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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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니 안무, 〈Pan & Opticon〉: 우리를 붙들어매는, 자유의 장치REVIEW/Dance 2026. 2. 25. 13:34
이해니 안무가의 〈Pan & Opticon〉은 18세기 말 영국의 철학자, 제레미 벤담이 고안한 원형 감옥을 뜻하는 ‘판옵티콘’을 어원적으로 다시 분절해 인터랙티브한 환경 조성으로부터 주제의식을 설정해 낸다. 곧 모두[편재하는(pan)]와 보다[시각(opticon)을 가진 존재(on)] 사이에 간격을 둔 두 단어의 절합을 통해, 모두‘가’ 보는 능동적 보기의 산출과 모두‘를’ 보는 일방향적 보기의 산출을 끌어내며, 본래적 의미에서의 후자를 전자의 환경으로부터 추출해 내고자 한다. ‘판옵티콘’은 20세기의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가 보이지 않는 시선에 의해 내면화되는 감시 체제의 일환으로서 규율 권력을 가리키기 위해 새롭게 발굴해 내며 우리에게 익숙한 개념이 되었다. 〈Pan & Opticon〉은 원형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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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주 작/연출, 〈사사로운 사서〉: 사사로울 수 있는 장소 위의 주체들REVIEW/Theater 2026. 2. 25. 13:22
북부 도서관이라는 가상의 실재하는 도서관의 사서들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사사로운 사서〉는, 도서관 일부를 그대로 옮겨 놓으려 한 무대 세트의 배경 아래, 도서관의 일상 업무의 세부적 요소를 바탕으로 한 대화의 시작으로써 극사실주의적 토대를 마련한다. 물론 이는 일차적인 것이며, 장마 기간의 엄청난 비로 인해 발생한 지하 보존 서고의 침수 피해로부터 책 복원 작업이라는 비일상적 차원의 특수한 업무의 긴급한 미션이 사서들에게 주어지며, 이는 책과 이들의 관계성을 묻고 책을 매개하고 다루는 이들로부터 어떻게 책 자체가 세계를 마주하는지, 나아가 세계를 반영하는 메타포로서 확장된 책의 모습이 펼쳐진다. 보존 서고 한편에 우물이 있다는 괴담은 망각된 한국 근현대사의 알레고리들을 담는 일종의 판도라의 상자로 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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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해숙 개인전, 《파랑의 여항》: 자본주의 이후의 고고학, 그리고 (비)주체적 투사REVIEW/Visual arts 2026. 2. 24. 20:50
용해숙 작가의 《파랑의 여항》은, 그간 이어온 그의 파노라마 연작의 계승이다. 그의 작업은 사회적-정치적 차원의 세계를 또는 세계에 대한 관점을 현시해 왔다. 그리고 전자의 차원에서 《파랑의 여항》을 볼 수 있으며, 여기서 이 세계의 연합체로서 존재들의 연결 양상이 부각되는 가운데, 그 풍경 안에 속하는 인물들은 연극적 차원에서 미션을 하달받아 그것을 수행하는 중이다. “파랑(波浪)의 여항(閭巷)”은 오기이거나 오인을 유도하는 제목이다. 그를 통해 파랑색 여행에 대한 착시를 불러일으킨다. 병기되는 한자를 알더라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주어는 여항이 아니라 파랑이다. 주거지들이 집산된 곳의 삶의 내력에 관한 메타포가 아닌, 여러 물결 자체를 의인화하여 삶을 전환시킨 것이다. 장소의 선택과 그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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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노 세갈, 〈이 환희〉: 신체에의 음악적 가시화 또는 음악의 신체적 (재)용출REVIEW/Dance 2026. 2. 24. 20:23
티노 세갈의 〈이 환희〉는 베토벤의 9번 교향곡의 마지막 악장 "환희의 송가"를 포함한 베토벤의 여섯 곡에서 발췌한 곡들을 스코어로 재구성해 이행된다. 이는 두 명의 퍼포머의 노래-연주-움직임의 어떤 계열을 만들어 내는데, 이는 4시간의 러닝타임으로 예정되었었다. 이 두 사람 안의 공유된 스코어는 음악의 어떤 분기들 아래 있으며, 그 음악에 대한 상호적 교환, 침투, 공명 등에 대한 약속과 합의를 위한 조건 혹은 기억이 된다. 두 명의 퍼포먼스 중 마르게리타 디아다모에게 주도권이 있는데, 이는 지휘의 역할이 주로 그에게 이전되었음을 뜻한다. 계단 아래, 분리된 위치에서 그가 연주의 시작을 음가로 표현할 때 길게 늘어뜨린 “This Joy”라는 표제는, 결코 표제음악으로서 음악이 아닌, 이 정전으로서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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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미숙, 〈거의 새로운 춤〉에 대한 주석: 새로움과의 시차로서 주어REVIEW/Dance 2026. 2. 24. 19:59
“거의 새로운 춤”은 새로움에 가깝지만 새롭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자신의 무용과의 관계가 새로움에 대한 강박 일변도로 흘러왔다는 전미숙 안무가의 말은, 언제까지 무용수로 무대에 설 수 있을까에 대한 조바심 혹은 걱정과 같은 정서를 안고 살아온 최수진 무용가의 발화 이후에 출현한다. 거기에 대한 해결책이 제시되지는 않지만, 다만 마흔이 채 되기 전―39살이 되었다고 하는 최수진의 언급―의 무용수가 이미 그러한 걱정을 하고 있다는 것의 뉘앙스로부터, 65살이 되어서도 역시 무대에 서고 있는 자신의 삶의 차원에서 언제까지 무대에 설 수 있느냐의 부분은, 섣부르게 단정할 수 없는 영역이며, 너는 지속적으로 노력한다면 그것은 충분히 가능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여지를 끌어낼 수는 있을 것이다. 반면,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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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 바즈, 〈아메리카의 밤 É NOITE NA AMÉRICA〉: 징후적이거나 잠재적인 도시의 표현REVIEW/Movie 2026. 2. 24. 19:47
아나 바즈의 〈아메리카의 밤 É NOITE NA AMÉRICA〉(2022)는 영화의 주조색인 남색과 보라색의 어느 사이에 있는 어둡게 물든 도시 빌딩의 한 옥상에서 360도 패닝하는 영상으로부터 시작된다―아마도 이 영화를 오랜 시간 후에 기억한다면, 아마도 이 색의 대비일 것이고, 실제로 그러했다. 매끄럽지만은 않은 덜컹거리는 이미지는 흔들리는 카메라의 존재를 반증하는데, 이와 같은 영화의 눈은 전반적으로 현재를, 상황을, 도시를 또는 존재를 체험하고 감지하는 자의식적 반향이 영화를 지지하고 있음으로 연장된다. 여기서 옥상의 환경 자체가 사건의 발생 장소가 아니며, 주체가 직면한 “아메리카의 밤”으로서 하나의 메타포적 대상이라는 것을 유념해야 하는데, 배경으로서의 잉여가 아닌, 잉여로서의 이 도시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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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렉티브 뒹굴, 〈꿈의 방주: Demo〉: 방주 너머 꿈 그리고 누수되는 방주REVIEW/Theater 2026. 2. 24. 19:43
콜렉티브 뒹굴의 〈꿈의 방주: Demo〉(이하 〈꿈의 방주〉)에서 무대는, 극장의 위험과 재난이 발생할 수 있는 가능성의 차원이 형식적 차원의 안내 멘트로 삽입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영점의 시작으로서 형식 자체가 된다. 이 발화는 그 자체로 내재화되고 육화된 하나의 가설 공간으로서, 외부의 형식으로부터 파생된 차원을 뒤집어 거기서 시작하고 거기에 철저히 붙들리는 것이다. 따라서 무대 상수의 사선으로 놓인 창고에서 주인공이 등장하고 공연의 이전과 바깥의 경계에서 안내하는 건 공연의 외부가 아니라, 공연에 달라붙는 그 외부가 바로 공연의 중핵이라는 데서 공연에 대한 하나의 근본적인 정초의 움직임이 된다. “기후정의 창작집단”으로 콜렉티브 뒹굴을 소개하는 것에 이어, 기후위기 속 그것과 너무 지나치게 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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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민욱, 《하이퍼 옐로우》: 관점으로서 역사 혹은 관점을 향한 역사의 간격들REVIEW/Visual arts 2026. 2. 24. 19:36
스타니스와프 렘의 소설 『솔라리스』에 등장하는 솔라리스 행성의 바다는 인간의 사고로는 이해 불가능한 의식의 세계를 갖고 있고, 바로 그 지점에서, 인간 심연의 중핵을 차지하는 실재라 할 수 있다. 《하이퍼 옐로우》의 입구에 있는 임민욱의 〈솔라리스〉(2025. 코르크, LED 조명, 혼합 재료, 가변 크기.)는 이 행성의 지표면을 재현하는데, 그것은 주로 코르크라는 재료로 만든 황톳빛 봉분들의 형상을 하고 있으며, 공포 대신에 미지의 영역으로서 여러 자국, 문양, 사물 들을 관찰하고 탐사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신발을 벗거나 덧신을 신고 들어간 관객이 맞는 건, 신체 전체를 감싸는 건 하나의 조망할 수 없는 공간이며, 이 전체는 하나의 장소이다. 이 총체의 세계는 분리된 오브제의 형식적 진단의 경로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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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재민, 《폭포와 희열》: 일상의 기호학적 검출로서 사유 혹은 리서치REVIEW/Visual arts 2026. 2. 20. 20:30
《폭포와 희열》은 하나의 동명의 영상과 그것의 단초가 될 법한 여타 드로잉들로 구성된 전시로, 그 둘의 상호 연관성은 하나의 닫힌 루프를 그리는 가운데, 무언가에 도달하기 직전의 잠재태로서 가시화된다. 실제 드로잉이 영상에 이르기 전의 어떤 사고, 언어, 관념의 또 다른 표현으로서 영상을 예비하고 선취한다면, 영상은 어떤 무한히 반복되는 순환성의 시간 체제를 그리며 특정 장소들에 머물러 있다는 생각을 주는데, 이러한 결말의 서사가 없는, 과정의 연속된 경계만을 그리는 건 잠재태로서 내용인 것이다. 그리고 드로잉은 그것을 형식적으로 인계하는 어떤 과정 차원의 잠재적인 것이 된다. 이 전시의 주요한 지점을 차지‘할’ 것인, 일상의 평범함을 조금 특이한 것으로 비범한 것으로 포착해 낸 이 밋밋한 영상보다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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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연출 김예은, 〈이 세상 너머〉: ‘너머’, 두 개의 세계로부터 분열되지 않고서REVIEW/Theater 2026. 2. 20. 20:16
1〈이 세상 너머〉는 주인공, 늑대족 소녀 모울을 경유해 주요한 두 축의 서사에 진입하는데, 이는 늑대족과 바깥 세계를 투과하는 예외적 존재로서 모울의 서사가 어디에서 출발하느냐에 따른 차이로, 늑대족 안에서의 내재적인 분기, 그리고 이후 바깥 세계를 경유하여 성찰되는 변증법적인 분기가 교차된다. 이 둘은 모두 모울을 향해 있고, 모울의 성장 서사의 외양을 연출한다는 점에서 서로를 마주하는데, 문제는 또는 본질은 그 두 방향성 모두가 모울이 감당하기 어려운 차원에 있다는 것이다. 아마도 이 지점에서 성장은 유예되며, 또한 그 충격의 간격을 봉합하기 위해 ‘성장’이라는 관념이 역설적으로 필요해지는데, 〈이 세상 너머〉는 따라서 문제의 중핵을 바라보고 성찰하기보다 그것에 절대적으로 휘말리는 주체의 불안정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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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중 안무, 〈미들 워킹 미들(middle walking middle)〉: 경보를 경유한 춤의 재정초성REVIEW/Dance 2026. 2. 20. 19:53
김건중의 〈미들 워킹 미들(middle walking middle)〉은 스포츠의 일종인 경보를 분절하고 파편으로 추출, 미세한 신체 단위로 변주한다. 대체적인 흐름은 경보를 느린 동작으로 분쇄하다가 이내 경보를 재현하며, 들숨과 날숨의 단위로 구분 지어 어느 하나를 선택해 연결함으로써 부각시키며 몸 전체로 확장시킨다. 여기서 드러나는 건 경보를 표상하되 그것의 변형, 감축, 확대를 통한 파편적 조합을 통해 환유한다는 것이다. 이는 경보를 하는 몸의 탐구일 수도 있으며, 그보다는 그로써 얻어진 결과, 경보에서 움직임의 작동 원리가 무용의 그것에 상응하는 경계를 발견하는 것 혹은 역으로, 그 전이 지대를 찾아내기 위한 경보의 탈경보화를 감행하는 것이다. 따라서 경보는 절대적으로 중요하며 또한 절대적으로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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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랑콜리댄스컴퍼니, 〈모빌리티 : 테스트드라이브〉: 이동에 대한 열망 혹은 제약과 변용, 축적에 대한 욕망REVIEW/Dance 2026. 2. 20. 14:11
〈모빌리티 : 테스트드라이브〉는 전적으로 이동성을 지닌 도구로서 몸을 재편한다. 이는 일종의 두 개의 런웨이, 두 개의 직사각형이 X자로 교차하는 무대 위에서 끊임없이 두 개의 경로를 이동하는 흐름으로만 구성되는데, 다시 말해, 모든 움직임은 이동성에 기초한 움직임으로 볼 수 있다. 여기에는 몸에 특정한 제약을 거는 걸 의미한다. 곧 전진의 한 방향성을 지속하기 위한 혹은 힘을 가하기 위한 하반신에 초점을 맞춘 신체 전반의 운용은, 좌우축의 움직임과 수직축의 움직임을, 나아가 그에 수반되는 유연성의 움직임을 모두 제한해야 한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움직임의 배제, 비자율적인 기계 장치로의 단순화는 다양한 형상이라는 대치, 이행, 변주의 차원에서 상쇄되는데, 그것은 질적, 내재적 차원의 전개가 아닌, 일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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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영, 〈경계넘기: 신진순박소영박뽀또 Part.1〉: 경계를 간직하기 혹은 흔들리는 주체에 머물기REVIEW/Theater 2026. 2. 20. 13:55
박소영의 〈경계넘기: 신진순박소영박뽀또 Part.1〉(이하 〈경계넘기〉)는 공고하고 자연스러운 관습으로 치부되어 온 아버지 성 대신에 어머니 성을 씀을 선택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지 아래, 여러 시도를 해왔던 과정과 제반 리서치를 전한다. 이는 후반, 그가 어머니 신진순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가시화되는데, 어머니의 삶을 존중하고 그 중요성과 가치가 승인되고 기념되며 설파되기를 바라는바, 그 흔적이 자신을 타고 각인되기를 소망함에 따른 것으로서 비로소 그 의미가 결정된다. 그가 이름을 바꾸게 됨에 일정 정도 주저하는 바는 그의 행동이 페미니즘 운동으로 읽히며 그가 페미니즘 전사로 명명될 수 있음에 따른 부분도 있는데, 그보다 추상적인 차원에서는 그에게 올 어떤 즉자적인 변화가 근원적인 변화로 그의 삶을 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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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루브앤드, 〈물의 놀이〉: 물에 대한 지각 혹은 인식REVIEW/Music 2026. 2. 20. 13:38
그루브앤드의 〈물의 놀이〉는 “물의 여정”을 소재로, 물의 이동 과정에서 겪는 다양한 변화의 양상을 하나의 서사로 갈음하는데, 그것은 물이라는 하나의 유동하는 흐름에서 각각의 양태를 특정한 하나의 주어의 상태로 인식하고, 그 안에서의 구분하기 힘든 집합적 이행의 방식을 그 바깥으로 향하는 특정 개체가 겪는 시간적 변화의 질서로 재인식하는 것에 다름없다―그것은 내부에서의 주어의 구분과 외부라는 방향성의 정립으로 이뤄지는데, 그 둘은 물론 동시적이지만 약간의 시차 안에서 그러하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곧 주어가 하나의 분별된 지각을 이룰 수 있다는 지점에서, 음악은 표제음악의 성격을 띤다. 이때 다양한 악기의 쓰임은 질감과 운동성이라는 물질적 차원에서의 여러 감각에 접근하는 한편, 그것에 입체적인 생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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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진 작·연출, 〈히스테리 앵자이어티 춤추는 할머니〉: 혁명의 정동, 그리고 욕망으로의 하강REVIEW/Theater 2026. 2. 4. 21:51
〈히스테리 앵자이어티 춤추는 할머니〉(이하 〈히스테리 앵자이어티〉는 1막과 2막이 절합되어 있는데, 1막이 각 배우들의 자전적 이야기에 입각한 수행성을 띤 발화들이 교차한다면, 2막은 가상의 시점에서 이들이 하나의 삶을 이루는 연극적 상황으로 전개된다. 1막이 강렬한 정동의 소실점을 향해 다양한 음악의 힘을 난사한다면, 2막은 상속 재산의 나눔이라는 공동의 의제 속에 개체들을 분화시킨다. 여기서 여성의 공동의 연대라는 이념은 1막의 “어떤 여자들”로 묶이는 차이의 집합을 개체들의 코러스로서 연장하며 승화되는데, 2막은 이러한 이념을 현실로 떨어뜨려 돈을 경유한 가장 지질하고도 구체적인 차원에서 직접적으로 ‘시험’한다. 1막이 순수하게 육박하는 매니페스토의 형태를 띤다면, 2막은 그것이 현실적으로 갈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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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하, 〈하리보 김치〉: 냄새나는 아시아인에 대한 자각 혹은 정신 승리REVIEW/Theater 2026. 2. 4. 21:14
구자하의 〈하리보 김치〉는 무대 위에 포장마차 세트를 갖다 놓고, 현장의 관객 2명을 초대해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에서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작가의 유학 경험 당시 김치를 고국에서 가져왔다가 겪은 곤궁으로부터 자신의 외로움과 스트레스를 덜어주는 데 역할을 했던 유명한 젤리 브랜드의 하리보 젤리가 합성된 제목에서처럼 이방인으로서 경험을 그렇게 후각적, 미각적 차원의 음식 혹은 식품을 이어나가며 기호들의 환유로써 작품을 완성한다. 그것은 기억으로 체현되고 구자하의 요리로써 수행되는 기호들의 매우 분명한, 그럴듯한 연결, 접촉의 과정으로, 이는 물론 서사의 개연성의 측면, 곧 파편적 소재들의 나열로서 강도 높은 체험의 영역에서의 기호가 단지 표상되는 것만이 아니라 어떻게 그렇게 자리 잡는지, 곧 분절되는지의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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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이온, 〈스와이프〉: 현존을 재정의하기 또는 재설정하기REVIEW/Theater 2026. 2. 4. 21:04
1 〈스와이프〉는 다이애나밴드의 “소리-사물”들이 극장 전반에 배치되어 단속적으로 소리를 내는 가운데, 네 명의 배우가 순차적으로 어떤 관념들을, 돌아가며 발화하며 잇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 교환적, 교차적 놀이의 기저에는 무엇보다 네 명의 배우들이 말을 위임받고 수행하는 존재이며, 관계항으로서 역할들의 위상차가 아닌 이야기 전달자로서 단지 그 역할들을 임의적이고 임시적으로 ‘도입’하기에 동등함, 이야기 전달자로서 효율적으로 또 형식적으로 균형을 맞추는 기술적 차원에서 동등함이 전제된다. 디에게시스의 말하기 방식을 전적으로 구사하는 배우들이 독립적이고 특정적인 자기 자체로서 임하면서 일부 미메시스 차원에서 관계항의 연기가 가능한 지점을 삽입하는데, 이는 현실 차원에서 이 넷의 ‘자신’과 그 관계에서 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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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정, 〈아무도, 아무 것도, 아닌 것이 아닌〉: 비기능적인, 비의도적인 움직임REVIEW/Dance 2026. 1. 31. 22:11
“아무도, 아무 것도, 아닌 것이 아닌”이라는 제목은 부정의 부정을 거듭한다. 아무도, 아무것도 아닌 무엇이 아니라는 것은 그것이 어떤 무엇으로 특정 가능하다는 것을, 어떤 의미를 띤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그것은 적어도 아무도, 아무것도 아닌 존재를 경유해서만 자신을 그것으로서 드러낸다, 적어도 이 문장에서는 말이다. 〈아닌 것이 아닌〉은 곧 이 아무것도 아닌 무엇으로부터 더는 부정할 수 없는 움직임을 추출해 내려는 어떤 시도들이다. 아마도 내장까지 숨을 불어넣어 쉬고, 하품하고, 몸을 가눌 수 없는 상태로 흔들리는 어떤 일련의 과정은, 움직임의 메커니즘을 가시화하는 절차들이 곧 움직임임을 나타낸다. 그 안에서 어떤 소리가 불거지고 몸을 지배하고 주요한 매체 표현으로 드러나는 양상은, 일견 황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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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무용단의 《안무가 랩: 듀오》 ‘둘’이라는 실험적 요소 혹은 관계의 확장REVIEW/Dance 2026. 1. 31. 21:54
서울시무용단의 《안무가 랩: 듀오》는 서울시무용단 내에서 짝을 이룬 듀오 다섯 팀의 공연을 묶어 보여준 것으로, 이는 2인무라는 긴밀한 협업과 지지에 기반한 창작의 방향을 제시함으로써 내부의 창작 역량을 고취하고자 한 프로젝트로, 상대적으로 밀도가 높은 소규모의 공연들이 펼쳐졌다. 둘의 관계 지향적 이행은 필연적으로 서사로 연장되기에 이르는데, 이러한 측면에서 대부분에 있어 하나의 공통점이 출현했다. 그리고 이를 내용과 메시지로 가져갈 것인가 순수한 움직임의 차원에서 구현할 것인가가 작품의 성격을 본질적으로 결정하는 요소로 작용했다. 오정윤과 박희주의 〈니나〉(안무 오정윤)는 붉은 빛으로 채워진 좁은 네모 프레임 안에서 그에 맞추어 낮은 자세로 바닥에 밀착한 움직임들을 취하는데, 이는 숨에 기반한 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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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서영, 《올 노 그립》: 제어되지 않는 또는 내파되지 않는 세계REVIEW/Visual arts 2026. 1. 31. 21:45
장서영의 《올 노 그립》은 전시 공학적으로는 동명의 작품 〈올 노 그립〉(2025. 단채널 영상, 13분 45초.)을 전면에 내세우며 그 밖의 작품들을 그것의 부속인 양 해체시켜 늘어뜨려 놓는 방식을 택하는데, 대표적으로 〈평활근〉(2025. 스테인리스스틸, 200×270×70cm.)은 영상에 나오는 “5단 변신 침대” 혹은 “5단 변신 자동차”의 뼈대‘들’로 그것은 그것들로만은 온전히 합체되지 않은, 합체될 수 없는 “가변”의 형상을 겨우 이루고 있다―여기서 숫자는 변화의 단계가 아닌 유형학적 분류의 기준으로 추정되는데, 곧 이 침대는 “욕창 없는 다섯 개의 자세”를 위한 가변 모델이다. 그것이 내장의 근육이자 불수의근으로서, 우리의 의지로 구동되지 않는 근육이라는 점은, 금속 파이프 관의 이 틀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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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은, 〈메타발레: 즉흥, 구겨진 아티튜드〉: 발레라는 문지방으로 들어서기REVIEW/Dance 2026. 1. 31. 21:22
〈메타발레: 즉흥, 구겨진 아티튜드〉(이하 〈메타발레〉)는 발레 자체를 비트는 시도인데, 이는 곧 발레를 부정하고 거기에 비판적으로 관여하는 것이 아니라, 발레의 심급을, 발레에 대한 관점을 재조정하려는 시도에 가깝다. 따라서 그것은 잠재적이며 수행적이지만, 그 표현의 일체는 ‘모호하게’ 가시화된다. 곧 표면은 비틀려 있다. 뒤로 갈수록 〈메타발레〉는 하나의 공연의 형태를 완성해 가게 되는데, 이때 그 공연 역시 그것이 공연으로 완수되는 것인지 공연이라는 형식에 우연하게 근접한 것인지, 더 정확히는 무용수가 (또 하나의 다른) 역할을 연기하는 것인지 무용수라는 하나의 역할이 공연으로 연장되는 것인지 전적인 혼동 아래 놓인다. 무용수마다의 여러 레이어가 중첩된 형태로 주어지며, 그 일부를 이어 받아 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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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민 호크미, 〈쉬라즈 Shiraz〉(2025): 의례가 구성하는 개인으로서 해방REVIEW/Dance 2026. 1. 27. 21:51
아르민 호크미의 〈쉬라즈〉는 하나의 포즈로부터 시작되며, 그것은 점차 변화되기도 하지만, 거의 일괄적으로 적용된다. 오른손을 얼굴께까지 올린 이 포즈는 오른발을 살포시 내밀고 왼발을 두 번 정도 더 재게 따라잡는 더딘 이동 안에 있다. 이는 신체의 전면적인 드러남이자 약간의 회피이며, 후자의 내면 공간 안에 침잠한 이들의 전체로서 후자에 고스란히 대응하는 표면에 대한 강한 인력을 낳는다. 이 포즈는, 신체는 직접적인 해석을 유예하고 인류학적 관찰의 시선으로 전이되거나 의례 혹은 명상 차원에 조응하는 감각의 전환을 요청한다―바로 전자에서 표층의 해부학적 기술이 가능하며 또 필요해진다. ‘쉬라즈’라는 축제가 열리던 동명의 도시 공간에 대해 상기함이 감은 눈의 그들의 내면을 잠식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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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호, 〈전야제: 겨 터를 열다〉(2025): 리서치를 위한 대화, 혹은 대화를 위한 리서치REVIEW/Dance 2026. 1. 27. 21:25
〈전야제: 겨 터를 열다〉(이하 〈전야제〉)는 겨드랑이와 관련한 여러 서사적 조각을 연결하는 조진호의 디에게시스적 경로를 따르는데, 여기에는 신체 특정 부위로서 겨드랑이와 상응되는 움직임의 탐색, 겨드랑이를 관계의 접합부로 활용하는 두 사람의 긴밀한 구조적 움직임의 실천이 경유된다. 처음 조진호는 무용에 입문해 레오타드를 하며 겨드랑이에 민감하게 된 자신의 원-경험에서 출발하지만, 겨드랑이에 관한 애착 심리의 차원에서 자신의 무용사를 정리하는 것으로 연장하기보다는 밤 야(夜) 자의 상형문자 풀이를 통해 겨드랑이를 의식의 차원으로 고양해 내고자 한다. 제목에서처럼 겨드랑이를 하나의 터로서 확장된 의미의 공간으로 마련하면서 밤의 축제적 공간으로 그것을 재정립함에는, 갑골문에서 밤 야 자의 원래 형상이 팔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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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이다은, 《보편타당한 숲》(2025): 장소의 교환 혹은 교차로서 확장된 숲REVIEW/Interdisciplinary Art 2026. 1. 27. 21:10
심이다은의 《보편타당한 숲》은 서울 궁동근린공원에서 시작해 인근 플랫폼 팜파에서 끝나는데, ‘보편타당한 숲’으로 가정한 공원을 한 시간 정도 거닌 후에, 마지막에 도착하는 장소인 플랫폼 팜파는, 개인 주택의 주차장으로, 그 내부에서 백두대간의 필드트립의 결과물 아카이빙을 확인하며 종료되는 장소이다. 지리산의 반달곰, 소백산의 붉은여우, 설악산의 산양을 각 산의 수호신으로 가정하고 이를 만나는 과정으로, 심이다은은 사적이고 내밀한 자신의 주거지 반경에 백두대간을 불러오고 대입해서 필드트립의 목적성을 희미하게나마 부여한다. 따라서 백두대간의 상상적 전유로서 물리적 장소인 궁동근린공원과 작가의 사적 반경의 실제적 전유로서 백두대간은 교환되는데, 그것은 물리적으로 체현되면서 상상적으로 연접된다. 백두대간의 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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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연극회 : 오픈 오케스트라 쇼〉(2024)에 대한 주석: 기원으로 소급하며 자유로워지기REVIEW/Theater 2026. 1. 27. 20:41
〈열린 연극회 : 오픈 오케스트라 쇼〉(이하 〈열린 연극회〉)는 연극(theater)의 정의를 그 어원, ‘보는 장소’, 곧 고대 그리스 극장의 계단식 객석을 뜻했던 테아트론(Theatron)에서 그곳에서 관객이 바라보는 무대였던 원형의 무대, 오케스트라(Orchestra)의 의미로 재정의하기 위해 전자를 소거한다. 관객을 포함한 배우 모두를 오케스트라에 위치시킴으로써 연극을 보는 자가 아닌 하는 자의 몫으로, 보는 것(거리를 두는 것)이 아닌 수행하며 감각하는 것으로 두는 것이다. 관객과 공연자 사이에 놓인 분할선을 물리적이고 장소적으로 재분할 또는 합치하는 전략을 통해, 관객의 장소, 곧 관객은 사라질 수 있을까. 기원적 장소로서의 오케스트라와 함께, 오케스트라라는 연주대로 추후 전의된 오케스트라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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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무가 매칭 프로젝트 제26회 생생 춤 페스티벌》 (240927) 리뷰REVIEW/Dance 2026. 1. 19. 20:57
이형희×이형희 무용단의 〈To.children〉은 어른과 아이의 세대적 간격을 전제로, 아이들의 에너지와 순수함을 경유하며 밝은 미래에 관한 소망을, 아이에게 투사하는 어른으로 수렴시키는 작업이다. 따라서 움직임은 목적적이고 다분히 기능적이다. 마이클 잭슨의 〈Heal the world〉가 배경음악이 되며, 움직임 역시 그에 정합되는데, 이는 대중문화적 정서의 차원으로 크게 고양된다. 김나이×SKK-人 Dance의 〈(RE)Direct〉는 움직임의 형식적 차원을 하나의 절대적인 심급으로 내세운다는 점에서, 예외적인 작업이다. 여기에는 특별한 당위나 주제에 대한 의식이 덧붙지 않는데, 두 팔을 한 방향으로 곧고 길게 뻗어내는 동작은 동시에 이동 경로의 한 부분을 구성한다. 곧 개체들의 크고 유려하며 투박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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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무가 매칭 프로젝트 제26회 생생 춤 페스티벌》 (240926) 리뷰REVIEW/Dance 2026. 1. 19. 20:55
양승관×Sejong Dance Company의 〈깊은 바닷속, 漁〉는 드라마적 서사의 극적 재현과 현대무용의 표현의 두 축을 모두 활용하는데, 물방울 소리에서 바다를 표상하는 사운드로 나아가는 시작점으로부터 익숙한 팝송을 연이어 차용하면서 드라마적 장르의 힘을 불러온다. 세계는 음악적 힘과 부피로부터 지지되고 충만해지는데, 여기서 움직임은 그 정서에 대한 표출이다. 이는 음악의 틀을 깨고 강박적이고 단속적인 리듬에 의거한 사운드로부터 변전되는데, 이로써 현대무용의 범주 안에 기입될 수 있게 된다. 기계체조적인 몸짓과 유려한 선에 실리 힘은 두 팔을 허공에 흔드는 동작으로 나아간다. 이는 다시 움직임 자체의 역량을 전시하는 대신, 서사의 모티브를 존재의 형상으로 가두는 몸짓이다. 장두익×CAU Move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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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무가 매칭 프로젝트 제26회 생생 춤 페스티벌》(240922) 리뷰REVIEW/Dance 2026. 1. 19. 20:51
김유미×오르난댄스컴퍼니의 〈Childlike〉는 무용수들이 지닌 젊음의 특징을 작품의 형식으로 고스란히 전환하는데, 패션은 그 물리적 특징과 차이의 기호학으로 적용된다. 파란 정장에서 하얀 티셔츠로의 변화는 해방과 일탈의 의미로 부상한다. 상의를 벗어 던지고 베개를 던지고 환호성을 지르며 뛰쳐나오는 모습은 싱그러움으로 가득한 공간을 만든다. 말하듯 표현되는 보컬 아래, 정장의 움직임들이 세련됨의 기호를 추구하는 것으로 이어진다면, 전환의 구문은 앞선 시간을 손쉽게 전복하고 탈환한다. 김민×KARTS무용단-Choreography의 〈BARCODE〉는 앞서 다룬 바 있는 작품으로(https://www.artscene.co.kr/1923), 이번에는 그 길이를 줄여서 진행되었다. 대중을 상대로 한 서커스의 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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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무가 매칭 프로젝트 제26회 생생 춤 페스티벌》(240921) 리뷰REVIEW/Dance 2026. 1. 19. 20:43
《안무가 매칭 프로젝트 제26회 생생 춤 페스티벌》은 크게 두 가지 특징이 있는데, 대규모로 출현하는 무용수, 그리고 연달아 작품이 소개되는 가운데 특별한 무대 장치를 동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작품 주제와 상관없지만, 작품의 형식을 결정하는 물리적 조건으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수많은 인원을 다루는 쉬운 방식은 통일된 안무를 구현하는 것이다. 이는 개별 무용수들의 차이보다는 동등함을 요청하며, 그 결과, 힘의 공식적 효과를 만들어낸다. 그 춤의 구현이 개별자에게 어려울 수 있음에도 결과적으로 이것을 보는 이의 관점에서는 그 춤은 쉽고 간결하고 명확하다. 동일한 욕망을 좇는 이들의 사유 없는 행위 양식은 어떤 의심 없이 명쾌하다. 그 동일함의 양태는 실상 당연한 것은 아니지만, 그 안에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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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새 작/연출, 〈시스터 액트리스〉: 미래를 위한 역사로의 잠입REVIEW/Theater 2026. 1. 19. 20:31
‘중세 시대의 수도원에 위장 전입한 로봇 수녀가 있었다면’이라는 가정으로부터 〈시스터 액트리스〉는 출발한다. 이 가정은 극에서도 하나의 모티브로서 그 주변을 맴도는 네 명의 수녀와 한 명의 이야기꾼을 통해 보존된다. 〈시스터 액트리스〉는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이다. 실제 로봇은 등장하지 않으며, 그것은 거꾸로 로봇 서사를 재현할 임무가 그 주변에 자리한 수녀들에 있음을 의미한다. 이는 로봇과의 관계 속에서 변화되는 캐릭터의 양상과 함께 주어지며, 따라서 로봇을 제외한 여타의 존재들은 상호 관계적인 변화의 흐름 속에 유동적인 실체로 자리하는 한편, 그 관계의 이전을 통해 초점은 그들 자체로 옮겨간다. 곧 “세인트스완”으로 불리는 액트리스원(“시스터 액트리스”)은 이야기 안에 존재하되 등장하지 않는 대상으로 ..