많은 작업의 양산이라는 작업자의 정체성을 노정한다. 이로써 《활활》은 작가의 가상적 세계의 의식과 작가로서의 의식을 따로 또 같이 엿볼 수 있게 하며, 그 대신 전시의 큐레이팅의 변별적 의식을 유예한다. 작품들은 그 양적 측면에서나 공간의 점유 정도에서나 그리고 그 얼굴이라는 것에 대한 주목을 통해서나 ‘활활’ 타오르고 있으며, 이는 작품을 작가로 소급하는, 작가를 작품으로 환원하는 그런 전시라 할 수 있겠다, 곧 과잉의 물질적 토대가 그 자체의 미학을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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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성북동비둘기, 〈걸리버스 2〉: 연쇄적인 이미지 기호들의 병치, 파국에서 쾌락을 맛보다REVIEW/Theater 2026. 3. 3. 20:23
극단 성북동비둘기의 〈걸리버스 2〉(2025)는 영국의 풍자 작가 조너선 스위프트(1667-1745)의 4부로 구성된 『걸리버 여행기』를 모티브로 하는데, 〈걸리버스〉(2022)가 소인국을 다룬 1부를 가져온다면, 이번에는 2부의 거인국을 소재로 한다는 점에서, 4부는 차례대로 무대화되며 일종의 시리즈물의 성격을 띠게 될 것을 예측하게 한다. 〈걸리버스 2〉는 『걸리버 여행기』가 아닌, 〈걸리버스〉 자체와의 연관성을 맨 앞의 부재의 공간을 통해(서만) 구현하며 시작한다. 〈걸리버스 2〉는 〈걸리버스〉와 독립된 작품이며 바로 그 지점을 여기서 공준하고 있지만, 오히려 이러한 ‘빈’ 형식으로서 인용이라는 점에서의 본질, 곧 공통됨이 성립한다. 현진영의 〈흐린 기억 속의 그대〉가 배경음악으로 나오고 텅 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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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재, 《Doppel-Lumpen》: 시선으로부터 은신하기, 그 반대편에서 시선의 주인을 찾기REVIEW/Visual arts 2026. 3. 2. 21:20
《Doppel-Lumpen》은 작가의 수많은 복제된 형상을 마주하게 하는데, 이는 세 가지 퍼포먼스를 순차적으로 약간의 간격을 두고 반복해서 전시 내내 지속하는 체계 아래, 그 퍼포먼스 시스템이 작가 단독의 형상을 가시화하기보다는 그것이 끊임없이 지연되고 부인되면서 재가시화되는 국면 아래 있음을 의미한다. 곧 작가의 수행은 매체로서 사물-공간의 경유를 통해 그 행위의 명확함 대신에 그 매체에의 작가의 체현됨의 양상으로 구조화되는데, 따라서 작가는 매체를 투영하는 신체, 그것이 연장되는 신체적 부산물로 재결정되어진다. 아마도 가장 명확하게 작가가 드러나는 또는 전시명에서처럼 도플갱어로서 중첩된 존재 양상을 동시적으로 관철하는 유일한 작업은 〈앙스트할레에서의 도플갱어 Doppelgänger in der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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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방주, 《그냥 생긴 기억》: 사물을 놓아두는 법―충동을 경유해REVIEW/Visual arts 2026. 3. 2. 21:15
김방주 작가의 개인전 《그냥 생긴 기억》은 어느 날 자신에게 ‘떠맡겨진’ 아버지의 집과 사물들을 “‘되돌려’” 놓는 방식을 취한다. 작가를 초과하는 물건‘들’, 또는 그것으로서 집은 아마도예술공간이라는 전시장을 상회하는 차원으로, 초과된 시공간의 차원으로 다시 열리는데, 아마도 이는 작가의 현상학적 체험에서의 난감함, 곤궁, 비릿한 숭고, 알 수 없는 심연 등의 여러 추정되는, 해소되지 않는 복합적 정서와 심리, 미학적-윤리적 기전을 재현이 아니라 전치를 통해 관객에게 수여한다고 보인다, 그가 “갑자기” 그것을 떠맡게 된 것과 같이. 하지만 그것은 그 자체보다는 그것에 대한 어떤 자리를 주는 것에 가까운데, 곧 그것을 주는 건 작가를 초과하는 그 무언가를 셈할 수 없는 상태로, 셈하지 않고서 그냥 놓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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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돌파구, 〈아이들〉: 주체의 선택을 예기하는 미래REVIEW/Theater 2026. 3. 2. 21:02
극단 돌파구의 〈아이들〉은 쓰나미로 인해 원전 사고가 발생하고 그 주변 지역에서 여전히 살아가고 있는 로빈(권정훈)과 헤이즐(윤미경) 부부를 로즈(조어진)가 방문하면서 시작한다. 부부의 거주 지역이 방사능 오염의 위협을 받는 황폐화된 곳임은 주로 그 효과의 차원에서 드러나기보다는 대응의 차원에서 짐작되는 사실에 가까운데, 이는 초반에 전기가 일상 대부분의 시간에 들어오지 않고,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인다는 것에서 강조된다. 전기는 이따금 일정한 시각에 들어오는 것으로 보이는데, 여기서 전기가 나갔음이 사고의 여파 때문으로 판단되기보다 굳이 이곳을 버리지 않고 불편함을 감수하며 살아가는 부부의 선택의 몫으로 환원된다는 것이 그러하다. 그러니까 방사능 오염의 결과는 비가시적인 축적과 영향의 범주로서 눈으로 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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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크숍 〈예술과 연약함 Arts and Vulnerability〉에 대한 주석: 예술을 내파하는 연약함이라는 새 개념REVIEW/Performance 2026. 3. 2. 20:44
모두예술극장 열린, 국제협력 리서치 워크숍 〈예술과 연약함 Arts and Vulnerability〉은 이틀에 걸려 열린 이른바 스펙터클한 기획의 산물이다. 워크숍은 기본적으로 관망하고 지켜보는 것으로써 구현되는 건 아니다. 유령 주체가 무엇을 느끼는지 비평하는지는 알 수도 없고 알 이유도 없다. 단지, 경계 안의 참여의 감각만이 ‘나’의 신체를 지지할 뿐이다. 객관적 거리를 잃어버렸거나 나와 상대방의 거리를 재고 탐색하고 궁구하기 위한 거리의 시차와 간격 속에서 임시적으로만 그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여기서 객관적 거리는 주관적이며 유동적인 거리로 대체된다. 결과적으로, 이 워크숍은 공동을 구성한다는 의미의 “커머닝”이라는 이름 아래 이틀 동안 1, 2회차로 구성되었고, 첫째 날은 “40BPM 걷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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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고은, 〈그림자-숲〉: 이미지-몸짓의 이미지-세계에의 기입 혹은 비약REVIEW/Movie 2026. 3. 2. 20:41
임고은의 〈그림자-숲〉은 전적으로 환유적인 차원으로 전개되는데, 그것은 자막의 서사, 곧 나무-벌레-숲의 어떤 계열의 스펙트럼 안에서 주어지는 주요한 메타포들 사이의 ‘횡단’의 방식에서, 영상에 담기는 이미지‘의’ 기입, 이미지 ‘위’의 이미지라는 수행의 기술 방식에서, 그리고 전자를 추적하며 그에 결절되려는 또는 그와 상관되지 않으나 결부되는 후자의 이미지, 곧 상의 이미지와 직접적으로 출현하는 이미지 사이에서 그러하다. 전자의 차원이 사물의 시간과 영겁의 시간, 역사의 시간을 이야기한다면, 후자의 차원은 역사의 흔적으로서 이미지를 가져오되, 그것을 헤집는, 유동적인 것으로 만드는 흔적으로서 행위에 초점이 맞춰진다. 거기에는 주체의 ‘손’이 일부 포함되는데, 유희와 놀이의 차원에서 이 손은 의식으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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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더릭 와이즈먼, 〈발레〉: 전표현으로서 움직임, 그리고 무대라는 실재REVIEW/Movie 2026. 3. 2. 20:36
프레더릭 와이즈먼 감독의 〈발레〉는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의 무대 뒤의 연습과 훈련을 비롯해 리허설, 휴식, 물리치료, 의상 맞춤 등 공연이 이뤄지기 전의 거의 모든 과정, 그리고 사업적 논의나 입단 절차 등의 공연 외적 측면들, 발레 마스터들과의 짧은 인터뷰들, 그리고 마침내 앞의 연습 장면이 실제로 이뤄지는 두 개의 공연을 나머지 한 시간가량 직접 보여주는 대단원으로 나아간다. 공연은 앞선 연습의 실제적 성취이자 이상향적 구현이라는 점에서, 예술이 갖는 아우라는 인물들, 몸짓들에 대해 어느 정도 의식적으로 관여된 상태로부터 출현하는 것이다. 곧 전적으로 공연이 완성되고 그것을 감상하는 것과는 다른, 그것들이 어떤 경로와 시간을 지나쳐 왔는지를 상기하는 차원에서, 그것을 거쳐 다다른 지점으로서 이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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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더릭 와이즈먼, 〈에세네파〉: 소통 불가능성에 대한 두 가지 판본REVIEW/Movie 2026. 3. 2. 20:33
〈에세네파〉는 프레더릭 와이즈먼이 베네딕도회 수도원에서 수도사들의 일상을 따라가며 찍고 그 영상들을 편집한 작업으로, 이는 그들의 소소한 일상의 풍경보다는 존재 간의 소통 (불)가능성의 대화로서 신과 인간의 거리, 그리고 인간과 인간의 절대적 거리 같은 역설적 차원의 소통의 면모에 초점이 실린다. 이는 처음 윌프레드 수사와 수도원장의 이름을 부르는 것에 대한 매끄럽지 않은 대화로부터 시작되는데, 이는 이후 전자의 외부로의 독립적 장면에서의 뚜렷한 ‘변신’과 그가 없는 가운데 그와의 관계의 어려움과 곤궁에 대한 수사들의 수도원장에 대한 민원, 그리고 세계 내 균열에 대한 서사를 투영하는 리처드의 미사 안의 독백, 마지막의 수도원장의 두 개의 상반된 자아에 대한 강연으로도 마치 확장되며 갈음되는 것으로 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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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훈, 〈에스퍼의 빛〉: 서로를 반향하는 두 개의 분리된 장소REVIEW/Movie 2026. 3. 2. 20:28
〈에스퍼의 빛〉은 눈 덮인 산에서 빵조각들을 나누는 것으로 시작한다. 집으로 돌아온 이능력자 이마 기쉬에게 아이들을 돕는 행위는 이제 그만할 것을 충고하는 동료의 메시지와 함께 그가 그 고립된 아이들에게 생존 규칙과 몇 개의 통조림들을 나눈다는 두루마기 용지에 쓴 편지가 온라인상의 트위터 자막으로 번역되면서 일상 현실이 출현한다. 이 둘의 간극, 두 세계의 장소성은 봉합될 수 없는 것이다. 마치 그 순서상 이마 기쉬로부터 메시지를 수신한다는 혼동을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영화적 긴장감의 무대로부터 일상의 무미건조한 태도로 나아가며 균열을 일으키는 이 장면은, “TRPG를 온라인 가상공간인 트위터에서 플레이하는 10대 청소년들의 ‘자캐 커뮤(자작캐릭터커뮤니티)’를 기록”한다는 영화 설명과 같이, 오직 현실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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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비밀기지, 〈몸 기울여〉: 하나로 맞물리는 다른 두 개의 세계REVIEW/Theater 2026. 2. 25. 14:02
극단 비밀기지의 〈몸 기울여〉는 길고양이를 찾는 두 인물과 그 나머지 인물들을 평행 몽타주로 교차시키거나 대위법으로 교차, 중첩시키는데, 특히 후자를 통해, 분화할 수는 있지만 근본적으로 변경할 수는 없는 연극의 물리적 장소를 두 축의 인물이 동시에 경유하는 장면들을 적극 활용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하나의 프레임 바깥으로 비치는 단일한 평면에 모든 인물이 제각각의 포즈를 취하다가 음악에 맞춰 군무의 제스처를 취하는 것은, 〈몸 기울여〉의 심리우화적인 역설을 명시하는데, 이는 그 전에 서로 다른 목적으로 고양이를 찾는 두 인물과 거기에 더해지는 고양이는 삼각 편대를 이루면서 쫓고 쫓기는 인과관계의 폭력적 사슬을 환유적이고 실재적인 차원에서 감각화함을 하나의 코드로 완성 짓는 것이다. 곧 우리는 살기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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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재하, 최가영, 《방금 전의 소문과 오래된 증거로부터》: 이미지의 서사를 수행하고 체현하는 방식들REVIEW/Visual arts 2026. 2. 25. 13:46
반재하와 최가영 작가의 2인전 《방금 전의 소문과 오래된 증거로부터》는 작가가 참여, 개입하는 각각의 영상 작업, 〈허풍선이, 촌뜨기, 익살꾼〉과 〈103년 전의 가이드북과 털이 자라나는 게〉를 기준으로, 그것과 관계된, 그 부산물로서 재료들을 다소 산만하게 병치하는 방식으로 전시된다. 반재하의 작업이 2018년의 것이지만, 여전히 작업 안팎의 사회와 시대가 동일하다는 점에서 유효하다면, 최가영의 작업은 모두 올해 제작된 것으로 과거의 흔적들을 추적한다는 점에서 유효할 것이었다. 곧 즉물적으로 제목에 대입해 보자면, 반재하의 작업은 조금 전의 소문이라면, 최가영의 작업은 오래된 증거일 것이다. 이 둘은 이미지의 경계, 경계를 넘는 이미지의 차원을 탐구하는 데 있어 모두 북한이라는 이미지를 경유하게 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